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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63화 (63/309)

제63화

고맙다느니, 낙오자들의 왕이니 뭐니 하는 묘한 소리를 남긴 뒤,

티르리니는 웃는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멈췄던 시간이 거칠게 흘렀다.

티르리니의 거대한 사체와 함께 우당탕 넘어진 나는, 멍하니 앉아 그, 아니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을 더듬었다.

“…낙오자들의 왕이라고?”

혀를 굴려 낯선 단어를 발음해봤지만, 익숙지 않은 말이었다.

머릿속이 구름에 끼인 듯 흐릿했다. 낙오자들의 왕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뭐? 낙오자들의 왕?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내 혼잣말에 위철용이 과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황한 듯한 표정에선 강한 부정과 의문이 동시에 느껴졌다.

보아하니, 그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티르리니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를 전혀 알지 못한 눈치였다.

“조금 전, 티르리니가 그랬어요. 저보고 낙오자들의 왕이라고. 뭔지 모르지만 고맙다고도 했구요.”

[…티르리니가 말을 했다고? 말도 안 돼!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주워들은 게냐!]

…이상하다.

과할 정도로 격앙된 위철용의 반응은. 평소의 그의 모습과는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낙오자들의 왕부터, 티르리니에 이르기까지. 그는 계속해서 티르리니와 관련된 주제에 관해 격렬한 부정으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단호하게 부정만을 표하는 위철용의 모습에서, 나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뇨. 주워들은 게 아니라. 분명히 티르리니 본인에게서….”

[어허! 놈은 인과율에 의해서 ##된 존재이니라.]

아무래도 뭔가 아는 것이 있는지, 위철용은 티르리니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였으나,

이번에도 인과율과 관련된 부분이 말썽을 일으켰다. 그가 한 말 중 정작 중요한 부분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껴서, 나는 도저히 그의 말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네?”

[후우…. 애초에 마족이란 존재가 인과율에 의해 ##된 존재라니까. 어째서 본존의 말을 알아듣질 못하는 게냐.]

갑갑한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린 위철용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것에 관해 내게 다시 설명했으나. 이번에도 알 수 없는 노이즈에 막혀, 난 도저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

이 역시 이상했다.

그동안 위철용은 자신의 말이 잡음에 묻혀 검열될 때마다. 강렬한 짜증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짜증을 내는 대상이 검열을 실시한 ‘무언가’가 아닌 ‘나’ 였다.

무엇보다 자유를 방해받기 싫어하는 위철용이 보여주는 태도라기엔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낙오자들의 왕이라니! 건실하게 잘살고 있는, 네놈이 어찌 패배자 놈들 따위의 왕이란 게냐!]

계속해서 터져 나온 어색한 반응.

낙오자라는 존재에 대해, 갑자기 위철용이 알 수 없는 적개심과 혐오를 유감없이 표출했다.

그가 낙오자에게 지닌, 이상할 정도의 강한 악감정에 기묘한 위화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선악 개념을 떠나, 강자룰 인정하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위철용이 저렇게 반응하다니.

이상해, 지금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마치….

-띠릭

「낙오자와의 만남으로 인해, 접촉할 수 있는 낙오자가 해금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낙오자라는 존재에 관해 아낌없는 혐오를 표하는 위철용의 이질적인 모습에 의문을 품으려던 찰나, 시스템 창에 별안간 낯선 메시지가 떠올랐다.

-부우웅.

메시지가 뭘 뜻하는 것인지, 미처 의문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갑자기 내 눈앞에 황금빛 수레바퀴가 나타났다.

낙오자들의 진혼곡 특성을 습득했을 때, 나타났던 것과 똑같은 수레바퀴는 내 시야를 가득 메운 채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물에 투신한 황녀

-벗에게 독살당한 광대

-동백나무에 목을 맨 직공

-티르리니

수레바퀴 위에 음각된, 접촉할 수 있는 낙오자들의 명단에 티르리니의 이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뭐…?”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에 의문을 표하려는 찰나,

낙오자들의 명단 위에 새겨졌던 티르리니의 이름이 별안간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다.

-빛에 먹혀버린 어둠의 여인

그리곤 명단 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으로 튀어 보였던 티르리니의 이름이, 다른 이들과 유사하게 원래 정체에 대한 은유가 담긴 형식으로 수정되었다.

…뭐지 이건? 티르리니도 낙오자였단 말인가?

[왜 그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게냐?]

“…아뇨.”

불현듯 머리를 스친 의문에.

반사적으로 위철용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말을 뚝 끊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위철용이 티르리니에 관련된 주제에 이상하게 반응한 것으로 미뤄보건대.

현재 위철용의 입에서 딱히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확실히…, 지금의 위철용은 뭔가 굉장히 이상했다.

평소의 그와는 달리, 지금의 위철용은 마치 ‘정해진’ 반응을 보이게끔 프로그래밍 된 게임 속 NPC 같아 보일 정도다.

“…상태창 오픈.”

머릿속을 가득 채운, 위철용의 이질적인 반응을 잠시 접어둔 채.

나는 상태창을 열어, 낙오자들의 진혼곡의 설명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낙오자들의 진혼곡』

분류 : 발동형

등급 : 초월

효과 : 멸망한 세계에서 끝까지 분투했었지만, 끝내 낙오해버린 낙오자들의 힘을 빌려옵니다.

낙오자들의 진혼곡은 내가 별자리 인도석을 우연히 실수로 부숴 먹고 얼떨결에 얻은 스킬이자, 원 역사에선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스킬이었다.

스킬 설명에 적힌 바에 따르면, ‘낙오자’라는 존재의 정의는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끝까지 분투하다 ‘낙오’한 이들이라 하였다.

