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40화 (40/309)

제40화

-파스스스!

봄날의 벚꽃처럼 보랏빛 불꽃을 흩뿌리며, 게이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체체파리 클랜이 소유하던 게이트 하나가 또 클리어되었다.

이곳, 용인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남성국의 비밀 서류에서 미리 점찍어 두었었던 열 곳의 게이트 순례는 모두 끝이 났다.

“그동안 상당히 달달했는데. 아쉽네.”

[달달하긴! 본존에겐 그저 지루함만이 가득했던, 고통의 열흘이었느니라!]

달달하다는 말에 위철용은 빼액 고함을 내질렀다.

뭐. 어떻게 보면, 위철용의 격렬한 반응처럼 조금 지루한 작업이긴 했었다.

애초부터 체체파리 클랜 놈들이 ‘수확용’으로 사용하는 게이트만을 노렸기 때문에.

그동안 게이트에서 벌였던 전투라고 해봐야. 우리에 속박된 몬스터의 숨통을 끊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경험치와 전리품 자체는 굉장히 달콤했지만 말이지.

“에이, 그래도 기억 많이 찾으시지 않으셨습니까.”

무려 열 곳의 게이트를 클리어한 만큼.

지금의 내 레벨 역시 괄목할 만한 수치만큼 올라 있었다.

현재 내 레벨은 18!

등급은 낮지만 열 개나 되는 게이트를 알뜰살뜰 털어먹은 독식의 힘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무려 일곱 단계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으니 말이지.

처음 계획했던 수치인 20에 비하면 살짝 아쉬운 수준이긴 하다만, 원래 계획이란 처음부터 넉넉하게 잡아놓는 법이다.

레벨을 7이나 올린 만큼, 특성 트리와 능력치 역시 굉장한 수준으로 올라 있었다.

파천 복룡창 또한, 초반부를 완벽하게 습득한 상태였다.

[끄응. 그렇기야 했다만. 특성을 일곱 개나 찍은 것에 비해 찾은 기억은 영….]

애석하게도, 그동안 찍은 특성은 ‘중급 창술훈련’, ‘초급 방어술’ 등의 패시브 위주였기에.

위철용이 되찾은 기억은 시원치 않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유난히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건가? 어쩐지 심상세계에서도 요즘 들어 유독 매섭게 덤벼오더라니….

[그나저나, 도대체 네놈을 지켜보는 성좌라는 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구나.]

어딘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위철용이 화두를 바꾸었다.

성좌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그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위철용의 곱지 못한 시선에 나는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그의 매서운 시선을 피했다.

위철용과 심상세계가 뒤섞여버린 여파로, 더 이상 채널을 확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소통이 끊긴 상황에서도 어째서인지 성좌들의 후원은 끊이지 않았다.

[존재력을 쌓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닐진대, 네놈에게 그리도 맹목적인 후원을 보내는 치들은 도대체 뭘 보고….]

위철용의 말에 따르면 성좌들조차 존재력 포인트를 거저로 쌓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후원하는 성좌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존재력 포인트 보유 상한이 뚫릴 때마다 최대치까지 후원을 해댔다.

덕분에, 채널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막대한 양의 존재력 포인트를 풍족하게 확보할 수 있었지만….

…뭘 보고 내게 이토록 뜨거운 애정을 표하는지 모르겠네.

진짜 단순히 ‘잘생겼기’ 때문인가…?

“저, 지시하신 대로, 철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만….”

성좌들의 후원에 대해 속으로 곱씹는 사이.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현장에 통통한 체구의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남들보다 유난히 큰 남자의 눈엔, 어딘지 미심쩍은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유능하신 모양이로군요.”

거만한 태도로 꾸짖듯 남자의 태도를 칭찬했다.

가면 아래에, 미리 착용해둔 음성 변조 장치가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는 목소리를 내었다.

남자는 이질적인 내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더니 주변을 슥슥 둘러보곤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상부에선 어째서 이곳 용인 게이트에 철수 명령을….”

남자의 정체는 용인 게이트를 관리 중인 체체파리 클랜 사교도들의 우두머리였다.

