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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73화 (73/309)

제73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뒤에서 유영화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느라 끙끙댈 것 없이, 난 의심이 든 김에 그녀부터 우선 만나 볼 생각이었다.

지금 안산 게이트로 가는 이유 역시, 당연히 유영화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유영화의 공식적인 연인, 박양환은 태백 공격대의 공격대장직을 역임하고 있기도 했고, 오행 길드를 습격한 자들의 복장 또한, 태백 공격대의 그것과 동일했기에….

유영화가 있을 법한 장소를 추론해보면, 지금으로선 안산 게이트가 가장 유력했다.

[…흐음. 그 앞뒤 가릴 것 없이 호쾌하게 행동하는 것이 네놈의 매력이기야 하다만…,]

나의 담백한 대답에 위철용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나를 바라보는 위철용의 표정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호전적인 기대와 적의 본진에 뛰어드는 나에 대한 걱정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걱정 마십쇼. 강태백에게 굳이 찾아갔던 이유도 이거 때문이었으니까요. 별 일 없을 겁니다.’

강태백을 찾아갔던 이유 중 하나는 일종의 보험 때문이었다.

모두의 눈에 띄도록, 요란스레 강태백을 찾아가 유영화에 관해 떠들어놓은 상황이니만큼.

아무리 유영화라고 할지언정, 지금으로선 섣불리 나를 건들 수는 없겠지.

[그 너구리 놈을 만난 것에 그런 이유도 있었던 게냐? 교활한 놈.]

슬쩍 내비친 자신감 때문인지, 위철용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미소를 머금었다.’

‘그나저나, 서민혁 이 양반은 또 왜 가만히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위철용과 마음 속으로 대화를 나눴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야 하지만.

그래도 서민혁에게 지시를 내린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진대, 여전히 난 듀라한의 잠궈진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뭐하세요?”

“흐엇! 사, 산군님 실은 드릴 말씀이….”

나와 눈을 마주했음에도 서민혁은 제깍 운전석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어쩐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주저주저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불안하게 떨리는 손의 손톱에 꽤 격렬하게 물어뜯은 자국이 있는 것으로 봐선, 내가 강태백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민혁은 상당한 불안과 고민에 시달리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보였다.

“또 뭡니까?”

지체되는 시간과 서민혁의 미덥지 못한 태도에 내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들어갔다.

유영화를 찾아가, 그녀를 탐색하려던 계획이 지체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민혁을 바라보는 내 표정 역시, 목소리처럼 잔뜩 짜증을 머금은 상태였다.

“그, 그것이 조금 전 산군님께서 건물에 들어가시기 전 박정욱 산군님께 연락이 와, 왔었습니다.”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짜증을 담아 찌푸려진 표정에 겁을 먹은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불안에 떨고 있던 서민혁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창백한 안색의 서민혁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박정욱 측에서 내게 연락을 취해 왔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죄라도 지은 듯 굉장히 불안하게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의 짜증을 감당하면서까지 그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봐선, 조금 전, 그가 나를 다급하게 붙잡아 세우려 했던 것과 관련이 있는 듯 했다.

“일단, 가면서 듣지요. 문부터 여세요.”

“…예.”

서민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듀라한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

서민혁이 운전하는 듀라한은, 실로 놀라운 속도로 혼란에 빠진 서울 시내를 주파하였다.

더 이상 내게 실망을 끼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함뿍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나는 안산 게이트 인근에 도착해 있었다.

“도, 도착했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서민혁은 게이트 관리소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외진 장소에 차를 주차하였다.

공손한 태도로 뒷좌석 문을 열어준 그는, 걱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내게 주의를 당부해왔다.

“…예. 서 기사님도 만일을 대비하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아참. 매니저님께 하루빨리 서울로 올라와달라고 전해주시는 거 잊지 마시구요.”

“예, 옙! 건투를 빌겠습니다. 산군님.”

말을 마친 서민혁은 운전석에 올라, 듀라한을 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멀어져가는 듀라한의 화려한 차체를 잠시,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박정욱, 그 아해도 마음씀씀이가 꽤 제법이로구나.]

박정욱이 서민혁을 통해 전해온 정보는 단순했고,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뭐…. 지금 시점에선 딱히 쓸모있는 정보같진 않지만요. 확실히 은혜를 아는 사람인 것 같긴 하네요.”

박정욱이 전한 정보는 바로, 길드 상층부가 수상하다는 것과 유영화를 조심하라는 것.

강태백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이미 유추했었던 내용이었다.

[서민혁이라 했었느냐. 그 아해는 꽤 성실한 것 같긴 하다만, 어쩐지 영….]

서민혁을 언급한 위철용은 그에 대해 박한 평가를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사람은 성실한 것 같은데 말이죠….”

나는 위철용의 박한 평가에 동의하며, 쓰게 웃었다.

서민혁이 나를 다급하게 불러 세우려 들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길드 상층부가 수상하다.’는 박정욱의 정보에, 강태백을 주의하라 전하려 했었던 것.

충심에서 우러난 행동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 건에 관해선 강태백은 그 ’수상한‘ 상층부인 유영화의 편이 아니었기에….

서민혁의 충심어린 행동은 그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 고지식한 박정욱까지 수상함을 느꼈을 정도라니….”

