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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04화 (104/309)

제104화

-스르륵.

순간적으로 어색한 적막이 내려앉은 장례식장에 별안간 거대한 스크린이 내려왔다.

유영화의 영정을 가린 스크린은 창백하게 질린 박양환의 얼굴색과 똑 닮은 새하얀색이었다.

“실은 제 바디캠에, 유영화 선배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이 남아 있지 뭡니까.”

“…유, 유언이라고? 영화가 자네에게 유언을 남겼단 말인가?!”

박양환의 말투는 잔뜩 흥분한 듯 다급했지만, 낯빛은 여전히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덜덜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선 숨길 수 없는 당황이란 감정이 묻어나왔다.

뭐, 당황스러워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아모스는 유영화의 육신이 파괴됨과 동시에 준비해뒀던 새로운 육체에 빙의했을 테니까.

유언? 아모스 입장에선 그딴건 남길 필요도 없고. 남길 이유도 없다.

“예. 굳건한 의지를 자랑하셨던 선배님답게…. 이미 육신의 기능이 정지하신 상태에서도 최후의 힘을 짜내 제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나는 데룩데룩 눈동자를 굴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박양환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삼켰다.

박양환에겐 지금 내가 지껄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동네 똥개가 유명 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것과 동급의 헛소리로 느껴질 거다.

“주, 중요한 메시지라니.”

-따악!

나는 박양환의 질문에 말없이 손가락을 강하게 튕겼다.

중지가 엄지손가락 뿌리 쪽을 강하게 때리며 호쾌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커다란 스크린에 한편의 영상이 재생됙 시작했다.

「자, 잘 찍고 있지? 크읏. 내가 바디캠을 통해 유언을 남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쪽 벽면을 고스란히 차지한 스크린에 비친 화면 속엔 시퍼런 달이 휘영철 떠올라 있었다.

시릴 듯 파리한 달빛 아래에서 유영화는 처연한 얼굴로 힘없이 웃고 있었다.

「보고 있어? 양환 오빠? …이런 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기게 되어 정말 유감이야. 유일한 피붙이였던 영기도 죽어버렸으니,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오빠 밖에 없네. 미안해.」

“여, 영화야….”

멍한 표정으로 영상 속 유영화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양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따라 그의 입에서 흘러내린 목소리엔 안타까운 흐느낌이 듬뿍 묻어있었다.

『거짓』

하지만. 역시나 박양환의 머리 위에 떠 올라있는 단어는 ‘거짓’이었다.

핏발 선 눈동자도, 주름진 눈가를 따라 흐르는 눈물도 모조리 꾸며낸 가식에 불과했다.

-저, 저길 봐! 유영화야! 유영화의 마지막 유언이라니….

-뭘 멍청이 서 있어! 어서 찍어! 이거야말로 특종이야! 특종!

스크린을 가득 메운 유영화의 모습에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하이에나처럼 특종거리를 찾아 헤메던 기자들도, 침통스러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던 강태백과 다른 산군들도 홀린 듯 스크린에 비친 유영화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오빠. 우리는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어. 계룡 공격대가 전멸한 것도, 오행 길드가 갑자기 적대적으로 나온 것도…. 모두…. 나태상 그 씹어먹을 개자식의 음모였어.」

커다란 스크린 속 유영화의 입에서 뜻밖의 인물이 언급되었다.

그 순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든 이들의 고개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홱하니 돌아갔다.

“마, 말도 안 돼! 거, 거짓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엔 멍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는 나태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잠깐 동안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하던 그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더듬더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좋아.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콰아앙!

“거짓말은 무슨! 유영화 선배님께서 네놈을 직접 지목하셨다!”

모두의 시선이 나태상에게 집중된 바로 그 순간!

나태상의 입에서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억울한 변명이 튀어나온 그 순간!

나는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지르며, 나태상을 향해 도약했다.

-촤르르륵!

일류 배우가 준비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듯.

극적인 효과를 위해 두른 금빛 외골격이 내 모습을 찬란하게 빛내줬다.

-설용호 헌터가 나태상에게 달려들었어! 그, 그런데 저 양반이 저렇게 멋졌나?

-무슨 소리야! ‘얼굴천재’ 설용호 몰라? 우리 용호님은 원래 잘생겼다구!

-세상에…. 말도 안 돼.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잘생길 수 있는 거지?

외골격 『미의 화신』의 효과로 인해 뻥튀기된 『외모지상주의』의 효과는 역시 대단했다.

