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낡은 가로등이 깜빡깜빡 점멸하며, 특유의 음울한 주황빛 조명으로 아모스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여전히 유영화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아모스의 얼굴엔 퇴폐적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흐응. 불타버린 본사 건물 두고 어디로 가셨나 했더니. …제법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었네?”
아모스의 시선은 내 뒤편의 공방 건물에 향해 있었다. 놈은 히죽 웃으며 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굳은 얼굴로 아모스를 노려보았다.
“흐흥. 좀 보편적인 취향을 지닌 줄 알고 예쁜 얼굴을 골랐던 건데…. 다음 몸뚱이는 우리 예쁜이의 취향을 고려해야겠어.”
아모스는 그런 나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곤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놈의 입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올 때마다, 음울하면서도 끈끈한 기운이 스멀스멀 주변을 잠식해갔다.
넘실거리며 엄습해오는 사이한 기운에 맞서, 나는 어둠달에 내력을 주입했다.
-두근!
어둠달에 박힌 검은 심장이 묵직하게 맥동했다.
검은 심장에서 증폭된 내력이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화안금정이 자연스럽게 발동되어 주변 풍경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까드득!
정적이 내려앉은 주차장엔 아모스 외엔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놈이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놈들 없이 홀로 방문한 이상.
어쩌면 이것이 일종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뒤. 나는 아모스를 바라보며 이를 으득 깨물었다.
“어머나. 진짜, 흥분된다니까. 우리 이쁜이는 그런 표정이 너무 어울리는 거 있지? 차가운 금속처럼 서늘한 살기가 배어 나오는 눈. 비틀린 입매에서 느껴지는 야성적인 살의….”
자신에게 쏘아진 적의를 마주한 아모스는 어쩐지 황홀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그기곤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며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자, 빈틈을 포착한 나는 망설임없이 창을 내질렀다.
-피슛!
“당장이라도 가죽을 벗겨 인형으로 만들고 싶다니…. 케흑!”
시커먼 기운이 어룽거리는 창날이 아모스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놈의 가녀린 목에 불그스름한 선이 그어진다 싶더니, 시뻘건 선혈이 폭포수처럼 분출되었다.
“…?”
…뭐지? 이렇게 놈이 약했었나?
탐색전으로 시험 삼아 내지른 일격이었지만, 아모스는 내 공격을 눈치 채지도 못한 것 같았다.
예상치도 못하게 공격이 멋지게 먹혀 들어갔기에, 순간적으로 내가 다 당황을 할 정도였다.
“…우리 이쁜이는 성질도 급하다니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거칠게 나올 건 없잖아?”
아모스는 찡그린 표정으로 커다란 상처가 뻐끔 입을 벌린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놈의 손에 보랏빛 빛무리가 감돌자, 목에 그어진 상처가 저절로 스르륵 들러붙었다.
“그러지 말고. 이야기나 계속해보자….”
상처를 수복한 아모스는 다시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푸화하하학!
“…!”
아모스의 목에 섬뜩한 혈선이 그어지며, 아물어졌던 상처가 다시 뻐끔 입을 벌렸다.
비릿한 혈향과 함께 다시 한 번, 시뻘건 선혈이 벌어진 상처에서 분수처럼 치솟았다.
“카흑! 카하학! 이, 이게 무슨…!”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목을 부여잡은 아모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낯선 표정이 떠올랐다.
경악으로 커다랗게 부릅뜬 눈에 역팔자로 휘어진 눈썹, 미간에 파인 깊은 골까지!
아모스의 얼굴엔 처음으로 당황과 경악이 섞인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내가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아모스를 상대하는데 유용할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육체와 영혼』 특성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아모스에게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육체와 영혼』 특성이 육신과 혼백 사이의 왜곡된 연결을 무효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인간의 육신에 빙의해 있는 아모스는 빙의한 육신의 상처조차 재생시키지 못했다.
기대 이상으로 대단한 효과에 나 역시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척 아모스에게 도발섞인 미소를 보냈다.
“히, 힘이 빠져나가다니…. 어, 어디서 이런 능력을…크윽!.”
아모스는 경악한 표정으로 의문을 토해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놈의 의문을 해소시켜줄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힘이 빠져나갔다는 말이 정말인지, 아모스의 몸에서 피어나오던 기세는 눈에 띄게 약해져있었다. 승기를 엿본 나는 계속해서 어둠달을 휘둘렀다.
힘이 빠져나간다고? 그거 잘됐네!
-쿠르르륵!
창날에서 솟구친 시커먼 기운이 아모스를 향해 쇄도해갔다.
“치잇!”
침음성을 삼킨 아모스는 황급히 몸을 뒤틀어 가까스로 창날을 피했다.
“정말이지…. 어디서 그런 깜찍한 재주를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남자라니까!”
-꾸드드드득!