하지만, 티르리니의 사례도 그렇고 위철용의 수상쩍은 반응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 ‘낙오자’라는 존재들에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이 낙오자들의 진혹곡 스킬을 사용하면서,

명단 속의 낙오자들 중 벗에개 독살당한 광대의 기억과 여러 차례 동기화하였다.

동기화율이 낮기에, 대부분의 기억이 전부 허무하게 쓸려 사라졌지만.

드문드문 남아있는 기억으로 미뤄보건대. 그는 최소한 이곳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이곳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식생, 몬스터, 마법 등등이 공존하는 세계의 사람이었지.

그리고, 또 다른 낙오자인 티르리니는 귀족급 마족이었다.

“끄응….”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연결고리가 없었다.

심지어, 예전 위철용이 낙오자라는 존재에 대해 해줬던 설명조차 이들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그때 그가 해준 말에 의하면, 성좌의 격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것에 도전했으니만큼 강력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귀족급 마족이었던 티르리니도 낙오자라고?

게다가, 이 ‘낙오자들의 진혼곡’이란 특성 역시, 타 스킬에 비해 이질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단적인 예로, 이것을 처음 얻었을 때. ‘사용자의 레벨이 낮다.’라는 경고문과 함께 ‘현 레벨’에서 접촉할 수 있는 낙오자들의 명단만을 불러온다는 안내문이 출력되었다.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적용되는 스킬이 한 두 개가 아니었기에,

낙오자들의 진혼곡 역시, 나의 레벨을 기반으로 하여 접촉 대상이 달라지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동안 레벨을 그렇게 많이 올렸음에도 불구, 그 ‘접촉할 수 있는’ 낙오자의 수는 지금까지 전혀 늘지 않았었으니까 말이지.

그런데, 티르리니와 접촉하자, 별안간 명단에 그의 이름이 새롭게 추가되어버렸다고?

…모르겠군.

“…….”

[애초에 마#의 #체가 뭔지 아느냐? 그것은 ##가 ###되어 ####….]

조금 전부터 위철용은 뭔가를 계속 말했지만, 그의 말엔 계속 잡음이 끼어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말문이 계속 막히는 것이 짜증날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기계적으로 자신이 할 말 만을 내뱉고 있었다.

-타다닥!

“괜찮아. 용호?”

그렇게 혼란에 빠져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어느샌가 내게 달려온 양소혜가 걱정 어린 말투로 내 안부를 물었다.

“…응. 괜찮아.”

양소혜의 얼굴을 보며, 잠시 의문을 접었다.

그제서야,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양소혜의 얼굴 너머로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을 잃은 아이의 울음소리, 희망에서 절망의 끝으로 떨어진 여인들의 흐느낌 소리.

동료와 가족을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남성들의 통곡소리.

모든 게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젠장.

****

티르리니의 등장은 짧았지만, 그녀가 마을에 입힌 피해는 막대했다.

마을을 빙 둘러싼 방벽은 한쪽이 통째로 무너져 버렸고, 나머지 방벽의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고 민철이 아부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라고오!

-엄마! 아빠아! 눈 좀 떠봐아.

인명 피해가 막심헀다.

그 짧은 시간동안 들이닥친, 티르리니의 백골들은 마을 사람들 수십명을 살해해버렸다.

마을 광장에 임시로 안치해놓은 시신을 붙잡은 유족들은 마치,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었다.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조차 슬픔에 찬 이들을 포근히 덮어주지 못했다.

“설용호 헌터님? 저기 드릴 말씀이….”

씁쓸하게 참극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성식회의 길드장 정춘식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유난할 정도로 말을 아끼는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왜인지 심상치 않아보였다.

“…뭡니까?”

슬쩍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지만, 애써 태연한 척 침중한 얼굴로 정춘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직설적으로 그에게 용건에 관해 물었다.

“그것이 말입니다….”

뭔가 망설여지는 모양인지, 정춘식은 말하다 말고, 묘한 뜸을 들였다.

그렇게, 말을 끊고 잠시 아랫입술을 깨문, 정춘식은 이내 마음을 굳히는 데 성공했는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마을을 습격한 괴물에 대해, 제 동생이 할 말이 있다고 전해달라더군요.”

“할 말이라니요?”

“그것이…. 자기가 그 괴물을 소환했노라 자랑하더니, 깔깔 웃으며, 살아남은 공격대원들을 제 눈앞에서 모조리 살해했습니다요….”

정춘식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성질의 것이었다.

너무도 현실성이 없는 괴이쩍은 말에, 순간적으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성이 마비되었다.

지금, 뭐가 뭘 어쨌다고?

“…뭐라구요?”

“그리고는 갑자기 자기가 불러낸 괴물을 처치한 헌터를 보고 싶다며. 저더러 헌터님을 데려오라고…. 커흑!”

내가 의문을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춘식은 계속해서 제 할 말만 늘어놓았다.

그리곤 갑자기 눈을 허옇게 까뒤집더니, 입에서 피를 왈칵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

-커헉!

-크하학!

정춘식이 쓰러진 것을 시작으로, 시신을 수습하던 마을 주민들이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피를 토해낸 마을 주민들은 마치 제 몸이 일종의 이정표인 양, 한 방향을 향해 바닥에 풀썩풀썩 쓰러져 버렸다.

『이쪽이야♡.』

…어떤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악취미였다.

희생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글자를 이루었다.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혹은 당장이라도 찾아와달라 유혹하기라도 하듯.

꾸물거리는 핏속엔 익살맞은 하트무늬까지 떠올랐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개짓거리를….”

분위기에 맞지 않게 익살맞은 하트무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때늦은 황당함과 뒤늦은 분노가 저편에서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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