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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45화 (45/309)

제45화

“크하학. 카학!”

목을 두 번이나 꿰뚫렸지만, 안종훈은 아직 죽지 않았다.

헌터의 질긴 생명력은 아직 그의 죽음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그 질긴 생명력 탓에. 안종훈은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초인의 몸뚱이가 때론 좋지만은 않지. 그렇지 않아?”

서늘한 비웃음을 흘리며, 나는 안종훈의 몸뚱이를 창날로 쿡쿡 찔렀다.

내력이 실린 창날이 놈의 피부를 푹푹 뚫고 들어갈 때마다 살과 가죽이 찢어지고 힘줄이 뎅겅뎅겅 잘렸다. 바닥이 피로 흥건해졌다.

안종훈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벅벅 긁었다.

“계속 이야기를 해보자고 선배님. 그래서, 진짜 남성국이랑 접촉한 게 맞아? 아니야?”

“…?”

히죽거리며, 남성국과의 관계를 추궁하자. 안종훈의 일그러진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놈의 눈은 ‘실컷 떠들어놓고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정도 되는 항의와 의문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아까 지껄였던 거? 당연히 거짓말이었지. 왜? 진짜로 찔리는 게 있나 봐?’

안종훈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놈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속삭이듯 조용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

진실을 들은 안종훈이 기대한 대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놈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몸은 흡사 감전된 것처럼 푸들푸들 떨리며 경련했다.

그렇다.

사실, 내가 입수한 비밀 서류엔 체체파리 클랜에서 관리 중인 게이트에 관한 정보만이 전부였지. 안종훈과 남성국의 거래 내용 따윈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대충 안종훈의 성격을 추론해,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을 뿐인데 자기가 제 발을 저린 것뿐!

이서초 게이트 사건은 안종훈과 감찰팀의 지휘하에 철저히 은폐되었고 증거 역시 그들 손에 전부 파기되었지만, 현장을 지휘한 안종훈조차 남성국의 죽음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남성국이 별관 집무실에 설치해둔 함정 덕에 별관 전체가 깔끔하게 증발해버렸으니 말이지.

덕분에 괜히 켕기는 게 있었던 안종훈이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잘 속아 넘어간 것이다.

“…카하핫! 카학! 퉤! 이, 이 교활한 새끼가아!”

극한으로 치달은 분노 덕일까? 안종훈의 목에 난 상처가 재생되었다.

끈적거리는 검은색 핏덩이를 한 말이나 토해낸 놈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원한! 분노! 억울함!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 눈빛!

음! 딱 좋은 눈빛이야. 그래! 이거지 이거! 이걸 보고 싶었어!

회귀 전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안종훈의 진정으로 격노한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렸다. 쾌락 중추가 황홀하게 떨리며 울컥울컥 엔돌핀을 토해냈다.

영혼까지 시원할 정도의 카타르시스가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이, 이대로 끝날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설용호!”

궁지에 몰린 악역이 지지 않기 위해 짓는, 상투적인 표정과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사.

자의식이 강한 놈들은 어쩜 이렇게 다 똑같은지 모르겠다.

이대로 끝나지 않아?

그거 좋네! 나 역시 그렇게 간단하게 끝낼 생각이 없거든.

“그거, 차암 기대가 되네. 그런데…. 선배님 표정이 좀 띠껍다?”

-꽈앙! 꽝! 꽈앙!

히죽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안종훈의 머리채를 콰악 틀어잡곤 바닥에 쾅쾅 내려찍었다.

놈의 머리통이 바닥과 찐한 랑데부를 나누는 순간마다 굉음이 터졌다. 바닥이 우르릉 울렸다.

뿌드득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틀어쥔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뜯어졌다.

“크흐흡, 끄윽 끅.”

얼굴이 거의 바닥에 갈리다시피 했는데도, 용케 안종훈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신음을 삼키는 그의 표정은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쪽도 그냥 끝내고 싶진 않거든, 자세한 건 그쪽의 비밀 장부를 털어보면 어련히 나오겠지. 안 그래? 그때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구.”

계속된 폭력의 시간이 지나간 뒤, 비아냥을 섞어 비밀 장부의 존재를 입에 답았다.

순간, 고통으로 트릿해졌던 안종훈의 눈빛이 승리감으로 번쩍 빛났다.

놈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기라도 하듯,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결백을 밝혔다.

