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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41화 (41/309)

제41화

“기다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혜옥 스페셜 머슬 디쉬!”

…무슨 디쉬?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김혜옥은 화로에서 고기를 꺼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의 큼지막한 고기가 새하얀 김을 무럭무럭 내뿜었다.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구워진 고기를 응시하던 김혜옥이 고기의 맛을….

-와그작!

…그래. 맛을 보았다.

턱관절이 빠져라 크게 벌린 입으로 호쾌하게 한입 물어뜯는 것도 맛을 본다는 행위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말이지.

“음! 치악력 강화에 딱 좋은 부하를 제공하는 육질이야.”

뭔 강화?

어딘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솥뚜껑만 한 철제 접시에 고기를 담아 내왔다.

김혜옥이 고기를 가져오는 사이, 김혜연은 집채만 한 탁자 위에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언니! 그건 헌터님 쪽에만 놔둬. 그런 거 함부로 먹으면 근손실 와.”

상차림이라 해봤자 수북하게 차려진 고기에 소금, 후추 그리고 체면상 조금 내놓은 김치가 전부였다.

넓쩍하니 거대한 식탁 위에 차려진 식사는 조촐함을 뛰어넘어 야성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자매의 저녁 식사라기엔 지나치게 ‘야성적인’ 구성이로군.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두 자매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내 앞에 놓인 고기의 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시커멓게 번들거리는 고기 색이 심각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매의 눈빛이 더 부담스러웠기에….

최대한 태연한 척. 나는 미소를 유지하며 고기를 입가에 가져갔다.

-찌이익

“…!”

한 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가죽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기의 질감은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었다.

뭔 놈의 고기가 질기기는 가죽처럼 질겼고, 단단하기는 돌처럼 단단했다.

맛은 둘째로 친다고 쳐도 헌터 수준의 근력이 아니고서야 감히 씹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걸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우두두둑

“어머, 얘! 혜옥아. 여기 뼈가 아직도 좀 남아 있잖니! 손님 드시게 손질 좀 제대로 하라니깐.”

“언니 그건 일부러 놔둔 거야,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선 뼈가 필수지!”

…있네.

순간 든 의문이 무색하게도, 자매는 그 질긴 고기를 너무나 맛나게 먹고 있었다.

그녀들에겐 몬스터의 단단한 뼈조차 씹는 맛을 더해줄 매력 포인트에 불과했다.

인간의 수준을 진즉 초월한 치악력에 고기가 뼈째로 우두둑 부서졌다.

[골격! 근육! 아깝구나. 정말 아까워! 천하의 무골이 따로 없거늘.]

멍하니 중얼거리는 위철용은 거의 홀린 듯한 눈빛으로 김혜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조금 전, 어둠달을 영접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아까우세요?’

[미식가가 맛난 음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무릇 제대로 된 무인이라면, 훌륭한 재목을 발견했을 땐, 절로 몸이 달아오르는 법이니라. 가르치는 맛이 보통이 아니거든!]

…가르치는 맛이라.

순간, 위철용의 말에 슬쩍 흥미가 돌았다.

‘제대로 가르친다면 김혜옥 역시 강해질 수 있을까요?’

[물론! 그녀야말로 원석이 따로 없느니라. 옆에서 그 재능을 살려줄 스승만 있다면….]

원석! 확실히 원석은 원석이다.

아직, 헌터로 각성하지 않았는데도 저 정도의 신체 능력이라면,

내년엔 제법 볼만한 신인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군.

“혹시, 혜옥 양도 헌터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단순히 흥미와 호기심을 담아 던진 말 한마디였으나 그 한마디가 퍼뜨린 파문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헌터요?”

우걱우걱 고기를 씹어 삼키던 김혜옥이 눈빛이 묘하게 반짝거렸다.

“혜옥아! 그쪽은 꿈도 꾸지 말랬지! 학교 갈 준비나….”

“있어 봐. 언니.”

순간, ‘헌터’라는 소리를 들은 김혜연이 소리를 질렀으나.

김혜옥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중간에 뚝 잘라먹었다.

“당연히 관심은 있죠! 혹시, 혹시! 헌터님께서 제게 뭔가 좀 가르쳐 주실 생각이신가요?”

김혜옥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바짝 다가와 말했다.

큼지막한 덩치는 여전히 부담스러웠지만, 지금 그녀의 열정어린 눈빛만큼은 어린 소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 원하신다면 헌터로….”

