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아, 안다니 그게 무슨…?”
“그런게 있으니까. 잘가시고. 나중에 또 보자구.”
아모스에게 히죽 미소를 지어준 나는 아모스의 심장에 창날을 박아넣었다.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리던 육신이 움직임을 멎었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구나.]
아모스의 육신이 움직임을 멈춘 것과 동시에, 내 가슴께에서 위철용의 비췻빛 얼굴이 쑤욱 솟아나왔다.
그렇게 얼굴을 내민 채,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쓰러진 아모스의 시신을 보곤 눈을 살짝 치켜떴다.
“요즘 도대체 제 심상세계 속에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좋은 구경 다 놓치셨네.”
최근들어 위철용이 심상세계에 틀어박히는 빈도가 워낙 늘어났기에.
서운함을 느낀 내가 핀잔하듯 쏘아 붙이자, 위철용은 콧등을 살짝 찡그렸다.
[명상할 일이 좀 생겼다고 하지 않았더냐. 헌데, 이 놈은 분명….]
“예, 아모스에요. 무슨 일인지, 놈이 직접 왔더라구요.”
[그래 아모스…. 잠깐만! 아모스라고?!]
아모스의 이름 석자를 중얼거리던 위철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 없는 수염이 뻣뻣하게 일어서며, 입이 떡 벌어진 것이 보통 깜짝 놀란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 간악한 놈이 직접 왔다고? 아니, 도대체 놈을 네놈이 어찌….]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위철용은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내 몸에서 어떠한 상처조차 발견해내지 못하자, 그의 눈에 경악섞인 이채가 떠올랐다.
[…상처 하나 없이, 놈을 그리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게냐?]
“그게요. 그때보다 레벨이 열단계 가까이 오르기도 했고, 놈과 상극인 특성도 지녀서…. 아, 뭣보다. 아시잖아요? 놈 성격 이상한거. 일부러 한 대 맞아주더니. 그대로 힘이 빠져서 맥도 못추더라구요.”
그랬다.
『육체와 영혼』 특성 덕분에, 유영화의 몸에 빙의한 아모스는 내 처음 기습을 허용해 준 뒤론,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채로 무력하게 일방적으로 당해버렸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네놈도 알다시피. 놈의 본체는 따로 있느니라.]
얼굴을 잔뜩 찌푸린 위철용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내게 주의를 주었다.
“예, 잘 알고 있죠. 하지만 놈도 유영화의 육신을 잃었으니. 운신에 제약이 좀 생겼을 거에요.”
다른 평범한 인물이야, 적당히 외모를 비슷하게 개조하는 식으로 변장할 수 있다지만.
아모스가 여기에서 잃어버린 ‘유영화’라는 육신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놈이 유영화의 육신을 이용하여 산군으로 활동한 덕분에, 태백의 시스템상 유영화의 생체정보는 철저하게 분석되어 엄중히 관리되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아모스 입장에서도 그 생체정보에 맞춰 새로운 빙의체를 준비하기까지 애로사항이 꽃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하지만 육체의 영혼이라는 특성은 ##의 ##을 강제로 ####…. 썅! 빌어먹을 인과율!]
하지만 위철용은 내 설명을 들은 뒤에도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뭔가를 결심한 모양인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은 그는 내게 뭔가를 알려주려 했으나, 오랜만에 듣는 기묘한 잡음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뭐지? 잘못 짚은 건가?
[끄응. 아무튼 방심해선 안되느니라. 그 육체의 영혼 특성조차…. 뭔가의 개입이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육체의 영혼 특성이 뭔가의 개입이라고…?
위철용의 의미심장한 경고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나슈리크의 얼굴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의뭉스러운 그의 ‘안배’가 떠올랐기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예, 그러니까 그 개입을 조심….”
“이놈의 촌구석은 무슨 편의점이 이렇게 멀…. 으허헉! 사, 산군님?”
