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이세영과 신지현이 영상 작업에 착수하는 사이,
마지막으로 내가 향한 곳은 경기도 외곽에 자리 잡은 김혜연의 공방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산군님….”
아무래도 그동안 본사 앞에 몰려들었던 인파를 상대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인지, 서민혁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한 것이 사람다운 혈색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방 앞 주차장에 듀라한을 주차한 그는. 이내 운전대 위에 힘없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조금 딱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뭐….
크흠! 어쩌겠어. 저게 저 양반 일인데.
-끼이이익.
시체처럼 축 늘어진 서민혁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공방의 문고리를 붙잡아 돌렸다.
-까앙! 깡! 깡!
먼지 하나 없이 말끔히 정돈된 공방 안쪽에선 망치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큼지막한 모루 앞에서 망치질에 열중하고 있는 김혜연의 모습이 보였다.
심후한 눈빛으로 빨갛게 잘 달궈진 쇠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경건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오랜만입니다. 혜연 씨.”
“…!”
묵묵한 망치질이 잠시 멎은 틈을 타 김혜연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의 거대한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 떨렸다.
“설용호 헌터님?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사, 살아 계셨어요?”
…태백에서 내가 죽었다는 걸 언론에 대서특필이라도 한 건가?
괴이쩍게도 김혜연은 내가 게이트 속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나에 대한 실종 보고가 상부에 올라간 지도 일주일이나 지나버린 상황이긴 하나, 이세영처럼 정보단체 소속도 아니고 철저히 외부인에 불과한 김혜연이 어떻게 그런 정보를 들었는지 모르겠군….
“…어디서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보는 사람마다 똑같은 반응이네요.”
“하, 하지만. 지현 씨가 분명히….”
너였냐. 신지현…?
물론, 신지현이 김혜연에게 내 실종에 대해 귀띔해준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신지현처럼 김혜연 또한 나와 긴밀한 계약 관계로 묶여있는 사이이기에, 신지현 생각엔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매니저의 일이라고 생각했었겠지. 덕분에 또 귀찮은 ‘해후’를 하게 생겼지만.
“…….”
조금 전에 있었던 신지현과 이세영의 격한 반응을 떠올린 나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래도 김혜연은 정상인(?)이니까 이성적으로 반응하겠지?
“…살아계셨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야….”
아! 이 얼마나 정상적인 반응이란 말인가!
내 믿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혜연의 반응은 그녀들과는 달리 상식적이었다.
큼지막한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가를 훔치며, 마음속에 쌓아둔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거 괜한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네요. 혜옥이도…. 건강하게 잘 있죠?”
하지만 김혜연이 계속해서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만 있자, 묘하게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나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그녀의 동생, 김혜옥의 안부에 관해 물었다.
“…흐흑. 네. 혜옥이는 건강하게….”
-쿠와아앙!
뭐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김혜연이 김혜옥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뭔가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공방의 튼튼한 외벽 전체가 우르릉 요란스레 진동했다.
그리곤 거칠게 열어젖혀진 철문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거구가 나타났다.
“…이, 이번에도 성장기라서 그런 건가요?”
김혜옥의 달라진 모습에 나는 김혜연을 바라보며 더듬더듬 질문을 흘렸다.
도대체 성장기라는 시기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혜옥은 또 육체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네. 흑! 애들은 잠시만 눈을 돌려도 쑥쑥 크니까요.”
쑥쑥 컸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혜옥은 무지막지하게 ‘커져’ 있었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봐도 그녀의 신장은 일주일 전보다 머리통 한 개 만큼은 더 자라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자라난 신장에 비례하여, 몸 곳곳에 자리 잡은 근육도 훨씬 거대해져 있었다.
…쑥쑥 자란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아예 의학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수준 것 같은데….
이 아가씨 인간은 맞는 건가? 무골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언니! 오늘 하반신 다 죽었다며! 한 세트만 쉬겠다더니. 뭐 하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김혜옥의 거대한 육체에 벙쪄 있는 사이,
김혜옥의 입에서 천둥을 머금은 먹구름처럼 우렁우렁한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질책하듯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혜연을 노려보던 김혜옥의 시선이 스르륵 움직여 내 쪽을 향하자,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부님?”
