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61화 (61/309)

제61화

《케루루룩!》

정수리에 비죽 솟은 뿔과 흉측하게 비틀린 송곳니를 자랑하는 인간형 몬스터, 야크샤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으읏!“

아크샤의 표적이 된 남부연합 소속의 헌터는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불안을 품고 바들바들하게 떨리는 무기가 놈들의 강인한 남색 근육질 손과 충돌했다.

누가 봐도, 충돌의 결과는 불쌍한 헌터의 비극임이 명확해 보였다.

그러나….

-푸화하학

이변이 일어났다.

헌터의 무기에서 번들거리는 액체가 야크샤의 몸뚱이에 닿은 순간.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울룩불룩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야크샤의 육신이 마치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세, 세상에! 효, 효과가 있습니다!”

엉겁결에 야크샤의 뜨끈한 체액을 뒤집어쓴 헌터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소리쳤다.

온몸을 적신 비릿한 부산물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벅찬 환희를 이기지 못해 울먹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원수를 갚을 수 있겠군!”

“싹 다 조져버려!”

희희낙락한 목소리, 격정을 이기지 못해 잔뜩 격앙된 헌터들의 목소리엔, 야크샤에 대한 원한이 뚝뚝 흘러넘치고 있었다.

-퍼퍼펑!

《케루루룩!》

야크샤들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던 음습한 강변에 때아닌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남부연합 소속의 헌터들은 무기를 마음껏 휘두르며, 그동안 쌓인 앙금을 아낌없이 야크샤에게 풀어나갔다.

“놈들에게 꼬박 사흘을 시달렸는데, 이리도 간단히…. 이거, 남부연합이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사냥이 한창인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감시탑 위에서,

헌터들의 한풀이를 지켜보던 중년인, 정춘식이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남부연합의 산하 길드, 성식회의 길드장인 그는, 그동안 심하게 시달린 탓인지. 푸석한 피부에 눈 밑이 시커멓게 죽어있는 상태였다.

“아닙니다. 다 사람들 목숨 구하자는 일인데, 빚이라뇨.”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큰 피해를 입은 남부연합의 수송라인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정수를 잔뜩 실은 트럭들과 함께, 남부연합 산하 길드들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정수를 나눠주고 침식형 게이트 공략법만 일러주면 끝나는 간단한 일정이다.

하지만 나는 산하 길드를 방문할 때마다 그들이 게이트를 토벌할 때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으…! 달다. 솜사탕처럼 달아!

의도치 않게 깨달은 불로소득 때문이었다.

남부연합 헌터들의 무기에 발린 정수를 내가 손수 으깼기 때문일까.

괴이쩍게도 그들이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나는 일정량의 경험치를 그들과 나눠 받았다.

그동안 총 세 곳을 들렀는데, 가만히 앉아서 벌써 레벨이 두 단계나 올랐을 정도!

영문모를 불로소득은 상상 이상의 달달한 이득을 계속해서 내게 안겨주고 있었다.

그렇지, 사람이 착하게 살면 복이 오는 법이라니까.

“몬스터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돌보는 것이 헌터 아니겠습니까. 이까짓 정수 따윈 시민들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괘념치 마세요.”

모름지기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마음 씀씀이도 넉넉해지는 법이다.

여전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정춘식을 일으켜 세우며, 나는 입에 발린 덕담을 건넸다.

가만히 앉아서 날로 먹는 레벨 업의 쾌감에, 내 입가에 깃든 미소 또한 영업용이 아닌,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난 진심 어린 것으로 변했다.

[…본존이 모르는 새에 양심에 발모제라도 바른 게냐.]

그 모습에 위철용이 어이없다는 듯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 어깨 위에서 턱을 괴고 누워있는 그의 모습에선 지루함이 듬뿍 묻어나왔다.

‘뭐 어떻습니까.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 착착 쌓이고 있는데.’

안종훈의 창고에 쌓였던 값비싼 정수를 반절 이상 소모한 것이 조금 아깝긴 했지만,

지금 내가 얻고 있는 이득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출혈이었다.

정수를 제공하고 공략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남부연합 사람들에게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지.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벌 수 있지.

또, 이런 식으로 옆에서 생색 내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평판이 올라가지.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아니 가히 일거삼득이 아닐 수 없지.

