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59화 (59/309)

제59화

한참을 달린 듀라한과 자동차 무리는 양소혜의 안내에 따라. 남부연합의 거점에 도착했다.

”…이봐요. 여기가 당신네 거점이라고요? 당신네 남부연합이 ‘독특한’ 문화를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 치곤 여긴 너무 지나칠 정도로 개성이 넘치는 것 같지 않아요?“

눈 앞에 펼쳐진 거점(?)의 위용에, 신지현이 질린 목소리로 나직하게 신음을 토했다.

그녀는 특유의 비꼬는 말투로 양소혜에게 힐난하듯 쏘아붙였다.

”확실히, 여기가 맞지?“

”응. 여기가 확실한데….“

침음성을 흘리며, 거점을 바라보는 양소혜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 시무룩한 모습에, 계속해서 뭐라 톡톡 쏘아붙이려던 신지현조차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끄오오오오!》

여긴 거점이 아니라. 거점(이었던) 곳이 되어버렸군.

우리는 모두, 한때는 남부연합의 거점이었다는 폐허를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은 몬스터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까드득 까드득

반쯤 파괴된 전형적인 시골 기와집 사이사이로 계속해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살점이 조금씩 남아있는 허연 백골들이 마치 철지난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무너진 지붕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뼈 부딪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퍼졌다.

《끄루루루뤄어어억!》

그리고….

남색 피부의 괴물들이 죽음이 내려앉은 폐허 위를 거닐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세배쯤 되는, 악취가 심한 근육질 거구.

눈꺼풀이 거의 없는 듯, 핏발선 동그란 눈동자가 툭 불거진 눈.

매부리코처럼 뾰족한 코와 어금니가 코끼리의 상아처럼 툭 튀어나온 특유의 구강구조.

트롤 중에서도 꽤 지능이 높은 축에 속하는 숲 트롤이다.

《크루룩 크룩 쿡쿡.》

《쿡쿡! 쿠루룩 쿡!》

하는짓으로 미뤄보건대, 미리 짐작한 대로 숲 트롤들은 침식당한 공격대원들인 것 같았다.

몸에 각인된 습관대로 놈들은 마치 공격대원들처럼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고, 놈들의 뒤틀린 육신엔 문신이며, 피어싱 등 그들이 인간이었던 시절의 흔적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숲 트롤이 남색 피부라니…. 헌터님 말씀이 옳았네요.”

무너진 벽 뒤에 몸을 숨김 채, 놈들을 관찰하던 신지현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랬다. 그녀 말대로 결정적으로 숲 트롤이란 몬스터는 원래 녹색 피부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폐허를 거닐고 있는 놈들의 피부색은 침식으로 변이된 몬스터의 상징인 짙은 남색이었다.

“…맞아. 다른 사람들도 저렇게 변해버렸어.”

변이된 숲 트롤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양소혜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신지현에게 맞장구를 쳤다.

놈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저 숲 트롤들. 원래는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칼바람 수비대 사람들이었을 거야.”

수비대.

항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에선 외진 곳에 방치된 게이트가 붕괴하여, 그곳에서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에. 남부연합에서 궁여지책으로 고안해 낸 제도였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적어도 내 손으로 빨리 편하게 해줘야겠어.”

양소혜는 굳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으드득 깨물었다.

슬픔으로 인해 촉촉하게 젖었던 그녀의 눈빛은, 이젠 투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편하게 해드리자. 그리고 남부연합 본부와 연락을 취하려면 저기 저 수비대 건물들을 수색해야 하는 거지?”

남부연합 본부는 굉장히 독특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광활한 지방 특성상, 남부연합의 본부는 따로 정해진 곳이 없이. 필요에 따라 영호남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따라서 본부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서라면, 남부연합에서 운영중인 거점에 남아있는 비밀암호를 일일이 대조해야만 했다.

…비효율적으로 보인다고? 당연하지. 이건 어디까지나 양석필 그 아저씨의 취향 때문이거든.

“…그건 또 어떻게 알고있는거야?”

양소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엔 조직의 비밀 중 하나를 외지인인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추궁이 담겨 있었다.

…아차. 아직까진 남부연합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지. 이걸 어떻게 수습한다….

“그, 그야. 길드장 님께서 알려주셨지. 찾아가려면 수고 좀 할거라고 하시면서.”

양소혜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나는 슬쩍 강태백의 이름을 팔았다.

“하긴, 아저씨께서 미리 알려주셨겠지…. 응. 본부의 위치는 딱히 정해진 곳이 없이 떠돌아다니니까. 마지막 교신 기록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강태백의 이름을 판 결과. 다행히 양소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서 고개를 돌려, 멀찍이 보이는 건물 하나를 창끝으로 가리켰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교신을 담당하던 아저씨는 저기에 살고 있었어. 저길 뒤져보면 되겠지.”

