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70화 (70/309)

제70화

“…세영 씨?”

이세영은 한참동안이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헤죽헤죽 웃음 짓는 그녀를 기다리다 지친 나는,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으핫! 핫! 헷!”

이세영의 입에서 약간 방정맞아 보이는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치 우리에서 꺼내진 햄스터처럼 펄떡이는 그녀는 과할 정도로 화들짝 놀란 모습이었다.

…끄응. 아무리 내게 푸욱 빠졌다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한 것 같군.

“크흠. 흠! 그나저나 무엇을 알아내셨길래 이렇게 은밀한 공간으로 굳이 절 부르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민망한 모습을 보여준 이세영에게서 예의상 살짝 고개를 돌린 뒤.

나는 조금 과장된 헛기침과 함께 이세영에게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으? 아! 아아! 네, 네네. 이, 이걸 좀 봐주시곘어요?”

여전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세영이 이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어쩐지 서두르는 듯한 기색의 그녀는 허둥지둥 준비한 서류를 내게 들이밀었다.

“유영화…?”

이세영이 내민 서류의 맨 상단엔 산군의 홍일점, 유영화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유영화의 사진을 조심스레 집어든 나는, 머릿속으로 유영화와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유영화, 내가 알기로 그녀는 젊은 여인의 몸으로 태백의 정점, 산군의 자리에 올라선 인물이자. 계룡 공격대의 공격대장 유영기의 누나였다.

특이하게도 산군이란 높은 직위와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 계룡 공격대의 일개 공격대원으로서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길 즐기는 괴짜이기도 했지….

“흐음.”

기억을 좀 더 뒤져봐도, 유영화에 대한 그 이상의 정보는 더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원 역사에서의 그녀는 대 침식 초기에 티르리니의 습격으로 사망하여 나와 만난 적도 없었기에,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이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미약한 정보 어디에도 유영화와 마족과의 연관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세영은 무슨 이유로 유영화가 수상하다 지목한 거지? 나를 노량진까지 불러내면서?

-펄럭.

…어라?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서류를 넘겨 내용을 확인하던 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서류 끄트머리에 수북히 쌓여있는 사진들을 가만히 살펴보자, 어째서 이세영이 굳이 이곳, 노량진까지 나를 불러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유영화라는 산군은 본존도 들어본 적이…. 호오?]

이거…. 여기 적힌 사진 몇 장만 밖으로 새어나가도 난리 나겠는데?

이세영이 내게 보통 이상의 감정이 있으니만큼, 내 의뢰만큼은 온 힘을 다해 신경을 써서 조사한 모양인지, 그녀가 건넨 서류엔 유영화의 사생활이 무서울 정도로 전부 적혀있었다.

오죽하면, 유영화에 대해 기억을 더듬던 위철용이 비상한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휘유. 거, 인생 한 번 재미있게 사는 여인이로구나.]

하지만, 문제는 바로 유영화의 쓸데없이 화려한 남성 편력까지 시시콜콜하게 조사해 적어놨다는 것!

공식적으로 유영화는 다른 산군인 박양환과 사귀고 있는 사이였지만, 서류 속에 동봉된 수많은 사진엔 그녀가 다른 남성들과 밀회를 즐기는 모습들이 잔뜩 찍혀있었다.

금랑, 오행, 건곤 등 타 5대 길드 유명 공격대의 에이스 헌터들은 물론이요.

유명한 아이돌 가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중견 배우 등등 서류 속엔 유영화가 수많은 남성과 오붓한 만남을 가지는 사진들이 수북하게 첨부되어있었다.

당장 이 사진 중 몇 장만 신문사에 슬쩍 찔러 넣어도, 다음날 언론을 뜨겁게 달굴 수 있을 정도로 유영화의 남성 편력은 굉장히 화려했다.

“…정말 애 많이 쓰시긴 하셨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전 유영화 씨의 애정사정에 별달리 관심이 없는데 말입니다.”

헌터 업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몸으로 정점에 오른 인물이기에, 유영화는 태백에서, 아니 업계 자체에서도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유영화의 불륜이 찍혀있는 이 사진들이 가진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불륜 사실이 퍼지기라도 하는 날엔, 대중매체 전부를 활활 불태울 정도로 커다란 가십거리로 발전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이세영이 건넨 사진들은 나에게 별다른 값어치가 없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원한 것은 마족, 아모스를 추격하기 위한 정보뿐이었으니 말이지.

“으, 으으. 그, 그건 부차적인 정보에 불과해요. 사진의 뒤, 뒷면을 보세요.”