위철용에게 조심하겠노라 말을하려던 순간.
낮게 깐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리곤 주차장에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
살짝 헐렁하게 풀어헤친 정장에 어벙한 걸음걸이, 그리고 허당끼 가득한 목소리.
어느샌가 자취를 감췄던 서민혁이었다.
…어쩐지 난리통에 보이지 않더라니. 이 양반은 또 언제 편의점까지 갔다 온 거야?
[아무튼, 본존은 또 잠시 명상에 좀 잠겨 있으마. 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겐지.]
서민혁이 허둥거리며 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위철용은 다시 내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내 심상 세계에서 뭘 하길래, 요즘들어 이렇게 자주 ‘명상’이니 뭐시깽이니를 하는지 모르겠네.
“아, 아하하하. 죄, 죄송합니다. 산군님. 차에 드실 음료가 다 떨어져서….”
멋대로 자리를 비운 것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서민혁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북북 긁었다.
듀라한의 음료 캐비닛 때문이라곤 했지만, 그의 몸에선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애초에, 듀라한의 음료 캐비닛에 비치딘 음료수는 하나같이 편의점 따위에선 취급을 하지 않는 고오급 에너지 드링크였다. …보나마나 담배 때문에 자리를 비운거였겠지.
“솔직하게 말하세요. 음료수는 무슨. 담배 때문이겠지.”
“아, 아하하하. 죄, 죄송합니다.”
거짓말이 들통난 서민혁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그렇게까지 그를 책망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번엔 내가 그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계속해서 부려먹기도 했었고.
뭣보다 그렇게 무단으로 자리를 비운 덕분에, 그가 아모스에게 붙잡히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으니까.
“그, 그럼. 지금 즉시 복귀하시겠습니까…? 으헉! 이게 뭐야!”
고개를 조아리며 내쪽으로 다가온 서민혁이 뒤늦게 아모스의 시체를 발견했다.
인간과 뱀이 적절이 뒤섞인 끔찍한 모습 때문인지, 그는 뱀을 마주한 소녀처럼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 파충류 쪽 몬스터라면, 이쪽 업게인들도 저렇게 질색하는 경우가….
“이, 이거 유, 유영화 산군님? 아니 유영화 아닙니까?”
뭐…?
서민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징그러운 파충류계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유영화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유영화라니, 유영화‘였던 것’이겠지…. 어라?
“…원래대로 돌아왔네?”
놀랍게도 마족의 육신으로 변이되었던 유영화의 몸뚱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지? 설마 아모스가 새로운 육체에 빙의해서 그런 건가?
“원래대로 돌아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유영화가 어째서 이런 곳에서….”
맞다. 서민혁에겐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었군.
사건이 급박하게 돌아가다보니, 그에겐 대충 유영화가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고 있다는 정도만 말해둔 상태였다.
때문에, 그는 헌터 업계를 주름잡는 산군 중 한명이 내 손에 죽어 나자빠진 상황이 두렵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게 말이죠 실은….”
*****
“유, 유영화가 인간으로 위장한 몬스터였다니.”
잠시 후.
내게서 간략하게나마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서민혁은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눈에 띄게 안정된 상태였다.
“그, 그래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산군님! 소문에 의하면 유영화 역시 손꼽히게 강한 산군으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인데. 이렇게 상처하나 없이 손쉽게 처리하시다니….”
유영화가 산군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모스의 영향인지, 본인의 위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영화는 산군 중 유일한 홍일점이자, 태백이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얼굴색이 돌아온 서민혁의 초롱초롱한 눈에 이번엔 부담스러운 선망의 빛이 떠올랐다.
“에이, 그쪽에서 방심한 탓이죠. 운이 좋은 것뿐이에요.”
“운이라뇨! 약육강식! 헌터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 아니겠습니까!”
서민혁의 눈빛이 워낙 부담스러워 나는 겸손하게 겸양을 좀 떨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깜빡이는 주황빛 조명을 반사하는 그의 눈빛에선 광신도의 그것과 같은 믿음이 반짝이고 있었다.