“정말…. 헌터님께선 요즘 젊은 헌터들 같지가 않으시군요.”

철저히 실리만을 따지기로 악명이 높은, ‘서울 헌터놈’이 인명 운운하는 것이 신기한 모양인지, 정춘식은 왜인지 살짝 물기에 젖은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저희를 위해 애써 주시다니….”

물기에 젖어 촉촉하게 번들거리는 정춘식의 눈빛이 감동으로 물들어갔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 남성이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게 양손을 꼬옥 모은 모습이란,

미관상 가히 보기가 좋지만은 않았다.

끄응, 괜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양심이 콕콕 쑤시는데 말이지.

“크흠. 아무튼. 침식형 몬스터 정리가 끝나는 대로 게이트에 돌입해 정상적으로 클리어하시면 됩니다. 아마 몬스터들이 전반적으로 약해져 있을 테니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정춘식의 부담스러운 모습과 왜인지 가슴을 쿡쿡 찔러오는 양심에 멋쩍은 헛기침을 하곤,

나는 조용히 도망치듯 감시탑 아래로 내려왔다.

남부연합 산하 길드 관할의 마을들이 으레 그렇듯,

높다란 감시탑 아래에는 사방이 목책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생이랑 같이 나눠 먹으렴. 어머! 많이 있으니까. 싸우지 말고.”

감시탑 아래의 마을에 들어서자, 의외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신지현에게선 상상도 하지 못할, 자애로운 표정의 그녀가 아이들에게 먹거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뭐여 저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질적인 광경에, 나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가 알고 있는 신지현이란 작자는 이기주의와 속물근성에 찌들어 있는 구두쇠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저렇게 상냥한 표정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자애를 베푸는 모습이라니….

내 외모에 취해, 홀딱 넘어갔을 때 보여준 모습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세상에.]

그 초현실적인 모습에 위철용마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내 어깨 위에서 거의 떨어질 뻔한 위철용은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신지현을 바라보았다.

뭐지? 꿈인가?

“뭐에요. 그 표정은? 못 볼 거라도 보신 표정인데.”

그 해괴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신지현이 내 기척을 눈치 채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이 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서일까?

나와 시선이 마주친 신지현의 표정이 샐쭉하게 변했다. 자애롭던 말투도 특유의 톡 쏘는 말투로 변했다.

“아, 아니 매니저님 같은 노랭이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아차! 당황해서 그만 본심이 나와 버렸다.

“아, 아니 그러니까 매니저님께서….”

황급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그리 잘 되진 않았다.

이미 물은 쏟아졌고, 헛소리는 입 밖으로 튀어 나간 상태였다.

“뭐에요?”

나를 바라보는 신지현의 표정은 여전히 샐쭉하니 독이 올라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신지현의 모습에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났다.

“뭐…. 제가 평소에 좀 그렇긴 하죠. 이해해요. 인사팀 사람들도, 다들 처음엔 다 놀라니까.”

놀랍게도 신지현의 입에선 더 이상 독설이 날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평소 행실을 쿨하게 인정했다.

이 여자…. 오늘 뭔가 잘못 주워 먹기라도 했나?

아까 야크샤 정수 으깬 거 나눠주면서, 입맛 다셨던 것 같은데 설마….

“확실히 놀랍긴 하네요.”

계속해서 툭툭 튀어나오는 신지현의 의외의 모습에,

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들 처음엔 다 저렇다니까. 취미에요 취미. 가끔은 이렇게 취미 삼아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있어요.”

“구호 물품이요?”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부터 뒤따라왔던 트럭이 어째 생각보다 좀 많긴 했다.

철두철미한 성격의 신지현이니만큼, 뭔가 무기 같은 걸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거기에 구호 물품이 들어있던 거였어?

“네. 인사팀 사람들이랑 어려운 분들에게 구호 물품 전달하는 거 제 취미거든요.”

신지현은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인사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길이 닿은 곳에선 인사팀 직원들이 마을 어린이들에게 과자며 장난감 등을 나눠주고 있었다.

“감짜합니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에게 준비한 인사팀 직원들의 표정은 굉장히 밝아 보였다.

“…이게 매니저님 취미라구요?”

[취미라고?]

위철용과 나는 거의 동시에 똑같은 내용을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지? 이 여자? 내가 아는 그 신지현이 맞기는 한 건가?