“차암. 스마트폰으로 연락하면 될 것을 왜 그리 힘들게 사시는지 원.”

계속되는 심각한 대화에 질린 탓인지.

신지현은 남부연합의 독특한 시스템을 비웃으며, 깐죽거렸다.

하지만 양소혜는 그녀의 도발에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양소혜는 신지현 쪽이 더 이상하다는 듯, 별 한심한 도시 촌놈을 다 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현 언니, 아까 내가 말해줬잖아. 여기선 전화 안 된다니까? 기지국 다 부서졌어….“

“예? 말도 안 돼요! 지난 번에 가족들이랑 전화했을 땐 잘만…. 어라?”

슬쩍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신지현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서렸다.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애쓰는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나는 쓰게 웃었다.

”매니저님, 아까 출발하기 전에 안종훈네 창고에서 정수 있는 대로 쓸어오라 부탁드렸었죠?“

침식당한 몬스터를 간단하게 퇴치하는 나만의 비법.

원래는 남부연합의 본부에 도착해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대 침식 진행속도에 나는 생각을 좀 바꿨다.

“네? 네에. 저 뒤쪽 트럭에 쌓아뒀어요.”

“그래요? 트롤 정수도 좀 있죠?”

어지간한 트롤 역시 3급 이상의 몬스터다.

때문에 높은 등급을 자랑하는 트롤의 정수 역시, 값이 절대 싸지만은 않았다.

그 값비싼 트롤 정수까지 챙겼냐는 질문에 신지현의 눈빛이 살짝 불안하게 흔들렸다.

“…있긴 할거에요. 아마. 서 기사님?”

“옙!”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신지현은 서민혁을 불러, 뭔가 지시를 내렸다.

신지현에게 뭔가를 전달받은 서민혁은 뒤쪽에 정차된 트럭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여, 여깄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넉넉하게 들고 왔습니다.”

잠시 후, 헐레벌떡 달려오는 서민혁의 품엔 트롤의 정수 여섯 개가 들려있었다.

”침식형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이 있다고 그랬지?“

서민혁에서 트롤의 정수를 받아든 난, 양소혜를 보고 씩 웃었다.

그녀의 눈빛에 의문이 감돌 새도 없이, 나는 다짜고짜 그 값비싼 트롤 정수 하나를 콰드득 손으로 짓이겼다.

-빠드드득!

“무, 무슨 짓이에욧!”

하나에 천만 단위를 넘나드는 고액의 정수 하나가 내 손바닥에서 으스러졌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돈지랄의 향연을 정면으로 목도한 신지현은 뾰족한 비명을 내 질렀다.

-츠츠츠.

으깨진 트롤의 정수에서 비릿한 액체와 함께 트롤 종 특유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주변을 휙휙 둘러본 나는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정수에서 흘러나온 액체를 꼼꼼히 펴발랐다.

그리고….

-툭.

그렇게 나는 정수를 펴 바른 돌멩이를 배회 중인 숲 트롤에게 다짜고짜 집어던졌다.

『쿠뤅?』

최대한 힘을 빼고 살짝 집어던졌기에, 돌에 실린 힘은 고작해야 일반 성인 남성 수준이었다.

때문에, 돌멩이를 머리에 얻어맞은 불운한 숲 트롤은 별로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얼마 짜린데….”

새롭고 참신한 돈 낭비의 현장에 경악한 신지현이 내게 뭐라 말을 꺼내려던 그 순간!

-퍼퍼퍼펑!

마치 폭죽 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숲 트롤의 머리가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숲 트롤은 잠시 허공을 허우적 더듬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효과 전혀…. 있네요?”

“말도 안 돼. 트롤의 질긴 가죽은 웬만한 힘으로는 뚫는 것조차 불가능한데….”

똑같이 멍한 표정의 신지현과 양소혜가 서로 비슷한 평을 내놓았다.

”침식형 게이트 특유의 파동에 잠식당해 변이된 몬스터는, 그것의 원종, 혹은 근연종의 정수에 이런 식으로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거든요.”

-퍼퍼펑!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이번에도 돌멩이를 집어 던지자.

돌멩이에 담긴 트롤의 정수에 노출된 숲 트롤의 머리가 또 박살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정수에 살짝만 노출시켜줘도. 효과가 직빵이죠.”

“세상에, 그럼 안종훈의 정수창고를 싹 쓸어오라 하셨던 게, 바로 이걸 노리셨던 거네요?”

멍한 표정의 신지현이 신음하듯 중얼거린 질문에, 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굉장한 부와 권력을 쌓은 안종훈답게, 그의 창고엔 어지간한 몬스터의 정수는 다 준비되어 있었다.

