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축 늘어진 금랑 길드원들은 모두 굴비처럼 잘 묶인 채, 비어있는 텐트로 옮겨졌다.
원래 각종 물자를 보관하고 있었던 창고로 활용되고 있었던 모양인지, 24인용 텐트의 내부엔 종이 상자가 가득 쌓여, 창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크윽, 이건 또 무슨 냄새야.”
거기에, 오랫동안 씻지 않은 사내의 꼬릿한 체취와 찝찔한 피 냄새가 더해졌다.
널찍한 24인용 텐트를 꽉 채운 금랑 길드원들의 몸에선 굉장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창고 냄새와 그들의 몸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조합되어 내게 후각적인 폭력을 선사해주었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연상케 하는, 야성적으로 고약한 냄새에 코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냄새 한번 끝내주네, 이 양반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던 거야?”
아찔한 냄새에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지만.
애써 정신을 다잡은 나는 코를 틀어막을 채, 금랑 길드원들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광포하게 날뛰었던 것이 가능한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는 탄력이 전혀 없었고 앙상하게 마른 몸엔 이런저런 상처가 가득했다.
거기에 홀쭉하게 들어간 볼엔 손질되지 않은 수염이 엉망으로 거칠게 자라나 있었다.
“상태로 봐선, 제법 오래전부터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같은데….”
[성좌라는 것들이 이렇게 경박해서야….]
계속해서 금랑 길드원들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으려니, 위철용의 비췻빛 머리통이 내 가슴팍에서 쑤욱 빠져나왔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성좌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려던 그의 말이 갑자기 중간에 뚝 끊겼다.
무엇에 그리 놀랐는지, 위철용의 눈에 경악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 양반은 갑자기 튀어나와서 왜 저래?
[지, 지금 뭐, 뭐 하는 게냐?]
“예? 보시다시피, 포로로 사로잡은 이들을 조사하고 있죠.”
[아, 알몸의 포로라고? 네놈 역시 그런 쪽에 취미가….]
더듬더듬 말을 더듬는 위철용의 얼굴에 대단히 당황한 표정이 떠오르고 나서야, 나는 그가 뭔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아니 지금 뭔 생각을 하신 겁니까! 뭔 생각하시는지는 알겠지만 오해에요!”
아무래도 위철용은 어두컴컴한 텐트 속에서 의미심장한 눈으로 알몸의 포로를 꼼꼼히 어루만지는 내 모습을 보고, 뭔가 깊고 어두운 환상이 깃든 오해를 해버린 것 같았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양반은 갑자기 왜 튀어나와서. 엄한(?) 오해를 하고 난리여?
[성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크윽! 아무리 본존이 이 꼴로 영락해버렸다지만. 이토록 흉측한 꼴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어쩐지 회한이 서려 있는 위철용의 허탈한 말에 나는 슬쩍 그의 시선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필이면, 지금 내 손은 묶여있는 금랑 길드원의 털이 부숭부숭 난 가슴팍에 닿아 있었다.
아, 아니야 이 양반아 이건!
“아, 아니, 오해라니까요!”
화들짝 놀란 나는 후다닥 금랑 길드원의 헐벗은 육체에서 물러났다.
그리곤 필사적인 표정으로 위철용의 엄한 오해를 풀기 위해 격렬히 손을 내저었다.
[네놈의 개인사는 본존 나름대로 존중하려 했다만, 그들 말대로 이토록 어두운 취미를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위철용의 눈은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벌거벗겨진 채 굴비처럼 꽁꽁 묶여있는 금랑 길드원들을 향해 있었다.
시원하게 벗은 알몸에 단단히 결박된 밧줄, 무언가에 맞은 듯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금랑 길드원들의 괴상망측한 몰골은 엄한 오해를 불러오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네놈이든 성좌들이든 벌거벗은 사내놈들을 고문하는 것에 광분하는 변태들일 줄은]
“아, 아니. 왜 거기에 저까지 은근슬쩍 끼워 넣으십니까! 고의가 아녔다고요!”
***
“…그렇게 된 겁니다. 저의 어두운 취미를 실현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조사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위철용의 오해를 풀어주는 데는 제법 시간이 소모되었다.
그의 기묘한 눈빛에 당황한 내 입에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어째서 그들이 벌거벗은 채로 어두컴컴한 텐트 내부에 묶여있는지를 설명하니, 알 수 없는 회한으로 가득 찼던 위철용의 한스러운 눈빛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크흠. 역시 그랬었군. 하기야 네놈이 그렇게 어두운 취미를 갖고 있을 리가 없지.]
안정을 되찾은 위철용은 민망함이 가득 담긴 헛기침과 함께, 멋쩍은 혼잣말을 해댔다.
아니, 나를 십몇 년이나 지켜봤었던 양반이 갑자기 그런 오해는 왜 한 거야….
“당연하죠! 애초에, 회귀 전에도 그런(?) 모습은 보여드리지 않았잖습니까.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오해를 왜 하셨던 거예요?”
[크흠! 커흐흠! 그게 말이다. 네놈을 그리도 좋아하는 성좌 놈들이 한 헛소리와 네놈이 보여준 숭악한 광경이 워낙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본존도 어쩔 수 없이 오해할 수밖에 없었느니라.]
나는 샐쭉하니 눈을 치켜뜬 채로 책망하듯 위철용에게 기묘한 오해를 한 이유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여전히 민망한 눈치의 위철용은 변명하듯 채널 창의 성좌들을 탓하기 시작했다.
“성좌들이요?”
