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42화 (42/309)

제42화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사방을 완연히 물들인 새벽녘.

인적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고요한 도로 위에 이변이 일어났다.

-찌직 찌지직!

가죽 찢는 소리가 이럴까. 쥐 떼 우는 소리가 이럴까.

도로 위의 허공이 저절로 뒤틀리며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곧이어, 뒤틀린 공간 정중앙에 심상치 않은 균열이 쩌억 입을 벌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얼핏 봐선, 평범한(?) 게이트의 생성과정이었으나.

쩍 벌어진 남색의 균열에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처럼 보라색이 아닌 더욱 어둡고 시커먼 남색의 게이트!

지난 한 달 동안 대비해왔던, 대 침식의 전조가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위철용과 난 게이트가 생성되는 도로 근처의 골목에 숨은 채 스마트폰을 들어 모든 것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꾸구구구궁

우레가 치는 듯, 묵직하고 둔중한 소리와 함께 남색의 빛무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주변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싶더니 이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정차된 자동차가 우지직 찌그러지더니, 이내 큼직한 바윗덩어리로 바뀌었다.

흐물거리는 아스팔트가 평범한 흙밭으로 변해버렸다.

대로변에 늘어선 가로수가 쑥쑥 자라 증식하기 시작했다.

흙밭으로 변해버린 아스팔트 위로는 무성한 풀들이 빽빽하게 자라났다.

-깨갱! 깽!

변화는 비단 무생물과 식물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지던 들개와 고양이가 빛무리에 노출되었다.

남색 빛에 휘감긴 가련한 희생양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꾸드드드득!

골격이 엿가락처럼 마구 뒤틀리며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복슬복슬하던 털이 우수수 빠졌다. 짓무르고 주름진 피부가 훤히 드러났다.

『끼이이이익』

변이가 완료된 개와 고양이가 고통에 가득 찬 괴성을 내질렀다.

남색 빛에 노출되어 변이된 짐승들은 코볼트와 똑 닮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치르르르르

이와 같은 끔찍한 광경을 나는 단 한 장면도 빼놓지 않고 전부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내었다.

[언제까지 그 스마트 뭐시기로 촬영만 할 생각인 게냐.]

“때로는 창을 휘두르는 게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이걸로도 족합니다.”

계속된 촬영에 몸이 달아오른 위철용이 어서 놈들을 도륙내자며 재촉했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대 침식….

대격변의 영향으로 나타난 게이트가. 그저 간헐적으로 몬스터를 토해내는 위협에 불과했다면 대 침식의 침식형 게이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켜 변이시키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남색의 게이트가 토해내는 남색 파동에 노출되는 즉시 생명체는 게이트 속의 몬스터와 그곳을 구성하는 동식물 등으로 변이되었으며, 사물들은 게이트 속 세상을 구성하는 지형지물로 변해버렸다.

지금 내 앞의 게이트야. 동네 강아지, 고양이 몇 마리만 휘말린 수준으로 그쳤지만….

‘침식의 파동에 노출된 생명체는 몬스터로 변한다.’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뒤이어 열린 침식형 게이트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었다.

침식형 게이트를 조사하러 갔던 거대 길드 소속 공격대원들이 침식의 파동에 노출되어 몬스터로 변이되어버린 일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주력 공격대원들이 몬스터로 돌변하여 다른 공격대원들을 습격하곤 했었기에 게이트 토벌 및 치안을 담당하던 거대 길드는 단숨에 힘을 잃어버렸다.

그들이 힘을 잃어버리며 발생한 치안 공백 때문에, 이어진 피해들은 겉잡을 수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역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던 5대 길드가 약화 되면서 힘과 치안의 공백이 찾아와버렸다. 그 혼란 속에서, 곳곳에 열린 게이트는 수많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집어 삼켜버렸다.

따라서 지금 눈앞의 침식형 게이트를 직접 때려 부수는 것보단 다른 이들에게 그것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먼저였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잠시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고요를 찢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께에엑! 끼엑 껙!』

변이된 코볼트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몸을 던지듯, 재빨리 침식의 여파로 만들어진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끼이이익!

