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71화 (71/309)

제71 화

“사, 살펴가세요.”

“예, 세영 씨도 몸조심 하시구요. 그럼, 계속해서 조사 부탁드릴게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세영에게 유영화와 접촉한 남성들에 대한 조사를 부탁한 뒤. 나는 그녀에게 가벼운 작별인사를 남기곤 한성유통의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이세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연이어 떠오른 의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회귀 전, 그녀들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뭐지? 행사 끝난 건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로 걷다보니, 나는 어느새 주차된 듀라한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떠들썩한 자선행사의 열기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아예 듀라한 주변에선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길게 늘어선 빈민들의 행렬도, 서민혁과 태백 인사팀들도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행사 잘 진행하고 있으랬더니, 이 인간은 또 어딜 간 거야?”

머릿속을 괴롭히는 새로운 의문이 출몰해준 덕에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품속에서 거칠게 스마트폰을 빼어 든 나는 곧바로 서민혁에 전화를 걸었다.

약간의 신호음이 가는가 싶더니, 신호음이 뚝 끊기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서 기사님 제가 책임지고 행사를 진행하라 지시했….”

-사, 산군님 크 큰일 났습니다!”

스마트폰 스피커로 들려오는 서민혁의 목소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만약 목소리에도 색이 있다면 새파랗게 질려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서민혁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고 동시에 또 굉장히 당황한 것 같아보였다.

그답지 않게, 그는 내가 용건을 채 말하기도 전에 말을 중간에 뚝 잘라 끊곤 제 할 말만을 쏟아내었다.

-유, 유영화 산군님께서 오행 길드에 전면전을 서, 선포하셨습니다.

뭐라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누, 누가, 누구에게 뭘 어쨌다고? 다시 말해봐. 어서!”

서민혁의 입에서 갑작스레 터져 나온 폭탄발언이 머릿속에서 강렬하게 폭발해버렸다.

예상치 못한 정신적 충격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등줄기에 소름이 타고 올랐다.

힘껏 틀어쥔 스마트폰의 액정에 까드득 금이 갔다.

내 입에선 가식적인 예의 따윈 던져버린 반말이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스마트폰의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폭음이 요란하게 들렸다.

폭음은 스마트폰의 전자신호를 타고 들어와, 내 고막 속을 거칠게 후벼 팠다.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충격에 머리가 웅웅 울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어갔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봐, 서민혁! 서민혁! 이런 썅…!”

정신을 퍼뜩 차린 나는 다급히 스마트폰을 힘껏 움켜쥐고 목이 터져라 서민혁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빠지직!

하지만, 하필이면 바로 그때, 나의 스마트폰이 한 많은 폰생을 마감해버렸다.

악력을 이기지 못해, 폭발하듯 터져버린 스마트폰의 잔해가 허무하게 손에서 흘러내렸다.

처참하게 조각난 스마트폰에선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쿠콰아아앙!

부서진 스마트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던지자, 다시 한 번 폭음이 들렸다.

노량진 거리 저 멀리 보이는 건물에서 연이어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위치로 짐작해 보건대, 저쪽은 오행길드의 본사가 있는 방향이었다.

“…정신 나간 놈. 저딴 곳을 왜 기어가가지곤.”

상황이 돌아가는 것으로 미뤄보건대. 서민혁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 노량진에서 오행길드의 본사가 있는 곳까진 충분히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아무래도 서민혁은, 인사팀의 본능에 충실하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오행길드까지 뛰어간 모양이었다.

눈치라곤 엿 바꿔 먹을 것도 없는 갑갑한 인간이었지만, 나와 접점이 있는 인물이 위기에 처했다는 상황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콰앙!

이가 부서져라 까드득 이를 간 나는 오행길드가 위치한 곳으로 힘껏 도약했다.

내 발바닥이 땅을 박찰 때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스팔트가 와자작 부서지며 움푹 꺼졌다. 박살난 수도관에서 싯누런 흙탕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럴 때마다, 저 멀리 보이던 참극의 현장이 훅 가까워졌다.

