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오랜만이에요 헌터님.”
“아, 예…. 오랜만에 뵙는 것 같긴 한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한 몇 주 안 본 사이. 신지현의 얼굴은 굉장히 피폐해져 있었다.
허연 피부는 누렇게 떠 있어 푸석해 보였고 거뭇한 다크서클이 거의 볼까지 길게, 아주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심지어 씻지도 못한 모양인지, 떡진 머리는 기름을 머금은 채 불쾌한 광택을 내며 번들거렸다.
“그동안 누구 때문에 아주. 아주우우 많이 바빴답니다.”
신지현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으로 원망과 푸념을 섞어 말했다.
그동안 바빴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산처럼 서류 더미가 쌓여있는 책상 위엔 몬스터의 정수를 정제하여 만든 에너지 드링크 캔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에너지 드링크 특유의 진한 합성 감미료 냄새가 났다.
“누구 때문이라니요?”
“공격대를 두 개나 결딴 내놓은 사람이 누구 때무운? 몰라서 물어욧! 어휴우.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연속된 두 번의 사건으로 두 개의 공격대와 게이트 관리팀이 전멸해버렸기에. 신지현이 팀장으로 있는 인사팀에선 인사발령 문제로 골머리를 좀 썩히고 있는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등 공격대가 전멸한 건 내 탓이 아니라 사교도의 습격 때문이지만, 묘하게 신지현은 내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뭐, 그녀 입장에선 어찌 되었든 나랑 엮여서 그 지경이 난 거니까. 고까울 순 있겠지.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한바탕 소리를 뺴액 내지른 신지현은 책상 위로 얼굴을 푹 파묻었다.
수북하게 쌓인 서류들이 마치 이불처럼 그녀의 얼굴을 포근하게 덮어주었다.
“어, 그러니까. 별건 아닌데요….”
피폐해진 신지현에게 굳이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내 전속 매니저인 이상. 길드 내에서 내 신변에 관련된 모든 일은 그녀가 도맡아 처리해야 하니깐 말이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머리를 벅벅 긁곤, 잠시 뜸을 들이다 본론을 꺼냈다.
“감찰팀 안종훈 팀장에게 도전하려구요. 아시죠? 산군 쟁탈전.”
“그럼요. 잘 알죠, 산군 쟁탈전 그것참 오랜만…. 예?!”
깜짝 놀란 신지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급작스러운 기상에 서류뭉치가 터진 베갯속의 오리털처럼 요란하게 후드득 휘날렸다.
“사, 산군 쟁탈전이라뇨. 그런 걸 길드장님이 허가해주셨을 리가….”
“이번에 공적을 좀 쌓았거든요. 패기 있는 젊은 친구라며, 흔쾌히 허가해주시던데요?”
강태백이 허가해줬다는 말을 들은 신지현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그래도 그거 성급하신 거 아시죠? 아직 저랑 상의도 안 하셨으니…. 안 팀장에겐 아직 알려지지….”
“아마 내일 중으로 길드 내 공지사항에 올라올걸요? ‘신입헌터 설용호 감찰팀장에게 도전하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요.”
실은 강태백에게 산군 중 ‘누군가’에게 도전한다고만 했지, 그 대상을 콕 찝어서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안종훈과의 대결을 강태백이 알고 있다는 것은 바로 신지현을 움직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산군 쟁탈전의 도전장을 작성하는 것과 해당 부서에 관련 서류를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다.
신지현이 내 전속 매니저인 이상 날 대신해서 수고를 좀 해 주셔야지.
“아니, 진짜! 뭘 하고 돌아다니시는 건데요! 몇 주 안 봐서 조용하다 싶었더니, 뭐요? 산군? 사아아안구우우운? 으아아악!”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신지현의 히스테리가 폭발했다.
뾰족한 비명을 내지른 그녀가 자신의 관자놀이 쪽 귀밑머리를 쭈와악 잡아당겼다.
-쾅쾅!
자신의 모근 건강에 치명타를 안겨주고도 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인지 신지현은 곧이어 책상과 자신의 머리의 내구성을 겨루는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그녀의 머리가 책상에 충돌할 때마다 서류가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서류가 바닥에 쏟아질 때마다, 인사팀 직원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안종훈 팀장이 얼마나 개자…. 쓰읍! 강한지는 아세요?”
그렇게 자기 파괴의 현장이 지나간 뒤 신지현은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채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감찰팀 팀장에, SS 승급 후보생에, 태백 길드의 일곱 산군의 말석. 거기에 현재 레벨은 35로 길드 레벨 랭킹 20위.”
“…잘 아시네요?”
“사냥감을 잘 알아야 하는 게 헌터의 덕목 아니겠습니까.”