“서둘러! 어서! 금랑 길드에게 연락해!”

아스팔트에 길쭉한 스키드마크를 새기며 멈춰선 봉고차에선 하얀색 갑옷을 차려입은 일련의 무리가 내렸다.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게이트 쪽으로 다가서는 이들의 하얀 갑옷엔 서울시 특유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서울시 중구청 소속 게이트 재해 관리실의 공무원들이다.

“이건 또 뭐야.”

“동요하지 마라! 우선 격리가 먼저다. 정신 챙겨!”

그들은 침식당해 뒤틀려버린 풍경에 잠시 당황하였으나. 진두지휘 중인 실장의 일갈과 함께. 초동조치가 시작되었다.

-척! 척! 척!

그들은 침식으로 인해, 게이트 내부의 풍경처럼 변해버린 장소를 빙둘러 둥글게 감쌌다. 그들의 손에 들린 강화 플라스틱제 방호벽이 임시로 전개되었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알립니다. 현 시각 04시 19분. 을지로 1가 교차로 인근에 게이트가 출현하였사오니. 주민 여러분께선 안전을 위해….』

확성기를 타고, 공무원들의 안내방송이 우렁우렁 사방으로 퍼졌다.

그래, 이제 저 양반들이 뒤처리는 알아서 해 줄 테니 난 이쯤에서….

“어허! 물러서요! 물러서! 위험한데 어딜 들어와!”

“에헤이. 시민들도 알 권리가 있어요! 비켜요!”

막 자리를 벗어나려던 순간 요란한 소음과 함께 방송국 소속 차량 여러 대가 나타났다.

멈춰 선 차량에서 큼지막한 카메라와 마이크에 둘러싸인 기자들이 우르르 내린 통에, 나는 몸을 뺄 기회를 놓쳐버렸다.

빌어먹을 기자놈들 같으니! 타이밍 한번….

“지금 현장에 나와 있는 김동호 기자입니다. 이형의 게이트가 열린 을지로는 지금….”

-삐이이이이이!

기자들이 막 방송을 시작하려던 찰나. 귀청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주변에 몰린 사람들의 스마트폰에서 울렸다.

『[중앙대책본부] 을지로 사거리 한복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형의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선….』

뒤늦게 긴급재난 안전문자가 도착한 것!

『쿠이이익!』

“어, 어어? 모, 몬스터?”

그 순간!

풀 속에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주시하던 코볼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알람 소리에 잔뜩 흥분한 모양인지, 놈들의 눈은 흉폭한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흥분한 코볼트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천천히 기자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젠장.”

공포에 가득 찬 기자들의 얼굴이 정지된 화면처럼 눈에 아프게 틀어박혔다.

여긴 금랑 길드 구역이라, 그냥 갈까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쿠와아앙!

내력과 괴력이 교차로 집중된 다리가 힘차게 땅을 박찼다.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에 비친 주변의 풍경이 길게 늘어졌다.

공간이 잘려나갔다. 시간이 얼어붙었다. 먼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쿠익?』

어리둥절한 얼굴로 갑자기 앞에서 ‘솟아난’ 나를 바라보는 코볼트!

힘껏 틀어쥔 어둠달의 청대가 부르르 떨렸다. 검게 물든 창날이 시커먼 어둠을 뿌렸다.

-꽈드드드득!

시커먼 창날에 노출된 코볼트의 머리가 수박 부서지듯 완전히 박살났다.

어둠달의 코어, 검은 심장의 힘으로 증폭된 내력이 무식한 위력을 발휘했다.

“허, 헌터? 사, 살려주세요!”

“으아아아아! 살려줘어어어!”

눈앞에서 몬스터가 산산조각 난 여파는 대단했다.

이제 살았다는 환희, 압도적인 무력에 대한 경외, 코볼트에 대한 공포 등으로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사람들을 휩쓸었다.

“모두 가만히 계십쇼-!”

웅혼한 내력을 품은 따뜻한 목소리가 사방을 부드럽게 감쌌다.

거칠게 밀려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훈훈한 기운에 휩쓸려 눈 녹듯 사라졌다.

