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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95화 (95/309)

제95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내 말에 금랑 길드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꼬옥 다물었다. 퀴퀴한 텐트의 내부에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대답하는 것을 주저하는 그들의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텐트 속에서 낮게 울려 퍼졌다.

“…오행 길드입니다. 헌터님. 놈들의 길드장, 이중환이 저흴 속였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던 유영식이 마침내 운을 떼었다.

목소리에 어딘지 비장함이 깃든 것으로 봐선,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한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유영식의 말은 첫마디부터 도저히 믿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

누가 누구를 속였다고? 그 착해빠진 아저씨가? 뭘 어쩌고 어째?

이중환과 금랑 길드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겐, 유영식의 말이 양이 늑대를 잡아먹었다는 것과 동급의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때문에, 내 입에선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의심과 불신이 적절히 뒤섞인 의문이 튀어나왔다.

“저희도 평소 그의 이미지가 어떤지, 저희 길드가 남들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헌터님께서 제 말을 믿지 못하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

불신에 가득 찬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본 유영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만큼 유영식의 증언은 회귀 전의 기억뿐만 아니라, 지금 세간에 퍼져있는 금랑과 오행의 이미지만을 고려해봐도 쉽사리 믿어주긴 힘든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성좌님들께 맹세컨대, 저희를 속여 저희의 몸을 제 마음대로 부려 먹은 이는, 분명 이중환이었습니다.”

‘성좌에게 맹세하겠다.’라는 표현은 헌터들에게 있어선 최상급의 맹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영식의 눈빛에선 일체의 흔들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간절하면서도 진중한 눈빛 아래엔 자신들을 이 꼴로 만든 원흉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희미하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뭐지? 진짜 이중환 그 아저씨가 그런 짓을 저지른 건가?

-파츠츠츠.

유영식이 보여주는 태도와 말투가 아무리 진중하다지만, 사람에겐 오랜 세월 머릿속에 틀어박힌 선입견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만큼, 내가 기억하는 오행 길드의 길드장 이중환은 음험한 음모와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차라리 금랑 길드 쪽에서 오행 길드를 속였다면 그 즉시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 반대는 내게 있어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의 말만 믿고 섣불리 이중환을 의심할 수 없었다.

물끄러미 유영식을 바라본 나는 조용히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진실』

“…!”

뭐야?

하지만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는 유영식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갖고 있었던 상식과 편견을 모조리 깨부수는 듯한 충격이 얼얼하게 찾아왔다.

덕분에 진실을 확인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진짜라고? 이중환 그 물러터진 아저씨가?

“자, 자세히, 자세히 설명해 보십쇼. 갑자기 오행 길드라니. 이중환이라니.”

머릿속에 들이닥친 충격이란 놈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뒤.

나는 유영식에게 금랑 길드와 이중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잠시 동료들의 눈치를 슬쩍 살핀 유영식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예. 오행 길드에서 저희 길드 쪽에 태백과의 전면전을….”

태백과의 전면전을 언급하는 유영식은 살짝 말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내가 태백 소속의 산군이니만큼 태백을 치기 위해 오행과 모종의 밀약을 맺었다는 말을 쉽사리 꺼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뭐…. 다른 금랑 길드원들이 내게 그들의 이야기를 쉽사리 털어놓질 못하는 이유도 이거겠지.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그렇지, 자신들을 구해준 장본인에게 ‘댁 뒤통수 치기 위해 작당 좀 했수다.’라고 뻔뻔스레 말할 정도로 막돼먹은 치들은 아닐 테니까.

“…전 괜찮으니까. 계속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예, 죄송합니다. 헌터님. 저희 금랑에선 태백과의 전면전을 지원해달라는 오행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일주일 전이라….

시기를 가늠해보니, 대충 내가 나슈리크의 개입에 따라 남이섬 게이트에 찾아갔던 시기였다.

또, 신지현과 박정욱의 적극적인 견제로 오행과 태백 간의 무력적인 충돌이 잠시나마 잦아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공백의 시기에 오행에서 금랑 길드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고?

오행 역시, 아모스의 손에 놀아 난 피해자 입장 아니었어?

“오행 쪽에서 먼저 다가왔단 말입니까?”

“예, 헌터님. 그들은 태백에서 씌운 누명 탓에 길드원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며, 저희에게 목숨 값을 받아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아모스의 농간 때문에 양 길드 간의 분쟁이 일어났으니, 오행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미 신지현을 통해 물밑에서 오해를 풀어가고 있었던 중이었다.

게다가, 신지현에게 양 길드 사이를 이간질한 흉수를 찾기 위해 협력하자고 먼저 제의한 것은 애초에 오행 쪽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금랑에게 목숨 값을 운운했다니, 이건 또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리곤…. 선금을 요구한 저희 길드 측에게 신규 아티팩트라며 이런 것을 나눠주었지요.”

