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92화 (92/309)

제93화

“…….”

암룡출동이 보여준 압도적인 파괴력은 광기가 가득했던 전장에 잠깐의 정적을 가져왔다.

악다구니를 쓰며 분투하던 설악 공격대원들도 광기에 찬 채 희생자를 찾아 헤매던 금랑 길드원들도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움직임을 뚝 멈추곤 파괴의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 세상에 도대체 이건 무슨 스킬이랍니까!”

시커먼 외골격에서 폭발하듯 터져나간 내력의 폭풍은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강화 플라스틱제 방벽이 퍽퍽 패였다. 질긴 합성 천으로 만들어진 텐트가 완전히 해체되었다.

암룡출동에 노출된 금랑 길드원들의 찬란한 금빛 갑옷이 종잇조각처럼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태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그들의 육신은 맥없이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쿠우웅!

하늘 높이 둥실 떠올랐던 금랑 길드원들은, 이내 무력하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알몸뚱이 사내들이 우박처럼 하늘에서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끄윽. 끄르르륵.”

하지만 위력을 조절한 덕에 금랑 길드원들은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폭발에 휩쓸려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데다, 입고 있었던 갑옷이 모조리 찢겨나가 영 좋지 못한 꼴로 거듭나긴 했으나, 최소한 그들의 목숨엔 지장이 없었다.

무력화된 금랑 길드원들은 알몸으로 널브러진 채로 상처 입은 야생동물 같은 신음을 내었다.

“…힘 조절 따위, 그냥 하지 말 걸 그랬나.”

내 시신경을 압박해오는 혐오스러운 털과 육체의 향연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등골을 스멀스멀 타고 오르는 본능적인 혐오감이 와락 구겨진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복슬복슬한 털을 자랑하는 사내들이 알몸으로 널브러진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안구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금랑 길드원들이 보여준 비정상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려, 일단 죽이지는 않았는데….

이 빌어먹을 꼬락서니는 좀 참아주기 어렵네.

“크으…. 큭. 크륵.”

그렇게 눈살을 찌푸린 채로 혐오스러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금랑 길드원 중 한 명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뿌드득!

“케헥!”

반쯤 몸을 일으킨 금랑 길드원의 눈이 다시 흉포한 살기를 내비쳤다.

말없이 그에게 다가간 나는 친절하게 그의 양다리 뼈를 분질러 주었다.

편하게 누워있으라는 내 나름의 배려가 들어간 선의가 섞인 행동이었다.

“쿠뤅! 큭! 쿠르륵!”

그렇게 안식을 잃을 뻔했던 금랑 길드원에게 안식을 되찾아주는 사이, 다른 금랑 길드원들도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점혈인가 뭔가를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그런 금랑 길드원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을 바라보던 내 머릿속에 불현듯 위철용의 가르침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위철용이 무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며, 가르침을 빙자한 처절한 고통과 눈물의 시간 속에서 가르쳐줬던 ‘점혈’이라는 수법이었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내력을 요렇게 침투시킨다고 했지?

-푸욱!

위철용의 가르침을 되새긴 나는 실험 삼아, 금랑 길드원의 몸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내력이 잔뜩 주입된 손가락이 주삿바늘처럼 연약한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손가락에서 풀려나온 내력이 불운한 금랑 길드원의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끄오오오오오옥!”

내력이 주입된 금랑 길드원은 목이 터져라,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시뻘겋게 변한 얼굴에 나무뿌리처럼 억센 힘줄이 우두둑 돋아났다.

살기가 이글거리던 눈이 하얗게 까뒤집어지며, 입에선 몽글몽글 새하얀 게거품이 올라왔다.

벼락에 맞은 것처럼 격렬하게 부들거리던 그는 혀를 길게 빼문 채, 기절해버렸다.

…어라? 원래 점혈이라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제압 방법이었나?

-푸욱!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을 땐, 역시 복습이 최고다.

