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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97화 (97/309)

제97화

“내, 내가 마, 말할 것 같나?”

중년인의 얼굴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있었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선 맹목적인 광신도 특유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어쩜 반응도 이렇게 다들 똑같은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름의 의지를 실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중년인의 모습에 나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어딘가에 행동 강령이나 대본 같은 게 있기라도 한 모양인지, 예나 지금이나 이쪽 부류의 놈들이 심문 초기에 보이는 반응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다.

거 참, 대사마저도 완벽하게 똑같을 필요가 있나 싶은데 말이지.

“뭐…?”

“결연해 보이려고 애쓰는 눈빛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대사도 개성 없이 다 똑같단 말씀이지. 지루하니까. 개성을 한번 더해 보자구.”

“무슨 개소리를 …끄흡!”

-푸우욱

시커먼 기운이 번들거리는 검지가 중년인의 빗장뼈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연이어 들린,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에 중년인은 핏발 선 눈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후읍! 후우후후후. 고작 한다는 게, 이따위 고문이라면 나는 절대 굴복하지….”

“에헤이, 조급해하지 말라구.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여전히 비장한 표정으로 재미없을 만큼 상투적인 반응을 보이는 중년인에게 히죽 웃어준 뒤.

나는 천천히 중년인의 몸속에 내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의 빗장뼈에 파고들어 뼈를 부러뜨린 손가락을 통해, 풀려나간 시커먼 내력이 거칠게 아우성치며 그의 몸속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꾸드드득!

“끄읍. 끄으윽!”

시커먼 내력이 중년인의 몸을 유린하기 시작하자, 금세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빨래를 쥐어짜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저절로 뒤틀렸다.

근육이 뒤틀리며 발생한 압력을 이기지 못한 모양인지, 뼈 부러지는 소리도 연달아 들렸다.

제멋대로 툭툭 끊어져 시커멓게 변해버린 혈관이 흉하게 피부 위로 우두둑 튀어 올라왔다.

오우. 이거 효과가 생각보다 강렬한데…?

점혈(?)을 연습하다 만들어낸 흉악한 고문법은 어째선지 먼젓번의 금랑 길드원들에게 사용했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양의 내력을 주입했는데, 어째서 더 효과가 흉악한지 모르겠네. 금랑 애들 쪽이 조금 더 튼튼해서 그런 건가?

[…어째 볼 때마다 꽤 볼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게냐?]

그렇게 중년인을 고문하고 있으려니, 위철용의 작달막한 반투명 몸뚱이가 내 가슴께에서 쑤욱 솟아났다.

왜인지 요즘 들어 자주 심상세계 속으로 모습을 감추곤 하는 그는, 이번에도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

‘그것보단 어르신께서 요즘 유독 자리를 자주 비우시는 것 같은데요. 뭐…. 지금은 보시는 바대로 수상한 놈을 심문하고 있죠.’

[심문이라, 그렇군. 그래서 놈들이 그리도 시끄러웠던 게로군.]

채널 창의 성좌들을 언급한 위철용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지난번처럼 성좌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 견디지 못해 잠시 나와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 양반 요즘 무슨 일 있는 건가? 심심하면 심상세계 속으로 모습을 감추기나 하고.

“끄…. 끄흐흐흐 소, 소용없다.”

위철용과 만담 아닌 만담을 나누는 사이, 중년인의 몸에 주입된 내력이 모두 소진되었다.

온몸이 건조기 속의 빨래처럼 뒤틀린 탓에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지만, 중년인의 눈빛에선 여전히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 나는 이미 승천을 약속받은 몸! 이 필멸의 육신 따윈 내겐 어차피 잠깐 머무르는 곳에 불과하지. 지금의 고통 또한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지니….”

곧이어 중년인의 입에서 광신적인 발언이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엔 이죽거림이 가득했지만, 가면 갈수록 마치 경구를 외우듯 경건해졌다.

승천이라고? 마족을 따르는 놈이 승천이란 단어를 입에 담아?

[또 사교도를 붙잡은 게냐? 어쩐지 그것들 요즘 조용하다 싶더라니.]

‘아뇨, 오행 길드인 척 위장한 데다. 강마병을 부리는 거로 봐선, 나주르아쪽 끄나풀인 것 같았는데….“

위철용에게 내가 추측하고 있었던 중년인의 정체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뇌리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이놈은 처음부터 마족 끄나풀이라기보단 사교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네.

[아무리 봐도. 하는 짓이 사교도의 아주 모범적인 예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만?]

사교도들은 인류에게 적대하긴 하나, 그래도 초월적인 신격체인 성좌를 숭배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교도들의 행동강령은 뒤틀린 종교적 교리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그들이 숭배하는 성좌 역시, 승천이니 초월이니 뭐니 하는 사교도들의 신비주의적 열망을 들어줄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족을 따르는 자들은 철저히 실리를 뒤쫓아 인류를 배신한 치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현실적인 이득에 집착할 뿐 사교도들처럼 광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는데….