장례식장을 방문한 기자들과 일반 직원들은 물론, 다른 산군들까지 순간적으로 할말을 잃은 채로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지어, 내 음험한 음모에 피폭된 나태상마저 입을 헤 벌린 채, 나를 바라볼 정도였다.

-콰아악!

그렇게 화려하게 도약해 나태상 바로 앞에 떨어져내린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멱살을 틀어쥐었다.

“유영화 선배님께서 내게 직접 부탁하셨다. 네놈의 목을 자신의 영전에 올려달라고 말이지!”

-찰칵! 찰칵! 찰칵!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나태상에게 유영화의 마지막 유언(?)을 전하자.

셔터음과 함께, 사방에서 요란하게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특종에 굶주린 하이에나들 답게, 기자들은 홀린 듯 나와 나태상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핫!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이 핏덩어리 새끼! 선배의 시신을 수습해줬대서 기특하게 봐줬더니. 이따위 개수작을 부려?!”

-파지직!

요란스레 번쩍거렸던 불빛 덕분일까?

멱살이 붙잡힌 채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나태상의 눈에 총기가 돌아오나 싶더니.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곤 주인의 분노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그의 몸엔 시퍼런 전하로 이뤄진 외골격이 파지직 소리와 함께 돋아나기 시작했다.

“수작? 존경하는 유영화 선배님의 마지막 유언을 ‘그대로’ 전해드린 것도 개수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양이지?”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히죽 이를 드러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태상의 말대로 유영화가 남긴 유언은 모조리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영상 속 유영화는 가면놀이 스킬로 그녀의 모습을 빌린 ‘나’였으니까.

모든 것은 나태상을 비롯해 아모스 세력을 찍어내리기 위한 내 ‘수작질’에 불과했다.

“이, 이새끼가 감힛!.”

“…그러고 보니, 태상이 자네도 공개할 영상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나와 멱살을 붙잡힌 나태상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돌자.

어느새 다가온 박양환이 침착한 목소리로 나태상에게 모종의 사실 하나를 일깨워 주었다.

흐응…. 공개할 영상이라니, ‘그 영상’을 여기서 공개할 생각인가?

“그, 그렇지. 나도. 나도 공개할 영상이 하나 있다. 네놈의 그 가증스러운 가면 속에 감춰진 추악한 모습을 폭로할 영상 말이지!”

빙고.

궁지에 몰린 나태상은 내가 예상했던 패를 꺼내 들었다.

나태상이 자신의 부하 직원들에게 뭐라 눈짓하자, 스크린 위로 새로운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봐라! 이것이 바로 설용호의 추악한 비밀이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모스 측에서 준비한 영상은 내가 만들어낸 영상 못지않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들은 내가 강마병들을 학살하던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마치 태백의 무고한 직원들을 학살하는 것처럼 꾸몄다.

또, 영상의 말미에선 내가 중년인을 잔인하게 학살하던 모습을 편집하여, 진실을 알아낸 무고한 폭로자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듯한 모습으로 꾸며낸 상태였다.

「…. 설용호 헌터를 조심 하십쇼. 대장. 조만간 놈은 유영화 산군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 쿨룩!」

비장한 표정으로 마지막 경고를 남긴 중년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을 맺었다.

-지,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용호 헌터가 저렇게 악랄한 짓을 저질렀다고?

-에이 설마. 설용호 헌터가 어떤 사람인데….

“…!”

하지만 애석하게도,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의 여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제법 정성스럽게 영상을 편집하긴 했지만, 모두들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태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힐난하듯 나태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불신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편집한 영상 아닐까?

-봐봐, 나태상 저거 생긴 것도 간신배처럼 생겼잖아. 분명 뭔가 음험한 구석이 있을거야.

-그럼, 그럼. 나태상 저거 전형적인 탐관오리 상인데, 저 영상도 뭔가 편집하거나 그랬을걸?

외골격을 드러내, 『외모지상주의』 특성의 효과를 증폭시킨 보람이 있었다.

우월한 외모는 이따금씩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 설득력을 부여해주니 말이지.

“끄응…. 영화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지….”

영상을 공개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여론이 변하지 않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눈을 꼭 감고 있었던 박양환이 으스스한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우리 태백에 쥐새끼가 한 마리. 숨어들어 있다고 말이야. 나태상! 그리고 설용호! 네놈들 중 그 ‘쥐새끼’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거, 노인네 기세 한 번 살벌하네.

