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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91화 (91/309)

제91화

원한, 도저히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단어가 김용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계속해서 흐느끼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밀었던 손이 멈칫 굳었다.

당황만이 가득했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머릿속에 찾아왔던 혼란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원한이라니.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내 목소리에선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이성이 내가 그간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떠올리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김용식의 ‘감정적인’ 모습이 설악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다정한 성격이긴 하나, 헌터 업무에선 지독할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이 바로 박정욱이다.

따라서 그에게 훈련받은 설악 공격대원들은 어지간한 이유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크흐흑. 크흡! 크흑.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그래도 김용식은 박정욱에게 훈련받은 내용 자체는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질문을 들은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북받친 설움과 슬픔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쉬이 다스리지 못하겠는 듯 계속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설악 공격대원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사교도의 계략에 넘어가 학살을 저질렀을 때였고, 두 번째는 감히 산군인 내게 무례하게 굴다가 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났을 때가 전부였다.

하지만 앞선 두 번의 케이스에서조차, 그들은 얼마 있지 않아 금방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눈앞의 김용식만큼 힘들어하는 모습은 회귀 전의 경험까지 통틀어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김용식은 그것들과 필적할 만큼, 아니 그것들을 뛰어넘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소린데…. 어째 이거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군.

“훌쩍! 이제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

마침내 마음을 다스린 김용식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핏기가 완전히 가신 그의 창백한 얼굴에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책상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의자 하나를 골라, 그 위에 앉았다.

김용식에게 질문을 던진 내 두 눈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화안금정이 발동된 금빛 시야에서 김용식은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며칠 전, 금랑 길드가 저희 설악 공격대를 습격했습니다.”

“금랑 길드가…?”

김용식의 이야기는 말은 시작부터 믿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되물은 내 목소리엔 의문과 불신이 살짝 담겨 있었다.

물론 탐욕스러운 금랑 놈들이라면 혼란을 틈타, 태백 길드를 노릴 법도 했다.

하지만 놈들이 하필 설악 공격대를 노렸다는 사실만큼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격을 해봤자 들인 수고에 비해, 가장 얻을 것이 없는 공격대가 설악이었으니까.

“예, 분명히 금랑 길드였습니다. 놈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저희가 관리 중인 관리소 아홉 곳 모두를 동시에 급습했습니다.”

김용식은 계속해서 금랑 길드의 습격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지만, 언뜻언뜻 금랑을 향한 어두컴컴한 증오가 넘실거렸다.

생기를 잃어버린 그의 꺼멓게 죽은 눈 깊은 곳에선 원한의 불꽃이 음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함락된 게이트 관리소는 총 여섯, 목숨을 잃은 인원은 총 서른 명.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인원은….”

순간, 부상자를 언급한 김용식의 표정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굳게 다문 입매가 뒤틀렸다.

지독한 원한, 증오, 분노, 악의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틀린 그의 입가에 깃들었다.

뒤틀린 입가가 말려 올라가며, 원독이 서린 송곳니가 그의 입술을 와드득 파고들었다.

곧이어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를 바라보는 김용식의 눈빛에도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죄송합니다. 부상자는 저와 박정욱 대장님을 비롯해 총 마흔 두 명입니다.”

김용식은 애써 태연한 척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하지만 입가에 흘러내린 피처럼, 그의 목소리에선 억누르지 못한 원한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디선가 풍겨온 비릿한 피 냄새가 나의 머릿속을 어찔하게 만들었다.

“아니, 박정욱 선배님이 금랑 놈들 따위에게 당하셨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독입니다. 대장님께선 새로운 종류의 독에 당해, 의식을 잃은 상태십니다.”

비로소 김용식이 설악 공격대원답지 않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가 이해되었다.

총 여든 명의 인원 중 여덟 명을 제외한 90%가 당해버린 상황인 데다, 정신적 지주격인 박정욱마저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는 상태라니….

비열한 기습으로 인해,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해도 피해가 과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거 좋지 않은 예감이 맞아떨어졌군. 그래…. 헌데, 금랑이 이 정도로 강했었던가?

-콰앙!

기억을 더듬어 금랑의 전력을 분석해보고 있으려니, 별안간 바깥에서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곧이어 병장기들이 맞부딪히며 내는 전장의 소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살짝 열린 텐트의 문 사이로 바람을 타고 비릿한 쇠붙이 냄새가 코를 자극해왔다.

슬쩍슬쩍 비치는 외부의 풍경 속에서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설용호 산군님….”

젖어들기 시작한 전장의 광기 속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가냘픈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김용식의 두 눈엔 짙은 슬픔과 지독한 원한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밑에서부터 썽둥 잘려나가 있었다.

“부탁합니다. 제발. 제발 저희 설악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쿠우웅!

애써 억눌렀던 감정이 다시 폭발했다.

쥐어짜듯 절규를 토해낸 김용식은 온 힘을 다해 책상에 머리를 내려찍었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참나무 원목 책상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원목의 나이테가 잘 살아있는 책상 위로 그의 원한을 담은 새빨간 피가 어룽어룽 번져나갔다.

