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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72화 (72/309)

제72화

듀라한이 태백의 본사 건물에 멈춰 서기 무섭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벌컥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젖혔다.

“아, 설용호 헌터님 잠까….”

뒤에서 서민혁이 다급한 말투로 나를 불러 세웠지만, 차에서 내린 나는, 그의 말에 개의치 않고 곧장 강태백의 집무실로 향했다.

“어째, 최근 들어 자네 좀 지나칠 정도로 자주 찾아오는 것 같지 않나?”

화려하게 장식된 엘레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리자, 굉장히 언짢은 표정의 강태백이 질책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건네 왔다.

살짝 찌푸린 그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불쾌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오행 길드와 유영화 산군 사이의 전면전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구석의 의자를 드르륵 끌고 와, 강태백이 앉아있는 책상 맞은편에 놓은 뒤.

그곳에 털썩 주저앉아, 강태백과 눈높이를 똑바로 맞췄다.

추궁하듯 묻는 내 목소리는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광포한 으르렁거림을 내포하고 있었다.

“…허어, 이 친구 이거. 정도라는 게 있어야지. 멋대로 인원들 이끌고 지방으로 내려가 놓고 갑자기 나타나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건가?”

강태백의 얼굴에 서려 있는 불쾌함이 더욱 짙어졌다.

크레센도처럼 서서히 증폭되는 그의 불쾌한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강렬한 첫인상으로 목적을 달성한 난,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사과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급한 마음에 길드장님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표하며, 똑바로 마주했던 눈높이를 슬쩍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렇게 내가 저자세로 나오자, 달아오르기 시작했던 강태백의 표정이 슬쩍 풀렸다.

“뭐, 자네라면 이리 반응하리라 예상은 하고 있기야 했다만, 그런 반응을 직접 마주하니, 당황스럽긴 하군.”

피식 웃은 강태백은 서랍을 뒤져, 특유의 큼직한 시가를 꺼내 물었다.

예의 그 마력향이 포함된 것이 아닌, 순수하게 담뱃잎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질 좋은 물건이었다.

-따악!

손가락을 튕겨 시가에 불을 붙인 강태백의 낯빛이 흩날리는 담뱃재처럼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말없이 한 모금 깊게 숨을 들이쉬는 그의 모습엔, 왜인지 씁쓸함과 처연함이 서려 있었다.

평소처럼 끝 모를 음흉함에 가득 차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어디까지 전해들었는지는 모르겠네만,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네.”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은 강태백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씁쓸함만을 남기고 덧없이 흩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그의 목소리엔 회한이 가득했다.

“우리 태백을 위시한 5대 길드가 주도하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도 애를 써왔건만….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을 줄은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네.”

『진실』

…뭐야?

놀랍게도,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강태백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문구는 ‘진실’이었다.

강태백은. 지금 진심으로 오행 길드와의 전면전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으며, 사건이 이렇게까지 악화 되어버릴 줄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유영화가 아무리 산군이라 할지언정. 길드장님의 허가 없이 오행 길드와 전면전을 선언하다니….”

유영화를 떠받드는 세력이 제법 강대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 일개 산군에 불과했다.

그 말인즉슨, 태백의 존망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전면전’을 그녀 독단으로 결정할 순 없다는 소리다.

“자네가 지방에 내려가 버린 사이, 며칠 전 산군 회의가 열렸다네. 거기서 결정된 사안이지.”

내 질문에 강태백은 씁쓸한 어투로 산군 회의를 입에 담았다.

산군 회의.

태백을 운영하는 간부들과 태백의 무력을 책임지는 일곱 산군이 모여, 태백의 미래와 관련된 안건에 대해 논의하는, 일종의 의사결정 시스템 중 하나다.

내가 남부연합에 가 있는 사이 그게 열렸었다고…?

금시초문이었다.

남부연합의 관할지에서 아무리 전파가 잘 통하지 않는다지만, 전파가 쌩쌩하니 잘 터지는 서울로 올라오면서도, 부재중 문자엔 산군 회의만큼 중요한 회의에 관련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산군 회의라니…. 저는 전혀 전해 받은 것이 없습니다만. 전원이 참석하는 것이 원칙 아니었습니까?”

“맞네. 원칙이야 그렇지. 하지만…. 사안이 워낙 중대하여 강행되었다네. 뭐, 사실 자네가 참석했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네만….”

강태백은 쓰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산군 회의가 강행되었다니.

강태백은 나를 배려하기 위해선지, 사안이 중대하여 강행되었다 돌려 말했지만.

그의 어투에 담긴 진실은 그것과는 살짝 달랐다.

회의를 주최한 다른 산군들은 나 설용호를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정욱이가 자네의 참석을 강하게 주장했네만. 그 역시 다수의 의견엔 어쩔 수가 없었지.”

내 표정을 살핀, 강태백은 쓰게 웃으며, 설악 공격대의 공격대장 박정욱이 나를 지지해줬노라 언급했다.

고슴도치 섬 게이트에서 은헤를 잊지 않겠노라 호언장담한 것이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박정욱이라…. 어쩐지 뭉클해지는 느낌인걸.

