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고슴도치 섬.
의암댐 준공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춘천의 너른 인공섬이었다.
한때는 이곳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 고슴도치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것은 한 척의 나룻배뿐이었다.
선착장에서 약간의 소동을 겪은 뒤, 굉장히 친절해진 대머리 사내는 내가 요구한 대로 손수 배를 운전하여 나를 고슴도치 섬 내부까지 바래다주었다.
“일을 잘 마무리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고생하십쇼! 설용호 산군님!”
조금 전의 무레에 대한 사과의 표현인지, 아니면 관대한(?) 자비를 베풀어 준 내게 보내는 찬사인지 모르겠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까지 박은 대머리 사내의 인사는 일종의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쪽두요. 다음부턴 사람 보는 눈 좀 기르시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대머리 사내를 배웅해 준 뒤, 나는 고슴도치 섬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감상하며 중앙의 게이트 관리소로 향했다.
[잠깐, 잠깐만 멈춰봐라.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
옛 캠핑장 폐허를 지나, 요새처럼 구축된 게이트 관리소에 들어서려는 순간. 잔뜩 이맛살을 찌푸린 채로 주변을 둘러보던 위철용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이상하다니요? 관리소 전체에 사교도 놈들의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기라도 합니까?”
위철용의 전례 없이 반응에 나 역시 잔뜩 긴장한 채, 어둠달을 꼬나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직 특성 트리의 『감지』 스킬을 찍지 못했기에, 아무리 주변을 주의깊게 둘러 봐도 지금의 나는 위철용이 말하는 ’기운‘이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어둠달을 꼬나쥐곤 단단히 틀어쥐었다.
시기를 고려해보자면 사교도 놈들이 이곳 전역을 점령하고 있는 것도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둠달을 강하게 틀어쥔 손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 반대다. 정순해. 이곳을 가득 채운 기운이 지나칠 정도로 정순하게 느껴지는구나.]
숨막힐 것 같은 긴장의 순간, 위철용의 입에서 이어진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던 의외의 내용을 품고 있었다.
“정순하다뇨?”
[모름지기, 모든 존재는 삿된 기운과 순수한 기운이 공존….]
“아뇨, 대충 그 개념은 알겠는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저기 그 삿된 기운의 결정체인 게이트가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데. 정순한 기운이라니.”
갑자기 시작되려는 위철용의 무학강론을 뚝 끊고, 창날을 들어 게이트 관리소 뒤의 게이트를 가리키자. 그는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그래. 네 말 대로 기이한 일이지. 사기의 집합체인 게이트가 위치한 곳에 이리도 정순한 기운이라니! 도가 놈들이나 땡중 놈들의 본거지조차 이 정도로 정순하진 않았거늘….]
말꼬리를 흐리는 위철용의 눈빛이 혼란스럽게 변했다.
본인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위철용의 눈빛에서 특유의 총기가 사라졌다.
대신, 혼란한 머릿속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흐리멍덩한 회색빛이 그의 눈에 깃들었다.
[게이트가 코앞에 있는데도 이토록 경건하고 정순한 기운이라니! 어쩐지 본존의 마음마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이건 아주….]
순수하니, 경건하니. 뜻 모를 소리를 해대는 위철용의 상태는 딱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눈빛은 흐리멍덩함을 뛰어넘어 아예 어물전에 걸린 동태를 연상시킬 정도로 풀려버렸다.
슬쩍 벌어진 입은 헤 벌려진 채,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계속해서 오물거렸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저기, 어르신? 갑자기 무슨….”
[…….]
위철용의 자그마한 몸을 살짝 흔들어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위철용은 바보처럼 동그랗게 뜬 눈으로 홀린 듯 게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하게 변해버린 위철용의 모습에,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미간 사이에 깊은 골이 패였다.
회귀 전 기억에 의하면 지금 시점의 고슴도치 섬 게이트 관리소는 분명, 잠입한 체체파리 클랜의 사교도들에게 장악당한 상태일 것이다.
