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이게 누구야! 우리 은인 아니신가!”
신지현과 이세영에게 지시를 내린 뒤, 내가 찾은 곳은 박정욱이 주둔 중인 은평구의 게이트 관리소였다.
박정욱은 나를 보자마자 와락, 호쾌한 포옹을 시도해왔다.
시큼한 땀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 지독한 담배 냄새와 중년 아저씨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스멀스멀 내 후각을 공격해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그렇지 않아도, 남자들끼리의 우정 어린 포옹이 달갑지 않은 판에
땀에 절은 중년 아저씨와의 감격적인 포옹만큼은 절대로 사절이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곤, 박정욱의 공격적인 포옹을 슬쩍 피했다.
대신,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 허공을 가른 그의 손을 공손하게 붙잡아, 악수를 청했다.
나나 박정욱이나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초인이니만큼, 일방적이면서도 격렬한 포옹시도가 악수로 이어지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크흠. 미안하네, 너무 반갑다보니….”
순간적으로 반가움을 이기지 못해, 충동적으로 나를 껴안으려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박정욱은 고지식하긴 해도 상식이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악수를 끝마친 박정욱은 코를 씰룩거리며 제 몸의 냄새를 맡더니, 이내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닙니다. 선배님께서도 많이 바쁘셨겠죠.”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나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래, 많이 바빴지. 아주 바빴고 말고.”
내 시선이 주변의 참상으로 향하자, 박정욱의 안색이 빠른 속도로 어둡게 변했다.
…어쩐지 그의 몸에서 풍기던 피 냄새와 땀 냄새가 심상치 않더라니,
지금 박정욱이 주둔중인 은평구 게이트는 사실, 오행 길드 산하의 풍월 공격대가 관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내 시선이 닿은 게이트 관리소 곳곳엔 일방적인 학살의 흔적들이 노골적일만, 날것 그대로 잔혹하게 남아 있었다.
오행 길드의 풍월 공격대 역시,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유한 곳이었지만, 아무래도 박정욱이 이끄는 설악 공격대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박정욱이 이끄는 설악 공격대의 전력이 전력이니만큼, 설악과 풍월의 충돌은 압도적인 학살극으로 끝을 맺었던 것이 분명했다.
한때, 풍월 공격대라고 불렸던 인물들은 모조리 시체가 되어, 구석에 안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정말이지…. 그야말로 우직하기가 마소에 비견될 만큼 완고한 인물이로구나.]
‘상부의 지시라면, 제 목숨도 초개같이 버렸던 인물이었으니까요.’
산군 회의에선 유영화의 복수에 유이하게 반대를 표했던 인물이 바로 박정욱이지만.
전면전이 결정 난 지금. 원리원칙에 충실한 성격답게 그는 상부의 지시대로 오행 길드를 공격해 한바탕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뒤였다.
“오행과의 전면전이 그리 달갑지는 않네만, 이미 결정된 사항이 아닌가. 길드의 녹을 먹는 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박정욱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상부의 지시라지만, 몬스터 대신 인간들을 상대로 살육을 벌였다는 사실이 그에게 괴롭게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애초에, 평생 담배 따윈 입에도 대지 않았던, 박정욱의 몸에서 지독한 담배 냄새가 날 정도라니.
“…유영화의 복수에 반대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이미 상부로부터 지시가 내려온 뒤라네. 내게 남은 일은 그저….”
말끝을 흐린 박정욱이 착잡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척 봐도 독해보이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그에게선, 흩날리는 담배 연기처럼 애처로울 정도로 허무한 감정이 엿보였다.
“…태백의 검이 되어, 오행을 멸하는 것뿐일세.”
박정욱이 피운 담배 연기는 담배의 생김새처럼 굉장히 독했다.
그리고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선, 담배 연기만큼 독한 슬픔이 느껴졌다.
하기야. 고슴도치 섬 게이트 사건 때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했을 테니….
비록, 나의 활약으로 인해. 뒤늦게나마 오해를 풀긴 했었지만….
아니, 아무리 사교도를 베었다고 한들,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가 받은 충격은 그리 쉬이 잊혀질만 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설악 공격대가 외진 춘천으로 향했던 것도, 길드 간의 분쟁에 휘말려, 인간에게 무기를 겨누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였다.
그랬던 그들이, 아니, 그랬던 박정욱이.
고슴도치 섬 게이트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상부의 지시에 따라 오행 길드의 풍월 공격대를 몰살시켰으니….
“…그래서. 아무리 상부의 지시라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무고한 이들에게 무기를 겨누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의기소침한 표정의 박정욱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이글거리는 황금빛 시선을 마주한 박정욱은,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했다.
“무고…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들 역시, 오행의 일원인 것을….”
변명하듯 중얼거렸지만, 박정욱의 손은 마치 수전증에 걸린 환자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에서조차, 평소의 그 호탕함과 우직함이 실려 있지 않았다.
“고작 오행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이들이 무고하지 않다라…. 지금 장난하십니까?”
황금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금속 특유의 서늘한 기운을 품었다.
비웃듯 이죽거리며 말하는 내 목소리에서도,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크윽….”
-콰지직
박정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꼭 붙들고 있던 담뱃갑을 우그러뜨렸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 역시, 우그러진 담뱃갑처럼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다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응? 그렇다고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태백이 형님을 배신할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박정욱은 눈 앞에서 자식을 잃은 황소처럼, 구슬프게, 광포하게 울부짖었다.
