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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94화 (94/309)

제94화

처음으로 인간적인(?) 비명을 내지른 금랑 길드원의 눈엔 혼란이 가득했다.

흔들리는 그의 눈에선 찐득하게 묻어나왔던 살기도 잿불처럼 이글거렸던 광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의문만이 느껴졌다.

“…좀비인가?”

갑자기 일어난 이변에 내 입에선 멍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분명히 사고였다. 위철용이 혈 자리에 대한 지식을 뒤늦게 말해준 탓에 나는 그만 금랑 길드원의 사혈을 찔러버렸다.

내력이 잔뜩 주입된 손가락이 정수리를 파고들었고 상당한 양의 내력이 머릿속으로 퍼져나가, 그의 코에서 시커먼 코피가 푸확 터져 나왔다.

때문에, 위철용의 말도 그렇고 그가 보여준 모습도 심상치 않아서 죽어버린 건가 싶었는데….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

“세, 세상에. 내, 내가 어, 어떻게…!”

하지만 감정이 풍부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꼴이 좀비 같아 보이진 않았다.

목소리 역시 굉장히 격양되어 떨리고 있긴 하나, 산 자 특유의 뚜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온몸에 가득한 상처와 시커먼 코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 언데드마냥 그로테스크 해 보이긴 해도, 내 눈앞이 금랑 길드원은 멀쩡히 ‘살아 있는’ 상태였다.

‘…사혈 찌르면 죽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죽기는커녕, 얜 오히려 팔팔해진 것 같은데요?’

[흐음. 아무래도 너희 헌터라는 족속들은 상상 이상으로 무식한 몸을 지닌 것 같구나. 내력을 침투시켜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는데.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일반적으론 뒈지는 것이 정상 아니겠느냐?]

금랑 길드원의 반응에 위철용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위철용이 알고 있는 ‘혈도’에 대한 지식조차, 헌터의 무식할 정도로 튼튼한 몸에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그렇긴…. 하네요? 하긴, 요 몸뚱이가 워낙 튼튼하긴 하죠. 어라? 그럼 혹시 제정신을 되찾은 이유가….’

[그래. 네놈이 주입한 내력이 놈의 뇌에 걸린 모종의 금제를 풀어버린 게지.]

위철용은 내 말을 중간에 뚝 끊곤, 고개를 끄덕여 내 추측에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머릿속에 내력이 파고든 순간, 뇌가 결딴이 나서 절명해 버렸겠지만.

튼실한 신체구조를 자랑하는 헌터의 경우엔 머릿속을 휘저은 내력이 그곳에 자리 잡은 제약만을 깨뜨려버린 듯했다.

“…! 당신은! 태백의 재수 없게 잘생…. 아, 아니 그 유명한 설용호 산군님 아닙니까. 그, 그렇다면 설마 당신이!”

위철용과 쑥덕거리는 사이, 정신없이 자신의 몸을 더듬던 금랑 길드원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내 얼굴을 알아본 모양인지 경악이 어린 비명을 내뱉는 그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꼴로 보아하니, 그 역시 영 좋지 않은 오해를 한 눈치였다.

“…젠장.”

금랑 길드원의 묘한 눈초리를 받은 내 입에선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먼젓번의 위철용처럼 지금 금랑 길드원의 입장에선,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벌거벗겨진 채로 꽁꽁 묶여있는 데다, 눈앞엔 자신의 길드와 앙숙인 태백의 산군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되레 오해를 하지 않는 편이 신기하게 느껴질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쓸데없이 오해받는 순간이 가장 짜증나는데 말이지.

“예, 제가 태백 길드 소속의 설용호는 맞습니다만. 상황은….”

자초지종을 캐묻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우선 금랑 길드원의 오해를 풀어주는 게 먼저다.

슬금슬금 솟구치는 짜증을 꾹 억눌러 참은 나는 그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미소를….

“…저를 구해주신 분이로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하지만 금랑 길드원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커다랗게 부릅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와락 일그러뜨린 얼굴에 감격에 찬 울음이 맺혔다. 입에선 잔뜩 격양된 어조의 감사 인사가 튀어나왔다.

-털썩.

말로는 부족한 모양인지, 금랑 길드원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곤 천천히 몸을 엎드렸다.

오랫동안 혹사당한 탓에 성치 않은 몸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감사를 표했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오해와 함께 덤벼오는 게 정석 아니더냐? 이건 또 무슨 참신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지 모르겠구나.]

‘그러게요. 누구처럼 오해한 것 같아서 일단 진정시켜 보려고 했는데 말입죠.’

[크흐흠! 크흠!]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금랑 길드원의 반응에 나와 위철용은 동시에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세뇌당했던 이가 쓸데없는 오해를 하는 것은 회귀 전에도 몇 번이나 겪어봤던 일이었다.

굉장히 신경질 나는 일이긴 하나, 세뇌당한 당사자는 말 그대로 정신이 장악당해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해해주곤 했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번엔 갑자기 다짜고짜 구해줘서 고맙다고? 도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설마!

“조종당하셨던 동안의 의식이 있으셨던 겁니까?”

순간적으로 회귀 전의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정신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로 육신만을 조종하는, 재수 없는 마족 하나가 떠올랐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탓에 내 목소리엔 약간의 냉기가 감돌았다.

“예! 예! 덕분에 그 저주받은 꼭두각시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빌어먹을. 그 자식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금랑 길드원의 답변에 내 입에선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모스가 금랑 길드원들을 세뇌하여 장기 말로 써먹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미뤄보건대, 그새 새로운 마족 한 놈이 아모스의 계획에 찬동해 끼어든 모양이었다. 그것도 상대하기 짜증 나는 놈 중 하나가….