배후령의 육신을 가진 위철용의 상태로 봐선, 아무래도 정신을 간섭하는 무언가에 당한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론 체체파리 클랜의 사교도들에겐 정신에 간섭하는 계통의 스킬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독 남성국이 특이 케이스였을 뿐, 체체파리 클랜의 상징은 오염과 부식이었으니까.
“쯧!”
아무리 생각해봤자, 체체파리 클랜 놈들과 관련해선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갑갑한 마음에 혀를 한번 찬 뒤, 이상해진 위철용을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마음을 굳게 먹고, 게이트 관리소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 정ㅈ…. 으허헉! 산군! 죄송합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선착장의 그 대머리처럼, 관리소 입구에서 보초를 서던 인원들이 나를 막아서려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들과 실랑이를 벌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낭비 할 것 없이, 나는 그들에게 산군의 인장을 들이밀었다.
나를 멈춰 세운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순순히 내게 길을 열어주었다.
****
-끼이익.
“…!”
확실히…. 뭔가 이상해.
게이트 관리소 로비에 들어선 순간, 나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오가는 사람들과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는 직원들까지, 얼핏 보기엔 로비의 풍경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그렇게 평범한 광경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위철용의 이변에 치밀었던 짜증과 사교도들을 막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스르륵 사라졌다.
들끓었던 투지가 확 가라앉았다. 굳건한 마음이 마치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물렁해지기 시작했다.
“큭!”
머릿속이 꽃밭으로 변해가는 듯한, 해괴한 느낌에 혀를 깨물었다.
아니, ‘물려고’ 했다. 혀를 깨물려는 시도 역시, 알 수 없는 평화로움에 의해 저지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아,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혼란스러움에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싹싹한 미소를 띤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얼굴 가득히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직원에겐 과할 정도의 친절함이 느껴졌다.
“태백 길드의 산군 설용호입니다. 공격대장님을 좀 뵙고자 합니다만….”
확실히 이상하다.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어, 다소 강하게 반말투로 나가려고 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대단히 온화한 어투의 존댓말이었다.
“아…! 산군님! 이렇게 누추한 곳에 방문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안내 데스크를 맡고 있는 심영득입니다.”
산군의 인장을 받아든 직원, 심영득이 잠시 멈칫했다.
찬찬히 인장을 살핀 그의 얼굴이 공포로 허옇게 물들였다.
심영득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곤 뒤늦게나마 내게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대단히 죄송한 일입니다만 대장님께선 지금 자리를 비우셨거든요.”
슬쩍 고개를 든 심영득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뭐? 박정욱이 자리를 비웠다고?
“대장님이 자리를 비우셨다니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갑자기 공격대원 분들을 이끌고 사라지셔서요.”
심영득의 공손하지만 능글능글한 답변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회귀 전의 기억에 의하면, 사교도의 수작질로 박정욱을 포함한 설악 공격대원들 전원이 몬스터로 변이되는 사건은 앞으로 이틀 뒤에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박정욱이 지금 자리를 비웠다고?
그 쓸데없이 원리원칙 지키기 좋아하는, 고지식의 결정체 같은 양반이?
“네? 길드장 지시로 이동이 금지된 게 아니었습니까?”
내가 아는 박정욱이라는 인간은, 강태백의 말이라면 등에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 만큼, 상명하복이 확실한, 전형적인 군인 같은 위인이다.
그런 남자가 강태백의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리를 비웠다고?
의문을 가득 담은 눈으로 심영득을 바라보자, 그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 그게…. 길드장님께 지시가 내려왔을 땐, 이미 자리를 비우신 뒤라….”
“어디로 가셨습니까? 부디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얄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럴 수가.
다급한 마음에 다그치듯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이번에도 내 입에선 굉장히 정중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글쎄요. 워낙 신출귀몰하신 분이라….”
“혹시 괜찮으시다면, 목적지를 좀 알려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이번에도 실패다.
시험 삼아 욕설과 거친 말투를 섞어보려 했지만, 튀어나온 것은 여전히 존댓말이었다.
심지어, 나의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입에선 더욱 더 공손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아랫입술을 으드득 깨물려고 시도했지만.
그렇게 ‘폭력적인’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스르륵 사라졌다.
