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크르르르….”
간신히 게이트 관리소를 빠져나온 순간, 내 입에서 마치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광포한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억눌렸던 폭력성과 광폭한 투지가 둑 터지듯 한 번에 폭발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각내고 박살내고 싶은 난폭한 욕구가 내 이성을 붉게 물들였다.
-스윽
“크르르…으으으어엉?”
슬쩍 뒷걸음질 쳐서 다시 게이트 관리소 입구의 처마 밑으로 들어서자. 한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왔던 폭력적인 욕구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입에서 흘러나왔던 으르렁거림이 의아함을 가득 담은 탄성으로 변했다.
“…뭐여?”
마치 누군가 나의 머릿속을 강제로 조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크르르르.”
다시 한 번 처마 밑으로 빠져나오기 무섭게 내 입에서 으르렁거림이 토해졌다.
이성을 마비시킬 것 같은 폭력적인 욕구가 머릿속을 붉게 물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밖으로 나갔다간 이성을 완전히 잃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혀까지 깨물면서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나는 황급히 게이트 관리소 입구의 지붕 밑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건 확실히 이상하군.
“저기. 어르신? 지금 상황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위철용에게 지혜를 좀 구해보려 했지만….
[갸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위철용의 해맑은 모습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위철용의 상태 또한 여전히 좋지 않았다. 아니, 좋아지긴커녕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심해진 것처럼 보였다.
[꺄규갸…? 으듀류갸갸. 으휴후햐햐.]
앞주머니 속의 위철용은 갓난아이 옹알이하듯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종알거리고 있었다.
아이 같은 몸짓에 표정까지 쓸데없이 해맑은 것이 차마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로 망측했다.
…이 양반은 또 갑자기 왜 이래?
“위철용 어르신?”
위철용의 괴상한 반응에 나는 앞주머니에서 그의 몸뚱이를 조심스레 꺼, 그와 눈을 맞췄다.
그리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철용의 이름 석 자를 조심스레 불렀다.
[…갸? 으허헉! 크험! 커험!]
그렇게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해맑기만 했던 위철용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곧이어 내 입에서 위철용이란 이름 석 자가 빠져나온 뒤엔,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정신이 돌아온 모양인지 위철용은 사레라도 들린 듯 갑작스럽게 헛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커허허험! 으하하함! 자, 잘 잤다.]
민망함을 가득담은 헛기침은 이내 어색하기 그지없는 하품으로 바뀌었다.
사레들린 듯 헛기침을 해대던 위철용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시치미를 뚝 떼곤 어색한 표정으로 하품을 늘어놓았다.
허나 위철용의 얼굴은 잘 달궈진 쇳덩이처럼 새빨갰으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화끈거렸다.
바로 옆에서도 나는 그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온 민망한 열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방금 그건 도대체….”
[무, 무슨 일이 있었다고! 아무 일도 없었느니라. 아! 무! 일! 도! 본존은 그저 기분 좋게 오침을 좀 취했을 뿐이니라!]
오침? 낮잠? 거, 잠꼬대치곤 심각하게 해맑았던 것 같은뎁쇼.
…아무래도 보통 창피한 게 아닌 모양이로군.
오죽 민망했는지 천하의 위철용이 내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배후령의 육신을 취한 상태라 수면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텐데도, 위철용은 내게 괴상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이곳에 굉장한 수준의 정신억압 계통 스킬을 사용….”
[정신억압이라고? 보, 본존이 그딴 것 따위에 걸려들 리가 없지 않느냐!]
내 딴엔 심각한 말투로 나름의 추측을 꺼냈지만, 예상외의 격렬한 반응과 맞부딪혔다.
위철용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인지, 새빨개진 얼굴로 발작하듯 내 말을 중간에 툭 끊었다.
…어지간히도 민망하셨나 보네. 이 양반.
“누가 뭐래요? 제 이야깁니다 제 이야기.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까, 누군가 강제로 정신을 억압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폭력적인’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겁니다.”
위철용의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보존해줄 겸, 원활하게 대화를 진행할 겸해서 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그리곤 위철용의 눈치를 살살 살펴보며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시 이야기 드리자면 제가 이 건물에 들어섰을 때….”
게이트 관리소 내부에서 폭력적인 모든 것들이 강제로 억압된다는 것과 이곳을 벗어나는 즉시 그 억압된 폭력성이 폭발한다는 것 등등.
나는 위철용이 기절했던 동안 겪었었던 괴이쩍은 일들을 그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흐음. 강제로 폭력적인 욕구를 억제한다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일까?
뻘겋게 달아올랐던 위철용의 얼굴에서 열기가 씻은 듯 가라앉았다. 눈에는 총기가 돌아왔다.
순식간에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과연 정신수양이 보통이 아닌 인물다웠다.
[헌데…. 좀 이상하지 않으냐? 네놈 말대로라면, 여긴 파리 새낄 따르는 놈들에게 장악당한 상태가 아니더냐? 헌데, 그 파리 새끼 휘하에 정신억압 계통의 재주를 지닌 자가 있었다고?]
이성을 되찾은 위철용은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해냈다.