“비밀 장부? 하, 하하하! 어리석은 놈! 마음대로 찾아봐라! 내가 그런 허술한 증거를 남겨놨을 거라 생각….”

비웃듯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치던 안종훈의 말이 중간에 뚝 끊겼다.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시뻘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 다들 들었지? 안종훈 저 새끼가 진짜 사교도랑 거래를 했나봐!

-조졌다 시팔! 다 녹화해뒀어! 내 언젠간 저 새끼를 뭣 되게 만들 날이 올 줄 알았지!

역시,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눈과 귀를 쫑긋 열고, 이쪽을 주시하던 길드원들은 안종훈의 실언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번쩍 치켜든 스마트폰이 계속해서 번쩍였다. 놈의 발언은 군중들의 스마트폰에 확실히 촬영되었다.

평소에 쌓아왔던 업보가 다시 한번 놈에게 비수가 되어 다가왔다.

남성국과는 달리, 안종훈은 외부보다 내부에 더 적이 많은 인물이다.

당연히,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 같은 걸 장부 같은, 뻔한 형태로 남겨뒀을 리 없겠지.

굳이 장부를 입에 담았던 것은 놈의 실언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노렸던 대로, 계속된 폭력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안종훈은 일순간의 승리감에 젖어 치명적인 악수를 둬버렸다.

“증거를 남겨놔? 사교도와 거래를 하긴 했다는 말이지 선배님?”

“크윽…. 크으윽! 이, 이 교활한 새끼가아앗!”

“허술했어. 허술했어. 선배님. 내가 왜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쪽과 붙었을 거라 생각해?”

모든 것은 큰 그림이었다.

그동안 지껄였던 사교도 타령은 길드원들의 스마트폰에 모조리 촬영되었을 터!

평소에 많은 원한을 쌓아둔 감찰팀과 안종훈이라면, 그들의 증언이 더 없이 치명적이겠지.

안종훈을 찍어 내리기 위해, 놈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 줄 사람은 이 길드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테니까.

“이익… 이이이익!”

안종훈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이번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법 열을 받으신 모양인지, 뻘건 얼굴 위로 힘줄이 툭툭 비어져 나왔다.

회귀 전, 내게 씌웠던 누명과 똑같은 수법, 똑같은 방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물론, 나는 똑같이 갚아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자까지 넉넉히 쳐서 빚을 곱절로 받아냈다.

‘사교도와 결탁했다는 증거는 내가 알아서 잘 ’찾아낼‘테니까. 안심하고.’

부들거리는 안종훈에게 목소리를 낮춰 킥킥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 이 커헉!”

-뻐억!

분노로 푸들푸들 떨고 있는 안종훈의 복부를 창끝으로 강하게 내려찍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꺼먼 피가 섞인 시쿰한 액체가 놈의 입에서 울컥 역류했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안종훈은 이내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쿠웅!

“내가 승리했다! 안종훈의 자리는 이제 나의 것-이-다!”

안종훈의 의식이 끊김과 동시에,

나는 벌떡 일어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길드 사옥 건물 전체를 쿠르릉 울리는 사자와 같은 우렁찬 포효!

-우와아아! 진짜야 진짜 설용호가 이겼어!

-설용호! 설용호!

숨죽이며 지켜보던 모두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스마트폰 카메라에선 정신없이 허연 플래시가 번쩍였다.

“으아아아아!”

관중들의 반응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나는 다시 한 번 승자의 함성을 내질렀다.

****

-콰앙!

“설용호오오옷!”

인사팀 직원들과 함께, 신지현은 카페 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왔다.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뾰족한 고함을 내지르는 그녀는, 하룻밤 새 확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다크서클은 더욱 진해졌고, 얼굴은 더욱 푸석거렸으며, 이마엔 미세한 주름살까지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엔 에너지 드링크 캔이 소중하게 꼬옥 쥐어져 있었다.

“오우, 빨리도 오셨네. 이미 다 끝났는데 행동이 너무 굼뜨신 거 아닙니까?”

그런 신지현과 인사팀 일행을 느물느물한 태도로 여유롭게 맞아준 뒤.

멀리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위해, 싱그러운 미소와 멋진 포즈를 취해줬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대체! 도전장 보낸 게 어젠데, 벌써 감찰팀에게 시비를 걸어요?”

“뭐 문제 될 거라도 있습니까?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고 이미 안종훈은 패배자 신세가 되어버렸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며 되묻자. 신지현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안종훈이 패배자가 되었다.’는 말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딱 벌렸다.