언니를 잡아먹을 듯 이글거리던 눈빛이 순간적으로 송아지처럼 순하게 변했다.
부리부리한 기운을 쏘아내던 눈가엔 조금씩 습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 얘도 김혜연의 동생답게 겉으로 보기엔 흉악해 보여도 마음만큼은 여렸….
-짜아악!
“아냐! 사부님은 죽었어! 이제 없어!”
는데…. 저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김혜옥의 착한 품성에 대해 흐뭇해하려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양 뺨을 손바닥으로 힘껏 후려쳤다.
그리곤 나의 생존 여부를 격하게 부정하더니,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물귀신은 사람을 모습을 곧잘 흉내 낸다고 하셨던 말씀이 정말이었어! 이 요망한 물귀신 놈! 잘도 사부님의 잘생긴 모습을 흉내 낸 모양이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앗!”
“혜, 혜옥아? 나 안 죽었다니까?”
김혜옥의 몸에서 풍겨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찾아온 예감에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어 나 스스로 생존 사실을 어필하려 들었지만….
“끄흐응! 물귀신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강가의 서늘한 음기! 그렇다면 강력한 양기로 놈을 제압한다!”
잔뜩 흥분한 김혜옥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콧김을 씩씩 내뿜은 그녀는 구석에 놓여있는 커다란 화로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번쩍 들린 성인 남성 세 명쯤은 넉넉히 들어갈 법한 거대한 화로에선 심상치 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아아아앗! 나-무-아-미 타불! 성불해라! 이 물귀신 놈!”
김혜옥의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불길이 이글거리는 화로가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어찌나 대단한 힘인지, 거대한 화로가 마치 헬스장의 케틀벨처럼 빠르게 쇄도해왔다.
-후오오옹!
“아니. 진짜로 네 사부 맞다니까? 진정해!”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의문의 퇴마의식(불 속성)을 가까스로 피해낸 나는,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는 김혜옥의 거대한 팔을 힘껏 붙잡아 쥐었다.
양팔에 집중된 내력과 강화된 근력이 김혜옥의 폭주를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근육을 타고 전해지는 이 둔중한 충격! 우리 싸부님이…. 맞네요?”
김혜옥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제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복근의 형태로 나를 구별하는 것에 이어, 이젠 물리적인 충격으로 구별하다니.
얘도 정상은 아니네. 위철용 그 양반 말대로 뭔가…. 이번 생에 악업을 짓기라도 한 걸까?
어째서 이번 생에 내 주변에 꼬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 모양이야?
“으아아아앙! 싸부니이이임!”
살짝살짝 새어 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이내 홍수가 되었다.
마치 만화처럼 폭포수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던 김혜옥은 그대로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 그래. 혜옥아 잘 지냈…. 어헉!”
-꽈좌자자작!
그렇게 내 품으로 돌진해오는 김혜옥에게 스승다운 미소를 지어주려던 찰나.
몸이 번쩍 들리는 감각과 함께,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이 찾아왔다.
“으아아아앙!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에!”
김혜옥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사춘기의 소녀처럼 여렸지만,
내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마치 착즙기에 들어간 한 덩이 과일처럼, 내 몸은 그녀의 품 안에서 짜부라지기 시작했다.
“크흑! 혜옥아. 일단. 지, 진정! 진정하고 말하자. 응? …허흑!”
-꽈드드드득!
김혜옥을 진정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등 뒤에서 새로운 충격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김혜연까지 감동적인 해후에 동참한 모양이었다.
“으아아앙 사부니이임!”
“설용호 헌터님. 헌터니임!”
“흐억! 흐어어억!”
-뿌각!
온몸을 거세게 조여 오는 고통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어쩐지 세상이 점점 노릿하게 변한다. 싶더니, 무언가가 거칠게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아련하게 들려왔다.
“허흑!”
알 수 없는 파열음을 끝으로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나는, 거대한 근육 덩어리 사이에 갇힌 채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
잠시 후, 내가 눈을 뜬 곳은 공방 구석의 소파 위였다.
의식을 차리는 것과 동시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두 명의 근육 괴인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설용호 헌터님….”
“하, 하하. 괜찮, 괜찮습니다.”
내가 의식을 차린 것을 확인한 김혜연은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사과를 건네왔다.