-꺄아아악! 제발, 제발 구해주세요.

-흐윽. 엄마아. 엄마아. 눈 좀 떠봐. …으아아앙!

-서둘러! 부상자 처리가 먼저다! 정신 똑바로 차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비명! 슬픔에 젖은 울음소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이들의 간절한 고함!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에 불안을 더해주는 비극적인 울음소리가 귓가를 자극해왔다.

“서민혀어억!”

그런 비극의 현장 속에서, 나는 안력을 돋워 사방을 바라살피며 서민혁의 이름을 거칠게 부르짖었다.

“…크헉, 크헉. 허, 헌터님….”

얼마나 그 참극 속을 찾아 헤맸을까….

나는 마침내 서민혁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이름 모를 카페의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서민혁! 누가 멋대로….”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린 낯빛, 전신에 아로새겨진 화상과 다 찢어져버린 검은 양복.

서민혁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위중해 보였다. 그의 상태를 지켜보던 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심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쿨룩, 크억! 흐어어. 사, 산군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행사는 성공적으로….”

“닥쳐! 이새끼야. 행사? 그래, 얌전히 행사나 진행하지 뭐하러 여기까지 기어와서는!”

“하, 하하. 그, 그러게 말입니다. 산군님. 일단 이것을….”

반쯤 초점을 잃은 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서민혁의 시선에 잠깐 생기가 돌아왔다.

내 질책에 안쓰러울 정도로 심하게 몸을 떤 서민혁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이건…?”

스마트폰의 상태 역시 좋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최신 기종의 화려함을 뽐내었을 것이 분명한 검은 스마트폰엔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잔금이 거미줄처럼 엉망으로 뒤덮여 있었다.

주인의 행색만큼이나 안쓰러운 스마트폰의 외형에, 나도 모르게 미간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찌푸려진 시야가 일시적으로 와락 좁아졌다.

“후욱. 후우욱. 오, 오행 길드 본사 근처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숨을 몰아쉬며 말을 잇는 서민혁의 표정에 간절한 빛이 떠올랐다.

마치 내가 그것을 봐주길 원하는 듯한 그의 눈빛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나는 조심스레 그의 스마트폰을 조작해, 갤러리의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뭐, 뭐야! 네놈들은! 여긴 오행 길드의 본사….

-산군님 말씀이시다. 쥐새끼 하나 남기지 말고 다 죽여 없애라! 태백 길드를 위해! 계룡 공격대의 안식을 위해!

잔금이 가득한 스마트폰의 화면 속에서 재생된 영상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태백 길드 특유의 시커먼 갑옷을 차려입은 괴한들이 오행 길드 본사 앞의 경비원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따위. 영상 따위가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흐읍. 후우. 푸흐흐. 항상 어리버리하기만 한, 저였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쓸 만한 것을 물어오지 않습니까?”

냉기를 풀풀 풍기는 목소리로 서민혁을 질책했지만, 그는 내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최후의 순간이나마, 자신의 행동이 내게 도움이 됐길 바라는 서민혁의 표정엔 묘한 회한과 열기가 서려 있었다.

“마지막?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리하고 자빠졌네. 쇼하지 말고 일어나기나 하십쇼.”

“예에…? 하, 하지만 제 몸은 제가 잘 알고 있습…. 어라?”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려던 서민혁의 표정에 의문이 서렸다.

쿨럭거리던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빛을 잃어가던 눈엔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포인트 상점에서 비싼 포인트 주고 구입한 포션이니까. 앞으로 몸으로 갚아요.”

“사, 산군님….”

사실, 처음 서민혁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의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렇게까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포인트 숍의 VIP 상점에는 목숨만 붙어 있다면, 부상쯤은 회복시켜주는 포션이 널리고 널렸었으니까….

나를 바라보는 서민혁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네요.”