’…혹시 아모스 쪽에서 사교도 놈들도 회유한 게 아닐까요?‘

[사교도 놈들이 마족들을 어찌 대했는지, 벌써 잊어버린 게냐?]

순간적으로 아모스와 사교도들이 손을 잡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위철용의 말대로, 일반적으로 사교도들과 마족들의 사이는 뜻밖에 굉장히 적대적이었다.

인류에게 적대적이라곤 하나, 그래도 명색이 성좌는 성좌인 모양인지, 사교도들이 섬기는 성좌들은 그들의 신도들로 하여금 마족들을 보이는 족속 척살할 것을 명했었다.

때문에, 아모스와 사교도들이 손을 잡았을 확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교도도 아닌데, 마치 사교도처럼 행동하는 마족의 끄나풀이라니. 이건 또 무슨 끔찍한 혼종이지?

“크흐흐흐. 필멸의 육신은 한계가 있는 법….”

가까워지는 죽음을 직감한 탓일까?

중년인의 입에 깃든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눈엔 묘한 열망이 잿불처럼 희미하게 내비쳤다.

“드디어 이 비루한 몸이 그분 곁으로….”

이젠 아예 안색이 꺼멓게 죽어버린 중년인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가늘게 색색 숨을 몰아쉬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이 보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멋대로 가긴 어디를 가?”

나름대로 비장한 최후를 연출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중년인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비릿하게 웃어준 나는 품속에서 지난번 서민혁의 목숨을 구해진 포션을 꺼내 들었다.

다섯 개들이 묶음 상품이었기에, 그때 한 병을 쓰고도 내겐 아직 네 병이나 남아있었다.

-슈르르륵.

영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포션이 꼴꼴꼴 중년인의 육신 위로 쏟아졌다.

값비싼 가격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것은 중년인의 몸에 닿자마자 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투둑 투두두둑!

엉망으로 뒤틀렸던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파열돼 툭툭 튀어나온 혈관이 얌전히 자취를 감췄다.

뒤틀리며 박살났던 뼈가 쑥쑥 자라나, 다시 이어졌다.

전신의 상처가 수복되자, 시커멓게 죽어버린 중년인의 얼굴에 혈색이 감돌았다.

“크, 크헉! 뭐, 뭐…뭣?”

생명의 빛이 꺼져가던 중년인의 눈에 빛이 다시 돌아왔다.

빛을 되찾은 두 눈엔 숨길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당혹감이 깃들었다.

“말했잖아. 상투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할 거라고.”

***

“…목적이 신지현이 아니었다고?”

폭풍과 같은 고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축 늘어진 중년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특제 포션 세 병을 사용하고 나서야 놈은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놈의 입에선 쓸 만한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간부 회의라니, 도대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중년인의 말에 의하면, 신지현을 포함한 태백 본사의 ‘높으신 분 ‘들은 남산 게이트에서 비밀스러운 회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와 강마병들이 이곳에 파견된 목적은 단순히, ’최대한 많은 인원을 학살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건 그렇고, 상당히 잔혹한 작자들이로구나. 저항도 못 하는 이들을 이토록 잔혹하게….]

위철용의 한탄대로, 복도 너머로는 엉망으로 짓이겨진 시신들이 즐비했다.

시신들의 복장이 샐러리맨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는, 가벼운 양복 차림인 것으로 미뤄보건대.

잔혹하게 살해당한 이들은 모두 헌터조차 아닌, 태백에서 일하는 일반 사원들이었다.

“일반인들을 이렇게 잔혹하게 학살해서 뭘 얻으려던 걸까요?”

오행 길드 소속이라 주장하는 중년인의 행각은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낯선 얼굴이었기에 나는 처음엔, 그가 오행 길드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았지만.

화안금정에 떠오른 글자는 틀림없이 진실이었다.

…오행에서 도대체 민간인들을 왜…. 잠깐만, 설마?!

“…그걸 노린 거였나?!”

명분!

아모스 쪽에서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반대파들의 의견을 묵살시킬 명분이었다.

이미, 태백 본사 내에 수많은 민간인이 오행 길드로 위장한 이들에게 학살당한 상황이다.

게다가, 설악 공격대 역시, 오행 길드와 연합한 금랑 길드에 학살당한 상황이니만큼.

아모스와 그를 따르는 치들은 오행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낼 명분을 완벽하게 확보한 셈이었다.

“간부 회의 역시 수작질이었겠군.”

간부 회의로 모두가 빠져나간 틈을 노린 것도 그 이유에서다.

전쟁에선 서로의 체급이 맞아야 제대로 된 사상자가 나오는 법이다.

간부 회의로 간부진들과 상위 헌터들이 모조리 빠져나간 틈을 노린 탓에 아모스는 태백의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전쟁에 대한 명분을 효과적으로 얻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거. 한 방 먹었는데.”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복도 구석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은 아모스의 의도대로 학살을 하면서도 건물 내의 CCTV는 전혀 손대질 않았다.

덕분에, 그들에게 학살당하는 태백 일반 사원들의 참극이 그대로 녹화된 상태였고….

무엇보다. 내가 중년인과 강마병들을 학살하는 장면 또한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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