그렇게 사과를 표해오는 그녀에게 힘없이 웃은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허흑!”
하지만 김혜연 자매의 ‘해후’는 헌터의 강인한 육신마저 빠갤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시도할 때마다 허리를 잘근잘근 짓밟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어, 어떡해.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내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오자, 김혜연은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사과를 건네는 언니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 김혜옥은 비장한 표정으로 김혜연을 붙잡아 세웠다.
“아냐, 언니…. 말로만 해선 진정한 사과가 아니지. 진정한 여장부는!”
번뜩이는 눈빛, 쓸데없이 비장한 표정!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김혜옥의 모습에 또다시 좋지 않은 예감이 찾아왔다.
“아, 아니 이 정도쯤은 금방 재생할 수 있어서 괜찮….”
“몸으로 표현하는 법! 홋-호!”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김혜옥은 앉은 자세 그대로,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곤 특유의 묘한 기합과 함께, 그대로 빙글 몸을 돌리더니, 머리부터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꾸과아앙!
땅을 울리는 무식한 진동과 함께, 김혜옥의 머리가 땅속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에옹압니다! 아우임!
그리곤 어딘가 뭉개진 목소리가 땅속에서부터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물구나무를 선 채로 상대에게 최고의 예를 표한다는. 전설의 ‘그랜절’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김혜옥의 손에 탄생한 것이었다.
“그, 그래. 역시. 말로는 안 되겠지. 나도….”
“아, 아뇨. 충분! 충분합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진정 좀 하자구요.”
왜인지 비장한 표정의 김혜연이 동생을 따라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하자,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붙들곤, 김혜연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저렇게 성의를 표하지 않으면….”
“저렇게 무식한 기예를 보여주셔 봤자. 제게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김혜연이 정상이란 말은 전격 취소다.
이번 인생에 인연을 맺은 양반들은 어째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지 모르겠네.
“머리 아프니까. 그냥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계속해서 김혜연이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김혜옥을 바라보고 있자,
한숨을 푹 내쉰 나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온 마력핵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흥미로운 구조네요?”
받아든 마력 핵을 바라보는 김혜연의 눈빛에 호기심 어린 이채가 감돌았다.
이곳저곳을 뜯어보는 그녀의 눈빛엔 장인 특유의 호기심과 탐구욕이 반짝이고 있었다.
“예, 이번에 새로 등장한 게이트에서 얻은 물건인데. 꽤 흥미로운 구조를 지니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런 걸 좀 부탁할까 하는 데 말입니다.”
나는 김혜연에게 준비해온 설계도를 한 장 건네주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설계도를 받아 들은 김혜연의 입에서 이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머나. 세상에! 마력이 이런 식으로 저장되어있으니까. 이런 발상도 가능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귀한 재료를 굳이 이런 용도로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김혜연답게, 그녀는 내가 건네준 설계도가 무엇인지 그것의 정체를 즉시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의뢰한 물건의 정체를 꿰뚫어 본 만큼. 그녀는 곧이어 먼젓번처럼 난색을 보였다.
“지난번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다 필요해서 그런 겁니다. 만들어 주실 수는 있겠죠?”
어떻게 보면 낭비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건넨 설계도는 아모스와 놈을 따르는 세력들에게 선물할 함정의 필수 요소였다.
티르리니와의 결전에서 쓰였던 말뚝을 상기시켜주자,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김혜연은 이해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사흘이면 충분할 것 같네요.”
***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했더니…. 꽤 좋은 장소를 알고 있었네?”
김혜옥, 김혜연 자매와 가볍게 야성적인 식사를 같이한 뒤.
그녀들의 공방을 나서자, 어둠이 내려앉은 주차장 구석에서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예상치 못했던 불청객의 등장에 황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주차장 구석의 나무 아래에 팔짱을 낀 여인 한 명이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본 순간, 음험한 기운이 산처럼 묵직하게 짓누르는 압박감이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희미한 달빛 아래 드러난 여인의 낯익은 얼굴엔 특유의 요염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칼날을 섞어 넣은 꿀처럼, 달콤하게 끈적거리면서도 섬뜩하게 날이 서 있는 미소!
…말도 안 돼! 어째서, 어떻게! 놈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아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