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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52화 (52/309)

제52화

“어, 어째서 심 대리님 대신 저를 지목하셨는지….”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멈춰 서자, 잔뜩 긴장한 표정의 김현지가 우물쭈물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홍조가 가득한 그녀의 얼굴엔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이거…. 쉽게 넘어오겠군.

처음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심영득을 떼어내고자, 대충 적당한 인물을 골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의 김현지는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화 속의 신데렐라를 꿈꾸는 듯한 김현지의 표정에 나는 슬쩍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좁은 곳에서 작은 새처럼 갑갑하게 갇혀 있는 현지 씨의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워 보여서요.”

크윽.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지만,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

[미쳤느냐?]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위철용마저 화들짝 놀란 모양이었다.

쩍 벌어진 그의 입에선 내 정신건강을 우려하는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미쳤긴요. 이건…. 그, 그러니까 작업을 위해섭니다. 그녀를 포섭하기 위해서라구요.’

그렇다. 나름대로 작업(?)을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이런 짓엔 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내 입에선 단순하게 유치한 수준을 뛰어넘어 시공간이 오그라들 만큼 유치찬란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밀려드는 민망함을 나조차도 견딜 수 없었다.

위철용에게 황급하게 변명하듯 중얼거렸지만…. 그는 아연함과 측은함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세상에 어쩜….”

…하지만, 그렇게 ‘오그라드는’ 말의 효과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역시 외모가 최고다. 잘생긴 외모는 그렇게 유치찬란한 말로도 김현지의 마음을 손쉽게 녹여버린 것 같았다.

두 손을 가슴 위로 모아 꼭 쥔 그녀는 부담스러울 만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게…되네?]

김현지의 넋 나간 모습에 위철용이 어처구니를 잃은 듯한 목소리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는 살짝 몸을 숙여 여전히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현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직 일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항상 눈치만 주는 얄미운 직장 상사! 그 얄미운 새끼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보게된 신입의 초조한 마음!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김현지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나는 신입의 애환을 늘어놓았다.

그리곤 그녀의 처지에 공감하는 듯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쥐었다. 꼬옥 맞잡은 손에서 따뜻한 열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이 짓도 두 번은 못할 짓이로군.

한세훈 그 새끼는 어떻게 매번 이런 짓을 태연히 저지를 수 있었던 거지?

한세훈만큼 뻔뻔하지 않아서 그런지, 치밀어 오르는 오글거림과 견딜 수 없는 민망함이 밀려왔다.

그것들을 간신히 억눌러 참은 난 계속해서 김현지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흐흑.”

유혹이라는 것은 내가 느낀 민망함에 정비례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효과는 탁월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던 김현지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눈가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그렇게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둘 수 있겠습니까.”

기왕 시작한 것 마지막까지 쐐기를 박았다.

따사로운 눈빛에 부드러운 미소, 버터 같은 느끼함을 목소리에 담아. 나는 김현지를 와락 끌어안았다.

“흐흑. 흑. 흐흑. 훌쩍! 으아아앙!”

두 개의 둑이 동시에 터졌다.

김현지의 눈에서 슬픔이 둑이 허물어져,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에선 서러움의 둑이 허물어져, 그녀는 마치 아이처럼 흐느꼈다.

서럽게 울면서 어리광부리듯 내 품에 안겨든 김현지의 등을 나는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심영득 그 새끼는 날마다 심술만 부리구, 흐흑. 신입이라 구박하면서 궂은일은 다 저한테 떠맡기구요. 설악 애들 생활관 정리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더니, 그걸 또 왜 나한테 시키는데…. 훌쩍!”

내 품에 안긴 채 칭얼거리며, 홀린 듯 서러움을 종알거리는 김현지의 입에서 그냥 넘어가지 못할 단어가 흘러나왔다.

생활관…!

아까 심영득이 개인정보 보호 운운하며,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장소가 김현지의 입에서 언급되었다.

“…생활관 정리가 중요하다구요?”

“훌쩍! 네에…. 이유는 안 알려주는데 아무튼 중요하대요. 그렇게 중요하면 지가 할 것이지. 왜 저한테 떠넘기는지 몰라. 정말. 개짜증 아녜요?”

심영득이 ‘중요하다’라고 굳이 언급할 정도면, 꽤 고급스러운 정보일 텐데….

