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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64화 (64/309)

제64화

마을 주민들의 시신은 정춘식과 그의 동생이 살고 있다는 기왓집을 향해 쓰러져 있었다.

-끼이이익!

어둠달을 손에 까드득 힘껏 틀어쥐곤, 이따위 개짓거리를 저지른 원흉이 숨어있는 기왓집 문을 벌컥 열었다.

“어머, 바로 들어왔어?”

기왓집의 낡은 문이 열린 순간, 남성이 여성스러움을 흉내 내는 듯 괴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에 잠긴 방 한복판에서, 권태로운 자세로 소파에 턱을 괴고 누워있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경 써서 준비했는데. 어때? 내가 만든 뭐더라…. 그래! 네비게이션이 마음에 좀 들었어?”

나는 사내의 도발 섞인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재미있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까불거리듯 방정맞게 다리를 흔드는 사내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분명. 사내의 외모는 정춘식과 닮아 있었다.

특유의 중후함이 잘 살아있었으며, 사내답게 생긴 호방한 외모였지만, 하는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 외모와 행동의 갭이, 함부로 달려들 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이질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넌 또 뭐하는 놈이냐.”

“어라? ‘형’한테 듣지 않았어? 난 정춘식의 하나뿐인 귀여운 동생 정춘성이야.”

어울리지 않게 고혹스럽게 생긋 웃은 사내, 정춘성의 몸에선 도저히 인간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잘나가는 형에게 질투를 느낀 내가, 티르리니를 마을에 풀어버렸지. 어때 제법 흔한 이야기 아냐?”

정춘성은 낄낄거리며, ‘자신’의 행적을 자랑하듯 내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그리도 기껍고 유쾌한 모양인지, 그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고작 그 따위 진부한 이유로 마족을 풀어버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정춘성의 말을 일축하며, 나는 놈에게 살기섞인 비웃음을 보냈다.

그리고는 정춘성의 정체를 가늠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전히 요염한 미소를 지은 정춘성은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어머나. 나름 고심해서 만들어낸 이유였는데 유감이네.”

말을 마친 정춘성은 교태로운 몸짓으로 몸을 스르륵 일으켰다.

“그나저나…. 흐응. 이제 막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 판국인데. 티르리니를 단신으로 처치하다니.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는걸?”

몸을 완전히 일으킨 채,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정춘성의 몸에선 질식할 것 같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잇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힘으로 잡은 건 아니었네? 흐응. 약점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우연일까 아니면….”

흥미진진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정춘성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섬뜩하게 빛났다.

장난감 보듯 나를 바라보는 정춘성의 눈빛엔 어린아이 특유의 잔혹한 순수성이 깃들어 있었다.

“네놈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

-두근.

계속해서 놈과 대화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어둠달의 검은 심장에 내력이 모였다.

창신에 새겨진 마력회로를 타고, 증폭된 내력이 몸 속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어두컴컴한 어둠을 뚫고 내 눈에서 황금빛 안광이 피어올랐다.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안광 속에서 광폭한 살기가 고개를 들었다.

“네놈이 뭐하는 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고한 이들을 학살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으스스하게 중얼거리는 입꼬리가 스르륵 말려 올라갔다.

비쭉 드러난 송곳니에서 광기가 뚝뚝 묻어 나갔다. 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울컥거리며 맥동하는 검은 심장이 난폭한 힘을 전신에 불어넣었다.

“흐응 반반하게 생겼는데. 몸으로 먼저 대화하는 타입인가 봐?”

순간, 정춘성의 눈빛이 흉험하게 번뜩인다. 싶더니,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살기가 느껴지자마자,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로 놈의 공격이 보였다.

-부와아악!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운룡보가 발동되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내 눈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흐응. 제법이네? 솔직히 못 피할 줄 알았거든.”

입가를 가볍게 핥은 정춘성의 목에 검붉은 핏줄이 비친다 싶더니, 놈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정춘성이 육신이 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이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놀기엔 충분할 거야.”

변이를 끝마친 정춘성의 모습은 굉장히 흉측했다.

놈의 피부는 마치 누더기를 이어 붙인 것처럼 꿰맨 자국이 많았고 군데군데 색이 다른 피부 조각도 섞여 있었다.

길게 늘어난 척추, 흉측하게 자라난 손발톱, 길게 빼어문 혀까지, 마치 인간을 악의적으로 뒤틀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콰앙!

변이한 정춘성이 네발로 땅을 박찼다. 놈의 몸놀림은 야수와도 같았다.

굶주린 늑대가 질주하는 것처럼 재빨랐고, 성난 곰이 포효하듯 난폭했다.