서민혁은 구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유영화가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전면전을 선포한 것도 그렇고, 서민혁이 목숨걸고 구해온 영상 속의 괴한들이 들으라는 듯 쩌렁쩌렁하게 외쳤던 외침의 내용 역시 수상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일련의 상황이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굉장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끄으응….”

찌푸려진 미간이 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어째선지 단순히 길드 간의 항쟁을 뛰어넘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스멀스멀 내 머릿속에 기어 들어왔다.

“일단 서 기사님…목격하셨던 상황을 좀 말해주시겠습니까? 어째서 제 지시를 무시하고 그쪽으로 내달려가셨는지, 또 어떤 경위로 그들의 습격을 알게 되신 건지….”

서민혁을 바라보는 금색 눈동자가 얼음장 같은 서늘함을 품고 냉기를 뿌렸다.

화안금정으로 인해,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로 나는 가만히 서민혁을 바라보았다.

목숨 걸고 정보를 물어오려는 시도는 좋은데, 내게 걱정을 끼쳤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변치 않았으니. 그를 바라보는 내 표정은 그리 곱지 않았다.

“아, 아으으. 그, 그게 말입니다. 실은….”

서늘한 눈빛에 노출된 서민혁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곤 그는 더듬거리며, 자신이 어째서 그곳으로 향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입니다.”

서민혁의 증언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행사가 끝나고 스마트폰을 보는 도중, 갑작스레 유영화의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2, 내용에 충격을 받는 사이, 태백의 문양이 새겨진 차량이 줄줄이 눈앞을 지나갔다.

3.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헐레벌떡 차에서 내려 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4. 도착하고 보니, 차에서 내려 채비를 갖춘 괴한들이 막 돌입하고 있었다.

5. 다급히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줄줄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서민혁의 머리 위엔, 계속해서 진실이란 단어 두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산군님의 지시를 어기고 함부로 움직여서…. 계속 실망을 안겨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말을 모두 마친 서민혁은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려, 내게 사과를 표했다.

하루 동안 내게 두 번이나 실책을 저질러서 그런지, 그의 말투와 태도엔 필사적인 진심이 절절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신지현 휘하의 인사팀 소속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서민혁의 돌발 행동은 일순 끓어오른 정보 수집의 욕구를 차마 억누르지 못해 일어난 사단인 것 같았다.

“…일어나세요. 오늘은 이만 넘어가 드리겠습니다만. 다음번엔 이런 식으로 간단히는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보는 이가 다 민망해질 정도로 지면에 납죽 엎드린 서민혁의 모습에, 나는 쓰게 웃곤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가, 감사합니다. 산군님. 다음부턴 정신 똑바로….”

“됐으니까. 일단은 자리를 좀 옮기죠. 본사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서민혁이 다급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히려 들었지만, 나는 그의 말을 중간에 뚝 끊고, 태백 길드 본사로 향할 것을 명했다.

일단, 지금 현재 중요한 건 그를 문책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예, 옙! 알겠습니다. 본사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서민혁은 군기가 잔뜩 잡힌 말투로 외치곤, 서둘러 듀라한의 뒷문을 열었다.

****

[유영화라….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본존의 기억엔 없는 인물이로구나.]

소란스러운 거리를 유령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는 듀라한의 뒷좌석에서, 지금의 나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위철용이 마치 혼잣말하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야 원 역사에선 대 침식 초기, 티르리니의 준동 때 사망했던 인물이었으니까요.’

전해도 말했듯, 위철용이 본격적으로 필멸의 세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대 침식 이후였다.

때문에, 그가 일찌감치 대 침식 초기에 티르리니에게 사망한 유영화를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위철용에게 유영화가 회귀 전엔 대 침식 초기에 일찌감치 사망했다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니라, 생전에 태백의 산군에 이를 만했던 강자였다면, 당연히 사후세계에서도 그 영혼은 평범한 곳이 아닌 각별한 곳에 쓰이기 마련이거든. 이를테면….]

하지만, 내 답변을 들은 위철용의 답변엔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엄청난 내용이 끼어 있었다.

