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내게 도전하겠다고? 지금? 여기서?”
순간의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안종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쟁탈전의 첫 번째 규칙이 그것 아니었던가? 왜? 쫄았어?”
등에 비끄러매었던 어둠달을 꼬나 들고, 비꼬듯 이죽거리며 안종훈을 도발했다,
불온한 기류를 감지한 이들은 모조리 대피해, 카페 안은 텅 비어버린 상태!
물론, 강자를 숭앙하는 야만스러운 헌터 업계답게 밖으로 대피한 인원들은 모두, 투명한 강화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구경하고 있었다.
“…후배님. 요즘 좀 잘 나가신다더니, 눈에 뵈는 게 없으신 모양이야?”
내 도발을 들은 안종훈의 얼굴에 돌연 온화한 미소가 감돌았다.
말투도 사근사근했다. 눈빛도 친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온후함이 듬뿍 묻어있었다.
전체적으로 지금의 그에겐 마치, 폭풍 전의 고요와도 같은 기묘한 평화가 깃들어있었다.
“듣자하니까, 마의 구간을 지나, 레벨을 세 단계나 올렸다면서? 그래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가 본데….”
“싸우자는데 왜 그리 혓바닥이 기냐니까? 같잖은 소리 말고 덤비라고 새꺄!”
-까딱.
온화한 태도로 말을 이어가는 안종훈의 말을 중간에 뚝 끊고 나는 놈에게 욕설과 함께, 도발하듯 손을 까닥거렸다.
“흐흐흐 흐후하하하하!”
안종훈은 툴툴거리며 웃었다.
툴툴거리며 시작된 웃음은 이내 폭소가 되었다.
폭소는 광소가 되었고 광소는 광기로 번졌다.
“이 건방진 새끼!”
-촤아아앙!
마침내! 안종훈의 태도가 급변했다.
놈의 손가락 끝에서 검붉게 번들거리는 손톱이 튀어나왔다.
마치 짐승처럼 이가 불쑥 자랐다. 몸에는 짐승의 그것과 같은 털가죽이 비죽 자라났다.
번들거리는 눈에선 살기 어린 광기가 폭발하듯 뿜어졌다.
“크흐흐흐흐 좋다! 사냥? 기꺼이 응해주지. 네놈의 그 건방진 몸뚱이로 박제를 만들어주마!”
-콰아아앙!
고함과 함께 안종훈은 땅을 박차고 내게 쇄도해왔다.
놈의 위명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안종훈의 몸놀림은 회귀 후, 지금까지 만난 어떤 몬스터보다 더 날랬다.
질식할 듯 넘실거리는 살기가 담긴 공격은 그 어떤 우두머리보다 더 흉폭해 보였다.
하지만.
안종훈은 알까?
놈에 의해 노예로 전락했던 2년의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원한을 곱씹으며, 복수를 갈망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카가가가각!
“…!”
폭발하듯 쇄도해온 손톱이 창대에 가로막혔다.
금속질 손톱과 금속질 뼈로 만들어진 창대가 맞붙어 쇳소리의 노래와 불꽃의 춤을 토해냈다.
“막아?”
안종훈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회귀 전, 놈이 허망하게 사고로 뒈지기 전까지만 해도 복수를 갈망하며 수백, 수천, 수만, 수억 번 상상해본 전투다.
안종훈의 전투방식 습관 등등! 수없이 상상을 해왔던 결과. 굳이 화안금정을 쓰지 않고도 놈의 모든 것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괜히 내가 놈에게 도전한 게 아니지!
“푸흐흐. 후배님 확실히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부와아아악!
대화 도중 짓쳐들어오는 비열한 일격!
대화로 상대방의 주의를 돌린 뒤, 기습하는 것이 안종훈의 전매특허다.
하지만, 이 역시 수없이 해왔던 시뮬레이션 속에서 몇천 번이나 겪어본 상황이지!
-까드드드득!