김현지는 그 정보의 무게에 대해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 터진 그녀의 입에선 심영득에 대한 다양한 뒷담과 함께, 다양한 정보들이 계속해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러게요. 높으신 분들이 다 그렇죠. 뭐. 앞에서 잰 척하는 것은 걔들이지만 고생하는 것은 우리 아랫것들 아니겠어요?”

사실, 산군으로 올라선 지금 ‘아랫것’이라는 말과 가장 인연이 없게 된 사람이 바로 이 몸이시지만, 지금은 김현지의 말에 장단을 맞춰 줄 시간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적극 공감하는 척 계속해서 맞장구를 치며, 뻔뻔스레 높으신 분들의 욕과 아랫사람의 애환을 늘어놓았다.

“훌쩍. 네에. 역시 우린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오늘까지 준비가 완료되어야 한다고 고래고래 떠드는데, 지는 일은 하나도 안 해요. 어떻게 혼자서 그 넓은 델 다 정리하라고….”

마침내 김현지의 입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말이 튀어나왔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삼킨 뒤, 나는 선의를 듬뿍 담은 선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한가지 제안을 건넸다.

“…글쎄요. 혼자서는 물론 힘드시겠지만. 제가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여, 영호 씨가요? 하, 하지만 다른 분들이 알면 안 될 텐데….”

뜻밖의 제안을 들은 김현지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당연히 ‘외부인’이자 엄연한 ‘손님’에게 그런 막노동을 분담하는 것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었지만….

“으으…. 그렇다면 알았어요. 시, 심 대리님껜 비밀로 해주시기에요?”

내게 유혹당해 판단력이 흐려진 김현지에겐 그런 ‘상식’ 따윈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내 은근한 시선을 마주한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내 친절한 도움을 수락했다.

“당연하죠.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할까요?”

****

-덜컹.

달뜬 기색의 김현지가 품속의 카드키로 엘리베이터의 패널을 조작하자, 엘리베이터는 3층 생활관 구역에 멈춰 섰다.

“어후 냄생! 여기에요. 보세용! 이 넓은 곳을 저 혼자 청소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에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퀴퀴하니 시큼털털한 남성 특유의 찌든 체취가 코를 찌를 듯 엄습해왔다.

그 강렬한 냄새에 김현지는 한 손으로 제 코를 감싸 쥐곤, 코맹맹이 소리로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다.

“청소도구는 여기 있긴 해용. 정말 괜찮을까용? 용호 씨는 귀한 손님인 것 같은뎅….”

자신이 저지른 일이 상식에서 아득히 벗어난 것이란 것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모양이었다.

슬슬 내 눈치를 살피는 김현지의 얼굴에 망설임의 기색이 다시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다.

갈 곳을 잃은 그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것도 남의 귀에 들어가야 귀한 법이죠. 그리고…. 빨리 끝나면 같이 한잔하시죠?”

하지만, 김현지의 갈등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잘생긴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외모지상주의 특성의 매력보정 효과는 마치 마력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였다.

“으으으…. 그, 그건 그렇네요. 지, 진짜 비밀로 해주시는 거예요?”

내 싱그러운 미소와 마주한 김현지는 일말의 망설임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곤, 구석의 청소도구함을 뒤져, 내게 청소도구를 가득 안겨줬다.

“그럼 전, 저기 화장실부터 시작할게요. 용호 씨는 여기 1생활관부터 시작해주세요.”

김현지는 비장한 표정으로 청소도구를 들더니, 구석의 공용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난, 그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직후….

-삐빅.

나는 엘리베이터의 외부 패널을 조작해, 3층 전체를 잠금 상태로 만들었다.

공격대원들이 생활하는 생활관 지역은 외부인의 침입을 금하기 위해, 보통 이런 방식의 보안장치가 달려있기 마련이다.

태백에서 사용하는 보안장치의 작동방식이란 다 거기서 거기였기에, 나는 손쉽게 패널을 조작해 의도한 대로 엘리베이터를 잠금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이것으로 시간은 벌었고….”

엘리베이터를 봉쇄한 것만으로도 이곳 3층은 거의 완벽하게 외부와 격리되었다.

외부와 연결되는 또 다른 통로로 비상구가 있긴 했지만, 보통 이런 시설의 비상구는 아예 밖에선 열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때문에…. 혹여 CCTV로 나를 감시 중이던 놈들이 있다하더라도,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꽤 수고를 들여야 할 테지.

그렇게 3층 생활관을 일시적인 격리상태로 만든 뒤. 나는 내가 맡겠노라 선언했던 1생활관의 문을 열었다.

