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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86화 (86/309)

제86화

외골격.

마나, 내력, 차크라, 영력, 암력 등등 헌터의 특성 트리에서 다루는 에너지를 기초로 하여, 그것을 토대로 강인한 방어력과 다양한 부가능력을 지닌 방어막을 형성하는 상위 헌터 고유의 스킬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능력과 다양한 형태를 지닌 외골격들을 봐왔지만, 공통으로 통용되는 상식 중 하나는 바로, 외골격은 한 사람당 하나씩만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중 외골격이라니….”

하지만 그 ‘상식’ 중 하나가 나의 존재로 인해 박살 나 버렸다.

놀랍게도 오랫동안 포인트 숍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왔던 『장식용 외골격』은 기존의 외골격과 아예 별개로 작동하는 특이한 메커니즘을 지닌 녀석이었다.

-차르르륵!

물론, 알려진 대로 장식용 외골격은 말 그대로 ‘장식용’이라 이중 외골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외엔 어떠한 장점도 없었다.

새빨간 연미복 형태로 덧씌워진 장식용 외골격엔 어떠한 방호능력도 없었고, 힘을 증폭해준다든가, 특정 감각이 강화된다든가 하는 부가 효과 역시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식용 외골격을 만든 놈조차 그런 활용법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을게다.]

조금 전 장식용 외골격으로 암룡출동을 사용한 것에서 알 수 있었듯. 아무 능력이 없는 외골격에도 내력을 주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츠츠츠츠

어둠달의 검은 심장이 울컥거리며 내력을 뿜어내자, 새빨간 연미복 형태의 외골격이 검게 물들어갔다.

내력이 주입된 장식용 외골격에서 새카만 어둠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슬쩍 어둠달을 들어 날카로운 창날로 시커멓게 물든 장식용 외골격의 외피를 긁었다.

-카가가각!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시커먼 어둠이 마치 불똥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퉁 외골격과 비교해선 방어력 면에서 손색이 좀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지간한 몬스터의 발톱쯤은 거뜬히 막아낼 수 있는 방어력이었다.

“활용법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궁무진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긴 하네요.”

무궁무진하게 떠오르는 이중 외골격의 사용법에 가슴이 벅차올라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력을 주입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갑옷 부럽지 않은 방어력이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조커 카드로 활용할 수 있겠어.

[…이것, 역시 그가 안배해둔 것이겠군.]

하지만 그렇게 벅차올랐던 기분은 위철용의 조용한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래, 여기서 얻은 모든 것들은 도저히 ‘정상적인’ 루트로 얻었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니까.

도대체, 누가 뭘 위해서 내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지 모르겠군….

“그러게요. 생각해보면 장식용 외골격을 구입하도록 안배해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 것까지 생각해서 갈나르를 그런 식으로 뒤틀어 놨을 줄이야….”

나태상과 접촉하고 난 뒤로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의 연속이었다.

따지고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게 해가 된 것은 그동안 하나도 없었지만, 그 내게 ‘해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견딜 수 없게 수상쩍었다.

하다못해 재생 괴인으로 재탄생한 갈나르조차, 어째 내게 이 이중 외골격과 파천 복룡창의 암룡출동을 응용하도록 배려해 주려는 호의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속 시원히 면상이나 봤으면 좋겠구나.]

“…뭐. 다음 층이 마지막이니 슬슬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위철용의 탄식 어린 한숨에 나는 지하 8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와 도저히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존재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여전히 어둡고 수상쩍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

“…세상에.”

지하 8층에 들어선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계단을 나오자마자 밝고 따스한 빛이 눈꺼풀을 간질였다.

하늘에 둥실 떠오른 인공 태양이 마치 대낮과 같은 수준의 밝기로 8층 전체를 내리쬐고 있었다.

“여긴 아예 구조가 다른데요?”

지나온 다른 층들은 그나마 최소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원형과 유사하기라도 하거나, 아예 ㄷ회귀 전의 다른 층에서 따온 형식으로 꾸며져 있었다면, 이곳은 아예 구조부터서가 달랐다.

하늘에 둥실 떠올라 사방을 밝혀주는 인공 태양 밑으로는 끝도 없이 이어진 보랏빛 코스모스 밭이 이어져 있었고, 그 위로 부서진 신전의 폐허가 하나둘씩 듬성듬성 위치해 있었다.

