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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96화 (96/309)

제96화

“사, 산군님 저, 저거 우리 본사 건물 아닙니까?”

불타는 건물이 서민혁의 육안에 들어올 만큼 가까워지자.

뒤늦게 그것을 발견한 서민혁이 후들후들 떨리는 목소리로 황급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

룸미러에 비친 그의 눈은 갈 곳 없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예. 맞는 것…. 같네요.”

…빌어먹을! 좋지 않은 예감은 항상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니까.

하늘을 암울하게 수놓은 시커먼 연기는 태백 길드의 본사 건물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빠끔히 열린 창문 틈 사이로 파고든, 매캐한 잿가루 냄새가 코끝을 얼얼하게 자극했다.

코끝을 매큼하게 자극하는 잿가루에는 사람들의 절규소리와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참상을 바라보며, 나는 이를 까드득 갈았다.

“도, 도대체 어떤 놈들이 가, 감히 우리 태백에게 저런 짓을….”

새하얗게 질린 서민혁은 엄습해오는 감정에 압도당한 탓인지, 말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선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야 당연히 오행 길드에서….”

서민혁에게 오행의 이름을 언급하려던 순간, 내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있어봐라? 진짜 오행이 맞나?

“여, 역시. 오, 오행 길드입니까?”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태백과 오행의 전면전은 아모스의 개입 때문이었다.

놈의 수작질로 태백과 오행을 서로 척을 지게 되었고, 전쟁이 시작되었지.

하지만 마족 놈들이 많고 많은 거점 중, 태백 본사 건물을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흐음.”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쪽 입장에선 태백의 본사 건물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본사 건물은 철저하게 ‘높으신 분’들만이 기거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삼군회의의 결과가 증명하는 것처럼, 태백의 상층부는 이미 유영화로 둔갑한 아모스에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따라서 놈에겐 굳이 자신과 동조하는 자들이 기거하는 곳을 칠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지.

도대체 아모스는 무엇을 노리고….

“…신지현?!”

어째서 아모스와 그 휘하 세력이 태백 본사를 습격했는지에 대해 머리를 굴려보던 중, 불현듯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사람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곧이어 좋지 않은 예감이 연이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밟아요! 서 기사님! 어서!”

“네, 넷!”

현재, 명목상 태백의 산군으로 위장 중인 아모스가 자기 뜻을 따르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태백의 본사 건물을 굳이 노릴 만한 이유는, 신지현의 목숨을 노리는 것 외엔 생각할 수 없었다.

비명처럼 신지현의 이름을 외친 나는 다급하게 서민혁을 재촉했다.

듀라한의 엔진이 답지 않게 굉음을 토하며, 주변의 풍경들이 빠르게 휙휙 지나가기 시작했다.

***

멀리서 얼핏 보였던 참상은 전조에 불과했다.

명동 한복판에 우뚝 선채로 으리으리한 모습을 자랑하던 태백 길드 본사 건물은 이젠 완전히 화마에 휩싸인 채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듀라한이 멈춰 섬과 동시에, 나는 태백 길드 본사 쪽으로 도약했다.

-콰아아앙!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내 신형은 부서진 차들이 가득한 도로를 지나 태백 길드 본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빌어먹을 새끼들.”

하지만 태백 길드 본사 건물의 입구는 1층째로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아예 작정하고 쳐들어온 듯, 습격자들은 건물의 1층 전체를 각종 장애물이며 임시 방벽 등으로 완벽하게 막아놓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건물 내부로 침투하기 위해선….

-촤르르륵!

이를 까드득 깨물며 건물 외벽을 바라본 나는 전신에 외골격을 둘렀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외골격이 이글거리는 열기로부터 내 몸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화상에 대비한 나는, 새빨간 불꽃이 날름거리는 건물 외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빠지직! 빠지직!

특제 강화유리로 제작된 건물의 외벽은 내게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전해줬다.

어둠이 넘실거리는 어둠달의 창날이 유리를 파고들 때마다, 시커먼 연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층마다. 연기가 자욱해 있는 통에, 투명한 유리 너머로도 내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젠장. 이래서야 신지현도, 습격자 놈들을 찾을 수도….

“…!”

그렇게 얼마나 기어 올라갔을까?

마침내 나는 아직 불길에 잠식되지 않은 장소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화마가 덮쳐오지 않은 복도는 새하얀 갑옷을 차려입은 사내들로 가득했다.

“…진짜 오행이잖아?”

복도를 요란스레 뒤지고 있는 사내들의 새하얀 갑옷엔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헌터 업계에서 저렇게 촌스러운 디자인을 고수하는 곳은 단 한 곳, 오행 길드뿐이었다.

…역시 이중환과 나주르아 사이에 뭔가 있긴 하나 보는군.

“찾았다. 쥐새끼들!”

-와장창!

오행 길드원들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건물 외부의 유리창을 부수고 돌입했다.

고함까지 지르며 오행 길드원들 앞에 내려섰지만, 기묘하게도 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엔 어떠한 감정조차 떠올라 있지 않았다.

“…설용호? 게이트 속에서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역시 그분의 말씀이 옳았군.”

그 순간, 유난히 화려한 갑옷을 입은 중년인이 복도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서도 그다지 놀란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호기심과 흥미가 얼핏 스쳤다.

이 반응은 뭐지…? 게다가 이놈은 또 누구야?

“넌 또 뭐하는 놈이지?”

“보시다시피, 영광스러운 오행의 길드원이지. 누구겠나?”