사후세계가 존재하며, 영혼이 어딘가에 쓰인다는 위철용의 폭탄 발언에, 나는 무심코 그의 말을 중간에 뚝 잘랐다. 그리곤 치밀어 오른 의문을 날것 그대로 그에게 던졌다.

‘사후세계가 있어요?’

[왜 없겠느냐. 당장 네놈도 그곳에 빨려 들어가기 일보 직전에 본존에게 구출되었지 않았더냐.]

자신의 말이 중간에 뚝 잘리자, 짐짓 퉁명스러운 어투로 답한 위철용은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저었다.

…하긴, 그때 어딘가로 쑤욱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었지.

순간, 위철용의 답변에 불현 듯 그리 달갑지 않은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회귀 전,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음울한 기억….

어둑하면서도 눅눅하니 한기가 느껴지는 불쾌한 공간에 관련된, 좋지 못한 기억에 으슬으슬한 한기가 엄습해왔다. 살갗에 소름이 오소소 돌았다.

[필멸의 존재에겐 죽음이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이기야 하다만, 그 한심한 표정은 또 무어냐? 에잉. 못난 놈. 쯧쯧.]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진 나를 바라보던 위철용은 쯧 한 번 혀를 차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사후세계에서 강자의 영혼은 요긴한 곳에 쓰이는 법이니라, 그 영혼을 정제하여 네놈이 아이템이라 부르는 기물을 만든다든지, 때로는…. 크흠!]

영혼의 또 다른 사용처에 대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위철용이 갑자기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그리곤 설명 대신 헛기침으로 일축하곤 넘어가 버렸다.

[하여튼! 강자의 영혼이란 유용한 곳에 쓰이기 마련이라 본존이 모를 수가 없을진대, 유영화, 그녀의 영혼은 그때도 본존이 본 적이 없느니라.]

‘그 말씀은, 설마…!’

[그래, 어쩌면 그때도 유영화 본인은 그 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생존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아니, 그렇다면 본존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 아마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겠지.]

계속해서 위철용의 조막만 한 비취빛 입에선 엄청난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쏟아내듯 폭탄 발언을 끝마친 위철용은 곧이어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이 또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본존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거뭇한 흑염…. 크흠. 인과율이 심어둔 인격이 묘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인 게로구나.]

계속된 엄청난 발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입을 벌리고 있으려니, 위철용은 짓궂은 농담을 섞어 말했다.

하지만, 난 그의 농담을 들어줄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위철용이 늘어놓은 정보를 모두 수렴한 머릿속이 복잡하게 회오리치듯 엉망으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사후세계, 아니 회귀 전 시점엔 애초에 유영화라는 존재를 위철용이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

지금 시점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유영화. 그녀는 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네요.’

그렇다.

유영화의 정체를 아직 정확하겐 가늠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녀가 정춘성의 몸에 빙의했던 아모스처럼 ‘정상적인’ 존재가 아님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산군쯤 되는 존재가 본존의 고매하신 안목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지. 아무래도 네놈이 그때 말했던 그 불측한 족속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

위철용은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불쾌함이 슬쩍 섞인 표정으로 아모스에 관련된 은유를 언급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긴 하네요.’

머릿속으로 퍼즐이 착착 맞춰지기 시작했다.

회귀 전, 대 침식 초기에 하필 티르리니에게 전멸한 계룡 공격대와 그곳에 속한 유영화.

회귀 후, 변화된 대 침식에서 정춘성의 몸에 빙의해 티르리니를 소환한 아모스.

기존에 내가 기억하던 유영화의 정보에 위철용과 이세영의 정보가 더해졌다.

회귀 전 시점에서도 아예 위철용의 안목으로도 파악하지 못했던 강자라는 수상쩍은 정체성에.

아모스가 빙의한 정춘성의 몸에 발현된 마법진과 똑 닮은 마력 패턴을 새기고 다니는 괴이쩍은 행동까지….

‘유영화라….’

사진에서 봤던 유영화의 얼굴을 떠올리자, 눈빛이 저절로 황금색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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