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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47화 (47/309)

제47화

“헌터님? 아니 이제 산군님이라 불러드려야 하나요?”

감찰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신지현이 너스레가 섞인 인사를 건네왔다.

목소리와 표정은 명랑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다.

눈 밑의 거뭇한 다크서클은 더욱 진해졌으며, 피로에 찌들어 푸석해진 피부는 화장기를 제대로 머금지 못해, 기이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니저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우리 사이에 그건 또 무슨….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신지현의 과장 섞인 인사에 이쪽에서도 너스레를 떨어 답해주려 했으나.

이틀 사이 상태가 더 심해진 그녀의 몰골에 깜짝 놀라, 안부를 물었다.

“하, 하하하 무슨 일이 있었겠어요. 다 이것도 일이지.”

어색하게 웃은 신지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입가에 커피잔을 가져갔다.

에스프레소 특유의 지독할 정도로 진한 커피 향이 코를 간질였다.

“그나저나 벌써 감찰팀을 장악하신 모양이네요? 역시 우리 매니저님! 수완이 아주 대단하십니다.”

여전히 피로에 찌들어 있는 처참한 몰골과는 반대로,

신지현의 복장만큼은 달라진 지위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굉장히 화려해 보였다.

감찰팀과 인사팀의 융합을 상징이라도 하듯.

신지현의 새로운 복장은 감찰팀의 갑옷과 인사팀의 정장을 적당히 뒤섞은 듯한 모습이었다.

정장 특유의 깔끔한 맵시를 살리면서도 갑옷의 방호력까지 고려한 듯한 검은 옷엔, 감찰팀의 상징인 흑호와 인사팀의 상징인 여우가 교차 되어 음각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가죽을 적절히 가공해서 만든 모양인지, 몬스터 특유의 마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의전용인 듯하면서도 은근히 실용적인 측면이 잘 살아있어 보이는 복장이다.

불과 이틀 사이에 감찰팀을 장악하고, 저런 걸 맞춰 입었단 말이야? 재주도 좋군.

“아뇨, 안종훈 그 새…. 아니 안종훈 전 팀장이 워낙 드세서….”

하지만,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나의 호들갑 섞인 칭찬에도 불구하고, 신지현은 어두운 얼굴로 그녀답지 않게 말꼬리를 흐렸다.

“저런, 확실히 안종훈쯤 되는 인물이 순순히 굴복할 리는 없겠다고 예상은 했는데 역시나 그랬군요. 하지만 그게 어디 매니저님 탓이겠습니까? 놈이 드센 거지.”

뭐 어느 정돈 예상했던 일이다.

안종훈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어지간한 심문으론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겠지.

오히려, 놈이 신지현의 수하들에게 순순히 굴복했다면, 그편을 더 의심스럽게 생각했을 거다.

시무룩한 표정의 신지현에게 심심찮은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녀를 격려해주려는 순간….

“…안종훈은 산군의 직위를 잃긴 했지만.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쌓아둔 것들이 많거든요.”

더 시무룩해진 목소리와 더욱 어두운 표정으로 신지현이 자세한 내막을 추가로 밝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안종훈을 심문하기 어려운 이유와 감찰팀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안종훈과 이익 관계에 얽혀있는 단체들이 많다는 것.

그의 몰락을 원치 않은 ‘높으신 분’들이 많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몇몇 산군들 역시 나와 신지현을 고깝게 보고 있다는 것 등등.

산군들 몇몇이 나를 고깝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의외이긴 했지만.

어딘지 기죽은 목소리의 신지현이 고하는 내용은 충분히 유추할만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안종훈이 사교도와 결탁한 혐의를 의심받고 있어도, 오히려 저희가 압박을 받고 있던 입장이에요. 그래서 심문다운 심문은 하지도 못하고 있구요…,”

말을 마친 신지현이 주눅 든 눈으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안종훈을 비호 하는 세력의 압박이 어찌나 거셌었는지, 그녀마저도 생각보다 안종훈을 제대로 압박하지 못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놈들에게 압박과 방해를 받아 이렇다 할 성과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았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복장은 그저 허세용이었나 보군….

“그거 잘되었군요.”

주눅 든 표정으로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피며 한숨을 내쉬는 신지현에게, 나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예? ‘잘’ 되었다고요? 그게?”

내 입에서 튀어나온 엉뚱한 말에 신지현은 눈꼬리를 샐쭉하니 슬쩍 올렸다.

당연히 잘 되었지.

내게 놈을 심문할 ‘명분’이 생겼는데.

“제가 직접 심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쇠락한 산군을 심문하는 데는, 새로 왕좌에 등극한 산군이 제격인 법이다.