이번에도 불꽃과 쇳소리만을 남긴 채, 안종훈의 기습은 허무하게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자신의 기습이 또 막혔다는 사실에 안종훈의 눈빛이 비로소 진중해졌다.
“크아아앙!”
짐승과 같은 포효와 함께 안종훈은 한 마리 늑대처럼 내게 쇄도해왔다.
검붉게 번들거리는 손톱은 질식시킬 듯한 살기를 뿜어냈고, 전신의 체중을 손에 실어 쇄도해오는 일격은 흉험했다.
마치 사람이 아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 같은 전투방식!
『야성의 수호자』 특성 트리를 탄, 안종훈의 독특한 전투스킬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후왕! 후와앙! 후왕!
불길하게 검붉은 기류를 흩뿌리는 손톱이 연속으로 허공을 갈라왔다.
단순하고, 또 무식하기까지 한 공격이었지만 놈의 공격 속도와 거기에 실린 위력 또한 무식할 정도로 빨랐고, 또 대단했다.
“어딜!”
안종훈의 공격이 내게 닿기 직전, 내력을 불어넣은 창대를 휘둘러 놈의 손톱을 모조리 막아냈다.
-카앙! 캉! 캉!
금속질 뼈로 된 창대와 손톱이 만나, 계속해서 불똥을 튀겼다.
거칠게 마찰된 금속이 피 비린내와 유사한 냄새를 훅 풍겼다.
“크으읏!”
내력을 주입한 창대로 안종훈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내듯 막아내었으나 창대에 전해지는 충격은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흉험한 수준이었다.
“언제 이 정도로 실력을 쌓은 거야. 후배님? 정말이지 이 정도라면….”
전투 중 대화를 걸어와, 호흡을 끊는 것이 바로 안종훈의 비열한 전투 수법이다.
-파슈웃!
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내력을 듬뿍 주입해 검게 물든 창날에서 독룡아가 펼쳐졌다.
검게 물든 흑룡이 안종훈의 사각으로 파고 들어가, 놈의 목덜미를 광폭하게 물어뜯었다.
-콰드드득!
하지만, 내 공격은 안종훈의 몸 전체에 덥수룩하게 자라난 털가죽을 뚫지 못했다.
목덜미를 노렸던 창날이 요란한 불꽃을 튀기며, 두꺼운 털가죽 위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오호우! 이런. 설마, 외골격도 모르면서 내게 덤볐던 거야? 이건 또 이것대로 실망인걸!”
갑자기 쇄도해온 공격에 야유 섞인 탄성을 내지르며, 안종훈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슬쩍 올려져 비틀려진 놈의 입가는 명백한 비웃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외골격.
30레벨에 도달한 헌터는, 외골격이라 불리는 일종의 방어막을 얻게 된다.
안종현의 몸에 치렁치렁하게 자라난 털가죽 역시 외골격의 일종!
외골격의 존재 때문에, 30레벨의 이하의 하위 헌터가 이상의 상위 레벨의 헌터를 사냥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만….
-쿠르르륵
외골격 역시, 이미 상정해둔 바였다.
어둠달의 코어에 박혀있는 검은 심장이 불길하게 맥동하는 것을 느껴졌다.
그래. 확실히 검은 심장의 ‘흡수’는 외골격에도 통하는 것 같군.
하지만, 본격적으로 외골격을 까부수려면. 놈이 ‘그것’을 쓰도록 유도해야….
-파츠츠츠!
결심이 선 순간 행동을 개시했다.
검은 심장이 거칠게 맥동하며 내력을 빨아들였다.
다시 한 번 창날에 거무스름한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소용없다니까 후배님!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이 선배님의 외골격을 뚫을 수나 있겠어!”
-빠가가각!
입가에 진득한 비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안종훈이 사각을 노려, 기습적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급히 창대로 놈의 발차기를 막아냈지만, 손바닥에 찌릿한 충격이 느껴졌다.
비릿한 피 냄새, 미끈거리는 촉감으로 미뤄보건대 손바닥이 조금 찢어진 것 같았다.