겉으론 동명상사라는 소규모 길드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잔악하기 짝이 없는 사교도의 일원이었다.

졸지에 담당 거점을 잃어버린 그의 눈엔 숨길 수 없는 불만이 서려 있었다.

“지금 감히 ‘윗선’의 지시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형제여? 모든 것은 그분의 날갯짓을 위하여.”

손에 낀 반지를 어루만지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투로 ‘윗선.’과 ‘의심’이란 단어를 언급하자….

“…흐익! 나, 날갯짓을 위하여.”

불만이 가득했던 사내의 표정이 공포로 인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특유의 제스처를 취한 사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큰 목소리로 다른 인원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멍청하긴.

잠시나마, 윗선의 지시를 의심했다는 소식이 알려질까 두려운 모양인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의 모습에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윗선이란 단어 하나에 모든 의심을 접어버리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족속들이란 말인가! …게다가. 애초에 네놈의 수상쩍은 행색을 의심조차 하지 않다니….]

위철용의 탄식처럼 지금의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온몸을 꽁꽁 감싼 회백색 로브에 푹 눌러 쓴 후드부터 시작해서, 얼굴 전체를 가린 원숭이 가면과 쇳소리가 새어 나오는 음성 변조 장치까지.

딱 봐도. 지금의 나는 ‘저는 아주 수상한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상태였지만, 오히려 이 수상쩍은 모습 때문에 나는 사교도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비밀조직 특유의 은밀함과 폐쇄적인 문화가 오히려 독이 된 것.

사교도 클랜의 지부장급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모름지기 같은 조직의 하급자들에게도 정체를 철저히 숨기는 것이 기본 미덕이다.

때문에, 지금의 내 복장은 남들에겐 수상쩍어 보일진 몰라도, 사교도 사이에선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지.

남성국도 생전에 하급자들을 대할 땐, 이런 식으로 차려 입었을걸?

‘그것보단 인장을 보여줬잖아요? 믿을 수밖에요.’

불충한 이들이 뭔가 의심스럽다는 태도를 보인다 싶을 땐 방금처럼 반지에 박혀있는 지부장의 인장을 슬며시 보여주면, 그만이다.

신분을 숨긴 간부급 사교도가 하급자에게 정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은 징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법 급수가 높은 놈이라면, 확인이나 해보자고 덤벼들었을지 몰라도.

변두리 게이트를 관리하는 말단 따위가. 감히 지부장급 인사를 의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애초에, 처음부터 말단들이 관리하는 외곽 게이트만을 골랐기 때문에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지난 열흘간 다른 게이트를 털어먹을 때도 상황은 똑같았다.

남양주 게이트처럼 아예 텅 비어버린 곳이야 그냥 손쉽게 들어가면 끝이지만 다른 곳들은 사교도들의 관리 하에 있으니 만큼 이런 식으로 꾀를 짜내봤는데 역시나 치명적일 정도로 잘 먹혀들어 갔다.

게다가, 게이트 관리소에 남아있는 흔적을 모두 지우는데, 하루 이틀 걸리는 것이 아니기 에. 급작스러운 철수 소식들이 본단의 귀에 들어갈 즈음이면, 모든 것이 다 끝나 있는 상황이겠지.

놈들에게 한방 먹여줬다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상큼한 미소를 지은 뒤, 분주히 움직이는 사교도들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주곤 유유히 게이트 관리소를 벗어났다.

[네놈의 꾀가 잘 먹혀서 다행이다만, 그 많은 전리품은 다 어떻게 할 생각인 게냐?]

열 곳이나 되는 게이트를 모조리 결딴낸 끝에 얻어낸 소득 역시 막대했다.

갈무리한 소재와 정수만 해도 창고 하나 쯤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사교도들이 알뜰살뜰하게 관리하던 곳이었으니만큼, 정수뿐만 아니라 소재 역시 쓸 만한 것들이 많았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털어먹었던 게이트들의 위험등급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던 탓에 우두머리의 전리품 중 이렇다. 할 만한 물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소재들을 대량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손에 넣은 소재들은 모조리 경기도 모처의 비밀 창고에 쌓아두긴 했는데….

