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80화 (80/309)

제80화

“이게…. 되네?”

성좌들이 후원 메시지를 이용해 알려준 정보는 사실이었다.

입에 드러난 스위치를 가격당한 엘븐 가디언은 ‘기능 재설정. 방어모듈 초기화’라는 기계음과 함께 평범한(?) 개체로 돌아가 버렸다.

마력 핵이 다시 외부로 돌출되는 모습에 내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류. 이상이 감지되어 기능을 정지합니다. 해당 개체 발견 시 속히 관리자에게 연락 바랍니다.』

마력 핵을 다시 돌출시킨 엘븐 가디언의 입에서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기능을 정지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모양인지, 놈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녹색 불길이 이글거리던 눈이 빛을 잃었다. 드러난 마력 핵에서 일렁이던 마력이 약해졌다.

-뿌드득.

그렇게 기능을 정지해버린 엘븐 가디언에게서 핵을 뽑아내는 일이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박아 넣은 창끝을 간단히 비트는 것만으로도 나는 능숙하게 엘븐 가디언에게서 마력 핵을 분리해 내었다.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세상에! 여러분 이거 보십쇼. 그분께서 제 메시지를 읽어주셨나 봅니다! 제 말대로 정확하게 약점을 노리셨어요!』

「축하합니다! 가면을 쓴 족제비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그쪽 메시지를 읽어줬다구요? 흥! 아니에요. 우리 똑똑한 이쁜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라구요!』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골렘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페이즈 2 이후 아닙니까? 지금 시점에 골렘, 그것도 특수개체의 공략법을 아는 필멸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 메시지를 읽으셨던 게 분명하다구요!』

엘븐 가디언에게서 마력 핵을 분리해 낸 순간, 잠깐 숨을 죽였던 채널 창이 다시 한 번 시끄러워졌다.

특히 내게 쓸 만한 조언을 해줬던 성좌,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은 유독 잔뜩 흥분한 상태로 다른 성좌들에게 내가 그의 후원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이보게. 설용호가 우리의 반응에 관심을 끊은 것이 벌써 하계 시간으로 한 달째일세. 그가 이제 와서 새삼스레, 자네의 메시지를 읽었다고 생각하는가? 허허. 아무리 관심이 고파도 선은 넘지 말아야지.』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그래! 고작해야 조언 따위로 설용호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따위 헛쇠를 나불대는 네놈의 혓바닥을 이 도끼로 쪼개 주겠다!』

「축하합니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맞아요. 당신의 알량한 말 한마디 따위에 그가 반응을 보였을 것 같아요? 착각도 유분수지!』

「축하합니다! 과일을 탐하는 짐승이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끼익! 끽! 꺅! 꺅! (성난 고함 소리)』

하지만 그런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의 말에 다른 성좌들은 영 곱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채널 창에 연이어 올라오는 후원 메시지에서 성좌들은 대놓고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을 저격하며, 불신과 진시가 섞인 메시지를 연달아 계속 보냈다.

그들이 어찌나 흥분한 상태로 메시지를 보냈는지, 한 줄 남짓한 문장에서도 그들의 격정 어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게 관심 받았다는 것이 저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할만한 일인가?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으하하하!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하십쇼! 거 알 만한 양반들이 쫌생이 같이 솔직하지 못하긴!』

도대체 채널 창의 성좌들 사이에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겐 일종의 포상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다른 성좌들의 살벌한 반응에도 잔뜩 흥분한 도마뱀 양반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른 성좌들의 불신 섞인 반응을 부러움이라 일축하며 뽐내듯 그들을 도발했다.

[…성좌라는 놈들이 어쩜 저리 천박하게 행동하는지 모르겠군. 저래서야 마치 주인의 애정을 갈구하는 개새끼랑 다를 것이 없지 않으냐.]

채널 창에서 벌어진 촌극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위철용의 한탄 섞인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니 채널 창을 바라보는 그의 입매가 한심하다는 감정을 품고 비릿하게 뒤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끄응…. 하긴 위철용에겐 저들의 주책없는 모습이 그리 유쾌하게 비치진 않겠네. 그도 예전엔 성좌라고 불렸던 존재였으니까.

“저기 어르신 그건 아마도….”

[한세훈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 빠졌던 치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그렇게 위철용을 위로해 주려던 순간, 그의 뒤틀린 입매가 씁쓸함을 품고 마치 불독의 그것처럼 힘없이 축 처졌다.

그렇게 축 쳐져 버린 그의 입에서 복잡한 감정을 품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것도 절대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는 탄식이…

“…한세훈이 여기서 왜 나옵니까.”

싸늘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위철용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눈에서 시린 빛 안광이 서늘함을 품고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저것들의 반응이 그때 한세훈에게 빠졌던 그놈들과 똑같이, 아니 더 심각하게 보여서 그렇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위철용의 목소리엔 북극해의 차가운 바닷바람처럼 한기가 서려 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채널 창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의 비췻빛 눈동자에 격렬한 혐오와 경멸의 감정이 떠올랐다.

물론, 위철용의 눈에 담긴 감정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경멸 어린 시선은 오롯이 채널 창의 성좌들을 향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다만 저것들은 그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구나. 편애와 동경에 눈이 멀어 의무를 저버린 한심한 작자들….]

말끝을 흐린 위철용의 눈에서 스산한 기운이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위철용은 내게 경고하듯 쏘아붙였다.

[저것들의 총애를 받아 이득을 취하는 것까진 본존이 딱히 참견하지 않겠다만. 네놈이 저렇게 천박한 족속들의 말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간….]

“큭.”