막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안종훈이 가진 괴력에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역시. 지금 상황에선 최대한 놈과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군.
“후우우우.”
심호흡과 함께, 쿵쿵대는 심장을 자극해 강렬한 투쟁심을 끌어냈다.
뇌 속에서 울컥울컥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전신에 흥분을 불어넣는다.
-츠츠츠츠츠.
창대를 단단히 움켜쥐고,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눈이 싯누렇게 물들었다. 황금빛 안광이 형형히 불타올랐다.
세상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크흐흐흐 하룻강아지 새끼 치곤 제법 마음에 드는 눈빛인데?”
안종훈은 금빛으로 물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었다.
동시에 놈의 난폭한 광기가 다시 한 번 폭발했다.
번들거리는 검붉은 손톱! 질식할 것 같은 진한 살기!
육식동물 특유의 노릿한 노린내까지!
“그 눈깔을 도려내! 장식으로 써주마!”
-부와아아악!
이번에도 체중 전체를 실어 날린, 안종훈의 묵직한 일격이 짓쳐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엔 먼젓번과는 다르지!
화안금정이 발동되어 금빛으로 물든 시야에 안종훈의 공격 궤도가 훤히 보였다.
눈을 노리겠다는 것이 허언이 아니었는지, 놈의 손톱은 정확하게 내 얼굴을 노렸다.
“…!”
안종훈의 공격 궤도를 화안금정으로 미리 읽은 덕분에, 나는 손쉽게 놈의 손톱을 피해냈으나….
-콰아앙!
곳곳에 비치된 카페의 집기들은 그러지 못했다.
카페의 고풍스러운 목제탁자들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박살 난 탁자의 파편들이 사방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탁자 위에 놓여있던 유리잔이 폭발해 반짝반짝 빛을 반사했다.
그리고 파편 사이로 몸을 날리다시피 짓쳐들어오는 안종훈의 일격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하단의 다리를 노리는 매서운 일격!
“어림없지!”
하지만 화안금정의 힘과 안종훈의 비열한 전투방식을 이미 알고 있는 내겐 이런 식으로 허점을 노리고 날아오는 놈의 기습 따윈 별 의미가 없었다.
-콰아앙!
창대를 지지대 삼아 슬쩍 점프하는 것으로 안종훈의 공격을 피해냈다.
놈의 공격은 다시 애꿎은 목제탁자만을 박살냈다.
-후와앙! 후와아앙!
검붉은 기운을 머금은 안종훈의 손톱이 휘둘러질 때마다 엉뚱한 집기들이 부서졌다.
일부는 거칠게 하늘을 가로질러, 관중들이 달라붙어 있는 카페의 강화유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와장창!
-으아아악! 미친!
어찌나 무식한 힘인지, 그렇게 날아든 의자며 탁자 파편들에 총을 쏴도 끄떡이 없는 강화유리가 와장창 부서졌다.
구경 중인 길드원들의 비명과 고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이쿠! 저런. 위험하기도 하지. 확실히 힘 하난 제법인데 선배?”
하지만,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
안종훈의 무식한 공격들은 내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깨져버린 유리창에 슬쩍 시선을 준 뒤, 휘파람을 불며 야유하듯 안종훈에게 이죽거림을 보냈다.
“크흐흐흐 그래! 인정은 해주마! 몸놀림은 꽤 예사롭지 않다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놀아보자고!”
-콰앙!
잔뜩 약이 오른 안종훈이 광소와 함께 지표면을 강하게 가격하자 폭음이 터졌다.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수도관이 터진 바닥에서 물줄기가 솟구쳤다.
“나와라, 형제들이여! 사냥의 시간이 도래했나니!”
-후오옹 후오오옹!
솟구친 물줄기에 기괴한 룬문자가 새겨진다. 싶더니, 물이 늑대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박살 난 대리석 조각에서도 룬문자가 새겨지더니, 돌조각들이 곰의 형상을 갖췄다.