이제 더 돌 곳도 없으니, 전부 처분해야 할 시간이로군.

“양질의 소재를 그렇게나 얻었는데, 제가 갈 곳이 또 있겠습니까?”

소재가 풍년일 때. 헌터가 찾아갈 만한 장소는 오로지 단 한 곳뿐이다.

바로, 공방이지!

-우우웅.

오랜만에 김혜연을 찾아볼 생각이 든 바로 그 순간.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에 적힌 내용을 슬쩍 바라본 순간, 내 얼굴에 미소가 헤벌쭉 번져나갔다.

…이거. 역시 김혜연은 대단한 인물이라니까?

벌써. 그것을 완성시켰단 말이지…?

****

“오랜만이네요. 한 달, 아니 삼 주 만인가요?”

연락을 받고 즉시 달려간 소망 공방의 모습은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퀴퀴한 먼지가 쌓여있던 가열로는 화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공방 특유의 쇳내가 사방에서 물씬 풍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 오랜만…이군요.”

김혜연 본인의 모습이 가장 많이 변해 있었다.

불과 삼 주 만에, 그녀는 내 기억 속의 그 우람한 근육질 거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변화 수준이 아니라 진화에 가까운 역변이었다.

깜짝 놀라 순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간신히 억눌러 삼켰다.

“헌터님 덕분에 레벨이 많이 올랐답니다. 특성을 찍으니, 모습이 그만…. 보기 흉하죠?”

무기장인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제작할수록 레벨이 오르는 법이다.

아무래도, 김혜연 역시, 이것저것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한 레벨을 올린 모양이었다.

뭐….

특정 특성을 습득할 경우, 육체의 변이가 일어나는 일은 이쪽 세상에선 그닥 드물지는 않은 일이다.

역시. 지난번의 그 유약한 모습은 특성 트리를 아직 덜 찍은 상태라서 그런 거 였나 보군.

그녀는 거대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모양인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눈엔 그녀의 모습이 전혀 흉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아뇨. 듬직하니 보기 좋으신데요!”

“…….”

예상치 못한 칭찬 때문일까?

김혜연은 조용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낯익은 거인이 낯설게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 나 역시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는 그 순간….

-콰앙

굳게 닫혀있던 공방의 문이 부서질 듯한 굉음과 함께 벌컥 열렸다.

반쯤 박살난 문을 헤집고, 이내 듬직한 체구의 거인이 들어왔다.

김혜연과 견주어 전혀 꿀리지 않는, 좁은 공방을 꽉 채우는 거대한 근육질 체구.

튼실하게 반으로 갈라진 엉덩이 턱과 우람하게 꿈틀거리는 승모근.

미국 만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는 마초적인 외모의 거한이었다.

뭐지? 아직도 사채업자 놈들이 남아있었나?

“하하! 언니. 오늘도 아주 양질의 단백질이 들어왔어!”

거한의 입에서 위압적인 외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일처럼 풋풋하며 산짐승처럼 쾌활하니 소녀소녀한 목소리.

예전에 들어 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였다.

…김혜옥인가?

“어라? 우리 물ㅈ…. 아니. 손님 오빠 아니세요? 반갑습니다!”

-파앙 팡!

근육이 위압적으로 불뚝거리는 손바닥을 사정없이 휘둘러, 김혜옥은 내 등을 팡팡 때렸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최소 복합골절은 나왔을 법한 충격이 전해졌다.

“어…. 혜옥 양? 전보다 많이 건강해지신 것 같네요.”

화끈거리는 고통을 참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며 눈짓으로 김혜연에게 ‘이건 또 뭡니까.’ 정도 되는 눈빛을 보냈다.

아니, 헌터인 김혜연이야 특성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쳐도. 평범한(?) 민간인인 얘는 또 왜 이래?

무슨 비극 속의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이 어쩌다가 미국 히어로물의 마초형 주인공이 되어버렸어!