고함과 함께, 유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던 육신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우드득 뒤틀렸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에 변이를 마친 유영화의 육신은 먼젓번 정춘성처럼 인간 여성과 뱀이 적절히 뒤섞인 형태로 변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모스의 얼굴엔 마치 구름 같은 어둠이 드리워져, 정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원래는 가볍게 인사 삼아, 우리 예쁜이 친구들 몇 명만 죽여서 기념품으로 챙겨둘까 했는데. 생각이 변했어.”
변이를 마친 아모스는 으스스한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중얼거렸다.
뱀과 여인이 적절히 뒤섞인 놈의 육신에서 섬뜩한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험한 재주를 손에 넣었으니, 낙오자들의 왕이고 뭐고. 더 위험한 존재로 자라나기 전에 미리 처리해둬야겠어!”
순간, 아모스의 등 뒤에서 시커먼 날개가 자라났다.
전체적으로 지난번의 그것과 유사해 보였으나, 형태는 약간 달랐다.
새하얀 뼈로 이뤄진 그것은 날개라기 보단 반으로 쩍 갈라진 채 뒤집힌 두개골처럼 보였다.
두개골과 유사한 형태의 단단한 부속지가 자라나 놈의 하반신을 감쌌고, 뾰족뾰족한 송곳니가 박혀있는 턱관절이 상반신을 감쌌다.
“걱정 마, 그 잘생긴 외모는 나도 아까우니까. 박제로 만들어 인형으로 써먹어줄게.”
아모스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모골이 송연해질 듯 강렬한 살기가 섞여있었다.
그렇게 뇌까린 놈은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뒤집힌 두개골의 눈두덩이에서 시퍼런 살기가 폭사되었다.
-펄럭!
기묘했다.
아모스를 감싼 단단한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지며 마치 날개처럼 움직여 날갯짓을 했다.
강렬한 풍압이 나를 덮쳐왔다.
-투두둑! 툭! 툭!
동시에 그 속에 숨어있는 바람의 칼날과 부서진 뼛조각들이 내 목숨을 노렸다.
-따다당! 따다당!
시커먼 내력이 주입된 어둠달이 풍차처럼 훙훙 돌며 아모스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단단한 창대에 부딪혀 박살나는 소리가 요란했다.
뼛조각이 추가되었긴 하나, 먼젓번에 겪어본 공격이라 대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람의 칼날을 쳐내는 데만 애를 먹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나는 놈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냈다.
《끼야아아아아아아!》
그렇게 공격이 막히자마자, 아모스는 입을 크게 벌렸다.
쩍 벌어진 입에선 가슴이 선득해질 정도로 오싹한 귀곡성이 터져 나왔다.
-끼기기기긱!!
엉망으로 튕겨나가 사방에 흩뿌려진 뼛조각들이 아모스의 비명에 변이를 일으켰다.
좁쌀만한 뼈의 파편들이 칼날 모양으로 급속히 자라나, 사방에서 쇄도해왔다.
빼곡하게 들어찬 뼈의 칼날! 도망가기도 늦었다. 창날을 휘둘러 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차르르르륵
위기의 순간, 황금빛 외골격이 돋아나 사각을 노리고 들어온 뼈의 칼날들을 막아냈다.
기세좋게 쇄도해온 뼛조각들이 외골격에 부딪혀 쇳소리와 함께 산산이 으스러졌다.
“…외골격?!”
그렇게 등장한 외골격에 아모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외골격 정도야, 다른 헌터들을 상대하면서도 수도 없이 목격했을 텐데.
괴이쩍게도 놈은 내 외골격에 굉장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마, 말도 안 돼. 아직 두 번째 단계가 막 시행되었을 뿐인데. 벌써 ‘그것’을 손에 넣었다니!”
단순히 놀란 수준이 아니었다.
번쩍이는 내 외골격을 바라보는 아모스의 시선엔 숨길 수 없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가득했다.
커다랗게 부릅떠진 눈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뭐지? 고작 외골격 따위에게 이렇게까지 놀랄 리가 없을 텐데?
“아, 안돼. 어떻게든. 어떻게든 제거해야만 해!”
아모스는 이를 까득 깨물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짐짓 비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쐐액!
아모스가 혼자 심각한 모습을 보이는 사이, 어둠달이 시커먼 빛을 뿌렸다.
놈의 빈틈을 파고든 독룡아가 아모스의 턱으로 파고들어갔다.
-쯔걱!
“꺄흐아아악!”
단단한 비늘이 쩍 갈라지는 호쾌한 소리와 함께, 아모스의 턱이 통째로 으스러졌다.
어둠달의 시커먼 창날이 검붉은 핏물로 물들었다.
“무식한 남자는 인기 없다면서? 아니다. 그때도 나쁜 남자인가 뭔가가 좋다고 떠들어댔으니, 아무래도 상관이 없나?”
아모스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며 턱을 부여잡았다.