그의 조언에 따라, 나는 다시 한 번 체체파리 클랜과 그들이 섬기는 성좌의 능력에 관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네요?”
위철용의 지적 그대로였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보아도 체체파리 클랜원 중 정신억압 계통의 특성 트리를 지닌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추잡한 새끼들 주특기는 뭔가를 더럽히는데 특화된 것일 텐데, 정신억압이라니….”
체체파리 클랜은 철저히 오염과 부패 쪽에 특화된 특성 트리를 갖고 있었다.
남성국이 환각 계통의 특성 트리를 타긴 했으나, 그건 남성국이 특별한 예외일 뿐이었지 체체파리 클랜원들의 일반적인 특징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체체파리 클랜의 다른 이들은 모조리 오염과 부패와 관련된 특성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R[디기 네놈도 잘 알다시피, 그 파리 새끼를 섬기는 이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부 똑같은 능력을 지닌 이들로 변하기 마련이지.]
“그렇죠. 그래서 남성국도 죽어버린 판국에, 지금 체체파리 클랜에는 정신억압 계통 특성 트리를 지닌 헌터가 단 한명도 있을 리가 없죠.”
본인이 의도치 않아도 사교도는 자연스럽게 그가 섬기는 타락한 성좌의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사교도가 보유한 특성트리는 성좌의 영향을 받아 왜곡되고 뒤틀리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기 마련이다.
오염과 부패와 상관없는 계통의 특성 트리라 할지라도, 체체파리 클랜이 섬기는 성좌 ’쇠락한 고성의 파리군주‘의 영향을 받게 되면 오염과 부패 쪽으로 뒤틀려버린다는 소리지.
그렇기에,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체체파리 클랜 쪽엔 위철용의 정신에 간섭할 정도로 강력한 정신계통 능력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존의 정신에 간섭할 정도라면, 필시 아예 그쪽으로 특화된 재주를 지닌 자겠지. 허헛. 본존의 정신에 감히 간섭할 수 있을 정도의 필멸자가 있을 줄이야.]
멋쩍은 웃음을 지은 위철용은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정신이 누군가에게 간섭당했다는 인정했다.
지금이야 배후령 따위로 영락해버렸지만. 그는 한때 성좌라 불리던 초월자였던 존재다.
그런 그의 정신에 간섭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수준으론 어림도 없을 텐데….
“끄응….”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입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감이 잡힐락 말락하면서도, 뭔가가 떠오를 듯 떠오를 듯 하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일단 무슨 일이 이곳에 벌어졌고, 그것이 절대 정상적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귀신놀음인지는 짐작조차 가질 않는군….
체체파리 클랜이 아닌 건가? 그렇다면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일단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조사해봐야겠어요.”
[뭐?! 안쪽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영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선지, 위철용은 게이트 관리소 내부로 들어가겠다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역팔자로 눈썹을 올린 그의 얼굴에선 영 께름칙한 기색이 물씬 풍겼다.
[바깥에서 조사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 저길 굳이 왜 들어가겠다고 그러는지. 원.]
위철용은 곧이어 떨떠름함을 넘어 불편함까지 내비쳤다.
일단 말을 마친 뒤로도 그의 비취빛 입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그런 위철용에게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게이트 관리소 입구의 처마 밑을 가리켰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여길 무턱대고 벗어나는 것도 문제라구요. 저기 저 처마 밑을 벗어나면 이성이 깔끔하게 날아가 버리더라구요.”
게이트 관리소에 펼쳐진 정신억압 스킬의 범위는 정확하게 내가 서 있는 입구의 처마까지다.
이곳의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억눌러졌던 파괴적인 욕구가 해방되어 이성을 말끔하게 불태워 버렸다.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갈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마당인데….
굳이 이성을 잃어가면서까지 위험을 초래할 순 없지.
[흐음. 그렇다고 그랬었지. 쯧! 자신의 정신 하나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다니, 한심한 놈!]
위철용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가득 담아 힘차게 혀를 찼지만…,
“규규갸갸?”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위철용을 바라보며 아기처럼 옹알거리는 것으로 답해줬다.
[그, 그건 잠꼬대였다니까!]
****
-끼이익
문을 열고 게이트 관리소에 다시 들어서니 정신에 가해지는 억압이 한층 더 강해졌다.
사고 한 귀퉁이를 강제로 콱 틀어막는 듯, 불쾌한 느낌이 더욱 강렬해졌다.
[확실히 괴이쩍은 곳이로다. 네놈 말대로 실로 빌어먹을 정도로 강력한 정신억압이 이곳에 작용하고 있군. 어떠냐? 아직도 ’폭력적인‘ 생각을 하질 못하는 게냐?]
불쾌한 느낌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내 어깨에 걸터앉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던 위철용이 깐죽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말투에 욕설을 섞어대는 것으로 봐선, 위철용은 어째선지 이번엔 정신억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예, 억압이 풀렸으면, 진즉 이성을 잃고 날뛰었겠죠. 그런데…. 이번엔 어째 멀쩡하신 것 같네요?‘
[흥. 본존에게 이따위 정신억압이 또 통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지!]