예상치 못하게 격렬한 반응을 보인 환자분의 상태에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또 다른 금랑 길드원의 몸에 손가락을 푸욱 찔러 넣었다.

“끼에에에엑!”

두 번째 반응 또한,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게 점혈(?) 당한 희생자는 게거품을 보그륵 물곤 축 늘어져 버렸다.

거참, 이상하네. 그 어르신이 내게 이걸 써먹을 땐 이렇게까지 반응이 격렬하지 않았는데….

“뭐, 실험체는 아직 많이 있으니까. 이참에 연습 좀 해둬야겠다.”

복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숙달 또한 빨라지는 법.

나는 묘한 열망이 서린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금랑 길드원들을 바라보았다.

내 금빛 찬란한 시선이 닿을 때마다. 왜인지 그들이 몸이 움찔거리는 듯했다.

***

“서, 설용호 산군님 이건 도대체 무, 무슨 스킬입니까?”

대단히 유익하고 즐거운 복습시간이 지나간 뒤.

부상자들을 수습하러 떠났던 설악 공격대원들이 실험현장에 다시 돌아왔다.

먼젓번에 유난히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사내, 오시혁은 알몸으로 축 늘어진 금랑 길드원들의 괴상망측한 자태에 기함하며 눈을 휘둥그레 크게 떴다.

“어, 음 그게, 스킬은…. 아니고 뭐 어디서 본 잔재주이긴 합니다만.”

왠지 모를 감탄이 서려 있는 오시혁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나는 멋쩍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흔 번째 불운한 희생자가 피를 왈칵 쏟아낸 채 고꾸라지고 난 뒤에야. 나는 뭔가 대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솔직히 이걸 점혈이라 말하기도 민망하거든, 위철용이 보면 도대체 뭘 배웠느냐며 죽이려 들걸?

“잔재주라니! 겸손이 과하십니다. 제가 이쪽 업계에서 몇 년을 굴렀지만, 이렇게 효율적(?)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스킬은 칼 밥 먹고 시작한 이래로 처음 봅니다!”

반짝이는 눈에 선망과 감탄이 깃든 오시혁은 진심으로 내게 탄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단히 흥분한 듯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존경심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크흠. 그렇게까지 칭찬을 해주시다니…. 뭐, 그래 봐야 제겐 잔재주일 뿐이지만요. ”

콕콕 찔려오는 양심이 선사해주는 민망함 따윈 헛기침 한 방에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리곤 뽐내듯 가슴을 쭈욱 내밀며, 정말로 별거 아닌 양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렇게까지 맹목적인 존경과 선망을 표하는 상대에겐, 때로는 잔혹한 진실보단 잘 꾸며낸 허세가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역시. 설용호 산군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더러운 일은 이제 저희가….”

강자에 대한 동경으로 초롱초롱 빛나던 오시혁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깃들었다.

김용식이 보여줬던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진득한 원한이 그의 입가를 잔혹하게 비틀었다.

더러운 일을 언급한 그는 허리춤에 찬 도끼를 빼 들곤 금랑 길드원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번쩍!

오시혁의 도끼날이 저물어가는 석양을 반사하며 섬찟한 살기를 흩뿌렸다.

동료들의 복수를 갈망하는 음울한 욕망을 담은 도끼질이 금랑 공격대원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카드득!

“…산군님?”

애석하게도, 오시혁의 도끼날은 금랑 길드원의 몸에 닿지 않았다.

휘둘러진 도끼는 시커먼 어둠이 일렁거리는 창날에 가로막혔다.

자신의 공격이 제지당하자, 그는 의문과 원독이 서린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들을 죽이는 것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진 않군요.”

설악 공격대의 사연이 딱하긴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금랑 길드원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이곳을 습격한 금랑 길드원들의 태도는 무언가에 잠식당한 듯 딱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아모스의 목적 중 하나가 헌터 세력의 약화이니만큼, 금랑 길드 역시 아모스의 수작질에 휘말린 피해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때문에…. 목숨 값을 받아낸답시고 놈이 원하는 대로 놀아날 순 없는 노릇이지.