소의 그것처럼, 우직함과 순박함을 품은 퉁방울 같은 눈에 습기가 서렸다.
“이들이 무고하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네! 중환이 형님이 계룡 공격대를 몰살시켰을 리 없다는 것도! 유영화 그 요망한 년이 수상하다는 것도! 모조리 다 알고 있단 말일세!”
“…….”
나는 말없이 박정욱의 한과 분노가 섞인 푸념을 받아주었다.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위철용 역시, 한심함과 착잡함이 섞인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어쩌겠는가. 태백의 산군이자, 태백을 지지하는 무력단체 설악의 수장으로서, 어찌 내가 이미 결정된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겠는가….”
박정욱은 서글픈 표정으로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떨궜다.
바위처럼 굳건하고 소처럼 우직한 중년의 사내의 몸이 흐느끼듯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상층부의 결정 역시, 사악한 세력의 음모라면 어떻습니까?”
“…뭐?”
그런 박정욱에게 나는 진중한 목소리로 길을 제시해주었다.
담담하게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에, 그의 몸에서 떨림이 뚝 멎었다.
“사악한 세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지 당장 말해보게.”
고개를 번쩍 치켜든, 박정욱의 눈빛에선 묘한 열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답변을 강요하듯, 광포한 열망을 토해내는 그의 목소리에서 마그마 같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선배님께서도 제게 일러주시지 않았습니까. 상층부가 수상하다고, 유영화를 조심하라고.”
“…그러기야 했지, 허나, 그것은 아직 제대로 산군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자네를 염려한 것이었네만…..”
영 자신없이 말끝을 흐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박정욱이 서민혁에게 해줬던 조언은, 그들에게 수상함을 느껴서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가 산군 회의에서 목격한, 다른 산군들과 유영화의 패도적인 태도에, 이제 막 산군으로 등극한 내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그 나름대로 배려를 해준 것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 단순한 아저씨가 놈들의 어둠을 느낄 수 있었을 리가.
박정욱 나름의 괴악한 배려에 나는 훈훈함과 어이없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얼굴에 아롱아롱 떠오르려 시도하는 쓴 웃음을 꾹 억누르곤, 나는 그에게 유영화의 정체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실은, 유영화가 말입니다.”
*****
“…그래서 놈이 전면전을 선포한 겁니다.”
유영화의 정체와, 그녀의 음모에 관련된 이야기를 모조리 박정욱에게 전했다.
워낙 성격이 단순하고 고지식한 양반이기에, 쉬이 내 말을 믿어주진 않겠지만.
오히려 성격이 그 모양이니만큼, 약간의 신뢰만으로도 그의 지지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있었기에.
나는 박정욱에게 빠짐없이 내가 알아낸 유영화, 아니 아모스에 관한 정보를 모조리 털어놓았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겐가?”
박정욱은 못 들을 소릴 들었다는 듯, 불쾌한 표정을 짓고는 내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흔들리는 눈빛은 주인의 감정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었다.
“믿고 안 믿고는 선배님 자유입니다만, 그래도 유영화의 정체가 간악한 마족 놈이라면, 선배님께서 수상쩍게 여기셨던 것들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크흐음…. 확실히 중환이 형님께서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할 리가 없긴 하네만….”
박정욱은 침음성을 토하며,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그와 설악 공격대에게 살해당한 풍월 공격대의 시신이 놓여있었다.
그들의 시신을 바라보는 박정욱의 시선이 착잡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미 나는 놈의 뜻대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해버린 상태일세. 자네의 말대로라면, 나는 죗값을….”
답답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모스의 농간에 놀아난 것에 대한 죗값을, 굳이 지금 치르겠다는 박정욱의 표정은 단호했다.
정말이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우직함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아니, 뭐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단순한 양반이 다 있어!
“그렇게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신 뒤, 놈의 뜻대로 활활 불타버린 세상을 마주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주 좋겠네요. 끝까지 놈의 뜻대로 제대로 놀아나시겠네.”
갑갑한 심기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아니, 박정욱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숨겨선 안 됐다.
적극적으로 비꼬듯 이죽거리며, 나는 박정욱의 얼굴을 책망하듯 흘겨보았다.
“그, 그건 아니네만. 그래도 죄인의 몸으로서 어찌….”
“죄인! 죄인! 거, 죄책감 느끼는 건 이해합니다만.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습니까? 보십쇼.”
나는 성큼성큼 풍월 공격대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다가갔다.
“세상에 어떤 위인이 자기랑 적대한 세력의 시신을 이렇게 온전하게, 또 정중하게 모셔둔답니까?”
풍월 공격대의 시신은 마치, 깊은 잠에 들어 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깔끔한 모습이었다.
최대한 정중함을 담아,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둔 설악 공격대의 각별한 마음씀씀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우선은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이들 역시 피해자가 아닙니까. 죗값은…. 나중에 이들의 유족에게 제대로 치르시던지 하십쇼.”
계속된 나의 일갈에 혼탁하게 흔들렸던 박정욱의 눈빛이 제자리를 찾았다.
자신의 애검을 콰악 움켜진 그의 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우선은 자네 말대로 그 요망한 마녀를 상대할 시기겠지. 고맙네. 머리가 좀 맑아진 느낌이야.”
박정욱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혹과 고뇌를 털어버린 강자의 미소엔, 감히 항거할 수 없을 만큼 패도적인 기운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