신지현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자,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써봤지만, 내가 알고 있던 신지현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평소의 강렬한 인식 탓에 그녀의 이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지독한 계집이 저렇게 자애로울 리가 없다. 필시…. 필시 둔갑에 능한 요물이 그녀로 둔갑한 것이 분명해….]

위철용 역시, 도저히 신지현의 이면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괴이쩍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자애로운’ 모습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구호 물품입니다. 구호 물품. 몸에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좋아요.”

엉겁결에 분위기에 휩쓸려, 신지현이 준비한 구호 물품을 나눠주게 되었다.

평소에도 취미 삼아 하고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는지, 그녀가 준비한 구호 물품은 마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얼굴도 고우신 분께서 마음씨도 어찌 이리….”

내게서 상자를 받아든 중년인이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의 눈엔 진심 어린 감사가 깃들어 있었다.

[허 참, 아직도 믿지 못하겠구나. 그 독한 계집이 어찌 이런….]

위철용의 말처럼, 나 역시 아직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엉겁결에 신지현에게 구호물품 상자를 나눠달라 전해 받았을 때부터, 머리가 멍했다.

그 정도로 신지현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거의 여우가 스스로의 모피를 벗어주는 모습마냥 내겐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질적인 것이었다.

저렇게 따스한 이면을 지닌 여자가 회귀 전엔 그렇게 악독한 모습만을 보여줬다고?

‘그러게요. 그땐 정말 대단했었는데.“

회귀 전의 신지현은 비단 내게만 악독하게 군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의 몸으로 길드의 운영진 자리까지 올라간 그녀는, 부패한 태백의 앞잡이가 되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었다.

그랬던 신지현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고?

“….”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납득하기 싫었다.

모든 것이 그저 혼란스럽게만 다가왔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이 몽롱하니 현실감이 없었다.

자애롭게 웃는 신지현과 인사팀 직원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것도.

그것을 받아 든 사람들이 밝게 웃음 지으며, 감사를 표하는 것도.

튼튼한 목책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며, 백골의 시체들이 턱주가리를 따각거리며 나타난 것도.

무기를 꼬나쥔 해골들이 멍한 표정의 마을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한 것도.

내게서 구호물자를 받아들었던 중년인이 놈들의 칼날에 반으로 갈라지는 것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빠지지직!

-꺄아아아악! 아빠아아아!

[지금 뭘 멍하니 있는 게냐!]

위철용의 다급한 일갈이 나를 퍼뜩 현실로 돌려놓았다.

환상처럼 흐릿하게 느껴지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현실로 느껴졌다.

“피해! 얘들아! 어서!”

다급한 표정의 신지현이 어린아이들을 껴안고 뛰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여전히 이질적인 그녀의 모습에 아랫입술을 까드득 씹었다.

짓씹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비릿하니 짭짤한 핏물에 이성이 냉철하게 가라앉았다.

“받아! 용호!”

눈에서 투지를 줄기줄기 뿜으며 달려온 양소혜가 내게 어둠달을 던지듯 전해줬다.

“어떻게 된 거야!”

어둠달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나 역시 눈에서 투지를 뿜어내며, 그녀에게 따지듯 물었다.

“모르겠어! 침식형 게이트에서 갑자기 놈들이…!”

-콰지직!

중간에 말을 뚝 끊은 양소혜는 벼락같이 튀어 나가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는 해골의 머리를 박살냈다.

-콰드드득!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달려들어 해골들에게 어둠달을 휘둘렀다.

시커먼 창날에서 풀려나온 어두컴컴한 기운이 놈들을 산산히 조각냈다.

계속해서 정신없이 밀려드는 해골들을 상대하며, 한편으론 상황파악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이곳의 게이트에서 언데드형 몬스터가 튀어나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침식형 게이트는 그 내부의 정보를 바탕으로 주변을 침식하기 마련이다.

침식당한 이들이 야크샤로 변이된 것으로 미뤄보면, 이곳의 침식형 게이트 내부엔 야크샤 계통의 몬스터들만 들어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하얀색 해골…?

“…!”

순간, 부서진 목책 사이로 들어오는 새로운 해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은 조금 전 게이트에 진입했던, 남부연합 소속 헌터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회귀 전, 태백을 덮쳤던 비극 중 하나가 지금의 상황과 겹쳐졌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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