뒷면? 고작 사진 뒷면에 도대체 무슨….

이세영의 말에 따라, 나는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진 사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집어 든 사진 속엔 웃는 얼굴의 유영화와 사내답게 잘생긴 남성의 다정한 모습이 찍혀있었다.

-팔락

“…세상에. 마력 감지 카메라도 갖고 계셨어요?”

[호오오. 하계에 기물이 많다고 들었다만, 이런 것까지 구현해낼 줄이야.]

그렇게 사진을 뒤로 넘긴 순간,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진을 살피던 위철용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뒤집어진 사진의 뒷면엔 앞면과 똑같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마치 열 감지 카메라로 찍기라도 한 것처럼. 유영화와 남성을 비롯한 사진 속 사람들 모두의 형상이 울긋불긋 기묘한 패턴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예, 예에. 이, 이래봬도 정보 단체니까요.”

이세영은 발개진 얼굴로 들릴락 말락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와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마력감지 카메라를 갖고 있었을 줄은 미처 몰랐군. 이게 얼마짜린데.

잠깐만. 혹시…. 익살꾼 그 아저씨한테 훔쳐온 거 아냐?

“…그런데, 이것 역시 별로 특별해 보이진 않는데요?”

어쩐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마력패턴이 나타난 마력 사진을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그 값비싼 마력 사진에서조차 딱히 이렇다 할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꼼꼼히 뜯어봐도 특이할 만한 내용은 마력 사진에 찍힌 유영화의 마력 수준이 산군이란 이름값에 걸맞게 크고 아름답다는 것, 단지 그거 하나뿐이었다.

사진에서 시선을 뗀 내 눈에 약간의 실망감이 어렸다.

“자, 잠깐만요! 그, 그려주신 마법진 문양이 이, 이거였잖아요?”

서랍을 뒤진 이세영은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거칠게 찢어진 노트 한 장을 꺼냈다.

손때가 묻어 거뭇한 종이 쪼가리엔 내가 그녀에게 대충 스케치해줬던 아모스의 마법진이 삐뚤삐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 여기. 이 사진을 좀 봐, 봐주세요.”

이세영은 책상 위의 다른 사진 중 하나를 집어 들곤 내 눈앞에서 휙 뒤집었다.

“…!”

[…아니?]

이세영의 손에 들린 마력 패턴 사진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유영화와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있는 남성의 마력 패턴 위에, 아모스의 마법진과 유사한 문양이 희미하게 덧씌워져 있었다.

위철용의 표정이 돌연 심각하게 변했다. 찌푸린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이것, 이것도 봐주세요.”

이세영은 계속해서 사진들을 까뒤집었다.

그렇게 그녀의 손에 뒤집힌 사진 중 절반 이상에서, 나는 예의 그 수상한 마법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 보시는 대로 일반인들의 몸에 수상한 문양이 나타나 이, 있어요.”

이세영의 말대로, 마법진은 하나같이 유영화와 만난 남성 중 ‘일반인’들의 마력 패턴 위에 덧씌워져 있었다.

세부적인 형태는 조금씩 전부 달랐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아모스가 정춘성의 몸에 빙의헀을 때 사용한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놈과 동일한 형태의 마법진이라….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정말로.”

일단은 고생한 이세영에게 감사를 짧게 표한 뒤.

나는 예의 그 마법진과 유사한 문양이 나타난 사진들을 따로 분류해 일렬로 늘어놓았다.

그렇게 따로 분류해둔 사진들을 바라보는 내 눈빛이 깊어졌다.

“…….”

유영화….

회귀 전엔 말조차 섞어보지 못했던, 그야말로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내가 유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라곤, 그저 한 다리 건너 풍문으로 들은 것이 전부였다.

유영화에 대한 ‘풍문’ 속에서도, 딱히 부정적인 소문이나 수상한 것들은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뒤져, 유영화에 대한 정보를 되새기려는 찰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

…잠깐만. 분명, 회귀 전에 그녀는 티르리니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졌었지?

그리고 아모스는 정춘성의 몸에 빙의해 티르리니를 풀어놓았고….

티르리니에게 살해당한 유영화, 티르리니를 소환한 아모스.

머릿속으로 아모스와 유영화 사이에 티르리니라는 연결고리가 떠올랐다.

[고리문양, 흐음…. 어디서 낯이 익은 모습인데….]

위철용의 태도 또한 심상치 않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잔뜩 얼굴을 찌푸린 그는 자신만의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었다.

…충분히 수상해. 조사해 볼 만한 가치는 있겠어.

-파츠츠츠.