나는 그런 아모스에게 지난번에 놈이 느긋하게 떠들었던 비웃음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 이익! 이, 이쁜이이이. 얼굴 좀 반반하다고 봐줬더니. 감히!”
내 이죽거림에 아모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놈은 대단히 격분한 표정으로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으르렁거리며 살기를 불태우는 놈의 눈빛에선 적의와 살기가 뚝뚝 묻어나왔다.
“뒈졋!”
-후우우웅!
아모스의 두개골 모양 날개에서 벌떼우는 듯 거북한 진동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덜덜 떨리며 진동하던 두개골이 날개처럼 재빨리 펄럭 날갯짓을 했다.
-펄럭!
날개처럼 펄럭인 두개골에서 강렬한 기운이 폭사되었다.
사방을 완전히 찢어발길 듯 매섭게 날아드는 바람의 칼날과 뼛조각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콰쾅!
이번 공격은 먼젓번과는 조금 달랐다.
사방을 유린해대는 바람의 칼날과 뼛조각엔 보랏빛 기운이 잔뜩 어려 있었다.
때문에 바람의 칼날이 자갈밭을 스칠 때마다, 마치 발톱으로 할퀸 듯 바닥이 움푹움푹 패였다.
보랏빛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뼛조각이 바닥을 강타할 때마다 폭음이 터졌다.
하지만….
“진부하긴!”
비죽 비웃음을 흘린 나는 바람과 뼈의 폭풍 속에서 깔맞춤 스킬을 발동시켰다.
일순간 증폭된 인지능력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나를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정확하게 감지해 내었다.
훤히 보이는 공격을 순순히 맞아줄 만큼 내 실력이 형편없지 않았기에, 나는 그렇게 운룡보를 이용해 아모스의 모든 공격들을 손쉽게 피해냈다.
-피슛! 피슛! 피슛! 피슛!
공격을 받아낸 다음은 반격이 시작될 차례다.
마지막 공격이 날아든 것을 몸을 슬쩍 비트는 것으로 피해낸 뒤.
나는 어둠달을 강하게 움켜쥐곤 아모스를 향해 정확히 네 번 독룡아를 펼쳤다.
“그렇게 느려터진 공격으론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지!”
아모스를 향해 쇄도한 독룡아는 네 번 다 놈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시커먼 기운이 일렁이는 창날이 자신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자, 아모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이죽거렸다.
하지만…!
-퍼석! 퍼석! 퍼석! 퍼석!
“왜 못해?”
기세등등한 아모스의 등 뒤에서 폭음이 연달아 네 번 터졌다.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두개골 모양 날개와 놈의 몸을 연결해주는 연결부위가 폭발했다.
덕분에 아모스의 몸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방어막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 이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잠깐 사이에 이렇게까지 성장을….”
아모스는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러게, 나도 종종 내가 놀랍다니까.”
-콰아아앙!
아모스에게 히죽 웃으며 다가간 나는, 놈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곤 외골격 째로 들이 받았다.
폭음과 함께 아모스의 두개골이 쩍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어둠이 드리운 얼굴에서 시커먼 피가 튀겼다.
-콰앙! 콰앙! 콰아앙!
곧이어 계속해서 아모스의 육신 위로 폭력이 쏟아졌다.
검은 심장이 정신없이 맥동하며 무시무시한 괴력을 내게 제공해주었다.
육신을 본체에 가깝게 변이하였다곤 하나, 근본적으로는 빙의한 육체가 변이된 것에 불과하기에 육체와 영혼 특성이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증거로 아모스는 자신의 육신이 걸레짝처럼 변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맞고만 있었다.
“어라? 필멸의 육신이란 이렇게나 나약한가보네?”
마침내, 완전히 곤죽으로 변해버린 아모스의 육신을 바라본 나는 비웃듯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리곤 일전에 아모스가 해줬던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돌려주었다.
“크. 크흐흐. 필멸자 주제에 제법이네. 하지만 어쩌나…. 쿨룩! 이 몸에겐 아직 숨겨진 진…. 크흡!”
엉망으로 짓이겨진 아모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곧이어 부들거리는 입매가 뒤틀어지며, 희미한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비웃음이 묘하게 거슬려, 나는 놈의 입술을 콰악 붙잡았다.
“흐음….”
-빠가아악!
말없이 아모스를 바라본 나는 우선, 재수없는 비웃음을 흘리는 입술을 주먹으로 후려 쳤다.
강력한 내력이 집중된 주먹이 아모스의 머리에 작렬한 순간,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응. 별로 안 궁금해.”
숨겨진 진실?
끽해야 자신이 몸을 갈아탈 수 있다는 것 정도겠지.
무언가 다른 흉계를 꾸몄다고 해봐야, 다시 한 번 박살내주면 그만이다.
고작 그까짓 정보 때문에, 놈에게 휘둘리는 건 사양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