튜토리얼 타워면 모를까 유적형 게이트에서 이런 구조는 아예 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

[구조뿐만 아니라, 아예 공간을 자체를 뒤틀어 놓은 게다. 도대체 이곳은 뭐 하는 곳이기에….]

흔한 풍경이 아닌 모양인지, 위철용마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비췻빛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강한 흥미와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귀쟁이 놈들 유적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니? 이거 흥미로운 발견이로군요!』

「축하합니다! 가면을 쓴 족제비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이상해. 엘프들 문명이 공간을 다룰 정도로 발달하진 않았을 텐데….』

성좌들의 반응 역시 심상치 않았다.

그들에게도 이곳의 풍경은 각별한 흥미를 제공하는 모양인지, 채팅창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후원 메시지는 빠짐없이 부서진 신전과 코스모스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성좌들이 그의 개입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지 아마? 도대체 이건….

[혹시 이곳에서 시작의 탑과 유사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느냐? 그러니까…. 네놈들이 튜토리얼 타워니 뭐시깽이니 하는 물건 말이다.]

성좌들의 새삼스러운 반응과 나를 이곳으로 이끈 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주변을 둘러보던 위철용이 대뜸 내게 튜토리얼 타워와 이곳의 상관관계에 대해 물어왔다.

“튜토리얼 타워요? 그러고 보니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튜토리얼 타워라…. 그렇게 듣고 보니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

주변을 둘러본 나는 위철용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지적대로 확실히 이곳 지하 8층의 전체적인 인상은 튜토리얼 타워의 그것들과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졌다.

정확하게는 넓은 개활지인 2층을 베이스로 삼고 3층의 부서진 신전을 적절히 섞어 놓은 모양새라고 할까?

[그렇지? 해괴한 일이로다. 시작의 탑은 인과율이 지배하는 곳이기에 성좌들조차 마음대로 간섭할 수 없는 곳이거늘….]

“어라? 튜토리얼 타워가 성좌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요?”

튜토리얼 타워는 평범한 사람을 헌터로 거듭나게 하는 곳이자, 초짜 헌터들이 처음으로 성좌들과 대면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헌터들은 성좌들의 존재를 알게 되며, 그들의 관심을 통해 후원을 받고 성장을 시작하는 곳인데, 그런 튜토리얼 타워가 성좌들이 ‘마음대로’ 간섭할 수 없는 곳이라니?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아무리 방귀 좀 뀐다는 성좌라고 할지언정, 시작의 탑에서만큼은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고작해야 새롭게 거듭날 사냥꾼들의 삶을 무력하게 간접적으로나마 관음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지.]

“아하…. 그래서 4층, 5층에서도 눈알만 보내놓은 거로군요.”

[그렇지, 인과율이라는 놈 덕분에 직접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이니라. 네놈도 봤다시피 매개체를 보내 새로운 얼굴들을 확인해보는 것이 전부일 뿐이지.]

눈으로 끝없이 늘어선 보랏빛 코스모스 밭을 더듬던 위철용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잠시 추억의 물결 속에 휩쓸린 듯, 그의 눈은 과거를 보고 있었다.

[아무튼. 이곳에선 어째선지 그 빌어먹을 장소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느니라. 네놈 채널창의 죽돌이 성좌들도 이곳이 수상쩍다는 것쯤은 바로 알 수 있을 터인데….]

말을 줄인 위철용의 시선이 한창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채널창으로 향했다.

잠시 성좌들의 반응을 지켜본 그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을 넘어 아예 바위에 낀 이끼처럼 변해버린 그의 낯빛은 불편한 의문과 성좌들에 대한 한심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엘프족이 마력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지 않나. 이 정도 유적은 엘프들 수준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일세.』

「축하합니다! 가면을 쓴 족제비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하긴 귀쟁이 놈들이란, 하는 것 없이 허구헌 날 방에 박혀서 마법 연구만 하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축하합니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엘프 하니까 생각난 건데, 엘프라는 종족은 아름다운 외모가 상징이잖아요? 그럼 우리 설용호 님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축하합니다! 버려진 유적의 인형 술사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엘프? 그 커다란 귀를 보고도 아름답다는 말이 나옵니까? 어디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그도 그럴 것이 성좌들의 반응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 의문을 품었던 성좌들조차 ‘엘프족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며 이해 해버린 상태였다.