“결과는 짐작하다시피, 오행 길드와의 전면전을 벌여. 피 값을 받아내자는 의견이 다수였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되어버렸지.”

강태백은 시가를 책상에 살짝 부딪혀 재를 털어냈다.

값비싼 몬스터의 가죽 위로 시커먼 재가 휘날렸다.

그만큼, 그의 심기는 편치 않아 보였다.

“길드장님 권한으론 산군 회의를 무효로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산군 회의가 만능은 아니었다.

아무리 산군 회의에서 무언가 안건이 통과되었다곤 쳐도.

예나 지금이나, 길드장 강태백의 권한으로 취소할 수도 있었으니까.

“이거, 신 팀장이 쓸데없이 많은 걸 알려줬나 보군…. 맞네. 5대 길드의 균형을 위해서 길드장 권한으로 안건을 폐기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네.”

길드장 권한 운운하는 것을 들은 강태백이 슬쩍 별걸 다 안다는 듯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영 마뜩치 않은 표정을 이어 좋지 못한 결과가 일어났음을 내게 알려줬다.

“소용이…없어요?”

“우리 태백 산하의 공방 길드, 대주주 영감들이 나를 압박해오더군. 알잖는가? 이 빌어먹을 길드는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그랬지.

회귀 전, 대 침식 이후 혼란기에야 강태백이 온전히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강태백 역시, 일개 회사의 대주주에 불과한 몸이었다.

물론, 일개 대주주치곤 상당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이들과 권력을 나누고 있으니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남부연합의 일은 잘 마무리 되었는가?”

어색한 침묵 뒤.

시가를 책상에 불완전하게 비벼 끈 강태백이 뒤늦게 남부연합의 일에 관해 물어왔다.

어쩐지 묘한 기대가 서려 있는 것으로 봐선, 그의 심리를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 신형 게이트도. 남부연합의 피해도 최소화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 침식이 중간에 뚝 멎으면서, 남부연합의 피해는 처음 입었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끄응…. 그것 참 다행이로군. 알겠네. 궁금증이 다 풀렸다면. 이만 가보게.”

남부연합이 건재하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강태백이 신음성 섞인 앓는 소리를 냈다.

안색이 더욱더 어두워진 그는, 내게 일방적인 축객령을 내렸다.

*****

[강태백이 관련이 없었다니, 이것 참 의외로구나.]

“그러게요. 유영화 따위가 독단적으로 일을 벌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독단은 아니다.

강태백과 박정욱을 제외한 모두가 유영화의 복수를 지지해줬으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데 말이죠. 다른 산군들이랑 이익에 민감한 경영진들이 죄다 오행 길드와의 전면전을 지지해줬다니.”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산군들끼리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같은 산군과 연인으로 발전한 유영화가 유독 특별했을 뿐,

그들 역시 이익과 이익으로 얽힌 관계라, 복수 따위의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섣불리 전면전을 지지해줄 만큼 인정미 있는 사이가 아닐 텐데….

게다가, 경영진들은 또 어떤가?

피의 복수니 뭐니 하는 것들도 그들에겐 서류 위의 덧없는 메아리에 불과한 존재다.

그들은 철저할 정도로, 길드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존재들이니까.

내가 아는 한, 태백의 경영진들 역시 감정적인 이유로 유영화의 복수를 지지해줄 만큼, 만만한 치들은 절대 아니었다.

당장, 오행 길드를 죄다 쓸어버린 뒤, 그들의 이권을 차지한다 쳐도.

오행 역시 5대 길드에 속할 만큼 전력이 강한 길드다.

이권을 차지한 뒤의 이득보다, 오행과의 전쟁으로 인한 전체적인 전력 약화와 그 기간동안 게이트 속 몬스터를 수확하지 못해 이득을 낼 수 없는 관계로 당장 볼 손해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올 터인데….

[뭔가 기이한 냄새가 나는구나. 사교도의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비릿하니 구릿한 냄새야.]

“게다가…. 이렇게 힘의 균형이 깨져버리면, 금랑에서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금랑에선 또 조용하단 말이죠.”

오행과 태백 관계는 상당히 온건한 축에 속했다.

담당 영역도 멀리 떨어져 있거니와, 강태백과 이중환 본인들의 친목 관계도 있었기에

이렇게 급작스럽게 전면전이 벌어졌다는 사건 자체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하긴, 금랑 그것들이 가만히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이하긴 하다만….]

금랑은 달랐다.

담당 영역이 상당수 겹치는 데다. 금랑에서 묘하게 태백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들은 시시때때로 태백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상태였다.

위철용 역시 금랑을 입에 담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신지현을 좀 불러들여야겠어요. 어떻게 되는지 좀 파악도 좀 해보구요.”

“안산 게이트까지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

강태백과 대화를 나눈 뒤.

본사 건물을 나온 나는, 듀라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민혁에게 안산에 위치한 게이트까지 운전해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직접 그 계집부터 만나볼 생각인 게냐?]

‘고민할 것 뭐 있겠습니까. 정 수상하면 가서 확인해보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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