“옛? 헌터님께서요?!”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신지현의 눈에 경악과 반가움이 동시에 감돌았다.

“하, 하지만. 저. 절대 고문은 아, 안돼요? 아시죠? 놈을 봐주는 세력이 엄청나다는 거!”

고문을 절대로 하지말라 당부하는 신지현의 불안한 눈빛을 바로 마주하며,

나는 말없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

“이게 누구야. 새로운 산군님 아니신가.”

구속구를 착용한 채, 묶여있는 안종훈의 말투엔 여전히 빈정거림이 잔뜩 묻어있었다.

“증거를 만들겠다 어쩐다 떠들더니. 생각대로 잘 안 되는 모양이야.”

음습하고 퀴퀴한 심문실이 꽤 지내기 편했던 모양인지.

안종훈은 여전히 특유의 괄괄한 성격을 죽이지 않고 있었다.

이죽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사나웠고, 입가엔 광포한 비웃음이 걸려있었다.

“음침한 성격답게 이런 곳도 제법 지내기 편한 모양이야 선배님?”

-드르륵

심문실 구석의 의자를 끌어당겨, 안종훈의 눈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흐흐하하하하 그럼. 편하지. 아주 편해! 언젠가 네놈의 목을 물어뜯을 생각만 하면 아주 기분이 기꺼워!”

안종훈은 몸이 묶인 상태에서 호탕하게 웃었다.

“언제까지 이 몸을 묶어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비록 안종훈은 나에게 패배에 이곳에 무력하게 갇힌 상태지만.

놈이 군림해온 세월이 세월이었기에, 신지현의 말대로 놈이 외부에 구축해둔 세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안종훈과 이익 관계로 끈끈하게 얽혀있는 있는 ‘높으신 분’들까지 있었기에.

사실, 고작 사교도 ‘의혹’ 정도로 놈을 몰락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수완 좋은 신지현조차.

목격자들의 증언과 영상을 확보했음에도 불구, 안종훈을 몰아넣는 것에 애를 먹고 있을 정도로 놈의 뒷배는 그야말로 굉장히 탄탄한 수준이었다.

“아주 좋은 곳이야. 선배님. CCTV도 없지, 방음도 좋지, 여기서 뭔 일이 벌어져도 밖에선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거든.”

안종훈에게 대답하는 대신, 심문실 곳곳을 둘러보며 말을 돌리자. 놈은 툴툴거리며 웃었다.

“흐.흐흐흐흐 흐하하하 고작 생각해낸 게 위협인가? 고작 고문 정도로 이 안종훈께서 입을 열거라 생각했나 본데. 어디 한 번 해보시지 그래?”

과연, 안종훈과 유착한 세력이 보통이 아닌 모양인지,

놈은 당장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법한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도발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안종훈의 눈빛엔 ‘네까짓 놈이 뒷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정도 되는 비웃음이 듬뿍 묻어나오고 있었다.

“….”

하지만, 난 놈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계속해서 시선을 돌려대며, 어두컴컴한 심문실 곳곳을 둘러보았다.

아. 저기 있었네.

그렇게 얼마간 심문실 구석구석을 둘러본 끝에.

마침내, 심문실 구석의 녹슨 족쇄 옆의 낯익은 돌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얼핏 봐서는 낡은 족쇄에서 튀어나온 못처럼 생긴 놈이었기에

“뒷감당이나 할 수 있으면. 이 몸을…. 잠깐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그곳에 다가가 돌기를 살짝 건드린 순간!

쉴새 없이 떠들던 안종훈의 말이 뚝 끊어졌다.

급작스럽게 비명 지르듯 내지른 고함엔, 숨길 수 없는 당황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쿠구구궁

안종훈의 내지른 고함을 효과음 삼아. 녹슨 족쇄가 걸려있던 벽이 빙글 돌아갔다.

빙글 돌아간 벽 내부엔, 숨겨진 장소가 척 봐도 수상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어이쿠, 이건 또 뭐야!”

일부러 과장하듯 호들갑 섞인 너스레를 떨어준 뒤.

성큼성큼 아가리를 쩌억 벌린 숨겨진 장소로 걸어 들어갔다.

1평 남짓 조그마한 공간의 한쪽 벽엔 기괴한 생김새의 고문 도구가 걸려있었고.

반대쪽 벽에 자리 잡은 붙박이식 책장에는 노랗고 파란 파일철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안종훈이 ‘심문’하다 질린 희생자를 처형할 때 쓰던 도구들과 그들의 사진을 꽂아둔 파일철이다.