사람들의 눈에서 공포와 혼돈이 스르륵 자취를 감추었다.

-꽈드드득!

벌떼 우는 소리를 내며 짓쳐들어온 창날이 코볼트 두 마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막대한 힘을 이기지 못한 살가죽이 두부처럼 으깨지고 뼈가 과자처럼 부스러졌다.

“여, 여러분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만. 저분은 도대체 누굴까요!”

상기된 얼굴로 학살 장면을 중계하는 기자.

제 몸통만 한 카메라를 들고 비호처럼 따라붙는 카메라맨.

혼란이 잦아든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투철한 직업의식이 아닐 수 없군.

-콰드드득! 콰과과과곽!

어둠달의 창날에서 이글거리는 시커먼 어둠이 사방을 어둑하게 수놓았다.

덤벼든 코볼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차디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끼이이익!

“금랑 길드에서 왔습니다! 모두 물러서요!”

마지막 코볼트가 땅에 몸을 누인 그 순간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찰하며 내는 고약한 고무 냄새와 함께 포효하는 늑대가 양각된 금빛 갑옷을 입은 이들이 차에서 우르르 내렸다.

이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랑 길드원들이 뒤늦게 등장한 것이다.

“이곳은 금랑의 구역입니다. 몬스터의 수렵과 채취는 불법이에요!”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여인이,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카메라 돌아가는 중인데, 멍청하긴….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쪽을 촬영 중인 기자들에게 흘긋 시선을 보낸 뒤, 나는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그녀에게 정중한 사과를 표했다.

“태백의 설용호입니다. 몬스터가 갑자기 튀어나온 이형의 게이트라 피치 못하게 사냥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보상은 이쪽으로 연락해주시면 다 해드리겠습니다.”

“설용호 헌터! 얼굴 천재로 유명한 설용호 헌터였습니다.”

흥분한 기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륵 돌아가는 카메라가 내 얼굴을 찍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얼굴 천재! 어떤 놈이 만든 별명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저런, 이형의 게이트인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설용호 헌터님. 이제부턴 저희가 수습하겠습니다.”

뒤늦게 카메라를 발견한 금랑 길드원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사과를 표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뒷수습은 이제 우리가 할 테니, 빨리 사라지라는 의도가 듬뿍 담겨있었다.

“서, 설용호 헌터님! 이, 이쪽을 한 번만 봐주세요.”

기자들의 요청대로 그쪽을 바라본 뒤 미소로 화답하며 콰앙 땅을 박차 금랑 길드원들이 점령한 지역을 벗어났다.

[앞으로 본격적인 대 침식이 시작되겠구나. 네놈은 앞으로 어찌 대응할 생각인 게냐.]

공중으로 날아올라 허공을 박차며 겅중겅중 현장에서 멀어지자 위철용이 말을 걸어왔다.

“물론, 혼자서 제가 그 많은 침식형 게이트를 막아낼 순 없겠죠.”

무력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소리가 입에서 삐져나오자, 위철용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게 혼자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히죽 웃으며, 게이트의 생성과정이 촬영된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거대 길드의 주력 공격대가 허망하게 당해버린 이유는 단 하나!

아무런 대비 없이, 침식의 파동에 노출되면 몬스터로 변이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 이 스마트폰에 담긴 정보의 가치란, 천금의 가치로도 부족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최소한, 제가 알고 있는 주요 사건만큼은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길드의 몰락이야 그렇다 쳐도, 태백의 주요 사건은 침식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선 가야 할 곳은 바로….

****

“이거 놀라운 일이로군. 자네가 직접 면담을 청해올 줄이야.”

한 달 만에 마주하는 강태백의 얼굴은 여전히 권태로움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말로는 놀라운 일이라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놀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서초 게이트에 관련된 일은 이미, 신 팀장 편에 내 성의와 의사를 전했던 것으로, 알고 있네만.”

이서초 게이트를 언급한 강태백의 미간이 미미하게 살짝 일그러졌다.