내게 경고하는 위철용의 살벌한 시선을 마주하자, 내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것도 평범한 웃음이 아니라 비릿하게 뒤틀린 웃음이었다.

갑자기 터져 나온 비웃음 때문에, 위철용의 경고가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웃어?]

위철용의 눈이 순간적으로 고리 모양으로 휘었다.

휘어진 눈에선 섬짓한 노기와 진득한 살기가 끈적하게 새어 나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지하게 하시는데, 안 웃고 배기겠어요?”

끈끈한 파리지옥처럼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위철용의 살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은 채 그에게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이 안 된다니! 네놈은 지난번에도 그렇게…!]

“지난번이라…. 생각해보세요. 그때도 그렇고 제가 그들에게 멋대로 휘둘린 적이 있기나 합니까?”

중간에 끼어든 내 지적에 분노를 담아내게 소리를 지르던 위철용이 입을 꾹 다물었다.

위철용이 지적하려던 ‘지난번’처럼, 성좌들의 압도적인 후원에 감동하여 촐싹 맞은 행동을 보인다거나 그들이 후원해준 존재력 포인트에 지나치게 의지한 적은 있었을지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내가 성좌들의 뜻대로 ‘휘둘린’ 적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관련 주제로 내게 경고하려던 위철용이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 것도 당연한 일이지.

누가 누구에게 휘둘린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그렇긴 하군. 허나, 명심해야 하느니라. 저 머저리들에게 휘둘….]

“어따. 거 걱정해주시는 건 좋은데. 아직도 절 그렇게 모르세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위철용의 걱정스러운 경고를 중간에 끊어 낸 나는 자신만만하게 씩 웃었다.

뭐, 성좌들의 압도적인 후원에 감동하여 주책없는 모습을 보여준 탓에 위철용이 저리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성좌들에게 잘 보이려 했던 이유도 한세훈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최선의 지원을 뽑아내기 위해서였을 뿐, 다른 뜻은 전혀 없었다.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야…. 당분간은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마.]

“걱정 마시라니까요. 길드도 성좌도 제겐 다 유용한 자원일 뿐이니까.”

다시 한 번 위철용을 안심시킨 나는 채널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아, 아니! 말로 하라니까! 차원 전송으로 과일 집어 던지시는 분은 뭡니까! 으윽! 양 배설물을 정성껏 포장해서 보내신 분은 뭐하자는 거예요! 도끼에 결투장이라 적어 보내신 분은 또 누구고! 질투도 이 정도면 병이라구요!』

…아무래도 조금 전 모두를 도발한 것에 대한 모종의 대가를 치렀나 보군.

잠시 시선을 뗀 동안 채널 창의 상황은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으스대며 다른 성좌들을 도발했었던 도마뱀 양반은 조금 전, 자신이 행했던 도발에 대한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과일을 탐하는 짐승이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키키익! 킥! 마킥! (살의를 품은 고함 소리)』

「축하합니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후훗. 그게 바로 당신의 망언에 대한 제 답변이랍니다. 질투라니. 제가 어째서 그런 유치한 감정을 당신께 느껴야 하는 거죠?』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닥쳐라! 부러운…아니, 간악한 놈! 바다 사나이의 분노를 맛봐라!』

반응으로 미뤄보건대, 성좌들은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에게 강렬한 질투를 느낀 것 같았다.

스스로는 하나같이 부정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격렬하면서도 공격적인 반응은 누가 봐도 질투에 눈이 멀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내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인지 모르겠군.

「축하합니다! 버려진 유적의 인형 술사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설용호의 관심이라니! 누가 그런 걸 부러워한다고! 크으읏!』

아무래도 채널이 복구되었을 때, 그들에게 넙죽 절을 올리지 않았던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았다.

내가 사소하게 반응한 것조차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인데, 그때 넙죽 절이라도 박았다간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겠군.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아무튼. 설용호 님 덕분에 진귀한 경험을 다 해봅니다. 감사의 의미를 담아 팁을 하나 더 드리는 겁니다만, 입안의 보석 또한 값비싼 전리품이니 꼭 챙겨두세요!』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의 조언대로 엘븐 가디언을 공략한 것 외엔 딱히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건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흡족함을 느낀 모양인지 그는 대뜸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곤 그는 내게 입안의 보석이 값비싸다는 정보 하나를 더 알려줬다.

「축하합니다! 가면을 쓴 족제비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흐, 흥! 그쪽 조언을 들은 게 아니라니까! 우리 이쁜이가 댁 말대로 전리품을 챙기면, 그 쪽분에게 제가 가죽을 벗어드리죠.』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크흐흐흐. 이거 재밌겠군. 네놈 말대로 아직 하계는 두 번째 단계일 뿐! 특수 개체 엘븐 가디언의 입안 보석이 마력 핵이라는 건 아직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나도 내기에 동참하겠다. 이 몸은 아끼는 술 한 동이를 걸도록 하지.』

「축하합니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재밌군요. 저는 제가 특별히 아끼는 강아지를 한 마리 드릴게요. 혈통 좋은 놈으로요.』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의 메시지를 본 다른 성좌들 사이에서 묘한 내기가 시작되었다.

성좌들은 내가 그의 조언대로 추가적인 전리품을 챙기는지 아닌지에 대해 아끼는 무언가를 걸었다.

“흐으으음. 반반이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과 열띤 싸움을 했던 이들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성좌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어느덧 채널 창의 성좌 마흔 다섯 명 중, 당사자인 도마뱀 양반을 제외한 마흔 네 명 전원이 내기에 참석한 상태였다. 비율은 정확하게 반반이었다.

그렇다면 내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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