히죽 웃으며 능글맞게 헌터의 덕목을 언급하자 신지현은 책상에 고개를 콱 처박은 채로 마치 생쥐가 단말마를 지르는 것 같은 기묘한 신음을 내었다.
“산군 쟁탈전에서 패배하면, 패배한 쪽이 무슨 일을 겪는지는 알고 있고요?”
“당연하죠! 패자의 말로이자, 승자의 권리인 징수권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길드 내 위계질서를 한순간에 바꿀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이 있기에 산군 쟁탈전은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징수권.
승자에겐 패자의 모든 것을 ‘징수’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목숨이든, 세력이든, 뭐든 말이지.
말 그대로 패자는 승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토해내야 하는 법!
“미쳤어! 정말!”
-콰앙!
이번에는 자신의 손목 내구도를 시험할 모양이다.
신지현은 힘껏 책상을 쾅 내려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종훈 그 빌어먹을 자식이 우리 인사팀을 얼마나 고깝게 보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댁이 지면? 응? 우리 다 나가리 되는 건데. 왜 그걸 댁 맘대로 해!”
이글거리는 눈빛, 지독하게 풍겨오는 에너지 드링크의 감미료 냄새.
폭풍 같은 히스테리를 토해내며 나를 노려보는 신지현의 기세는 굉장히 살벌했다.
나와 신지현이 전속 매니저 관계로 묶여있기에 내가 안종훈에게 패배한다면, 그녀와 인사팀 역시 고스란히 안종훈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그녀뿐만 아니라, 인사팀 전체의 존망이 엮여버린 것!
-뭐? 안종훈이랑 설용호가 산군 쟁탈전을?
-아이고 맙소사. 우린 망했어! 주택 할부가 아직 20년이나 남았는데!
신지현이 모두 들으라는 듯,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내게 따지기 시작하자 나와 안종훈의 산군 쟁탈전 소식을 들은 인사팀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로 제가 이기면 인사팀 쪽에서 감찰팀을 부려먹을 수 있겠죠.”
“…예?”
승자에게 패자의 모든 것을 포식할 권리가 생긴다는 것은 내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안종훈이 패배할 경우, 나는 산군의 직위는 물론이요, 놈이 거느린 감찰팀까지 모조리 포식할 생각이었다.
황금빛이 번뜩이는 눈빛이 탐욕을 머금었다.
벌써부터 승리를 언급하는 내 자신만만한 발언에 신지현은 할말 을 잃은 듯 입을 헤 벌렸다.
“하여튼 잘 부탁드립니다. 매니저님. 아시죠? 감찰팀에게 서류 보내야 하는 거.”
뻣뻣하게 굳어버린 신지현의 어깨를 토닥여준 뒤 얼이 빠진 그녀와 눈을 맞췄다.
여기에 상큼한 미소와 함께 산군 쟁탈전에 관련된 서류작업을 부탁했다.
그리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인사팀 사무실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으아아아악!
-티, 팀장님?
-말려! 말려엇! 저거 찢어지면 오늘도 야근이야!
닫힌 문 너머로 부우욱 종이 찢는 소리, 신지현이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 경악한 직원들의 비명이 들렸다.
“고생 좀 하시겠어.”
마치 음악처럼 들려오는 히스테리에 가득 찬 신지현이 연주하는 고통과 고뇌의 합주곡에 어쩐지 속이 좀 편안해졌다.
-갸아아아악! 설용호오오오오오!
그녀의 비명에 박자를 맞춰, 휘파람을 휘휘 불며 나는 여유롭게 회사를 빠져나갔다.
****
다음 날.
“흐응 흥 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태백 길드 빌딩에 들어서자 출근 시간을 맞아 소란스럽던 로비의 웅성거림이 뚝 멎었다.
-저, 저기 온다. 저 사람이 설용호 헌터야!
-저렇게 곱상하게 생긴 사람이, 안종훈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세상에.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봐. 안종훈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각자의 표정과 태도는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나와 안종훈의 산군 쟁탈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기들 딴엔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린 모양이다만, 인간을 초월한 헌터의 감각엔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잘만 들렸다.
[신지현 그것이 일은 참 잘한단 말이지.]
히스테리를 부린 것과 달리, 신지현은 역시나 일을 꽤 잘 해줬다.
불과 하루 만에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뭐, 소문이 이토록 빨리 퍼진 것은 비단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
안종훈이 누군가!
감찰팀장과 산군의 자리가 합쳐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
일반적인 길드원들에겐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안종훈에게 이제 가입한 지 고작 한 달이 조금 넘은 햇병아리가 도전했으니만큼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문이 빛보다 빠르게 퍼질 만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주변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든 난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술렁이는 사람들을 지나 길드 사옥 1층에 자리 잡은 카페에 들려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오전의 여유를 만끽했다.