위철용은 팔짱을 낀 채, 거만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한때 성좌로 군림하던 존재이니만큼, 위철용의 정신력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한 모양이었다.
“아니, 이거 산군님 아니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뭐 잊으신 물건이라도 있으신지요?”
또다시 로비의 안내데스크 쪽으로 걸어가자, 심영득이 쪼르르 달려와 나를 반겨주었다.
그의 미소 띤 얼굴엔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과한 친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있는 눈빛에선 여전히 꺼림clr하게 음험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뇨, 딱히 잊은 건 없습니다만….”
슬쩍 말을 줄인 나는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의 영향을 받아 튀어나온 것이 아닌, 내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흐,흡. 그렇다면 무, 무슨 일로….”
그렇게 매력적인 미소를 띤 얼굴로 살짝 뜸을 들이자, 심영득의 얼굴에 어쩐지 묘한 갈증이 느껴지는 긴장의 빛이 서렸다.
호흡을 멈춘 채 잔뜩 동요한 것 같은 심영득의 모습으로 미뤄보건대….
다행히도 외모지상주의 특성만은 이곳에서도 정상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역시, 폭력과는 별 상관이 없는 외모지상주의 특성만큼은 이곳에 펼쳐진 정신억압 스킬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 같군.
그래. 폭력적인 것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다른 것’을 활용하면 그만이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먹히는 외모지상주의 특성의 효능에 크게 만족하며, 나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심영득에게 더욱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숫제 요기까지 느껴지는 매혹적인 웃음에 심영득의 얼굴을 더욱 더 붉게 물들였다.
“으으음. 글쎄요. 좀 아쉽다고 할까요? 생각해보니, 기껏 그 유명한 설악 공격대의 본거지까지 왔는데. 내부를 둘러보지도 않고 그냥 가기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 하하. 게이트 관리소가 뭐 특별할 게 있겠습니까?”
순간, 붉게 물들었던 심영득의 얼굴에 빠른 속도로 당황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찰나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겸손하시긴. 그래도 태백의 둘째가라면 서러운 공격대가 직접 관리하는 곳인데 어련하겠습니까? 뭐든 참고할 게 있겠죠.”
“그렇다면 이번에도 제가 안내를….”
여전히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심영득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정확하게 그는 내게 ‘다가오려고’ 했다.
“아닙니다. 이번에도 폐를 끼칠 순 없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도 신세를 졌었는데….”
하지만, 심영득이 안내를 입에 담으며 내게 다가오려는 그 순간, 나는 손을 슬쩍 들어 그에게 부드러운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아, 아니…. 그, 그건 전혀 폐가….
심영득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외모지상주의의 힘이 깃든 미소에 정면으로 노출된 심영득은 얼굴을 붉히곤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그런 그를 내버려 둔 채, 나는 로비의 데스크에 어색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여직원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거기, 그쪽 분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네? 흐힉! 저, 저요? 기, 김현지라고 하, 하는데요….”
갑자기 지목당한 여직원, 김현지의 얼굴에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이내 나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의 입에서 얼빠진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얼굴은 잘 달궈진 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후, 얼굴처럼 이름도 고우시네. 어떠십니까. 현지 씨가 저를 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
너스레를 떨며 김현지에게 관리소 내부를 안내해 줄 것을 청한 순간, 다른 곳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해대던 심영득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놈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황의 빛이 떠올랐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심영득이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었던 친절함의 가면이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 아니. 걔, 현지 씨는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
화들짝 놀란 심영득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막아서려 했으나….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 저도 따지고 보면 ‘신입’ 아니겠습니까. 안내 잘 부탁드립니다. 김현지 씨!”
“헷? 네, 네넷!”
당연히 어림도 없었다. 행동은 내가 더 빨랐다.
나는 가볍게 심영득을 피해 김현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양손을 꼬옥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리곤 일부러 심영득이 들으라는 듯이 그녀에게 과장스러운 너스레를 떨었다.
반론 따윈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오롯이 김현지에게 고정한 것은 덤이다.
“어, 어쩔 수 없지요. 현지 씨? 산군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처신해주세요.”
내가 이렇게까지 나온 이상, 고작 안내데스크 담당에 불과한 심영득이 산군인 나를 ‘감히’ 막을 명분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먼젓번엔 그와 나 단 둘이 있었기에 배짱을 부릴 수 있었을진 몰라도, 게이트 관리소 로비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체념한 표정이 심영득은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는 듯한 목소리로 김현지에게 당부 섞인 지시를 전했다.
“갑시다. 어디 여기에 재밌는 건 뭐가 있는지, 볼만한 건 또 뭐가 있는지 봐 보자구요!”
잔뜩 과장을 섞은 쾌활한 목소리로 김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긴장으로 얼어붙어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는 거절조차 하지 못한 채 맥없이 내게 끌려왔다.
-까드득
김현지와 함께 막 로비를 벗어나, 엘리베이터에 오른 순간…!
어디선가 조용히 이 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비록 소리는 희미했지만, 초인적인 청력을 보유한 나는 그 경쾌한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속엔 주인의 치아 건강이 심히 우려될 정도의 분한 감정이 충분히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