비록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와 연관되어 만만찮은 손해를 본 뒤라서 그런지,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전혀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이서초 게이트와는 상관없습니다. 오늘은 그저,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대로, 제 자격을 증명할 겸. 길드장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내가 강태백을 찾아온 이유는 인제 와서 이서초 게이트의 뒤처리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계획해둔 대로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강태백에게 ‘얻어야 할 것’이 있어서였다.

“허. 자격을 증명하러 왔다고? 자네가? 거기에 거래까지?”

강태백의 권태로운 얼굴 위로 비릿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신 팀장의 보고에 의하면, 자네는 삼 주 동안이나 집안에 처박혀 있었다고 들었는데 말일세.

그렇게 시간을 헛되이 보내놓고, 인제 와서 갑자기 자격을 증명하겠다고?”

신지현의 보고를 언급하는 강태백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권태로움 대신 냉랭하기 짝이 없는 차가운 비웃음이 그의 얼굴 위로 완연하게 퍼졌다.

“부디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왔길 바라네. 실망한 내가 길드장으로서 자네에게 어떤 징계를 내릴지는 나 자신조차 모르겠으니 말일세.”

강태백의 치솟은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렸다.

비웃음을 담은 그는 구석을 향해 슬쩍 눈짓을 보냈다.

강태백의 서늘한 눈길이 멎은 곳엔 둥그스름한 수정구가 붉은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붉은빛 수정구의 명칭은 바로 『판별의 수정구』로, 헌터의 레벨을 판독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이었다. 『판별의 수정구』 헌터의 레벨을 판독하는 일종의 레벨 측정기다.

-두근!

수정구에 손을 얹자, 수정구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심장처럼 두근 맥동했다.

한번 맥동하기 시작한 수정구는 붉은빛을 뿜어내며, 연달아 열다섯 번 맥동 소리를 토해냈다.

“호오, 그래. 열두 단계나 올렸으니. 자신감이 좀 생길 만도 하겠군. 하지만 업계에서 그 정도는….”

15를 의미하는 열다섯 번의 맥동소리에 강태백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얼굴에 팽배하게 번진 비웃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두구둥! 두구둥! 두구둥!

바로 그 순간!

먼젓번과는 격이 다른 묵직하고 둔중한 맥동이 들려왔다.

붉은빛이 가볍게 점멸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번 맥동할 때마다 방 안이 진홍빛으로 붉게 물들 정도!

마의 구간 15를 넘긴 이후의 레벨은 각별하게 표시되기 마련이지!

-툭.

순간, 강태백의 입에 물려있던 시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떨어진 시가는 데구루루 굴러, 바닥에 깔린 고풍스러운 몬스터 가죽에 흠을 남겼다.

“고, 고작 한 달 사이에 열다섯 단계를 건너뛰다니. 열정만 앞선 헌터치곤 제법이로군.”

태연한 척, 별일 아닌 척 권태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강태백.

그러나 애써 부정해도, 마음만은 솔직한 모양인지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지금의 나만큼 정신 나간 속도로 레벨을 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강태백이 그답지 않게 저토록 당황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법’이란 단어로 폄하 받을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건 강태백 역시 잘 알고 있을 터!

-따악.

어쩐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가를 다시 꺼낸 강태백이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예의 그 마력향 냄새가 알싸하니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력향이 퍼질 때를 기다리는 강태백 특유의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아니지. 아니야. 솔직히 깜짝 놀랐네. 자네가 증명한 능력은 ‘제법’이란 두 글자로 폄하 당할만한 것이 아닐세.”

마력향이 퍼질 만큼 퍼졌다고 생각해서일까?

강태백의 입에서 대뜸, 그답지 않은 극찬이 터져 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 역시 순수한 경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헌데…. 이서초 게이트 사건으로 이후, 자네의 행적이 삼 주 동안 묘연했다는 보고가 있네만. 도대체 무슨 수로 레벨을 그렇게까지 올린 것인가?”

“…지방 쪽 게이트를 좀 돌았습니다.”

살짝 풀린 눈으로 멍하니 대답하자.

강태백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그조차 지방 게이트를 돌았다는 말엔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맙소사. 이 시국에 지방?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로군. 젊은 친구가 아주 무모해!”