하지만, 박정욱의 정보가 전혀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차원적으로 고지식하며, 심각할 정도로 단순 성격을 자랑하는 인물이 바로 박정욱이었다.

그런 그가 유영화와 길드 상층부에 수상함을 느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심상치 않은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꿀꺽.

새삼스럽게도, 심상치 않은 예감이 엄습해왔다.

등허리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으슬으슬 전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게이트 관리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오셨습니까. 설용호 산군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게이트 관리소에 가까이 접근한 순간, 멀리서 나를 발견한 태백 공격대원이 웃는 낯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해괴하게도, 그는 내가 방문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예?”

“안쪽에서 유영화 산군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웃는 얼굴의 공격대원은 나를 서커스 천막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텐트로 안내하였다.

“…!”

공격대원의 안내에 따라, 텐트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내부에서 비릿한 피냄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겨왔다.

[애송이…? 왜 그….]

그리곤, 마치 티르리니와 접촉했을 때처럼, 세상의 시간이 뚝 멈춰버렸다.

웃는 낯으로 천막 문을 열어젖힌 공격대원도,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던 위철용도

마치 그림 속의 한 장면처럼 굳어버렸다.

“젠장….”

좋지 않은 예감이 엄습해왔다.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어둠달을 콰악 움켜쥔 손이 덜덜 떨려왔다.

-두근.

만일을 대비해, 검은 심장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소름끼치는 정적 속에서 검은 심장이 조용히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난. 천막 안으로 단숨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어머나, 이거 반가운 손님이 와버렸네?”

어두컴컴한 천막 내부의 광경은 끔찍헀다.

고통과 절망에 가득 차, 울부짖는 표정의 헌터들의 시신이 박제가 되어버린 채로

마치 경배하기라도 하듯,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은 유영화를 향해 엎드려 있었다.

그 그로테스크한 풍경 속에서, 유영화는 나를 향해 생긋 웃으며 태연히 인사를 건넸다.

음울하게 끈적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낯익은 존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모스.”

“어머? 껍데기가 달라서 못 알아볼 줄 알았더니. 우리 이쁜이 눈치도 빠르구나?”

유영화, 아니 아모스의 눈이 장난스레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어졌다.

순순히 제 정체를 시인하는 아모스는, 굳이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이건 또 뭐하는 광대놀음이지?”

“뿌뿌. 기껏 다시 만났는데. 매정하긴.”

아모스는 투정하듯 장난스레 볼을 부풀리며, 요염하게 눈을 빛냈다.

그녀의 몸에서 숨 막힐 듯한 사이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우리 이쁜이의 매력일지도 모르지. 그 싸가지도 마음에 든다니깐.”

아모스는 그런 섬뜩한 기운을 몸에 두른 채,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교태롭게 히죽 웃었다.

-까드득!

나는 아모스의 미소를 마주하며, 어둠달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단단한 굳은살과 금속질 창대가 격렬하게 마찰하며 섬뜩한 소리를 내었다.

“어머머, 잠깐 잠깐. 설마 여기서 싸울 생각이야? 이 껍데기 따윌 박살 내봤자, 달라질 건 전혀 없는데도?”

아모스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곤 장난스레 손을 내저었다.

“…뭘 노리는 거냐.”

“하아, 이것도 말 많은 악당의 슬픈 숙명이라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뭘 노뤼는 고냐‘ 라고 말하면 대답해 줄 수밖에 없잖아?”

뜻모를 소릴 지껄인 아모스는 마치 성대모 사하듯 내 말을 따라하며, 깔깔 웃었다.

그리곤 의외로 순순히 입을 열어, 자랑스레 자신의 계획에 대해 떠벌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자면, ‘바로잡기’라고 해야 할까? 원래는 두 번째 단계에서 죽어야 할 인물들이 누구 때문에 너무 많이 살아남아버렸거든.”

아모스의 입에선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 단계, 그러니까 대 침식에서 원래 ’죽어야 할‘ 인물들이 살아남았다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이렇게 귀찮게 일선에 나서서 바로잡기를 하는 거야. 앞으로의 진행될 ’놀이‘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놀이‘를 언급한 아모스의 입가에 고혹스러우면서도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우리 이쁜이께서 제법 깜찍한 활약을 해준 덕분에. 일이 꽤 재미있게 돌아가게 생겼다니까? 생각해봐. 5대 길드라고 으스대며 서로를 핥아주던 애들이, 서로 못 죽여 안달 나는 꼴을 말이야.”

아모스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입가를 혀로 핥았다.

5대 길드의 사이의 전쟁을 암시하는 그녀의 몸에서 질식할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도대체 내게 왜 그런 걸 알려주는 거지?”

“왜냐니? 이렇게 이야기를 해줘야. 우리 이쁜이도 나를 막기 위해, 조금은 ’적극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그래야 조금 더 재미있지 않겠어?”

광오했다.

요컨대 아모스는 단순히 자신의 여흥을 위해, 일부러 나를 여기까지 불러들인 듯했다.

둔감하기 짝이 없는 박정욱이 쉽게 눈치 챌 만큼 대놓고 수상하게 활동한 것도, 유영화의 신분을 이용, 오행 길드와의 전면전을 선포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도.

모두….

자신의 여흥을 위해, 꾸민 짓이었다.

“그러니까. 한 번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 우리 이쁜이가 발악을 해주면 이 귀찮은 일도 제법 재미난 여흥이 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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