“흐음…. 그것보다 이게 좀 난감하긴 하네요. 변이된 상태로 남아있었으면 소재로라도 썼을텐데.”
처참한 상태로 널브러진 유영화의 시신을 바라본, 내 소감에 서민혁의 얼굴색이 대번에 굳어버렸다.
거기에 내가 김혜연 자매의 공방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입맛까지 쩍 다시자, 서민혁의 안색이 거기서 더 창백해졌다.
“소, 소재라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산군님.”
더듬거리며 물어오는 서민혁의 눈엔 가득했던 선망의 빛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뭔가 못할 소리 했나?
“아까 변이한 상태였을 때, 비늘이랑 뼈가 좀 쓸만해 보였거든요. 어찌나 질기던지 고놈 참….”
“아,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었던 존재를 소재로 쓰는건 좀 무섭지 않으십니까?”
…아. 그렇지, 아직은 그렇게까지 급박한 시기가 아니구나.
서민혁의 말에 나는 비로소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회귀 전이야 막장이 되어버린 상황이었기에, 소재를 가릴처지가 아닌 상황이었다.
때문에, 인간이 변이한 시신이든 뭐든 써먹을 수만 있으면 거리낌 없이 가공하여 소재로 사용하곤 했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쩐지 두려움에 질린 서민혁의 눈빛에 나는 어쩐지 머쓱해져서 뒷통수를 슬쩍 긁었다.
“그럼 이걸(?) 어떻게 처분해야할까요? 서 기사님 생각은 어때요?”
유영화의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시신을 처리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새로운 육신에 빙의한 아모스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니, 유영화의 시신을 가볍게 처분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제, 제 생각말입니까? 그, 글쎄요. 전통적으로 곱게 땅에 묻으면….”
“몬스터로 변이했던 시신을 간단히 땅에 묻는다고요? 좋은 생각이네요. 서 기사님이 직접 매장하시겠어요? 아, 물론. 시신이 뭔가로 부활하면 서 기사님이 알아서 처리하셔야 합니다?”
농담삼아 으스스하게 중얼거리자, 서민혁의 안색이 하얀색을 넘어 초록빛으로 변했다.
“으으…. 그럼 일단 방부처리한 뒤, 신 팀장님께 양도해서 적법한 절차를….”
어차피 이 육신의 주인은 아주 오래전에 아모스에게 살해당했기에, 유영화의 시신에 대해, 나는 아모스가 빠져나간 껍데기 외의 별다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서민혁의 눈엔 그저 일반적인 사람의 시신이라 그런지 그의 입에선 계속해서 ‘온건한’ 방식의 처리법이 튀어나왔다.
마음 같아선 그냥 확 불태워버리고 마음 편히 쉽게쉽게 가고 싶단 말이지….
잠깐? 신지현이라고?
“…! 그겁니다!”
“예?”
순간 머릿속에 엄청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유영화의 시신을 ‘인도적’으로 처분하는 방법이기도 했거니와.
뒤에서 신나게 새로운 흉계를 꾸미고 있을 아모스 세력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서 기사님도 한때 인사팀 소속이셨으니. 시신 방부처리하는 법쯤은 알고 계시죠?”
“예? 아아. 예에. 입사하면 처음 배우는게 그거라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서민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이들의 시신을 온전히 유족들에게 전해주는 것. 헌터 업계에서 인사팀이 하는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서민혁 역시, 기본적으로 시신을 수습하여 방부처리하는 법 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유영화 산군님의 시신을 최대한 정중하게 모셔주시겠어요?”
“예? 갑자기요?”
여전히 당황한 듯 감을 못잡는 서민혁에게 나는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한때, 태백의 산군이셨던 분 아니십니까. 그 위명에 누가 되지 않도록 화려한 장례식을 한번 준비해 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