그리곤 이곳의 이질적인 풍경에 대한 화두 대신, 나, 설용호와 엘프 중 누가 더 잘생겼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저들의 반응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만, 그리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구나.]

“…….”

위철용과 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지하 8층에 다다르면 뭔가 좀 풀릴 줄 알았는데, 끝없는 심연을 들여보는 느낌이었다.

의문이란 놈은 계속해서 새로운 꼬리를 매단 채로 어두컴컴한 미궁 속으로 숨어들었다.

“우선은…. 계속해서 여길 뒤져 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를테면. 저기 저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건물이라든지요.”

의문을 매달고 어두워지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나는 멀찍이 떨어진 신전을 가리켰다.

세월의 풍파 속에 풍화된 다른 신전과는 달리, 유독 단 한 개의 신전만은 보랏빛 코스모스 밭 위에서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멀리서 봤을 땐 가까워 보였으나, 실제로는 온전한 신전까진 제법 거리가 있었다.

말없이 서로의 머리에 떠오른 의혹과 의문을 곱씹으며 보랏빛 코스모스를 헤치고 한참을 나아간 결과, 마침내 우리는 목표로 했던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거리도 멀더니, 크기도 엄청난데요?”

어두운 보랏빛 코스모스와 대비되는 순백의 신전은 굉장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린 채 암흑을 뿜어내는 입구만 해도, 어지간한 5층 건물쯤은 무리 없이 통째로 쑤욱 들여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거, 입구 앞에 선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이로군.

[흐음. 이건 분명히…. 아니? 이럴 수가! 애송이 이건…!]

거대한 신전의 외관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위철용의 얼굴이 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비췻빛 얼굴이 연둣빛으로 허옇게 질렸다. 입과 눈이 동시에 크게 딱 벌어졌다.

[…….]

“…어르신?”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의 시간이 꽝꽝 얼어붙었다.

하늘거리던 코스모스들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경악한 위철용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엘프와 나의 외모를 비교하는 주제로 소란스러웠던 채널 창 역시 그대로 딱 정지해버렸다.

그렇게 모를 제외한 모든 것의 시간이 정지해버렸다. 얼어붙은 시간 속으로 고요가 내려앉았다.

-쿠궁! 쿵! 쿠궁!

그렇게 얼어 붙어버린 시간 속에서 별안간 육중한 땅 울림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미뤄보건대, 진동의 진원지는 시커먼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는 신전의 내부였다.

“…들어오라는 소리겠지?”

잠시 망설이던 나는, 이내 마음을 굳게 다잡고 신전의 내부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오로지 땅 울림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방향을 잡았다.

-화악!

“크읏!”

땅 울림이 이끄는 대로 신전의 중앙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어둠이 확 사그라들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환한 빛에 어둠에 적응되었던 눈이 어찔해졌다.

“여긴…. 튜토리얼 5층 같네?”

어둠이 걷힌 신전 내부는 마치 특성 트리를 결정했던 튜토리얼 타워 5층을 몇 백 배로 확대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천장엔 까마득한 숫자의 별자리가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돔을 지지하는 수많은 기둥 하나하나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튜토리얼 타워에서 특성 트리를 선택할 때 본 것과 같은 광경이었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별자리는 모두 빛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곳은 도대체….”

『영락해버린 성좌들의 안식처지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혼잣말이 새어 나온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옆에서 답이 들려왔다.

“누구냐!”

화들짝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어둠달을 빼 든 채, 경계하듯 소리가 들려온 방향 반대편으로 몸을 날려 전투태세를 취했다.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동상?”

그렇게 전투태세를 취한 채로 경계를 서고 있으려니, 다시 한 번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끼긱 소리를 내며 동상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키와 엇비슷한 크기의 구릿빛 동상은 전체적으로 헐벗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의 움직임은 마치 고장 난 마리오네트처럼 부자연스러웠고, 곳곳의 칠이 벗겨져 있어 형용할 수 없이 기괴한 인상을 주었다.

『반갑습니다. 인과율의 이방인이여. 저는 나슈리크. 오래도록 당신을 기다려온 세월 속의 망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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