-덜컹.

생활관 내부로 들어오니 외부에서부터 슬슬 풍겨오던 꾸릿한 남자 냄새와 퀴퀴한 곰팡내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바닥에 희끗하게 쌓인 먼지의 상태로 미뤄보건대, 이곳은 어림잡아 사흘이상은 그냥 방치된 모양이었다.

“여기에 뭔가가 있을 것 같긴 하단 말이지….”

심영득은 어째서 날 막았던 걸까? 어째서 김현지에게 이곳을 ‘중요하다.’ 강조한 걸까?

일개 길드원 따위가 고작 개인정보 보호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산군의 행사를 막아서는 것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좀 전의 심영득은 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막아 세웠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의 중요한 무언가가 여기 있다는 소린데….

[이거, 재밌는 짓을 해놓았구나.]

생각에 잠긴 채로 남자 특유의 냄새에 찌든 방 안을 뒤적거리고 있으려니, 갑자기 위철용이 나를 불러 세웠다.

무언가를 찾아내기라도 한 듯, 그의 얼굴엔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재밌는 짓이라뇨?’

[저기, 문 앞에서 다섯 번째 침상 밑을 한 번 살펴보거라.]

위철용의 말에 따라 나는 몸을 숙여 문 앞에서 다섯 번째 침대 밑을 살펴보았다.

‘…뭐가 있긴 하네요?’

침대 밑은 어두컴컴하니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지만, 화안금정 앞에선 어둠따윈 아무런 장애조차 되지 못했다.

금빛으로 물든 시야 사이로 목재 마룻바닥에 쌓인 먼지가 아주 미세하게, 아주 살짝 들려있는 것이 들어왔다.

-부스럭.

조심스레 손을 집어넣어 쌓여있는 먼지를 훑어냈다.

푸슬푸슬하게 부서지는 먼지 안에 뭔가 얇고 둥글둥글한 금속조각이 만져졌다.

“이건….”

[설마 네놈이 그렇게 노골적인 수작질을 모를 리가 없겠지? 아무래도 네놈이 생각하는 ‘그것’ 같구나.]

금속조각의 정체는 기도하듯 마주 잡은 두 손을 본뜬 문양이 새겨진 금빛 동전이었다.

위철용의 말처럼, 나는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시커먼 빛 클랜의 『평화역장』이네요.”

시커먼 빛 클랜.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들.

놈들 역시 인류와 적대적인 성좌 ‘밀림 속의 깃털 달린 뱀’을 따르는 사교도 집단이었다.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만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괴상한 믿음을 바탕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인류의 멸종을 기원하는 미치광이들이지.

[맞다. 아무리 배후령 따위로 영락했다고 한들, 설마 평화역장 따위에게 본존이 그리 영향을 받을 줄 몰랐거늘….]

『평화역장』은 바로 그런 놈들의 주특기나 다름없는 것으로, 사교도 의식의 결과물이었다.

성좌의 축복을 받은 금화를 바닥에 묻어, 그 일대에 강력한 정신억압을 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폭력성, 투쟁심 등 ’평화‘를 해치는 행동을 원초적으로 봉쇄하는 역장을 형성하는 의식이었다.

매ro체를 통해 성좌의 힘을 그대로 투영하는 의식이었기에, 위철용조차 방심한 사이 그것에 영향을 받아버린 것 같았다.

“명색이 성좌의 힘을 투영한 것이니, 어르신도 ’조금은‘ 영향을 받으셨겠죠. 헌데, 평화역장까지 발동시켜놨을 정도면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준비해놨단 소린데 말이죠….”

평화역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삼 주 이상 꾸준하게 의식을 계속해서 행해야만 했다.

들어가는 제물의 양도 만만치 않았고 매개체인 금속동전 또한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박정욱의 철두철미함을 은연중에 믿고 있었기에, 나는 설마하니 평화역장이 그가 관리하는 게이트에 펼쳐져 있었을 거라곤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기억이 발목을 잡은 꼴이었군.

[파리 대신 평화주의자 광신도 놈들이 이곳에 개입한 게로구나. 끌끌. 역사가 변했어.]

위철용은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끌끌 웃었다.

“회귀 전의 역사에선 박정욱이 기습적으로 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평화역장이 펼쳐질 정도로 시커먼 빛 놈들이 오랜 기간 동안 침투해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역사가 변하긴 변하나보네요.”