동맹 요청에 선금을 요구하다니, 금랑 답다면 금랑 답다.

역시나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일관적인 모습에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유영식은 자신의 귀에 걸려있던 귀걸이를 떼어 내게 건네어 주었다.

귓불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귀걸이는 난리통 속에서도 용케 그의 귀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이건…?”

유영식이 건네준 귀걸이의 외형은 굉장히 단순했다.

은제 귀걸이엔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간 빛을 발하는 작은 보석이 하나가 박힌 것이 전부였다.

놀랄 만큼 단출하게 생겼다는 점 외엔, 나는 그것에서 어떠한 특이사항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귀걸이에선 사악한 마력도, 수상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중환 말로는 이것이 오행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신제품이라더군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오행의 주력 상품은 몬스터의 정수를 가공해서 만든 아티팩트였다.

그렇지 않아도 값비싸기로 유명한 오행 길드제 아티팩트의 신제품이라니, 금랑 입장에선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침중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유영식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원흉은 이 귀걸이인 것 같았다.

“이것을 착용한 이들은 모두 조금 전, 저희와 같은 괴물이 되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중환…. 그 작자는 혼란을 틈타, 저희 식구들을 하나둘씩 제압하여 이것을 강제로 착용시켰죠.”

매개체를 통한 신체장악이라…. 나르주아가 즐겨 써먹는 수법이네.

하급 마족에 불과한 나르주아에겐 금랑 길드원 전원의 신체를 장악할 만큼의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귀걸이나 목걸이 등의 매개체를 이용하여 이성만을 잃게 하는 정도는 놈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놈의 주특기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 뒤로 저희들은 육체의 자유를 빼앗긴 채로 설악 공격대를…. 죄송합니다.”

-털썩.

말끝을 흐린 유영식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이마를 쿵쿵 내려찍었다.

설악 공격대원들을 학살한 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행위에선 먼젓번 고슴도치 섬에서의 설악 공격대원들처럼 짙은 죄책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유영식이 무릎을 꿇는 것을 본 금랑 길드원들 역시,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바닥에 이마를 찧어대며 울부짖듯 사과하는 그들의 눈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중환이라….”

나주르아가 이중환의 몸을 차지해 오행 길드에 숨어들었는지, 아니면 이중환이 놈에게 조종당하는 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황상 오행 길드 쪽에 나르주아가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군.”

오행 길드의 무너진 본사가 위치한 곳을 바라보는 내 눈이 황금색 안광을 토해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황금빛 안광에선 시린 듯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

유영식과 이야기를 끝낸 뒤, 나는 김용식이 머무르는 텐트를 찾았다.

그리곤 금랑 길드원들의 처우에 대해 불만을 품은 모양인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김용식에게 금랑 길드가 겪은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금랑 역시 피해자였다니, 저로서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게서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그의 얼굴은 그 잠깐 사이에 부쩍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잔뜩 일그러진 입가는 여전히 증오를 품은 채로 뒤틀려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김용식의 눈에선 허탈한 허무의 감정이 느껴졌다.

“설악이 그들에게 목숨 값을 빚지긴 했습니다만…. 그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

김용식은 험악하게 굳어버린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수많은 감정이 회오리치는 그의 눈에는 가슴 아픈 슬픔이 억제되어 있었다.

“…저희 설악 식구들 역시, 간악한 사교도 놈들에게 조종당했던 적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한참이나 나를 말 없이 바라본 김용식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설악 공격대원답게 잠깐 사이 자신의 감정을 극한으로 억누른 모양인지, 일전의 고슴도치 섬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표정엔 어떠한 감정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그때의 그들 역시, 지금의 금랑 길드원들과 같은 심정이었겠죠. 산군님. 좋습니다. 그들의 신변을 저희가 맡긴 하겠습니다만….”

김용식은 담담한 말투로 금랑 길드원들의 신변을 자신이 맡겠노라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갈등의 빛이 서려 있는 것이.

머리로는 금랑 길드원들을 이해할 수 있어도, 원한에 찌든 마음으론 그들을 쉬이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 역시, 설악 공격대 분들께 금랑 길드원들을 용서하라는 말 따윈 애초에 할 생각이 없어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라는 놈은 그리 쉽게 머리에게 설득당하는 놈이 아니다.

어떤 부위보다 가장 감정적이고, 가장 감성적인 부위이니까….

아무리 금랑 길드원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들, 김용식과 설악 공격대원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동료들을 학살하는 학살자의 모습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겠지.

“…다만. 지금은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쓸쓸한 표정으로 김용식을 바라본 나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숙여진 산군의 무거운 고개에, 김용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따위 개수작을 벌인, 간악한 마족 놈들은 제가 반드시 잡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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