수도권의 정돈된 게이트와는 달리, 지방의 게이트는 말 그대로 만인에 대한 투쟁과 투쟁으로 점철된 험지 그 자체인 곳이다.

지역단체에서 명목상의 관리만 하는 탓에, 외부의 지원 따윈 바랄 수도 없는 데다 헌터의 안전 역시 보장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지방이란 곳이었다.

제정신이 박힌 헌터라면, 지방 근처에 얼씬조차 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기본 상식이었다.

뭐. 실제로 내가 털었던 사교도의 게이트는 좀 다르긴 하지만. 거기도 지방이라면 지방인 곳이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거래하고 싶다고 했었나? 그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강태백은 끌끌 웃으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마력향의 농밀한 향기가 호흡기를 타고 후우욱 밀려들어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은밀하게 내력을 흘려보내 그것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우연히 입수한, 아주 재밌는 영상입니다.”

-달칵.

고풍스러운 탁자 위에, 싸구려 스마트폰이 턱 하니 얹어졌다.

반쯤 깨진 스마트폰의 비루한 외형에 강태백은 미간을 씰룩거렸으나, 나는 말없이 동영상의 재생버튼을 눌렀다.

『끼에에에엑!』

“이건….”

작달막한 화면 속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몬스터로 변이되는 고양이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강태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성을 흘렀다.

“새벽에 나타난 신형 게이트의 파장에 노출된 동물들이 코볼트로 변이하더군요. 보십쇼. 파장에 노출된 고양이가 이런 식으로….”

“…이 남색 파장에 노출된 생명체가 몬스터로 변이된다는 게로군.”

고양이와 개의 변이과정을 지켜본 강태백은 조용히 소리를 낮추며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무언가를 깨달은 듯. 툴툴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후후. 후후후후. 아주 재밌어. 이거 아주 재밌군!”

역시, 강태백은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영상의 값어치를 알아보았다.

툴툴거리며 웃는 그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툴툴거리던 웃음은 이내 호탕한 웃음이 되어버렸다.

강태백은 지금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거래라고 했나? 이렇게 귀한 정보에 내가 어떤 것을 지불해야 할지 다 궁금해질 노릇이로군. 그래, 뭘 원하나?.”

호탕하게 웃어재낀 강태백은 눈가에 흘린 눈물을 훔쳤다.

나를 바라보며 거래를 언급하는 그의 눈빛은 그답지 않게 따뜻한 호의로 가득 차 있었다.

좋아…. 점수는 어느정도 딴 것 같으니까. 이 기회에!

“산군. 태백의 일곱 번째 산군이 되고 싶습니다. 기존 산군에게 도전하는 것을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뭐?”

그런 강태백에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산군에게 도전할 권리를 원한다고 요청했다.

허허롭게 웃던 강태백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의 표정에 경악의 빛이 퍼져나갔다.

산군.

태백의 헌터 중 정점에 오른 헌터에게 주어지는 직위다.

산군의 자리를 차지한 헌터는 길드의 어떠한 속박과 규율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어지간한 공격대장 따윈 꿈도 못 꿀 정도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나는 강태백에게 정보를 제공해준 대가로 그만큼 엄청난 자리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허허, 이것 참. 자네가 그걸 도대체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네만….”

톡톡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강태백의 눈빛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복잡하게 이곳저곳을 누볐다. 탁자 위에 놓인 스마트폰에 계속해서 시선이 옮겨졌다.

“그래. 이토록 귀중한 정보를 물어왔는데. 자네만큼 유능한 사냥꾼이 또 어디 있겠나. 내 허락토록 하지. 허허.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패기가….”

머뭇거리던 강태백의 입에서 마침내 허락이 떨어졌다.

내밀어진 강태백의 음흉한 손을 콰악 붙잡은 난. 남몰래 조용히 눈을 빛냈다.

산군의 자리를 손에 넣는 오로지 단 한가지뿐이다.

바로 기존 산군 중 한명에게 도전해 그의 자리를 빼앗는 것 뿐이지!

내가 찍어낼 산군은 이미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안종훈. 기다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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