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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81화 (81/309)

제81화

쓰러진 엘븐 가디언에게 다가간 나는, 망설임 없이 놈의 입안에 쑤욱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손끝에 단단한 무엇인가가 닿자마자 힘을 주어 그것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

요령만 알면 부드럽게 빠지는 머리 중앙의 마력 핵과는 달리, 입안의 보석은 쉽게 분리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저항에 살짝 이맛살을 찌푸린 나는 보석을 단단히 틀어쥔 손가락에 내력을 주입했다.

등에 매달린 검은 심장이 조용히 맥동하며 무서운 힘을 손가락에 불어넣었다.

-뿌드드득!

내력이 주입된 손가락이 괴력을 발휘했다.

마치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를 통째로 뽑아내는 듯 시원하면서도 우렁찬 소리와 함께, 엘븐 가디언의 입안에서 큼지막한 보석 하나가 뽑혀 나왔다.

「…….」

『…….』

굵직한 전선이 나무뿌리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푸른빛 보석이 내 손에 들려지자, 내기 관련해서 시끄럽게 달아올랐던 채널 창에 침묵이 찾아왔다. 정신없이 올라오던 성좌들의 후원 메시지와 감정표현이 일순 뚝 멎었다.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으하하하하! 역시! 보고 계셨다니까! 정말이지 오늘은 제게 있어 최고의 날이로군요. 으하하하핫!』

얼어붙은 채널 창의 침묵을 깬 것은 역시, 내기의 장본인인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었다.

내기에서 승리한 그는 후원 메시지를 통해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채널 창이 메시지에 불과했지만, 어쩐지 내 귀에 호쾌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축하합니다! 가면을 쓴 족제비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이쁜이가 하찮은 조언 따위에 관심을 보이다니…. 가, 가죽은 좀 힘들고 대신 다, 다른 걸 드리면 안될까요?』

아마 그쪽은 자신의 가죽을 거셨었지? 미안하게 됐어.

가면을 쓴 족제비의 울음 섞인 반응을 시작으로 채널 창이 폭발하듯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족제비 양반에겐 좀 미안하게 됐지만, 내 선택은 당연했다.

생각지도 못한 전리품을 챙길 기회도 기회지만, 이렇게 그들의 ‘조언’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축하합니다! 숲 속의 조각가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낙장불입! 그쪽 분에겐 제가 솜씨 좋은 무두장이를 소개해 드리죠. 그것도 그렇지만…. 이거 상당히 흥미롭군요.』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한 달, 하계 기준으로 한 달 만일세. 그동안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유혹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거늘….』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으하하하! 역시! 이 몸의 마음에 쏙 들어! 유혹 따위엔 관심이 없어도 조언엔 귀를 기울인다 이거로군! 술은 아깝지만 쓸 만한 정보를 얻었어!』

「축하합니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후후훗. 우둔한 양 떼를 계도하는 것이 양치기의 일이랍니다. 이 정도면 기꺼이 강아지 한 마리쯤은 내어드릴 수 있죠.』

역시….

내 의도대로 나의 ‘관심’을 끌 방법을 눈치 챈 성좌들은 그야말로 솟구치는 활화산처럼 격렬하면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해왔고, 또 나의 관심에 그토록 목말라하던 성좌들이었기에 그들은 나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는 성좌들의 모습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나의 관심을 갈구하는 성좌들을 조언 셔틀로 부려 먹으려는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예상치 못한 문제와 직면해 버렸다.

내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이 몸의 조언이다. 새겨듣도록! 어…. 그래! 음식의 간이 맞지 않으면 소금을 뿌리면 그만이다! 짜면! 물을 마시면 그만이고!』

「축하합니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무식하시긴, 진지하게 조언해드리자면, 지금 들고 계신 육포는 필요 이상으로 소금이 과하게 들어있답니다. 포인트 상점에서 음식다운 음식을 사 드세요.』

…돌겠군.

문제는 다름 아닌 성좌들이 조언이랍시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해댄다는 것이었다.

사사건건 조언을 가장한 훈수를 해대는 성좌들 탓에 먹는 것조차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챙겨온 육포를 씹었을 뿐인데, 바로 앞에 불그스름한 홀로그램 창이 떡 하니 떠오르더니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정신없이 주르륵 토해냈다.

