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뭐, 뭐야. 어째서 여기에 게이트 관리소가…?”
멍하니 벌려진 입에서 얼빠진 혼잣말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탁 트인 평야 위엔 존재할 리가 없는 건축물, 게이트 관리소가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제대로 된 게이트 관리소라기보단, 강화 플라스틱제 장벽과 텐트를 이용한 ’임시 ‘관리소에 가까운 형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이 게이트 내부에 있을 리가 없는 건축물이라는 사실 자체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환영인가? 그래, 환영이겠지? 아하하. 아하하하.”
흡사 방언 터지듯 내 입에서 실없이 뇌까리는 헛소리와 헛웃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자세히 보니, 시커먼 방벽 위엔 태백 길드 고유의 로고가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산을 짓밟고 포효하는 호랑이의 용맹스러운 자태,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긴 해도 그것은 강태백의 취향이 확실하게 반영된 태백 길드 고유의 로고였다.
“폐허가 된 신전에 이어, 이번엔 폐허가 된 게이트 관리소인가…?”
방벽을 찬찬히 살펴본 뒤, 피식 웃은 나는 이것 또한 나슈리크가 만든 환영이라 결론 내렸다.
그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폐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강화 플라스틱제 방벽엔 전투로 인한 상흔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의 억센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 육중한 덩치의 무언가가 강하게 들이받은 흔적에 원소계 마법에 공격당해 그을린 흔적까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어떤 태백의 게이트 관리소도 이 정도 흔적이 남을 만큼의 전투를 치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파츠츠츠.
환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혼란에 빠졌던 머릿속이 약간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제야 화안금정에 생각이 미친 나는, 뒤늦게나마 두 눈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시야 속에서 눈앞의 구조물 위로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실』
“…!”
…뭐? 환영이 아니라고?!
먼젓번에 나슈리크를 바라보았을 때처럼, 모호한 의문부호가 떠오른 것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새카만 플라스틱제 방벽 위로 떠오른 단어는 명확히 ‘진실’이라는 두 글자였다.
둔중한 충격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덕분에 머릿속에 찾아왔던 안정이 와장창 부서졌다.
멍하니 벌어졌던 입이 이제는 당장에라도 찢어져 버릴 듯 쩍 벌어졌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이게 진짜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내 상식선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나슈리크의 ’안배 ‘탓에 이곳 남이섬 게이트에 진입한 인물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때문에, 나는 이곳에 다다르기는 동안까지 다른 이들과 마주치긴커녕, 인기척조차 느껴본 적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거기에, 바로 위층에서 떨어져 내린 지도 체감상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많은 전투의 흔적을 치러낸 게이트 관리소가 게이트 내부에 실재하고 있다고?
“정지! 정지! 정…. 서, 설용호 산군님?!”
귀신에 홀린 듯 검문소에 가까이 다가서자, 어디선가 군기가 바짝 잡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검문소의 초소에서 경계하듯 무기를 치켜든 헌터 둘이 뛰어나와 내 앞을 막아섰다.
왜인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막아선 그들은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당황과 경악이 동시에 어려 있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뭡니까? 댁들이 도대체 왜 게이트 내부에….”
멍하니 내 앞을 막아선 이들의 얼굴을 확인한 내 얼굴에도 그들의 경악이 전염되었다.
일전에 면식이 있었던 이들이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남이섬 게이트 관리소에 주둔 중이었던 설악 공격대원들이었다.
…이건 또 뭐지? 얘네들이 도대체 왜 여기서 튀어나와!
“…게, 게이트 내부라니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내 의문 섞인 얼떨떨한 질문을 받은 공격대원들의 대답 또한 똑같은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한 그들은 대단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곳은…?”
“나, 남이섬입니다. 어, 얼마 전까지 이곳에 머무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공격대원들의 대답이 귓가를 왱왱 울린 순간, 사고가 딱 정지되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격렬하게 뛰던 심장이 꽝꽝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남이섬 게이트 관리소라고? 내가 외부에 나왔다 그 말이야?
***
“…….”
여전히 머릿속의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지하 8층에서 나슈리크와 대화가 끝난 순간, 모든 것이 모래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모래로 변해버린 황량한 풍경 속에서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과 함께, 때아닌 추락이 시작되었지….
하지만 일련의 소란 속에서도 게이트에 드나들 때 특유의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빛무리도, 몸을 압박해오는 특유의 압박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설마하니 게이트의 ‘밖’으로 나와버렸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여, 여깁니다. 산군님.”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공격대원들은 나를 전초기지 중앙의 텐트로 안내해주었다.
마치 군부대의 상황실처럼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진 텐트 내부의 중앙에 자리 잡은 책상엔 과하게 사내다운 인상의 대머리 사내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
인기척을 감지한 사내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의 두 눈이 금세 휘둥그레졌다. 굳게 닫혀있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양반은 또 왜 여기서 나와?
“새로운 담당자가 누군가 했더니, 꽤 반가운 얼굴이네요?”