“…이긴 거에요?”

“지금 밟고 있으신 게, 안 팀장, 아니 안종훈 아닙니까. 당연히 이겼죠.”

“네? 으꺄아악!”

뒤늦게 자신의 발밑에 깔린 안종훈을 발견한 신지현이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카, 카페에서 헌터님과 감찰팀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는 소린 들었는데. 어떻게 벌써….”

끔찍한 몰골로 기절한 안종훈을 바라보는 신지현의 눈빛은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쟁탈전에서 승리했기에, 걱정했던 대로 감찰팀에게 험한 꼴을 당할 일이 없겠다는 안도감.

오랫동안 으르렁거리며 다퉈온 안종훈의 몰락에 대한 애증의 감정,

안종훈의 몰락이 불러올, 거대한 인사이동에 대한 걱정 등등

온갖 복잡한 상념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녀의 눈에 감돌았다.

“핫! 추, 축하드려요. 이제 그럼 헌터님이 감찰팀 팀장 겸 일곱째 산군인가요?”

그렇게 얼마쯤 우두커니 안종훈을 바라본 신지현은, 뒤늦게나마 내게 축하의 말을 전해왔다.

“일곱째 산군은 맞지만, 제가 왜 감찰팀을 맡겠습니까. 조직을 관리할 경험도 인맥도 없는데.”

자유를 누리며, 사냥에 전념할 수 있는 산군의 자리는 환영이지만.

감찰팀을 직접 움직이며, 그쪽 업무를 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은 사절이다.

뭐, 안종훈이 그랬던 것처럼 감찰팀 팀장으로서 칼날을 휘두르며 일순간의 권세를 누릴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내게 더 큰 목표가 있는 이상, 그 정도의 권력 따위에 눈이 멀어 현실에 안주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당연히. 감찰팀은 매니저님께서 맡으셔야죠. 아시잖아요? 우리 공동 운명체라는 거.”

빙그레 웃으며, 신지현에게 넌지시 감찰팀을 넘겨주자….

“지, 진짜요?”

신지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당근과 채찍이다.

어차피 먹을 생각도 없는 당근 따위, 앞으로의 일을 위해 신지현에게 줘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불만이 쌓였을 테니, 슬슬 뭔가 그녀를 달래줄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니까, 한번 쐐기를 박아봅시다. 우선 인사팀을 부려, 패배자 안종훈의 재산을 몰수해오세요. 사교도와 놈의 관련성을 조사해야하니, 집부터, 차, 공방 등등 먼지 한 톨 남기지 말고 전부!”

패배자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이긴 하나, 쟁탈전에서 패배한 패배자의 재산까지 몰수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아무리 패배했다곤 하나, 그 역시 강력한 헌터인 만큼 재산까지 몰수하면 반감을 품고 길드를 배신하거나 그 무식한 무력을 길드원들에게 행사해버릴 수도 있었으니….

패배자의 ‘개인적인’ 재산만큼은 건들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허나, 나는 자비심 없이 신지현에게 안종훈의 ‘모든 것’을 가져올 것을 명했다.

아주 철저하게 놈을 나락으로 빠뜨릴 심산이었기에, 일말의 자비따윈 허락해줄 생각이 내겐 전혀 없었다.

명분도 좋았다.

모든 이들이 안종훈과 사교도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버린 상황이었기에 사교도 증거 ‘수색’을 명목으로 놈의 재산을 압류하기도 편했으니까.

뭣보다 수년간 부를 축적해온 안종훈의 재산이라면,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일을 벌일 수 있겠지.

“네! 네! 당연하죠. 즉시 시작할게요. 아! 징수권! 좋은 대화 수단이지!”

감찰팀의 팀장이란 막대한 권한을 인계받은 신지현의 눈이 과할 정도로 반짝였다.

그동안의 피로와 고통이 전부 거짓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쾌활하게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회귀 이후, 그 어떤 때보다 더 밝아 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

“네네! 말씀만 하세요. 아휴 우리 헌터님 부탁이라면 뭔들 못 들어 드릴까!”

당근이 조금 과했던 건가…?

신지현의 태도 또한 변했다.

손바닥을 간사하게 쓱쓱 비비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모 그녀의 모습은, 마치 폭군에게 절대적 충성을 표하는 간신배의 쓸개 빠진 모습과도 같았다.

“인사팀 요즘 인력 좀 남아요?”

“인력이야 없는데 까짓거, 며칠 더 야근하면 그만이죠. 뭐!”