-부와아아악!

정춘성이 휘두른 커다란 손에서 흉측한 이형의 발톱이 번뜩였다.

황금빛 시야에 들어온 놈의 공격 궤적은 그야말로 야성적으로 기상천외했다.

놈의 투로를 감지한 순간, 어느새 흐릿하게 움직인 어둠달의 창날이 춤추는 것처럼 허공을 노닐었다.

-썩둑!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썽둥 잘린 거대한 팔이 하늘 높이 튀어 올랐다.

코가 얼얼해지는 비릿한 악취와 함께 시커먼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어머?”

하지만, 팔이 잘린 정춘성의 얼굴엔 여전히 장난기를 가득했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인지, 놈은 잘려진 단면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카아아악! 이라고 비명이라도 질러줄까? 흐응. 과연, 티르리니의 육신에 상처를 입힐 정도는 되네.”

잘려나간 팔을 들어, 슬쩍 단면을 살펴본 정춘성이 눈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흉측하게 변이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깃들었다.

“크읏!”

그 여유로운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있는 힘껏 다시 한 번, 놈에게 어둠달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어둠달의 창날이 굶주린 이무기처럼 정춘성의 육신을 물어뜯었다.

은밀하게 사각을 노리며, 짓쳐들어 간 창날은 정춘성의 머리를 잔혹하게 유린했다.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육신에서 피와 살점이 정신없이 튀었다.

《이런, 이런 역시 필멸자들이란 야만스럽다니까.》

“…진짜 뭐 하는 놈이냐?”

이건 또 뭐야…?

놀랍게도.

얼굴이 완전히 박살났음에도 불구, 정춘성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래턱을 비롯한 발음기관이 완전히 날아갔지만, 여전히 능글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내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되고 있었다.

《말했잖아. 미리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않겠냐고.》

…빙의체인가.

빙의체.

회귀 전에도 몇 번 겪어본 유형의 적이었다.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의 육신을 빌어, 그 안에 빙의된 채 자신의 의지력을 행하는 상태였기에, 평범한 방법으론 놈들을 상대하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잠시 얼굴만 볼까 했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걸? 얼굴도 그만하면 반반하고. 실력도 제법….》

-할짝.

정찬성, 아니 놈에게 빙의된 존재는 남은 한쪽 눈으로 고혹적인 눈빛을 보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혀로 내 몸을 핥는 듯한, 더럽고 소름끼치는 기분이 엄습해왔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쪽 취향엔 별 관심이 없거든?”

으스스한 살기를 흩뿌리며, 나는 다시 한 번 창대에 내력을 주입했다.

시커멓게 넘실거리는 어둠달의 창날이 불길한 기운을 머금었다.

《어머? 미안하지만. 지금의 내게 그쪽의 공격은 전혀 소용이 없을텐데?》

“그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

-푸욱!

시커먼 기운이 넘실거리는 창날이 다시 한 번 정춘성의 비대한 육신을 관통했다.

두꺼운 거죽이 마치 연한 두부처럼 푹 꿰뚫렸다.

《흐흥. 어차피 이 육신은…. 아얏!》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은 목소리로 능글거리려던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마치, 책을 읽다 종이에 손을 베인 듯, 고통보단 놀람이 섞인 비명이었지만.

충분히 놈에게 충격이 전달되었다는 것만은 명확했다.

놈이 내지른 비명에 나는 슬쩍 입매를 비틀었다.

역시 통하는군.

“이 육신이 뭐? 고작 빙의한 대상에 불과하니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글쎄…. 아닌 것 같은데.”

《…깜짝이야. 제법이야? 영체에 직접 타격도 할 줄 알고.》

“뭐, 지닌 재주가 꽤 많아서.”

빙의체를 상대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놈의 본체와 연결된 영체에 직접 타격을 주는 것었이다.

내력을 머금은 어둠달의 창날이 정춘성의 육신과 연결된 놈의 영체를 직접 타격했다.

-푸우욱!

이죽거리며, 정춘성(이었던 것)의 육신에 창날을 힘껏 밀어넣었다.

일렁거리는 시커먼 기운이 놈과 연결된 영체를 게걸스럽게 탐했다.

《흐응. 영체를 타격할 줄 안다면. 이쪽에서도 가볍게 넘길 순 없지. 다르게 놀아보자구.》

-까드드득!

정춘성에게 빙의한 존재가 뜻 모를 소릴 지껄인 바로 그 순간.

정춘성의 육체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박살난 신체부위가 순식간에 다시 자라났다. 몸이 통째로 변이되기 시작했다.

“어때. 예쁘지 않아? 역시 맨 눈으로 보니 더 잘생겨 보이네.”