대머리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 복잡했던 기분이 조금은 유쾌해졌다.
그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 내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깃들었다.
대머리 사내, 일전의 고슴도치 섬에서 안면을 익혔던 인물이었다.
그땐 선착장 경비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이곳 남이섬에 파견된 모양이었다.
이름이…. 김용식이었던가?
“서, 설용호 산군님? 정말 설용호 산군님이십니까?”
장난삼아 건넨 인사에 대한 김용식의 반응 역시, 조금 전 설악 공격대원들이 보여준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눈에 깃든 감정은 나와의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과거에서 비롯된 공포가 아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크게 부릅뜬 김용식의 눈엔 당황 어린 경악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뭐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어째서 이따위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군.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지닌 산군이 저 말고 또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뭐라고 하셨더라. 다음엔 꼭 알아보겠다고 하시지 않았었나?”
“맙소사. 이 다정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재수 없는 목소리…. 설용호 산군님 본인이 맞으신 것 같군요.”
뭐하게 뭐 없는 목소리…?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김용식에게 장난을 슬쩍 섞어 농담하듯 답하자.
어쩐지 평소의 감정이 흘러나온 듯한 말과 함께 김용식의 입에서 안도감을 담은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들 도대체 무슨 반응인지 모르겠네요. 이거 죽은 사람 대하는 것도 아니고.”
김용식을 포함한 설악 공격대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직설적으로 말해, 귀신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의아한 의문과 함께,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미간에 조금씩 골이 파이기 시작했다.
“…모르셨습니까? 산군님께서 게이트 속에서 실종되신지 오늘로 벌써 일주일째였습니다.”
“일주일…? 아니, 그보다 실종이라니? 멀쩡히 게이트 공략 중이었는데요? 실종자 취급은 또 뭐랍니까?”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물론, 지금의 상식으로는 게이트에서 일주일이나 연락이 두절 되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신변의 위험을 의미하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아니고 나는 명색이 태백의 정점에 선 일곱 산군 중 하나! 산군쯤 되는 강자라면 게이트 내부에서 일주일 동안 소식이 끊긴 것쯤은 그리 큰일이 아닐 텐데. 그걸 실종이라 정의한다고?
“산군님께서 들어가신 뒤, 정확히 이틀 후에 게이트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게이트가…. 사라져요?”
김용식의 답변에 이번에 내 입에서 벙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들어간 지 이틀 만에 게이트가 사라져 버렸다고?
“예, 다들 처음엔 미지의 게이트를 그토록 빨리 클리어한 산군님을 칭송하며. 산군님의 귀환을 기다렸습니다만…. 산군님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죠.”
게이트가 사라졌다라…. 그래서 날 귀신 보듯 바라본 게로군.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게이트 우두머리가 토벌되는 것과 함께, 놈과 연결되었던 게이트는 급속히 붕괴하기 시작한다.
물론 탈출할 시간이야 뜻밖에 넉넉히 주어지긴 하지만, 그곳에서 시간 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시공의 미아가 되어 영원히 이쪽 세계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리지….
“거 참, 이상한 게이트네요. 클리어하지도 못했는데. 밖으로 추방되다니….”
나조차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데다, 나슈리크와의 안배를 김용식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적당한 이유를 꾸며내 둘러대었다.
게다가, 사실 추방당했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완료 보상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얼떨결에 외부로 나와버렸으니 말이지.
“아니, 산군님께서 추방당하셨다뇨? 얼마나 까다로운 게이트길래. 산군님을 다 추방한답니까?”
게이트에서 ‘추방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용식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게이트 공략 도중, 모종의 이유로 ‘자격을 상실했다.’며 통보받은 이들이 게이트 외부로 ‘추방’당하는 것은 뜻밖에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공략 중인 헌터를 추방시킨 게이트가 클리어 되지 않은 상태로 사라져버린 것과 산군쯤 되는 강자가 추방당했다는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찌나 까다롭던지…. 계속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 주변이더군요.”
“세상에…. 아무튼 다행입니다. 산군님께서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크흑.”
장난스레 눈을 찡긋거렸지만, 김용식의 반응은 이번에도 알 수 없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의 눈가에 갑작스레 커다란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애써 눈물을 삼키려던 그는, 끝내 감정을 이기지 못한 모양인지, 엉엉 울며 숫제 통곡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 양반 나랑 언제부터 그렇게까지 각별한 사이였어?
“무,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네요. 물론, 안도(?)하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다 큰 성인, 그것도 험상궂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얼굴의 소유자가 아이처럼 울어대는 광경은 도저히 눈 뜨고 보긴 힘든 광경이었다.
아예 목놓아 울어대는 김용식의 급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나는 혼이 쏙 빠진 목소리로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큭. 크흐흑! 훌쩍! 산군님께서 귀환하셨으니. 이제 서, 설악 식구들의 원한도….”
간신히 진정하려던 김용식의 감정이 다시 북받쳤다.
설악의 ‘원한 ‘을 잠시 언급한 그는, 또다시 꺽꺽대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게 또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