“…좋습니다. 놈들이 감히 누굴 건드렸는지. 주제를 알게 해주는 것도 좋겠죠.”

김용식의 결연한 태도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내 목소리에 광폭한 광기가 머금어졌다.

비쭉 올라간 입가에서 드러난 송곳니에서 피비린내가 진득한 살기를 흩뿌렸다.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두 눈에서 폭력을 갈구하는 잔혹한 욕망이 번들거렸다.

***

텐트 내부에서 느껴졌던 전장의 광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화로웠던 게이트 관리소는 이제 폭력과 광기 속에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너진 장벽을 타고 넘어온 금랑 길드원들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광포하게 게이트 관리소 곳곳을 누비며, 피와 살육을 탐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살기가 깃든 금랑 공격대원들의 무기가 광포하게 춤추며 주홍빛 저녁노을을 반사할 때마다.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걸쭉한 욕설이 이어졌다.

“크, 크으윽! 빌어먹을 늑대 새끼들 같으니! 쪽수가 너무 많아!”

금랑 길드원들의 공격을 저지 중인 설악 공격대원들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분투했다.

용맹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설악 공격대의 실력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금랑 길드원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제, 젠장! 크으읏!”

선두에서 유난히 용맹하게 분투하던 설악 공격대원이 위기에 처했다.

사방에서 쇄도해오는 칼날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던 그의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털썩 주저앉은 그는 다가올 최후를 직감한 모양인지, 악에 받친 표정으로 무기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쐐애애액!

절망스러운 파공음과 함께, 용맹한 설악 공격대원에게 싸늘한 칼날이 엄습해 온 그 순간!

-까드드득!

외골격을 전개하며 달려온 나는 설악 공격대원을 향한 공격을 대신 받아내었다.

소름 끼치는 빛이 번쩍이는 시퍼런 칼날이 금빛으로 찬란하게 번쩍이는 외골격에 가로막혔다.

금속이 거칠게 갈려 나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꽃이 후두둑 튀었다.

“서, 설용호 산군님?”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설악 공격대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희미한 미소로 화답해준 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금랑 길드원들에게도 정성이 듬뿍 담긴 답변을 들려줬다.

-퍼석! 퍼석! 퍼석! 퍼석!

시커먼 어둠에 휘감긴 어둠달의 창날이 순식간에 사방을 어둑하니 물들였다.

곧이어 썩은 호박이 박살나는 듯 기분 나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머리에 뻐끔 구멍이 뚫린 금랑 공격대원들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

동료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피 냄새를 맡은 것일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희생양을 찾던 금랑 길드원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살기를 머금어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들이 내게 집중되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이리떼처럼, 그 들들은 내 쪽을 향해 홀린 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또 왜 맛이 가 있어?”

나와 마주한 금랑 길드원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었다.

썩은 동태눈처럼 공허하게 빛을 잃어버린 눈동자에선 광기와 피 냄새만이 물씬 풍겼다.

적의와 악의를 품고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입에선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늑대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아예 인간이길 포기하고 짐승의 세계로 넘어가기라도 한 건가?

“크워어어억!”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 짓는 사이, 나를 둘러싼 금랑 길드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뛰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확실히 인간과는 거리를 둔 것으로 보였다.

무기를 다루는 방법조차 까먹은 모양인지, 그들은 마치 이족보행형 몬스터가 발톱을 휘두르듯 힘에 취해 틀어쥔 무기들을 휘둘러댔다.

짐승을 연상케 하는 야성적인 움직임에 걸맞게 그들의 공격은 놀라울 정도로 매섭고 재빨랐다.

-까드득! 깡! 까드득!

하지만 아무리 빨라 봐야. 외골격 앞에선 단순한 공격 따윈 무용지물!

금랑 길드원들의 공격이 내 몸 위로 쏟아질 때마다, 찬란한 황금빛이 번뜩였다.

그들의 공격은 모조리 반투명한 황금빛 의복에 가로막혀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쿠웍! 쿠워어어억!”

외골격에 공격이 가로막힌 금랑 길드원들의 얼굴에 분노가 깃들었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들은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광포하게 무기를 휘둘러 댔다.

-쿠르륵, 쿠르르륵!

검은 심장이 증폭시킨 시커먼 내력이 먹구름처럼 외골격 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찬란한 금빛을 발하던 외골격이 순식간에 새카만 어둠으로 물들었다.

“쿠웍?”

이변을 감지한 금랑 길드원들이 눈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빠앙!”

나는 그들을 향해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겨누며, 입으로 폭발음을 흉내 냈다.

동시에 외골격을 감싼 시커먼 기운이 격렬하게 들끓었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외골격의 표면에 깃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순간, 시커먼 암흑이 사방을 어둡게 수놓았다.

외골격에서 풀려나온 시커먼 용 한 마리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며 광포하게 날뛰었다.

갑자기 찾아온 때 아닌 폭력에 노출당한 대지가 웅웅 흔들리며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금랑 길드원들과 무너진 방벽의 잔해들이 마치 지우개로 지워지기라도 한 듯 세상에서 증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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