굳이 그녀와 인사팀을 시켜, 안종훈의 창고에 있던 정수를 싹 쓸어오게 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뭐, 그렇죠. 팔면 돈이야 좀 만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돈보단 사람의 목숨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그게 헌터님께. 무슨 이득이 된다고….”

왜인지 얼굴을 붉힌 신지현이 경외하는 듯한 표정으로 홀린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손해 따위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뭐, 지금 당장은 좀 손해를 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남부연합에 빚을 지워줄 수만 있다면.

이따위 정수값 따윈 충분히 받아내고도 남을테니까.

“자자, 그렇게 보고만 있지들 말고. 직접 따라해보세요. 이렇게 듬뿍 정수를 묻혀서….”

그렇게 대충, 정수를 이용해 침식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

나는 인사팀 팀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트롤의 정수가 듬뿍 묻은 돌멩이를 쥐어줬다.

-퍼퍼퍼펑!

정수가 듬뿍 묻은 돌멩이들이 요란하게 하늘을 수놓자.

한때 칼바람 수비대의 거점이었던 폐허엔. 때 아닌 불꽃놀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

요란했던 불꽃놀이가 잦아든 뒤.

양소혜는 체액이 흥건한 폐허 속에서 교신기록을 찾아내었다.

“본부의 위치는…. 으음. 꽤 가깝네?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맛살을 찌푸린 양소혜가 찾아낸 기록을 분석한 결과.

의외로 남부연합의 본부는 은근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

“흐억…. 헉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오.”

물론, ‘은근히 가깝다.’의 기준은 헌터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지만.

양소혜의 안내에 따라, 한 시간 쯤 산길을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가자.

신지현의 입에선 거친 숨소리와 함께 곡소리가 튀어나왔다.

“꿀꺽…. 케헥! 서 기사님? 물 달랬지. 누가 술 달랬어욧!”

“마, ‘마실 것’이라 하시길래. 당연히 팀장님 취향대로….”

“아무리 그래도. 등산하다 위스키 마시는 또라이가 세상에 어딨다고!”

“지난번 야유회 때도. 드, 등산 도중 위스키를 물처럼 마시지 않으셨습니까.”

서민혁과 신지현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쓴웃음을 지으려는 사이.

갑자기 주변 풍경이 탁 트이며, 남부연합의 본부가 주둔 중인 널찍한 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 하계에도 아직 이런 곳이 남아있었다니….]

남부연합의 본진은 회귀 전에도 딱 두 번만 와봤지만. 언제와도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곳이다.

어찌나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던지, 침묵을 유지하던 위철용마저 어느샌가 튀어나와서는 탄성을 내지르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렇듯, 위철용이 경탐을 금치 못할 정도로, 이곳은 어디 삼국지나 수호지 등 중국풍 전쟁소설의 풍경을 뚝 떼다가 그대로 구현해놓은 느낌이었다.

-펄럭!

드넓은 분지엔 이국적인 천막이 잔뜩 쳐 있었고, 오글거리는 글귀들이 적힌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제멋대로 나부끼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초현실적인 풍경 역시, 남부연합의 수장 양석필의 작품이었다.

…언제봐도 양석필, 그 아저씨 취향은 이해하기가 힘들다니깐.

“이쪽이야.”

표정이 살짝 밝아진 양소혜를 따라, 개중에서도 더 큰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몽골의 게르 같아 보이는 시대착오적인 디자인의 내부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자리잡은 화로를 중심으로 상석에는 밤송이 같은 수염을 지닌 거구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연락은 들었다만, 태백 놈들은 도대체 왜 끌고 온 곳인 게냐?”

시대착오적인 풍경에 걸맞게, 남부연합의 수장, 양석필의 외모는 범상치 않았다.

밤송이 같은 거친 수염에, 굵고 부리부리한 눈썹. 대춧빛으로 붉게 그을린 얼굴까지.

양석필의 외모는 말 그대로 어디 무협지 속의 산적 두령을 그대로 현신시켜놓은 것 같았다.

[광풍대주…? 는 아니로군. 후우…. 어찌 하계의 인물이 저리 생겨먹었는지 원.]

오죽 대단했으면, 그 위철용마저 순간적으로 양석필을 기억 속 인물과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양석필의 외모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외형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 형씨는 태백의 산군이 아니더냐? 거, 높으신 분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군. 그래.”

양석필은 대단히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못마땅한 그의 시선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북한 수염 아래로 연신 입꼬리를 비틀어대는 것이, 묘하게 내게 불만을 느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말이에요.”

양석필의 불만에 양소혜의 얼굴이 순간, 민망함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양석필에게 강태백과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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