이건 또 뭔지 모르겠군. 크윽!
“저희도 알고 싶은 주제네요. 그거, 요 며칠 동안 연락도 안 되고 코빼기도 안 비치시니 원. 뭐하는 양반인지 무책임하긴.”
순간, 투덜거리는 심영득의 표정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 감정표현도 힘든 상태다
나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폭력적인 행동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부드러운 것으로 강제되는데. 태연하게 투덜거리며 이죽거리기까지 하는 심영득의 태도는 마치 그런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생각해보니, 아까 신분증을 받아든 심영득의 표정조차 생각해보면 굉장히 어색했다.
선착장의 대머리나, 입구에서 보초를 서던 직원들의 표정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경외와는 성질이 달랐다.
정확히는 마치 대본에 있는 것을 연기하기라도 하듯. 인위적인 두려움이 묻어있는 표정이었다.
태백 소속의 일개 데스크 직원 따위가 산군 앞에서 연기를 한단 말이지….
…확실히, 뭔가 있긴 하군.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군요. 그럼, 혹시 박정욱 대장의 사무실을 좀 볼까 합니다만.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
“이곳입니다. 저는 밖에서 대기할 테니, 느긋하게 둘러보십시오.”
심영득은 의외로 흔쾌히 내 요청에 응했다. 웃는 낯의 그는 나를 친절하게 박정욱의 사무실까지 안내해 주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뒤, 심영득은 예의 그 불쾌한 눈웃음을 보여주곤 내게 밖에서 대기하겠노라 일방적으로 통보한 다음, 그냥 나가버렸다.
“…흐음.”
여전히 수상쩍은 심영득에 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곤 나는 박정욱의 단출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박정욱의 사무실은 그의 고지식한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사치스러운 가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사무실 내부는 철저할 정도로 실용적인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돈 상태 또한 모든 것들이 편집증이 느껴질 만큼 완벽한 수준으로 되어있었다.
하다못해 책상 위에 놓은 서류조차,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잘 정돈된 상태였다.
“…!”
잘 정돈된 책상에 시선이 멎은 순간, 그곳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편집증마저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된 사무용 책상 위에서 나는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수상쩍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장이 그대로 놓여있어?”
책상 위, 박정욱의 명패엔 산군을 상징하는 인장이 그대로 꽂혀있었다.
명패와 인장이 워낙 정교하게 맞물려져 있어, 얼핏 봐서는 인장이 단순히 명패 속의 장식같아 보일 정도였다.
…박정욱쯤 되는 고지식한 양반이, 외출할 때 이걸 두고 갔다고?
설악 공격대의 공격대장 박정욱 역시, 태백의 정점에 오른 산군 중 한 명이다.
누구보다 원리원칙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인물이 아무리 급해도 산군의 인장을 그대로 버려놓고 갔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
수상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의심이 더 커졌다.
이거…. 확실히 뭔가 수상한 것이 숨겨져 있는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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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안 됩니다.”
박정욱의 집무실에서 나온 나는 밖에서 대기 중인 심영득에게 설악 공격대원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에 안내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실실 웃는 심영득의 입에선 대놓고 노골적인 거절의 표현이 튀어나왔다.
“저희 공격대원 분들도 사생활이라는게 있거든요. 아무리 산군이라 하셔도 사생활을 침해하는 건 좀 너무하다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일개 데스크 직원 따위가 산군에게, 공격대원들의 사생활이니 뭐니 하는 웃기지도 않는 이유로 질책을 해대다니!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영득의 대범한 태도는, 수상함을 뛰어넘어 아연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상식 밖의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이거 아쉽게 되었군요.”
심영득의 무례한 행동에 뭐라 질책을 하려고 해도, 생각대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 입에선 굉장히 정중하기 짝이 없는 완곡하게 아쉬움의 표현이 튀어나왔다.
“…….”
…일단 밖으로 나가서, 생각해봐야겠어.
여기에 있으면 점점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야.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지요.”
“조심히 돌아가십쇼, 혹여나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나를 보는 심영득의 눈빛은 왠지 모를 음험함을 듬뿍 담아 불쾌하게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