스스로를 오행 길드원이라 밝힌 중년인은 느물느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오행의 얼굴 중 그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행에선 네놈처럼 야비한 인상의 노인네가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뭐, 이 몸이 워낙 비밀스럽게 활동해와서….”

무슨 문제 있느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중년인의 눈빛엔 전망 맞은 장난기가 어려있었다.

태백에서 손꼽는 강자를 눈앞에 두고도 그의 얼굴엔 어떠한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 네놈이 뭐하는 놈인지는 족쳐보면 알 일이지.”

그래, 훌륭한 고문법도 배워뒀겠다. 복잡한 건 나중에 천천히 심문해보면 그만이다.

장난기 가득한 중년인의 표정에 피식 웃은 나는, 서늘한 안광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금빛 눈동자에서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시퍼런 살기가 폭사 되었다.

“워. 워워. 역시 태백의 산군답군. 그런데. 혹시, 강마병에 대해 알고 있나?”

시퍼런 살기에 잠시 움찔했지만, 중년인은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강마병’을 언급한 그의 눈빛엔 묘한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강마병…?”

말투는 의문으로 끝을 맺었지만, 내 의문은 강마병의 정체 따위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내 의아한 말투는 어째서, 강마병이 여기서 튀어나온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함축하고 있었다.

강마병이라고? 그게 여기서 또 왜 나오는 거지?

“후후후. 그래, 그분의 은총이 담긴 위대한 병사를 미개한 필멸자에 불과한 네놈이 알 리가 없지.”

중년인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놈의 입가에 깃든 미소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게다가…. 딱 좋은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 주셨어.”

중년인이 여전히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창문을 통해 돌입한 복도는 어느새 스무 명 남짓한 강마병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가 돌입했던 부서진 창문까지, 무표정한 강마병들은 완벽하게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거 참. 자신감 한번 기가 막히네. 나를 잡아가시겠다고? 그 쓰레기들로?”

“…쓰레기라고?”

그 흉흉한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나는 고약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지금의 나는 강마병 따위를 믿고 나를 핍박하려 드는 중년인이 아주 가소롭게만 느껴졌다.

“새로운 힘 손에 넣고, 태백을 이 꼴로 만들어서 자신감 좀 많이 얻으셨겠어?”

나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중년인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재수 없는 비웃음이 내 얼굴에 떠올랐다.

“그런데 어쩌나? 준비한 게 고작 강마병 따위라면 피 보는 건 그쪽일 텐데?”

“그야 해보면 알 일이지. 잡아!”

중년인의 명령을 받은 강마병들의 시커먼 눈동자에서 붉은 기운이 내비쳤다.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헌터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재빨랐다.

훙훙 휘둘러대는 무기엔 검붉은 불꽃이 불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츠리리릿!

나를 포위하는 강마병들의 움직임에 시커먼 기운이 날름거리는 창날이 흐릿하게 변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살모사 같은 소리가 부르르 떨리는 창날에서 소름 끼치게 흘러나왔다.

영혼을 소멸시킨 육체에 몬스터의 혼을 불어넣은 이형의 존재. 강마병.

이들 역시 금랑 길드원들처럼 이지를 잃어버린 상태이지만, 그들과는 달리 영혼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라 그들을 되돌릴 방법 따윈,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강마병들을 대하는 나의 손속은 먼젓번과는 비교되지 않게 매서웠다.

-피슛! 피슛! 피슛!

약간의 파공성도 함께 시커먼 창날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사방으로 쏘아져 나간 창날은 나를 둘러싼 강마병들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무 명의 강마병 중 넷이 당했다.

“이 무슨…! 그분의 권능으로 담금질 된 최강의 병사가!”

분명, 강마병은 중년인이 자신한 대로 강력한 무력을 지닌 존재였다.

빙의된 몬스터는 공포라는 감정을 몰랐고, 영혼이 거세된 육신은 통증 자체가 없었기에.

육신에 잠재된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덤벼오는 강마병은 놀라운 무력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권능으로 담금질 되긴 무슨. 하급 몬스터의 영혼 따위가 그리 대단할 리 없지.”

하지만 육체와 영혼 특성을 지닌 내게 있어선, 놈들을 상대하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몬스터의 혼을 불어넣은 강마병 역시, 영혼과 육신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육체와 영혼의 어긋난 뒤틀림을 바로잡는 육체와 영혼 특성의 묘용은 강마병들을 상대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다.

-쿠우웅!

어둠달에서 피어오른 시커먼 기운에 노출될 때마다. 어긋난 육체와 영혼의 뒤틀림이 바로잡혔다.

내 공격이 스치기만 해도, 흉포하게 달려들던 강마병들의 육신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런, 벌써 끝인가?”

영혼을 거세당한 강마병들은 본질에서 이성이 없는 인형과도 같은 존재다.

강마병들은 동료들이 허무하게 죽어나자빠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의미 없이 그쪽에서 먼저 달려와 준 덕분에 놈들을 처리하기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중년인이 데리고 온 스무 명의 강마병이 모조리 바닥에 몸을 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그, 그분께서 축복해주신 최강의 병사가 어찌….”

강마병들이 모조리 쓰러지는 모습을 본 중년인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꿀꺽 침을 삼켰다.

그의 얼굴에선 먼젓번과 같은 여유와 장난기 따윈,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스멀거리며 엄습해오는 미지의 공포가 그의 몸을 지배했다. 파랗게 질린 중년인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악!

중년인에게 다가선 나는 그의 멱살을 콰악 틀어쥐었다.

유독 화려한 갑옷을 차려입은 중년인의 육신이 힘없이 딸려 올라왔다.

나는 황금빛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놈의 떨리는 시선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이제 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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