-콰아아앙!

…깜짝이야.

김혜연이 갑자기 탁자를 힘껏 내려쳤다.

좁은 공방 내부를 우르릉 뒤흔들 정도의 굉음이 터졌다.

그녀의 난입으로 인해, 나와 김혜옥의 대화가 중간에 뚝 끊겼다.

“김혜옥!”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 속에 진득하게 담겨있는 보호자의 엄격한 분노.

무슨 이유에선지 김혜연이 노성을 토하며 김혜옥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가만 있어보라니까. 왜 끼어들어!”

-꾸과아아앙!

거대한 두 육체가 거칠게 맞붙었다.

뼈와 살로 만들어진 육체가 충돌한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터졌다.

통짜 목재를 가공해 큼직한 크기를 자랑하는 묵직한 탁자가 힘없이 우당탕 넘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를 가득 담은 접시들이 요란하게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쟤 헌터로 각성 안 한 거 맞지?]

‘…아마도요.’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일반인에 불과할 김혜옥이 김혜연과 대등한 수준으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별안간 펼쳐진 자매 사이의 격렬한 드잡이질에 주변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본존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아해일지도 모르겠구나….]

자매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최강자들 사이의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보는 이의 가슴이 웅장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헌터? 헌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나 하니? 너까지 잘못되면 난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김혜연이 분노한 이유는 역시, 김혜옥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걱정과 훈육의 빛을 가득 담은 눈을 이글거리며, 김혜연은 김혜옥을 거칠게 밀어 붙였다.

“잘못? 언니! 이미 우린 잘못된 지 오래야! 아버지 어머니 유산도 다 털렸잖아! 복수해줄 힘도 없었잖아! 언니도! 기껏 헌터 시험에 합격해놓고. 그 사채업자 새끼들한테 무력하게 맞기만 했잖아! 이제! 나는! 그딴! 설움 따윈! 싫어!”

하지만, 김혜옥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물기를 머금은 김혜옥의 입에서 약자로서 살아온 한이 토해졌다.

한 단어씩 끊어가며 강조하듯 한을 토해내는 김혜옥의 눈빛은 언니와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고집과 의지를 품고 있었다.

“…혜옥아.”

덕분에, 이글이글 고집스레 타오르던 김혜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분노로 경직되었던 근육이 움찔 힘을 잃었다. 김혜연의 처연한 목소리에서도 노기가 사라졌다.

“으아아아앗!”

-쿠당탕.

김혜연이 틈을 보인 것과 동시에 김혜옥은 김혜연을 번쩍 들어 넘어진 탁자 위에 메쳐버렸다.

두꺼운 목재 탁자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다시는 그따위 놈들이 언니를 건드리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 난. 강해질 거야.”

서늘하게 가라앉은 김혜옥의 눈빛이 굳건해졌다.

장인정신이 발동된 김혜연의 그것처럼, 쇠심줄 같은 외고집이 느껴지는 단호한 눈빛이다.

“혜옥아….”

탁자의 잔해 위에 쓰러진 김혜연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신음하듯 김혜옥의 이름을 불렀으나.

김혜옥은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 관심 있어요. 아주, 아주 많아요. 그래서 뭘 해 주실 수 있는 거죠?”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는 단기간 속성강의를…. 잠깐만요.”

순간, 기발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 지식대로 김혜옥을 가르쳐 줄까 생각했었으나, 더 기발한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은밀히 속으로 위철용을 불러 세웠다.

‘어르신? 쟤 한번 가르쳐보고 싶다고 하셨죠?’

[…그러기야 하다만, 무슨 방도라도 있는 게냐? 이 꼴로 쟤를 어떻게 가르쳐!]

흥미진진하게 자매들의 싸움을 바라보던 위철용은, 내 말에 솔깃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내 그의 얼굴엔 심통이 가득 찬, 못마땅한 표정이 떠올랐다.

‘제가 있잖습니까. 어르신의 무예를 저를 통해 쟤한테 가르쳐보는 것은 어때요?’

[…뭐라고?]

순간 번뜩였던 아이디어는 바로, 일종의 아바타 작전이었다.

물론, 나야 특성 트리를 통해 무공 전반을 습득했기에, 파천 복룡창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무공에 정통한 위철용이라면, 다르지!

무공에 관련된 기억을 상당 수 잃어버린 상태이긴 하나 위철용은 명색이 무공의 정점에 오른, ‘천마’라는 지위를 지닌 인물이다.