육포의 영양성분표부터 시작해서, 육포 조리법. 올바른 취식법, 추천 재료 등등 계속해서 올라오는 후원 메시지의 향연에 정신이 다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뭘 그리 하나하나 전부 다 읽고 있는 게냐? 어차피 전부 다 쓸모없는 흰소리에 불과하거늘….]

육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채널 창이 메시지에 심취한 내 모습에 위철용이 혀를 찼다.

물론 위철용의 말처럼 쏟아지는 메시지를 통째로 무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축하합니다! 메마른 사막의 방랑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포인트 상점에서 판매하는 음식 중 ‘황천 야수 모둠 구이’에는 최초 1회 섭취에 한해 영구적으로 힘을 2 올려주는 효과가 있답니다. 능력치 한도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2포인트가 올라가죠!』

스팸 메일처럼 그득그득 차오르는 후원 메시지를 단순히 무시하고 있자니, 진흙 속에 진주가 숨어있듯 헛소리의 향연 중에서도 항상 유용한 정보가 계속 숨어있었으니 말이지….

“후우. 도움이 되는 정보는 계속 올라오거든요. 포인트 숍 오픈. 구매 황천 야수 모둠 구이”

『감사합니다. 언제나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어서 뜨끈할 때 드십쇼!』

한숨을 토해낸 나는 후원 메시지의 조언대로 포인트 숍에서 황천 야수 모둠 구이를 구입했다.

포인트 숍 관리인의 후덕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 눈앞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모둠 구이 한 접시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었다.

-덥석.

씹고 있던 육포를 집어던진 뒤, 나는 먹음직스러운 고기 한 덩어리를 손으로 잡고 통째로 한입 크게 깨물었다.

알싸한 향을 풍기면서도 짭조름한 고깃덩어리가 딱딱한 육포에 혹사당하던 미각을 기분 좋게 자극했다.

푸짐한 고기 한 접시가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건강한 요리를 섭취하셨습니다! 숨겨진 효과로 힘이 영구적으로 『2』 상승합니다.」

맛도 괜찮았지만, 조언대로 효과도 상당히 흡족스러웠다.

단순히 음식을 섭취했을 뿐인데 힘 능력치가 상승할 줄은 미처 몰랐군.

포인트 숍에서 음식을 판매한다는 것은 회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음식을 사 먹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포인트 숍 음식에 능력치 상승효과가 붙어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고 말이지….

「축하합니다! 메마른 사막의 방랑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우오옷! 어떻습니까. 맛이 꽤 괜찮죠? 다양한 종족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맛으로 만들었답니다.』

「축하합니다! 호숫가의 대장장이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이것 보쇼! 여기 자기가 포인트 상점에 올린 물건 은근슬쩍 광고하는 양반이 보이는데?』

메마른 사막의 방랑자의 자신만만한 메시지에 성좌 한 명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포인트 숍의 일부 품목들은 성좌들이 직접 제작해서 올리는 형식인가 보군.

이것도 위철용이 말했던 성좌들의 소소한 소일거리 중 하나인가…?

「축하합니다! 호숫가의 대장장이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관리자 양반. 거 기껏 관리자 권한 구입했으면 놀지 말고 일 좀 합시다. 사사로운 광고 금지하기로 하지 않았소.』

생각지도 않았던 성좌와 포인트 숍에 관한 정보를 위철용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불만을 표했던 성좌가 다시 한 번 후원 메시지로 자신의 불편한 심정을 ‘관리자’에게 털어놓았다.

잠깐만, 관리자…? 내 채널에 관리자가 있었어?

「축하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어머나. 죄송해라. 우리 설용호 님 식사하시는 모습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지 뭐에요』

댁이었어?

놀랍게도 관리자라고 불린 인물은 튜토리얼에서부터 나를 지켜봐 온 성좌 중 한 명이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라니. 그전에도 극성맞게 후원해오던 성좌이긴 했는데 관리자는 또 뭐야.

“저, 어르신. 관리자라는 게 무엇인지….”

[…관리자? 맙소사. 예전부터 독특한 계집이긴 했다만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로군.]