[나주르아. 그 쳐 죽일 놈이 벌써 튀어나오다니, 이거야 원. 역사가 어찌 흘러가는지 모르겠군….]

위철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점점 회귀 전의 역사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인지, 위철용의 얼굴엔 심각한 근심이 가득했다.

‘예, 이딴 짓을 저지를 놈은 나주르아. 그 산채로 회 쳐 먹을 놈밖에 없죠.’

나주르아. 놈 역시 아모스와 같은 마족의 일원이었다.

회귀 전 역사에서 그는 지금으로부터 3년 뒤, 헌터 협회의 본거지에 나타나 피와 광기에 가득찬 비극을 불러일으킬 예정이었다.

본체의 전투력은 약해 빠졌지만, 육체를 장악하는 능력이 까다롭기 짝이 없어 상대하는 데 제법 애를 먹었던 놈이었다.

회귀 전에도 그 자식의 능력에 대처할 법이 없어서 상당히 애를 먹…. 어라? 잠깐만.

『육체와 영혼』

등급 : 전설

설명 : 육체와 영혼의 연결을 바로 잡습니다.

…대처할 방법이 있네?

나슈리크의 배려 덕분에 손에 넣은 특성 『육체와 영혼』의 능력은 설명 그대로 육체와 영혼의 연결을 바로 잡아, 왜곡된 연결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빙의 능력을 지닌 아모스를 상대하는 데는 이것만 한 특성이 없었고 내가 육체와 영혼 특성을 갈망했던 이유도 오로지 아모스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 특성 또한 나주르아를 상대하는 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르신? 혹시 육체와 영혼 특성에 대해 기억하세요?’

[육체와 영혼? 네놈이 얼마 전에 손에 넣은 그것 말이더냐? 당연히 기억하고말고. 영과 육의 불완전한 연결을 바로잡…. 허허. 그랬군. 그런 거였어.]

육체와 영혼 특성을 입에 담은 위철용의 눈빛이 일순 멍해졌다가 총기를 되찾았다.

그 역시, 어째서 금랑 길드원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래…. 아무리 헌터 머리통이 단단하다곤 해도. 세뇌를 부술 만큼 강력한 내력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지.

“육체를 그대로 장악당한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셨다니. 금랑에서도 수고가 많았겠군요.”

“예. 예! 그렇습니다. 설용호 산군님 덕분에 저는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다른 이들은….”

금랑 길드원은 벌거벗겨진 채 의식을 잃은 동료들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촉촉이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도와달라는 무언의 간절한 요구가 깃들어 있었다.

“다른 이들 역시 제가 구하면 그만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일반적인 세뇌와는 달리, 나주르아의 방식은 영혼과 육신의 연결을 뒤틀어 육체를 장악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육체와 영혼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는 소리다.

눈앞의 금랑 길드원이 정신을 차린 이유 역시, 뇌 속을 파고든 내력 때문이 아닌 육체와 영혼의 특성 덕에 영과 육의 연결이 바로잡혀진 탓이었다.

육체와 영혼의 특성을 시험해볼 생각에 나는 금랑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

-콰직!

“크풉! 끄어어어억!”

시커먼 기운이 어룽거리는 손가락이 정수리에 파고들자, 단단한 두개골이 움푹 파였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내력에, 까맣게 죽은 피가 금랑 길드원의 코에서 분수처럼 분출되었다.

비명소리를 한차례 토해낸 금랑 길드원의 광기에 젖은 눈빛이 차츰차츰 맑아지기 시작했다.

“…머, 머리를 손대신 것까진 기억합니다만. 서, 설마 제 머리도.”

내 치료(?)를 지켜보는 금랑 길드원, 유태영은 아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동료들이 당한 것처럼 자신의 머리에서도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낸 모양인지 그의 눈빛이 암울해졌다.

“뭐, 약간 거친 방법이긴 하지만, 경험하셨다시피 효과 하나는 확실하니까요.”

“그, 그렇기야 합니다만….”

유영식은 아무래도 두개골이 움푹 함몰된 부분이 못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영혼에 각인된 특성 트리 덕분에, 헌터의 재생력은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지만.

이렇게 뼈가 움푹 함몰될 정도의 충격은 금방 재생되지는 않는 법이니까. 신경 쓰일 만도 하겠지.

그런데 뭐 어쩌겠어? 애석하게도 이미 저질러진(?) 이후인데.

[육체와 영혼의 효력 때문이라면서, 그들의 정수리는 왜 부수고 있는 게냐?]

‘유영식 저 친구 머리만 저 모양으로 만들면, 불쌍하기도 하고. 굳이 육체와 영혼을 손에 넣었다고 광고할 게 아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일종의 내력 응용법이라 둘러대기도 좋잖아요?’

금랑 길드원들의 두개골을 굳이 어여쁜 하트 모양으로 연성시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육체와 영혼 특성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굳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모스와의 결전이기에, 놈과 싸우기 전까진 패는 숨기면 숨길수록 좋은 법이었다.

“세, 세상에. 모, 몸이 움직인다! 움직여!”

금랑 길드원 서른 명 모두가 정신을 차리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하나같이 머리가 예쁜 하트 모양으로 함몰된 금랑 길드원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하나둘씩 내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설용호 헌터님!”

그리곤 그들은 마치 나를 숭배하기라도 하듯 굽신굽신 절을 올리며 저마다 개성적인 감사인사를 전해오기 시작했다.

“것보다…. 이야기나 좀 들어봅시다. 당신들을 그 꼴로 만든 게 도대체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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