주변의 자연물에 자신의 마력과 영혼을 불어넣어 소환수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야성의 수호자』 특성 트리의 또 다른 전투방식이자, 안종훈의 전매 특허 중 하나였다.
《아오오오오!》
《콰우우우!》
생성된 소환수들이 긴 울음소리를 토하며, 내게 습격하듯 짓쳐들어왔다.
안종훈 역시, 마치 짐승처럼 네발로 달려 소환수들과 함께 내게 쇄도해왔다.
“치잇!”
화안금정에 비쳐오는 공격 궤도가 세 배로 늘어나자, 눈이 어지러워졌다.
할 수 없이 몸을 피하는 대신, 양손으로 단단히 움켜쥔 창대를 들어 올려 놈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쾅! 쾅! 쾅!
“크하하핫! 처음의 그 기세등등한 모습은 어디 가셨나! 응? 후배님!”
세 마리의 짐승이 날려대는 합격은 기가 막혔다.
열심히 창대를 놀려 공격을 막아냈지만, 금세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곰, 사람, 늑대의 발톱이 훤히 드러난 맨살을 거칠게 스치고 지나갔다.
슬쩍 스친 상처에서도 진득한 핏물이 울컥 솟구쳤다.
“응? 후배님! 좀 더 발악해봐! 발악 해보라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까?
안종훈이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승리를 확신했다.
-으아아! 설용호가 지겠어!
-안종훈 새끼 소환수 스킬이 너무 사기긴 해. 저걸 어떻게 이겨!
전투의 충격으로 와장창 깨져버린 카페의 강화유리 사이로 관중들의 안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말처럼, 승기는 안종훈에게 완전히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내 몸은 생채기로 뒤덮인 상태였고. 누가 봐도 수세에 몰린 것 같이 보였으니까.
그래.
소환수라. 정말 좋은 스킬이지.
시전자의 마력과 영혼을 불어넣어 마치 그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소환수를 꺼낸 것!
그게 네 치명적인 실수였다 안종훈!
『캐앵!』
-콰드득!
눈에 진한 광기를 품고, 강하게 어둠달을 내질렀다.
검게 물든 창날에서 다시 한번 독룡아가 펼쳐졌다.
검은 용의 이빨은 안종훈의 뒤에서 달려들던 늑대를 거칠게 물어뜯었다.
“물로 이뤄진 늑대는 아무리 공격해봐야 금방 재생을…. 뭐…?”
안종훈의 기세등등한 말대로, 소환수는 자연물로 이뤄진 존재!
일반적으론 어떠한 공격조차 통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검은 심장이 불길하게 맥동한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끼잉. 낑!』
-쿠르르륵
검게 물든 창날이 늑대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룬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
성인 남성만 했던 늑대의 크기가 순식간에 햄스터만큼 줄어드나 싶더니 비명만을 남긴 채, 이내 완전히 소멸해버렸다.
“크허헉!”
늑대가 소멸함과 동시에 안종훈이 왈칵 검붉은 피를 토했다.
놈의 몸에 주르륵 자라난 털가죽이 뭉텅 사라졌다.
『꾸워어어엉!』
동료의 소멸에 흥분했을까. 아니면, 주인의 위기에 흥분했을까.
돌로 된 곰이 흉포한 울음을 토하며 내게 짓쳐들어왔다.
-콰콰콰콰쾅!
폭음! 굉음!
검게 번들거리는 어둠달의 창날이 무식한 위력을 토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펼쳐진 창날의 향연!
파천복룡창의 제 일식 연포가 펼쳐진 결과였다.
돌로 만들어진 곰의 단단한 육신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검게 일렁거리는 창날은 부서진 돌조각에서 거칠게 룬 마력을 빨아들였다.
“뭐, 뭐냐! 그 창은!”
심령이 연결된 소환수를 둘이나 잃어서일까?
앞섬을 온통 피로 적셔버린 안종훈의 안색은 굉장히 창백해 보였다.