또 한 번의 변이를 마친 정춘성의 육신은 원본과는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상반신은 인간 여성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하반신은 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얼굴엔 마치 구름 같은 어둠이 드리워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대면인사의 기본은 통성명이지. 내 이름은 아모스. 그러니까…. 이번 게임에선 뭐더라. 그래, 너희들 말로는 마족쯤 되는 존재야.”

정춘성, 아니 아모스는 요염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장난스레 허리를 숙였다.

스스로를 마족이라 언급하는 놈의 이름은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

게다가….

애초에 지금처럼 빙의한 대상의 육체를 장악해. 자신의 화신으로 삼는 경우는 겪어본 적도 없었다.

뭐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말도 안 돼.]

아모스의 이름을 들은 위철용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멍하니 중얼거리는 그의 입에선 명백히 이질적인 당황과 불신의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아, 아모스라니!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녀 역시 인과율의 ## 속에 ## 한 존재!]

혼란스러워하는 위철용의 입에선 또 잡음 섞인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건….

머릿속이 와락 복잡하게 엉켰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모스…? 마족?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군. 뭘 꾸미고 있었던 거지?”

“어머? 내 영체에 타격을 입힌 상은 딱 내 이름을 알려주는 것까지야….”

-쉬르르르

요염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아모스는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방울뱀이 먹잇감을 유혹하듯, 놈 역시 하반신의 뱀 꼬리로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알고 싶으면, 더 재롱 떨어봐.”

아모스는 고혹적인 움직임으로 도발하듯 내게 손짓했다.

“그렇다면. 소원대로!”

-두근!

나는 이를 아드득 깨물며 어둠달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아모스라는 놈이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직감한 만큼, 처음부터 만전을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쩌엉!

“어머나. 귀엽기는. 필멸자 치곤 꽤 날쌘데?”

“…!”

검은 심장으로 인해, 증폭된 내력과 그것을 이용한 운룡보로 인해, 나의 움직임은 인간의 눈으로는 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아모스에겐 아니었다.

기습적으로 내지른 어둠달의 창날이 간단하게 손가락 한 개에 막혀버렸다.

“자, 이젠 내 차례야. 한 번 막아내 봐. 혹시 알아? 뭔가 알려줄지.”

교태롭게 손을 들어 올린 아모스의 등 뒤에서 별안간 커다란 날개가 자라났다.

마치 박쥐의 그것과 같은 날개가 놈의 등 뒤에서 공작처럼 촤악 펼쳐졌다.

-펄럭!

“크읍!”

단순한 날갯짓이었지만 그것이 불러온 위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잠깐의 날갯짓 속엔 셀 수 없이 많은 바람의 칼날이 숨어있었다.

-채챙! 채채챙!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어둠달을 휘둘러, 내게 날아드는 바람의 칼날을 모조리 쳐냈다.

“조금 더 놀아보자구. 네 실력은 그 정도가 아니잖아?”

그렇게 바람의 칼날을 쳐내고 있는 사이, 어느새 바짝 접근한 아모스가 내 귀에 대고 교태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콰직!

어둠달이 시커먼 빛을 뿌렸다. 창날이 아모스의 턱 아래를 관통했다.

아니, 관통했다고 생각한 것은 단순히, 내 착각이었다.

창날은 아모스를 지나쳐, 애꿎은 벽에 틀어박혔다.

“무식한 남자는 인기가 없다는데. 아니다. 외모는 볼만하니까. 이걸 나쁜 남자인가 뭔가 하는 거라 해야 되나?”

아모스는 똬리 튼 몸을 여유롭게 일으켜 세웠다. 가볍게 농담을 지껄이는 놈의 태도에선 여유가 뚝뚝 묻어나왔다.

“치잇!”

-우우우웅!

어둠달의 창날이 벌떼가 우는 듯한 소리를 토해냈다.

덜덜 떨리며 진동하는 창날이 여섯 마리의 시커먼 용을 토해냈다.

-콰콰콰콰콰콱!

여섯 마리의 용이 아모스의 몸통을 물어 뜯어갔다.

하지만….

“진부하긴.”

-펄럭!

다시 한 번 아모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갯짓을 했다.

칼바람 속에 숨어든 바람의 칼날이 여섯 마리 용에 담긴 내력을 산산히 분쇄시켜버렸다.

“어머? 필멸의 육신이란 이렇게 나약하다니까.”

슬쩍 자신의 몸통을 내려다본 아모스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정말, 나와의 격돌을 단순한 놀이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아모스의 말투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마지막 한 방이야. 이걸 막아내면 인정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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