[그, 그래! 네놈도 알다시피 본존 역시 이제 네놈과 그 채널 창인가 뭔가 하는 기물을 공유하는 몸이 되었지 않았느냐? 그곳에서 놈들이 떠든 헛소리에 무슨 일인고 싶어 나왔더니. 그런 흉측한 광경이 눈에 들어와서는….]
성좌들? 어라. 그러고 보니, 그 양반들을 잊고 있었네.
나슈리크와의 만남 이후, 워낙 상황이 급히 돌아간 덕분에 채널 창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위철용의 변명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시스템 창을 조작해 채널 창을 열었다.
“…뭐여. X벌.”
오랜만에 열어본 채널 창은 말 그대로 혼돈과 파괴, 망각이 공존하는 혼란의 도가니탕이었다.
폭주하듯 끊임없이 감정표현과 후원 메시지가 올라오는 채널 창엔 사로잡힌 금랑 길드원들과 나를 소재로 삼은 깊고 어두운 망상이 가득했다.
그 수위 또한 차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기에, 단지 채널 창의 메시지를 몇 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생전 처음 맞이하는 낯선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어찔하니 현기증이 찾아 왔다. 소름이 후두둑 돋아난 등 위로 식은땀이 쉴 새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으, 으어어. 이, 이건 좀 오해할 만하네요. 이 양반들은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그, 그렇지? 크흠! 커흐흠! 원래 성좌라는 족속들은 필멸자의 삶, 특히 그중에서도 필멸의 육신이 제공하는 쾌락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법이니라.]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혼란의 도가니탕이 되어버린 채널 창을 닫았다.
연달아 헛기침해댄, 위철용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성좌들의 행동을 두둔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채널 창의 성좌들이 보여준 ‘관심’은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저런 걸(?) 보다간 정신이 남아나지 않겠어.
[크흠! 그것보다…. 흐음. 호오! 이들의 상태가 제법 볼 만한 것이. 본존의 가르침 덕에 네놈도 제법 무공이 경지에 오른 모양인 게로구나! 내부에 침투된 내력으로 내부 혈도와 장기가 딱 죽지 않을 만큼 적절한 타격을 입었어. 아주 훌륭한 수준의 침투경이로다!]
내 떨떠름한 표정을 본 위철용은 헛기침과 함께 다른 곳으로 화두를 돌렸다.
결박된 금랑 길드원들의 몸을 살펴본 그는 나직한 탄성을 토했다.
그리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그답지 않게 나의 무공 성취에 대해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다.
[외부는 멀끔히 내버려 둔 상태로 내부만을 타격하는 침투경! 본존 역시 파천 복룡창의 사식 이상을 익히고 나서야 겨우 얻은 경지이거늘…. 아무리 회귀 전의 지식이 있다곤 하나, 무공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던 네놈이 이 정도의 성취를 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구나!]
아무래도 내가 금랑 길드원들에게 행한 점혈(?)은 위철용 눈에 침투경의 수법으로 보일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것 같았다.
어…. 그게 내공을 이용해서 내부만을 파괴해놨으니, 침투경이라면 침투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말입죠.
“어, 음. 그게 침투경이 아니라요. 점혈 연습을 좀….”
흐뭇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위철용에게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어쩌다가 금랑 길드원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놨는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뭐?! 점혈이라고? 침투경이 아니라?]
‘점혈’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흐뭇하게 웃고 있던 위철용의 얼굴이 뭐 씹은 것처럼 와락 구겨졌다.
다시 한 번 금랑 길드원들의 상태를 살핀 그는 어처구니를 잃어버린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부를 완전히 작살 내놨는데, 어떻게 이걸 점혈이라 그리 뻔뻔스레 말할 수 있는 게냐?]
“아, 아하하. 그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었죠.”
[…허어. 자세히 보니 이거, 근육과 장기뿐만 아니라 뼈까지 아주 결딴을 내놨군. 이걸 보통 무림에선 분근착골이란 고문법이라 명명한다는 걸 알기나 하는 게냐?]
흐뭇함이 가득했던 위철용의 얼굴이 이젠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가득 차올랐다.
…분근착골이라니, 조금(?) 잘못한 것 같긴 했는데 내 점혈이 그렇게나 잘못된 거였나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도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을 경지이니, 익숙해지면 아주 사람을 잡겠구나. 무공 실력을 키우랬더니, 고문 실력을 키워놔?]
“고, 고문이라뇨! 그, 그래도. 확실히 제압해놓긴 했잖습니까.”
[제압? 그래. 평생 밥숟가락 하나 들기 힘들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니, 제업하나는 아주 확실하게 해놓긴 했구나.]
한심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위철용은 계속해서 내게 비아냥거렸다.
고약한 심술을 품은 조막만 한 입이 이죽거림을 담은 독설을 토해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점혈했길래, 교의 고문 담당마저 울고 갈 솜씨를 보였는지 모르겠구나. 어디 한번 뭔 짓을 했는지 보여주기나 해라.]
위철용의 이죽거림에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묶여있는 금랑 길드원에게 다가가 먼젓번의 방법대로 점혈을 시도했다.
-푸욱!
잘 달궈진 젓가락이 부드러운 모짜렐라 치즈를 파고들 듯.
내력이 주입된 손가락은 불운한 금랑 길드원의 연약한 살갗을 파고 들어갔다.
곧이어 손가락에 주입된 내력이 그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끄오오오오오!”
어찌나 충격이 대단했던지, 의식을 잃었던 금랑 길드원이 화들짝 정신 차렸다.
핏발선 눈을 부릅뜬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는 입가엔 고래 심줄 같은 힘줄이 툭툭 비어져 나왔다.
[…이 미친놈. 아예 새로운 고문법을 창시해 내버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