미처 관리자에 대해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위철용은 해당 메시지를 이미 읽은 상태였다.

‘관리자’라는 단어를 언급한 위철용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표정이 아연하게 변했다.

“관리자가 대단한 건가요? 아니, 애초에 제 채널인데 거기에 성좌가 관리자로 있을 수 있어요?”

관리자. 회귀 전에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용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채널 창에서 성좌들끼리 관리자의 갑질 문제에 대해 입씨름 하는 사이, 나는 그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위철용에게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물었다.

[대단한 거냐고? 대단한 거라면 대단한 게지. 그야말로 대단한 포인트 낭비라고 할 수 있느니라. 간단히 말해주자면 필멸자를 자신의 사도로 삼는데 드는 존재력 포인트가 30만. 필멸자의 채널창 관리 권한을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존재력 포인트가 100만이니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내게 답변해준 위철용의 입에서 아득한 수치가 튀어나왔다.

존재력 포인트 100만!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치였다.

회귀 전, 포인트 숍 VIP 상점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었던 『세계 혼의 심장』조차 10만 포인트였다.

역대급으로 성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한세훈조차도 구입할 엄두를 못냈던 물건이 바로 그 세계 혼의 심장이었다. 그것의 10배나 된다니, 도대체 그게 얼마야?

“…그렇게 많은 포인트를 지불해서 뭘 하는 겁니까? 혹시 제 의지에 간섭한다든가.”

그렇게 비싼 포인트를 요구하는 만큼, 관리자 권한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잠식해오기 시작했다.

당장 30만짜리 사도 계약만 해도, 특성 트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유의지가 계약한 성좌에게 종속되는 판인데, 그 세 배짜리라면….

[전혀. 단순히 채널창의 다른 성좌들에게 갑질할 수 있는 것이 관리자 권한의 전부이니라.]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멍청한 표정으로 위철용에게 되물었다.

헌터를 사도로 삼는 것이 30만 포인트나 들어가는데, 그 3배짜리가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성좌들 사이에서도 존재력 포인트를 좀 과하게 보유하고 있는 치들이 있느니라. 저건 그 존재력 포인트를 회수하기 위해 감독관이 만들어둔 것에 불과하지.]

내 표정을 본 위철용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조차도 처음 본 일인지 그의 얼굴엔 굉장히 희귀한 것을 봤다는 황당함이 가득 차 있었다.

「관리자.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메마른 사막 방랑자의 의사소통을 제한시킵니다.」

뭐야 별 권한이 없다며?

별 힘이 없다는 위철용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백합을 손에 쥔 처녀는 성좌 한 명의 의사소통을 제한시켜 버렸다.

채널에서 성좌가 같은 성좌의 의사소통을 제한시킬 수 있다니, 저게 권한이 없는 거라고?

[크흠! 뭐…. 채널 내부의 다른 성좌들의 발언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권한까진 있기야 하다고 들었긴 하다만. 끽해야 하루 남짓 금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라. 때문에, 그저 관리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에 대한 구색 맞추기용 기능이지. 설마하니 저것을 진짜 구입한 종자가 나올 줄은…]

의구심과 의심에 가득 찬 내 눈빛이 위철용을 향하자, 그는 변명하듯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축하합니다! 메마른 사막의 방랑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경고. 의사소통이 제한된 사용자입니다. 『남은 시간 23:59』 후원받은 존재력 포인트가 다시 반환됩니다.」

관리자 손에 의사소통을 제한당한 성좌가 후원을 시도했으나, 경고 메시지와 함께 그의 후원 포인트는 반환되어 버렸다.

위철용의 말대로 의사소통 제한은 24시간 제한이 최대인 것으로 보였다.

“아, 아니 다른 성좌들의 발언을 하루 금지하는 것이 전부인데. 거기에 왜 백만 포인트나 질렀대요?”

[모르겠다. 본존 역시 네놈처럼 저걸 직접 구매한 이를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니라.]

나와 위철용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표정으로 채널 창을 바라보았다.

관리자 완장을 찬 채로 후원 메시지를 통해 으스대는 백합을 손에 쥔 처녀의 모습에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양반이지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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