[호오? 생각보다 태연한 기색이로구나, 이것도 평화역장의 영향력 때문인가?]

역사가 변한 것을 눈치 채고도, 나는 이번엔 별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역사가 변했노라 중얼거리는 모습에 위철용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왔다.

“역사가 변한 것 정도는 전에도 겪었지 않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뭣보다 대응법만 알면 평화쟁이 놈들만큼 상대하기 쉬운 사교도 집단도 없잖아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체파리 클랜을 대신해 이곳을 차지한 사교도가 다른 곳도 아닌, 시커먼 빛 클랜이라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내가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평화역장만 해결한다면, 시커먼 빛 클랜 놈들을 해치우는 일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니까.

근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더라?

“…….”

낭패다.

평화역장이 영향력으로 인해, 여전히 ’폭력적인‘ 사고가 강제되고 있어, 평화역장의 매개체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회귀 전의 내 지식들 죄다 평화역장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에만 치중되어있었다.

때문에, 사고가 강제되는 지금 나는 그것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내 낯빛이 파리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끄응. 이거 어떻게 부? 박? 아니, 해결해야 할까요?”

하는 수 없이 위철용에게 그 방법을 물으려는데,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뭐야. 아직 정신억압이 풀리지 않아,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게야? 한심하긴.]

위철용은 그렇게 끙끙대는 내게 놀리듯 눈을 흘겼다.

한심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는 그의 눈은 장난스럽게 휘어있었다.

“갸갸에 관련해선 이제 잊어드릴 테니 좀 알려주시죠?”

[크아아악! 불의의 습격이었느니라. 아, 아니 오침 도중의 잠꼬대였다니까!]

머릿속에 밀려들어오는 수치스러운 흑역사에 위철용은 펄쩍 뛰어오르며 변명하듯 발끈했다.

…역시 위철용이 정신억압 운운하며 한심하다 쏘아붙일 땐. 역지사지를 느끼게끔 그에게도 흑역사를 되새기게끔 도와주는 것이 특효약인가 보군.

앞으로도 종종 비슷한 방식을 써먹어야겠어.

[크흐흠! 그럼. 방도를 알려줄 테니 그, 그 기억에 대해선 깨끗하게 잊어 줄 테냐?.]

얼굴을 벌게진 위철용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위철용은 내게 평화역장을 해결할 방법을 귀띔해주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방법 말고도 그걸 파훼할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느니라. 그냥 꿀떡 삼키면 그만이야.]

“…이걸 삼키라고요? 정신억압의 매개체를?”

[따지고 보면, 그놈도 일종의 영단, 아니 정수? 영약? 끄응. 어쨌든 먹어서 나쁠 건 없는 놈이니라, 막대한 신력이 깃들어 있거든.]

“먹으면 탈 날 것 같은데….”

[괜한 걱정 따윈 하덜 말거라. 네놈에겐 본존의 심법이 있지 않더냐? 용마저 복종시키는 심법이거늘, 뱀의 힘 따윈 거뜬히 흡수할 수 있느니라.]

위철용의 자신만만한 말에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먼젓번 화안금정을 섭취했을 때 느꼈던, 불안한 기분이 다시금 몽골몽골 샘솟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별달리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그의 말대로 매개체를 입으로 가져가 눈을 질끈 감고 꿀떡 삼켰다.

-꿀꺽.

“…!”

금화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순간, 그것은 마치 물에 들어간 설탕처럼 사르륵 녹아버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하면서도 시원한 청량감이 몸 전체를 가득 채웠다.

몸속의 내력이 부글부글 뜨겁게 들끓으며 청량한 기운과 반응했다.

-콰아앙! 콰아앙!

뜨겁고 서늘한 기운이 몸속에서 뒤엉키며 계속해서 폭발하며 계속해서 세를 늘렸다.

오직 나에게만 들리는 폭발음이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전신이 알 수 없는 활력으로 가득 찼다.

마치 종일 푹 숙면을 취한 것처럼 활기찬 기분이 샘솟았다.

“이거…. 여기 몇 개나 더 있어요?”

게이트 관리소 전체를 둘러싸기 위해선 매개체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증거로 매개체 하나를 흡수한 뒤로도 머릿속을 억압하던 정체 모를 기운은 살짝 옅어졌을 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억눌렸던 폭력성과 투지가 불끈 치솟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위철용을 바라보며 가볍게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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