놈은 경악한 표정으로 어둠달의 정체를 물어대며 울부짖었으나.
“크하아아악!”
-뻐어어어억!
굳이 창의 정체에 대해 내가 친절하게 대답해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빙글 돌려진 창끝이 안종훈의 복부를 강타했다.
시큼한 위액이 놈의 입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공격이 시원하게 먹혀들었다는 것!
그것은 소환수 둘을 잃어버린 안종훈의 외골격이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으으윽. 이새끼이이! 이 시건방진 애송이 새끼가아아아!”
마치, 상처 입은 맹수와 같은 포효!
안종훈의 얼굴에 시뻘건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놈의 손톱을 감쌌던 검붉은 기류가 더욱 진해졌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
“호오. 또 다른 수가 있나 보네? 왜. 남성국이 뭐 특별한 걸 줬나 보지?”
결정적인 순간. 나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남성국의 이름을 언급했다.
“…뭐 뭣?! 네놈의 그 이름을 어떻게…. 크흣!”
남성국의 이름을 들은 안종훈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들끓었던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전투의 흥분 속에 저도 모르게 남성국에 대해 아는 척을 해버린 안종훈이 아차 싶다는 듯, 말을 멈췄다.
근데. 어쩌나? 이미 늦어버렸는걸?
“호오 체체파리 클랜의 지부장 남성국을 안다고? 사교도들 말이 진짜였나 보네. 실망이야 선배 사교도 놈들과 내통하다니 산군으로써 부끄럽지도 않나 봐?”
일부러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로 남성국의 신분을 관중들 모두에게 밝혔다.
안종훈의 얼굴이 더욱 더 새하얗게 변했다. 놈의 몸이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앗! 네놈! 내게 감히 그런 헛소리를!”
“헛소리? 애초에 내가 댁에게 왜 도전했는데! 이 간악한 사교도의 앞잡이 놈앗! 증거는 이미 신 팀장에게 넘겨놨어!”
-아, 안종현이 사교도였어?
-어쩐지 썅! 보통 악독한 게 아니더라니!
-야, 야 그러고 있지 말고 전부 찍어! 설용호가 지더라도 오리발 못 내밀게 다 찍어!
내 말에 관중들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평소 안종훈이 쌓았던 악독한 업보가 지금의 그에겐 치명적인 비수가 되었다.
기회를 붙잡은 나는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놈에게 쐐기를 박아 넣었다.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안종훈 역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어지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는 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푸슈욱
“크으아아아악!”
감히 내 앞에서 다른 곳에 한눈을 판 대가는 막대했다.
어둠달에 주입된 내력이 검은 심장을 타고 흘렀다.
시커멓게 변해버린 창날이 안종훈의 목젖을 꿰뚫었다.
“카, 카하학! 그래, 그렇다면!”
순간, 안종훈의 살모사처럼 독한 눈빛이 광기에 젖어 번들거렸다.
“마, 망자는 답이 없는 법이지. 같이 죽-자-아!”
최후의 단말마. 시커멓게 변해버린 눈빛 녹아내리는 피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몸통까지! 야성의 수호자 최후의 스킬 자폭!
안종훈은 최악의 선택을 하려고 들었다.
나를 포함해, 이곳에 모인 모두까지 전부 날려버릴 자폭 스킬을 쓰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푸슉
창날로 놈의 허파를 관통시키자, 안종훈의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몸이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허무하게 쪼그라들었다.
놈의 체내에 깃들었던 자연의 핵을 정확하게 노려 부쉈기에 자폭 스킬이 취소된 것이었다.
자폭?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나 당해주는 거다.
회귀 전, 사교도 놈들을 상대할 때마다 비슷한 스킬을 질리도록 겪어봤었다.
파훼법을 뻔히 아는데, 굳이 당해줄 이유는 없지.
“같이 죽자고? 내가 왜?”
절망과 경악으로 물들어가는 안종훈의 눈빛을 즐거이 감상하며.
나는 놈에게 비릿한 비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