유영화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내 눈이 황금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금빛 안광이 아지랑이처럼 눈에서 줄기줄기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

“저, 정말 도, 도움이 되었을까요?”

생각을 정리한 나는, 책상 위에 흩어진 사진들을 정돈하여 도로 봉투에 넣었다.

문양이 나타난 사진들은 따로 추려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이세영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조금 전에 내가 감사 인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새삼스레 물어보는 모습이 딱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말해 뭐합니까….”

이세영의 새삼스러운 태도에 부응하듯 모호하게 말끝을 흐린 나는, 그녀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그리곤 이세영의 갈 곳 없이 이리저리 떨리는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진중하니 낮고 굵은 목소리로, 짧게 감사를 표했다.

“…아. 아으아. 으으….”

겹쳐진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뜨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무언가에 마치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세영의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의 열기어린 눈빛은 멍하니 풀리다 못해, 아예 초점을 잃어버렸다.

“…결혼식은…에서. 손자 이름은….”

…아무래도 내 감사 인사가 지나칠 정도로 이세영의 기대에 부응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아예 망상 속 자신만의 세계로 혼자만의 달콤한 허니문을 떠나버렸다.

아들 세대를 뛰어넘어 손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그녀의 입에 침이 주르륵 흘렀다.

[…빌어먹을.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군. 무공에 관련된 것인가?]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있으셨나 보죠?’

자신만의 세계로 떠나버린 이세영을 보며 씁쓸하게 웃고 있으려니, 마치 바톤터치하듯 자신만의 생각에 잠겼던 위철용이 욕설을 내뱉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신묘한 그림을 본 순간, 무언가가…. 끄응. 떠올랐다만. 그것이 뭔지 기억이 나진 않는군. …그건 그렇고 얘는 또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게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위철용은 생각을 털어내듯 거칠게 벅벅 머리를 긁었다.

오죽 갑갑한 모양인지 바닥에 침을 탁 뱉어내며 불평을 토하던 그의 시선이 갑자기 이세영 쪽을 향했다.

‘손 한 번 잡아줬더니 이렇게 됐네요.’

[제법 비상한 소질을 타고난 것 같긴 하다만. 이렇게 애욕에 약해서야. 쯧쯧.]

위철용은 그런 이세영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이세영이 소질을 타고 났다구요?’

[암. 아마 본존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능히 본교의 암영각주가 되고도 남았을 인재이니라. 혹은 살문의 전설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놀랍게도 위철용의 입에서 흔치 않은 고평가가 나왔다.

회귀 후에 다양한 인물과 만났지만, 그가 이 정도 반응을 보인 것은 김혜옥 이후 처음이었다.

‘확실히…. 태백의 감시망을 뚫고 이렇게나 사진을 찍어왔다는 게 대단하긴 한데요….’

생각해보니 사실, 이세영이 저지른(?) 짓은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산군쯤 되는 강자인 유영화의 초인적인 감각을 피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자체가 웬만큼 비범한 재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니까 말이지….

그러고 보니까. 대단하긴 하네.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거야?

[천성적으로 타고난 기질조차 몸을 숨기는 일에 특화된 인재이니라, 허 참. 시대만 잘 타고 났어도 전설적인 살수가 될 수도 있었을 인재가 때를 잘 못 만나다니. 쩝.]

이어지는 위철용의 고평가에 나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넋을 잃은 이세영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얼굴엔 진심으로 아깝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

…잠깐만. 저 표정 어째 낯이 익은데?

그런 위철용의 모습에 나는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릿속엔 의구심이 급작스레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어르신, 호, 혹시, 이번에도 회귀 전엔 그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셨던 겁니까?’

[흐음…. 그러고 보니 그렇군. 이 아해 역시 본존의 기억에 없는 이로구나. 내가 어찌 이 아이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을꼬.]

똑같다. 이세영 역시, 김혜옥과 똑같은 경우였다.

위철용은 대침식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하계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고 했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회귀 전의 이세영 또한 김혜옥처럼 대 침식 언저리에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어르신이 마음에 들어 할 정도의 인재들이. 그땐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다니.’

[…!]

‘회귀 전의 역사에서 그녀들은 어떻게 사망한 것인가?’

김혜옥을 볼 때마다, 계속해서 나를 괴롭혀왔던 의문이었다.

김혜옥은 물론이고 지금 내 눈앞의 이세영 또한, 분명히 범인 이상의 실력과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녀들이 지닌 재능의 반절만 개화시켜도, 충분히 역사에 이름을 남길 강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괴이하게도 회귀 전 역사에선 그녀들은 대 침식의 비극 속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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