가학적인 안종훈의 취향이 듬뿍 묻어있어서인지. 걸려있는 흉기들의 끝엔 아직도 희생자의 혈흔과 살점이 묻어, 기분 나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역시, 이 시기에도 이따위 악취미를 즐기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선배. 여기 아주우 재밌는 게 있는데?”

“크, 크으윽!”

싱글벙글 웃음을 가득히 띤 채. 안종훈에게 다가가니.

놈은 겁과 당황이 일대일 비율로 섞인,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콰아아악!

안종훈에게 다가간 나는 놈의 머리채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곤 놈의 그 추악한 몸뚱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안종훈의 은밀한 취미생활이 숨겨진 장소로 끌고 갔다.

“네, 네놈이 여, 여길 어떻게…!”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의문을 표하는 안종훈에게 대답 대신 싱긋 미소를 지어줬다.

놈이 갑자기 평정을 잃을 정도로 당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측근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회귀 전에도 안종훈은 확실하게 처형할 대상 앞에서만 이곳을 개방하곤 했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의 존재를 아는 것은 안종훈과 놈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들뿐이었다.

그때 허무하게 사망해버린 안종훈의 흔적을 광적으로 쫓지 않았었다면, 나 역시 이곳의 존재를 끝까지 알 수가 없었겠지.

“흐, 흐흐흐. 그래. 여긴 내가 길드에 반역한 범죄자 놈들을 처형하던 곳이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극악무도한 범죄자 놈들을 처형한 것이 잘못인가?”

하지만, 교활한 안종훈답게 놈의 동요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잠깐 사이에 정신을 수습한 안종훈은 오히려 뻔뻔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안종훈의 말마따나 감찰팀장으로서 범죄자를 처형할 수도 있는 일이다.

도덕적으로라야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온갖 더러운 일들이 얽혀있는 곳이 바로 태백이란 길드다.

그 정도 추문쯤은 안종훈에게도, 놈을 비호 하려는 세력에게도 별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안종훈은 오히려 그것을 수긍하는 쪽으로 나왔다.

“그야 댁이 감찰팀장이었으니 잘못된 건 없지. 하지만…. 어머나! 이 서류는 대체 뭐지?”

하지만, 당연히 나 역시 고작 놈의 추악한 취미생활을 공개하자고 이런 일을 벌인게 아니다.

과장된 연기 톤으로 품속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안종훈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팔랑거리는 두툼한 갈색 봉투의 현란한 움직임에 안종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선배에게 불리한 서류 따윈 남겨두지 않았다며? 그렇다면 이 서류는 대체 뭘까?”

그리곤 안종훈이 이해하기 쉽도록,

품속에서 꺼낸 서류를 희생자들의 사진이 끼워진 파일철에 사이에 슬쩍 집어넣었다.

“이, 이 미친새끼!”

비로소 내 의도를 이해한 안종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감찰팀 팀장이자 안종훈께서 이토록 허술한 장소에 치명적인 증거를 남겼을 줄이야.”

비밀공간에 비치된 흉기와 희생자들의 처참한 사진 따윈,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니다.

희생자들은 이미 감찰팀 손에 인도된 길드의 중범죄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암암리에 그들이 안종훈의 손에 살해당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은밀한 취미생활이 보관된 곳에서 사교도와 연관된 증거가 발견된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르지!

“우, 웃기지 마라! 그따위 위조 서류에 누가 넘어가겠….”

안종훈은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 했으나, 이미 놈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감찰팀장쯤 되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의 비밀장소가 들킨 시점에서, 서류의 진위여부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뭐.

안종훈을 비호하려는 세력이 엄정하게 서류의 진위여부를 따지려 들어도 별로 상관없다.

『가면놀이』 스킬을 사용해, 안종훈 본인의 지문과 필체를 정교하게 복사해 놨으니 말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성국의 인장까지 예쁘게 남겨 놨으니. 더 발뻄할 구석도 없다.

“크르르르 이, 이 간교한 새끼가!”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안종훈이 광폭한 살기를 피어 올렸다.

목에 구속구를 차고 있어, 스킬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놈의 기세는 제법 대단했다.

“그런데 선배….”

안종훈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내며, 나는 놈에게 미소를 보내주었다.

엄혹한 살기를 스르륵 녹여내는 온화한 미소에 안종훈의 몸이 움찔 떨렸다.

“선배가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할 건데?”

“그, 그게 무슨 말….”

“고문 따위엔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고 떠들었지?”

으스스한 말로 중얼거리며, 나는 안종훈에게 성큼 다가갔다.

-츠츠츠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금빛으로 물든 눈이 광폭한 기운을 품고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진득하고 끈적거리는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살기에 노출된 안종훈의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선배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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