“하, 하지만. 산군님! 놈들은! 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들은 저희 식구들을 학살한 원수입니다! 바, 박정욱 대장님 또한 놈들이 사용한 비열한 독에 당해 중태에 빠지셨는데…. 어째서!”

오시혁의 입에서 피가 토해지는 듯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감정을 절제하는 데 익숙한 설악 공격대원조차, 복수 앞에선 평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살해당한 동료들에 대한 원한, 의식을 잃은 박정욱에 대한 걱정, 무력한 자신들에 대한 서러움….

오시혁이 한 마디 한 마디 절규를 토해낼 때마다, 음울한 감정들이 폭발했다.

그의 격한 감정들이 폭발할 때마다, 복수를 갈망하는 피 냄새가 비릿하게 배어 나왔다.

“…예. 물론 이들에게 설악은 피로써도 씻지 못할 목숨 값을 빚졌죠.”

“그렇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놈들은 식구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제발! 산군님! 설용호 산군님! 제발, 이 빌어먹을 놈들의 골통을 쪼갤 수 있게 허락해주십쇼!”

오시혁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희번뜩 금랑 길드원을 노려보았다.

창날에 가로막힌 도끼에 힘이 실렸다. 주인의 의지를 담은 도끼날이 구슬피 울었다.

“하지만 금랑 또한 누군가의 수작에 휘말린 것이라면 어떻습니까?”

“예? 그게 무슨 개소…!”

“이들의 상태가 정상으로 보이셨습니까? 박정욱 선배님께, 간악한 마족 놈이 꾸미고 있는 일에 대해 듣지 못하셨어요? 놈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아실 텐데요?”

차분한 말투로 오시혁에게 유영화, 아니 아모스의 시커먼 꿍꿍이를 언급하자,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래, 박정욱의 성격상 가족이나 다름없는 설악 공격대원들에게 놈의 목적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크흑. 빌어먹을! 빌어먹을!”

말없이 도끼를 거둬들인 오시혁은 힘없이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리곤 그는 복잡한 설움을 담아 힘껏 바닥을 쾅쾅 내려치기 시작했다.

박정욱에게 가르침을 받은 설악 공격대원답게, 그는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금랑 놈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식구들이. 대장님이….”

바닥을 힘껏 내리치며 한껏 감정을 발산해낸 오시혁의 입에서 힘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흐느끼는 듯한 그의 목소리엔 먹먹한 슬픔이 가득했다.

요즘 들어 유난히 설악 공격대원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군….

“이해합니다. 제가 없는 사이 그토록 고통을 겪으셨으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게이트에서 더 빨리 귀환했을 것을…. 사악한 마족 놈이 음모를 꾸미는 와중에 게이트 공략에 정신이 팔리다니,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군요. 죄송합니다. 시혁 씨.”

나는 고개를 푹 떨군 오시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발동된 황금빛 외골격이 후광처럼 내 몸을 자애로운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곤 오시혁의 슬픔에 젖은 눈을 부드럽게 응시한 뒤, 천천히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서, 설용호 사, 산군님.”

권력의 정점에 선 산군, 그 압도적인 힘을 지닌 강자의 고개가 일개 공격대원에게 숙여졌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오시혁의 눈에 차츰차츰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외골격에 의해 증폭된 외모지상주의의 매력 보정은 응어리진 원한마저 잠시나마 잊게 할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시혁 씨의 원한, 아니 설악 전체의 목숨 값은 제가 반드시 놈에게서 받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시혁 씨의 울분 또한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예. 예에. 산군님만. 산군님만 믿겠습니다.”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오시혁의 눈엔 감격에 찬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바닥에 널브러진 금랑 길드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이들의 처우는 일단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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