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김혜옥을 가르치는 것쯤은, 그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일 터!

[묘안이로군. 묘안이야…. 확실히 본존이라면 우매한 네놈을 통해서도 너끈히 그녀에게 무의 오묘한 공부를 전수해 줄 수 있지….]

내 아이디어를 전해들은 위철용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는 게냐! 당장 하질 않고! 어서 혜옥이의 손을 잡아 보거라!]

“혜옥 씨. 잠시 손 좀.”

어느새 친근하게 김혜옥의 이름까지 부르는 위철용의 성화에 쓰게 웃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김혜옥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손이요? 갑자기 손은 왜…?”

김혜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얼굴을 바알갛게 물들였다.

단단히 붙잡은, 굳은살이 알알이 박힌 큼직한 손이 묘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

하지만, 난 김혜옥의 묘한 쑥스러움에 반응해 줄 여유가 없었다.

위철용이 정신없이 이것저것 물어오며, 김혜옥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잃긴 했으나, ‘천마’라는 칭호가 허명이 아닌 듯,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위철용의 입에선 어마무지한 양의 무공에 관련된 지식들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그녀를 수련시키는 방법은….]

“혜옥 씨. 그러니까 앞으로 이렇게 수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침내, 정보를 취합한 위철용이 김혜연을 단련시켜줄 수련법을 읊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위철용이 중얼거리는 내용 그대로, 멍한 표정의 김혜옥에게 수련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대로라면, 정말 강해질 수 있다는 거죠?”

김혜옥의 피지컬을 고려해선지, 위철용이 알려준 수련법은 일반인의 상식에서 아득히 벗어난 수준이었지만.

김혜옥은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순수한 열정을 담아 눈을 반짝였다.

“이제부턴 사부라고 모시겠습니다. 헌터님! 아니, 싸부!”

-콰앙!

김혜옥은 별안간,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바닥에 머리를 콰앙 내려찍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쩍 갈라질 만큼 위력적인 박치기가 바닥을 콰르릉 뒤흔들었다.

박살난 콘크리트 파편이 내 얼굴에 파다닥 튀었다.

“알려주신 수련법을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아니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와장창!

잔뜩 흥분한 김혜옥은, 인사를 마침과 동시에 창문 째로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일반인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나조차, 그녀의 돌발행동에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었다.

배움의 기회를 얻어 잔뜩 흥분한 김혜옥은 말 그대로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았다.

-으아아악 몬스터가 나타났다!

-여성형 몬스터다! 어서 남자와 아이들을 숨겨!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깥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깨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등등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괜찮겠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 김혜연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살짝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녀의 눈엔 걱정, 원망, 감사, 기대 등의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혜옥 양에겐 적어도 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끄아아아악! 도망쳐! 몬스터다. 몬스터가 날뛰고 있다!

김혜연의 복잡한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담담히 그녀의 걱정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에 김혜연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실은,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이 있어요. 혹시, 동네사람들이 저희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렇게 묘한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김혜옥이 사라진 쪽을 한참 바라보던 김혜연이 조용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괴물이래요.”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김혜연의 눈엔 서글픈 슬픔이 숨어있었다.

솔직히, 빈말로도 두 자매의 모습은 ‘정상적’이라 하긴 어려웠다. 얼핏 보면 오우거 아종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일반적인 사람들 입장에선, 그녀들의 외모가 괴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괴물이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로군,

촉촉하게 젖은 김혜연의 눈빛에서, 나는 낯익은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두려워하는 그 모습이, 회귀 전의 나와 사무칠 정도로 닮아있었다.

[애송이….]

“남들의 경멸어린 시선….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는 제가 가장 잘 압니다.”

말 그대로였다.

그녀들의 처지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나였다.

지금이야 달라진 외모로 남들에게 선망을 사고 있지만, 회귀 전엔 항상 그녀들이 받았던 것 이상의 경멸을 받고 살았던 것이 바로 이 몸이니까….

김혜연의 서글픈 눈빛에서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절대로, 그녀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

처음 김혜연을 발견했을 때,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은 은인에 대한 고마움과 과거에 졌던 빚에 대한 부채 의식이었지만.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것은 그것에 더해 과거의 ‘나’와 다름없는 그녀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었다.

“동생 분은 제가 괜찮게 만들 겁니다. 절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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