말로는 나태상과 나를 동시에 지적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박양환의 살기는 오롯이 나를 향해있었다.

으스스하게 살기를 흩뿌리는 것도 나와 나태상을 동시에 언급한 것도, 모두 기자들 앞에서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수작에 지나지 않았다.

“쥐새끼라…. 길드를 좀 먹는 쥐새끼를 잡는 건 저도 찬성입니다.”

은연중에 내게 집중된 서늘한 살기와 마주하고도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박양환의 말에 생긋 웃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짝짝.

“어때? 그쪽도 쥐새끼 잡는 것에 찬성하는 건가?”

“그래! 그렇고말고! 당연히 우리 태백의 명성에 누가되는 쥐새끼는 번개에 튀겨 죽여야 제맛이지!”

편집된 영상의 힘을 맹신하는 모양인지 아니면 바디캠에 새겨둔 마법진의 힘을 믿은 것인지.

나를 바라보는 나태상의 눈빛엔 기세등등한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래? 그럼 선배도 동의한 걸로 치고, ‘다음’ 동영상을 보여드리지.”

“다, 다음? 다음 영상이라니 그건 또 무슨…!”

-따악!

나태상이 당황하건 말건, 다시 한번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의외의 발언에 나태상과 박양환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작품명은 ‘원본’이야. 선배.”

-차르르륵

새하얀 스크린 위에 새로운 영상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신지현이 감독했으며, 이세영이 편집한 역작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 뭐야. 똑같은 영상인데, 내용이 완전히 다르잖아?

-봐봐. 역시 저 간신배가 음모를 꾸민게 확실하다니까!

-어서 찍어! 진실을 전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다!

새롭게 투영된 영상은 나태상이 공개한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영상 속의 인물들이 외치는 대사는 나태상이 공개한 영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상 덕에,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태상을 바라보던 이들의 눈에 확신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게 방금 나태상 선배가 공개한 영상의 ‘원본’입니다. 태백을 습격한 무리들의 바디캠에서 입수한 영상이죠. 어쩐지 놈들이 괴상한 소리를 지껄이더라니…. 영상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미처 몰랐군요.”

“원본이라고?”

“예, 조금 전 놈들의 우두머리였던 중년 사내의 시신에서 회수한 영상입니다. 그나저나 요즘 편집기술이 참 대단하네요?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던 악당을 무슨 양심 고백하는 열사처럼 만들어 놓다니 말이에요.”

나태상을 향한 여론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나는 생긋 웃으며 쐐기를 박아넣었다.

그리곤 나태상과 박양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인사팀에게 신호를 보냈다.

“우우우우! 역시 사람은 생긴대로 노는구만!”

모여들었던 기자 중 한명이 벌떡 일어나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는 기자로 변장하여 언론인들 사이에 잠입 중이었던 인사팀원이었다.

제법 덩치가 후리후리하게 큰 그가 목청을 돋궈 야유를 질러대자.

용기를 얻은 다른 이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역시 생긴대로 노는군! 간신배처럼 생긴놈이 음모도 꼭 지 생긴것처럼 꾸몄어!

-아암! 설용호도 양심이 있지, 저 외모로 음침한 음모 따윌 꾸밀 리가 없지!

-박양환 헌터님! 말씀하신 것처럼 저 쥐새끼를 처단해주세요!

무릇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보단, 단체로 있을 때 용기를 얻는 법이다.

인사팀원이 훌륭히 바람잡이 역할을 수행해내자, 삽시간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이 하찮은 것들이!”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서인지, 나태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며 사람들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서 살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윽.

“그럼. 결백을 증명해보시던지. 내쪽엔 그의 시신에서 회수한 바디캠이 있거든!”

나태상은 분노, 당황 등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평정을 잃어버린 그에게 나는 미리 준비해온 바디캠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의 시신에서 바디캠을 회수했다고?”

바로 그 순간! 나태상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하하! 걸려들었구나. 멍청한 놈! 거사를 치르기 전에 이 몸이 직접 그의 바디캠에 증거인멸용 마법진을 새겨놨거늘!”

내 말에서 모순점을 포착한 나태상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치명적인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몸이 직접 새겨둔 마법진인데 바디캠 따위가 남아 있을 리가… 헙!”

뒤늦게 자신이 무슨 소릴 지껄였는지 눈치챈 모양인지, 나태상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방정맞은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쏟아져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들으셨죠? 선배? 아무래도 ‘쥐새끼’가 스스로 자백을 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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