언니 쪽이 변화가 아니라 진화를 했다면, 이쪽은 아예 장르 자체가 바뀌어버린 느낌이었다.

“후훗. 성장기니까요. 열 일곱이면 한창 자랄 때죠.”

김헤연의 입가에 마치 자식의 성장에 대견해 하는 어머니와 같은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동생의 성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김혜옥의 변화는 결코 ‘성장기’라는 간단한 단어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잠깐만. 쟤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 아니었나?

열 일곱이라고?

“홋호!”

위협적으로 불끈거리는 김혜옥의 근육은 장식이 아니었다.

기합과 웃음소리와 중간쯤 되는 괴성과 함께 그녀는 들쳐 메고 있던 자루에서 거대한 고깃덩이를 꺼내 힘차게 ‘주먹’으로 다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뭡니까?”

“요즘 갑자기 암시장에 고기가 많이 풀리고 있어서요.”

몬스터의 피, 뼈, 가죽, 정수 등은 비싸게 팔리지만.

그것들을 모두 채취하고 난 뒤의 고깃덩어리는 단순한 생화학 폐기물에 불과했다.

그걸…. 먹는다고?

“핫하! 프로틴!”

김혜옥은 쾌활하게 외치며, 화로 속에서 고기를 휙휙 던져 넣었다.

못해도 수십 근은 나가 보이는 거대한 고깃덩이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저걸 다 먹는 거예요?”

“한참 많이 먹을 때니까요.”

혹시, 몬스터의 고기가 근육과 골격의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몬스터의 고기에 그런 효능이 있었다면, 이런 빈민가까지 고기가 들어올 리가 없겠지.

[무골이다!]

아이씨 깜짝이야.

무슨 이유에선지, 김혜옥이 등장한 그 순간부터 그녀를 멍하니 지켜보던 위철용이 소리를 질렀다.

[무골이니라! 저 김혜옥이란 아해. 그야말로, 천년! 아니 만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하의 무골을 타고 났느니라!]

잔뜩 흥분한 위철용이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김혜옥 쪽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김혜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괴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몽롱하게 풀려버렸다.

“…것보다. 의뢰드렸던 ‘그것’이 완성되었다면서요?”

김혜옥의 예상치 못한 성장에 정신을 빼앗겼지만,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네. 맞아요. 신경 써주신 덕분에 괜찮은 아이가 나왔답니다.”

‘괜찮은 아이’를 언급하는 김혜연의 눈에 장인 특유의 단호한 자신감의 빛이 번뜩였다.

외모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내가 기억하는, 은인 김혜연의 모습과 점점 유사해져가는 그녀의 모습 탓인지.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는 내 얼굴에 그리움과 흐뭇함이 뒤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쿠웅

김혜연은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탁자 아래에서 길쭉한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상자를 행여나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내려놨지만,

상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탁자가 움푹 꺼졌다.

-파아아아아앗!

“…세상에.”

붉은 안감이 덧대어진 고풍스러운 금속 상자 안엔 예술품이 놓여있었다.

레드 드레이크의 붉은 뼈를 소재로 삼아 마치 루비처럼 영롱한 붉은 빛을 뿌리는 창신은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 위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새겨진 마력회로는 묘하게 고풍스러운 매력을 더 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흑요석처럼 새까만 빛을 흩뿌리는 창날과 그 아래에 박혀있는 검은색 코어는 자칫 경박해 보일 수 있는 붉은 빛 일색의 외형에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정열적인 열정이 느껴지는 붉은색과 묵직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검은색의 절묘한 조화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황홀해졌다.

-쿠르르륵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예술품의 창신에 손을 갖다 대었다.

바로 그 순간, 약간의 진동과 함께 내력이 쭈욱 검은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근!

새까만 코어, 검은 심장이 나의 내력에 공명하며 웅웅 떨렸다.

검은 심장이란 명칭에 걸맞게 두근두근 맥동하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황홀하게 보였다.

-스파아아앗!

곧이어, 붉은 창신 전체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검은 심장의 맥동에 공명하였다.

마력 회로 속에서 뿜어진 엄청난 힘이 내 몸 구석구석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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