힐끔거리는 소리, 스마트폰 카메라 소리 등이 들려왔지만, 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서 뭔 짓을 하는 게냐. 대 침식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짐승몰이요.”
[뭐라고?]
산군 쟁탈전은 의외로 도전자에게 관대한(?) 룰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고, 도전자는 산군에게 언제든 이를 드러낼 수 있었고, 그 순간부터 쟁탈전이 시작되는 형태였다.
팔자에 맞지 않은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안종훈이라면. 뒤도 보지 않고 달려와 어떤 형태로든 시비를 걸겠지.
“저, 저기!”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그렇잖아도 소란스럽던 카페 내부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한 채, 시선만 흘끗 돌려 소리의 진원을 바라보니 낯익은 검은 갑옷과 호랑이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태백의 감찰팀 흑호. 안종훈의 수하다.
“흐응. 팀장님께 덤볐다는 배짱 있는 애송이가 누군가 했더니. 그 ‘얼굴 천재’님이시잖아?”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헤집고 카페에 들어온 감찰팀원은 대놓고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내 건너편 의자에 털썩 걸터앉은 그는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나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그 잘생긴 상판떼기로 길드장 나으리랑 모종의 재미 좀 본 모양이지? 응? 신입새끼가 건방지게 감히 우리 팀장님께 도전을 입에 담아?”
-쿠웅.
거만하게 내 맍은편에 앉은 감찰팀원은 탁자에 발을 올렸다.
행동이며, 말뽄새며 그야말로 아주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회귀 전에도 안종훈이 자주 써먹던 방식이었다.
휘하의 감찰팀을 내보내, 시비를 걸게 만든 뒤 본인이 개입할 판을 만드는 치졸한 방식이지.
“어디 그 잘생긴 와꾸를 들이대…. 크아아아악!”
이렇게 뻔한 수법을 쓴다는 건 안종훈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겠지?
주변을 슬쩍 둘러본 나는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감탈침원의 다리를 붙잡았다.
다리를 붙잡은 손가락에 힘을 가하자 히죽거리던 감찰팀원의 얼굴이 대번에 허옇게 변했다. 입에선 비명이 터져나왔다.
“끄, 끄아앗! 이, 이 새끼가 이익!”
시원한 비명을 내지른 감찰팀원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로 내 손을 풀기 위해 용을 써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금속 바이스처럼 놈의 다리를 움켜쥔 내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뿌드드드득
손가락이 단단한 정강이뼈를 파고들었다.
마치 부드러운 두부나, 치즈에 파고들 듯 내 손가락은 정강이뼈를 푸욱 파고 들어갔다.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 한계에 다다른 가죽과 근육이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고요가 내려앉은 카페 내부에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끄으읍 끄오오옥!”
상상도 하지 못한 고통을 마주한 감찰팀원의 입에선 비명조차 나오질 않았다.
검붉게 물든 얼굴 위로 힘줄이 나무뿌리처럼 툭툭 튀어나왔다.
“그만!”
-크허엉!
입에 게거품을 문 감찰팀원이 눈을 까뒤집고 오줌을 지린 순간!
마침내 낚싯대에 월척이 걸려들었다.
쩌렁쩌렁 카페 전체를 우르릉 뒤흔드는 사자후와 함께 안종훈이 카페에 들어섰다.
“설마하니 후배님께서 내게 도전을 해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안종훈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마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진득한 살기, 광폭한 파괴 욕구가 그의 충혈되어 번들거리는 눈에 교대로 감돌았다.
살벌한 눈빛과 가식적인 웃음을 품은 채, 안종훈은 뚜벅뚜벅 내 쪽으로 걸어왔다.
“설마 한 달 전 내가 좀 귀여워해 준 일 때문에 아직도 꽁해있었던 건가? 남자가 대범하지 못하군. 아니, 그 면상만 보면 남자가 맞기나 한 건지 모르겠어.”
이죽거리는 비웃음을 가득 품은 안종훈은 기절해버린 감찰팀원을 발로 차, 걷어내곤 비어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내 맞은편에 앉았다.
“왜 이렇게 혀가 길어?”
“…뭐?”
으르렁거리듯 내뱉는 내 목소리에 담긴 광폭한 살기 역시 놈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 탓에 순간적으로 안종훈의 눈빛이 멍하니 초점을 잃었다.
“잔말말고 덤벼 새끼야. 쫄았냐?”
직설적인 폭언에 안종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놈의 눈이 마치 붉은 유리알처럼 번들거렸다. 짐승의 그것과 같은 체취가 어디선가 물씬 풍겨왔다.
그래…. 모든 것은 다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관객은 확보되었다. 장소도 확보되었다.
의도했던 대로, 안종훈은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둥지를 떠나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사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