신지현은 에너지 드링크 캔을 우그러트리며 호기롭게 외쳤지만.

야근이란 말에 그녀와 동행한 다른 인사팀 직원들은 나라 잃은 난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실은 안종훈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목소리를 낮춘 난, 신지현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한 손짓을 보냈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바짝 가까이 다가왔다.

체취와 뜨뜻한 호흡에 노출딘 신지현의 얼굴이 붉어지며 호흡마저 가빠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 조용히 본론을 꺼냈다.

‘아무래도 안종훈 그새끼가 사교도 쪽이랑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제 들어도 목소리 참 달콤…. 네?! 그게 또 무슨…!”

사교도란 소리에 뭔가 나사 풀린 목소리로 헤벌쭉 미소를 짓고 있던 신지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녀는 쩌렁쩌렁 카페가 울릴 정도로 큰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 높이진 말고, 계속 들어봐요. 안산 쪽 게이트에서 이들의 행적이….’

잔뜩 긴장한 신지현에게 난 엉뚱하게도 안산 게이트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강태백과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는 쏘옥 빼낸 채.

감찰팀이 그동안 그곳에서 수상한 짓을 벌였다는 것만을 알려줬다.

‘확실히…. 안산 게이트가 예전부터 수상하단 소리가 들리긴 했어요. 안종훈이 거기서 유독 자주 목격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한번 조사해 볼만한 가치는 있겠네요.’

안산 게이트에 강태백의 치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길드 상층부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작해야 인사팀 팀장에 불과한 신지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신지현에게 감찰팀을 넘겨주는 김에, 난 꾀를 내어 그녀에게 일종의 굴레를 씌우기로 결정했다.

강태백에 있어선 역린이나 다를 바가 없는 곳이 바로 안산 게이트다.

그런 곳을 신지현이 조사하기 시작한다면, 그녀는 자연히 강태백의 눈 밖에 나버릴 터!

심지어, 신지현은 그 강태백이 인정했을 만큼 정보수집과 그것을 분석하는 데 있어선 유능한 인재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신지현쯤 되는 인재가 자신의 치부에 접근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강태백이 아니다. 무조건 죽이려 들겠지.

회유? 신지현의 속물적이고 영리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강태백이다.

아무리 그녀를 회유한다고 해도, 나중을 위해 증거를 꿍쳐둘 인물이 바로 신지현이라는걸 누구보다 강태백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신지현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강태백과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눈치 챈 순간부터, 그녀는 살기 위해서라도 내게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거다.

그리고 스스로의 보신을 위해서라도 더욱더 악착같이 강태백을 몰락시킬 증거를 찾아대겠지.

그게 신지현이란 인간이고 또, 그게 강태백이란 인간이다.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매니저님.”

복잡한 속내를 숨기며, 나는 태연한 척 신지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예,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지시하신 대로 다 해놓을게요.”

그런 속내도 모르는 신지현은 고개를 끄덕인 채 휘하의 인사팀을 부려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텅 비어버린 카페 내부가 그녀의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박 대리는 그쪽을 맡고, 성민 씨는 현장 사진 찍어둬. 아. 거기 기절한 아저씨랑 안종훈에겐 구속구 채워서 잘 묶어줘요.”

구속구…?

다음 계획을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 낯익은 단어에 쫑긋 귀가 세워졌다.

고개를 돌려 분주히 움직이는 인사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젊은 여직원이 내게 있어선 굉장히 낯익은 목걸이를 들고 오는 광경이 보였다.

구속구.

회귀 전, 노예로 전락해버린 내가 2년 동안 단 한시도 벗을 수 없었던 저주받은 개목걸이!

허락 없이 스킬을 사용하기만 하면, 가차 없이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흉악한 놈이다.

안종훈에게 구속구를 씌운단 말이렷다….

그렇게 즐거운 일을 남에게 시킬 순 없지!

“위험할 수 있으니까. 안종훈에겐 제가 채우죠. 줘보세요.”

이것도 복수라면 복수다.

과거엔 은유적인 표현에서 안종훈이 내게 노예 목걸이를 씌웠다면 이번엔 내가 직접 안종훈에게 노예 목걸이를 씌우게 되었군!

-철컥!

차가운 금속이 선사해주는 낯익은 서늘함을 느끼며, 나는 안종훈에게 구속구를 착용시켰다.

비로소, 복수가 완성된 것 같은 충실만 만족감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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