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코를 쥐어뜯을 듯 강렬하게 풍기는 시큼한 냄새!
만년필에서 발사된 액체의 정체는 바로 부식액이었다.
-치이이익!
부식액에 노출된 남성국의 시신이 순식간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건장한 남성의 시신이 눈 깜짝할 사이 시커먼 액체로 변해 주르륵 흘러내렸다.
녹아버린 시신 위로 매캐한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그마한 만년필에서 담겨있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위력이었다.
“뭐, 뭣! 조민철 너 이 새끼 이게 대체 무슨 짓…!”
부하 공격대원, 조민철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란 대머리 사내가 눈을 부리부리 치켜뜨고 고함을 지르려던 찰나!
-썩둑!
나머지 공격대원의 품에서 뭔가 번뜩인다. 싶더니,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대머리 사내의 목에 시뻘건 선이 부욱 그어졌다.
“끄, 끄르르륵!”
대머리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뻐끔 벌려진 입에선 호통 대신. 피거품만이 차올랐다.
-푸화화학!
곧이어 그의 목에 그어졌던 붉은 선이 쩌억 벌어졌다. 뜨끈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과, 과장님! 커,컥!”
졸지에 새빨간 선혈을 뒤집어쓴 뿔테 안경이 비명 지르듯 대머리 사내의 직함을 부르짖었으나….
-사삿!
이번엔 부식액을 발사했던 공격대원, 조민철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올가미가 벼락처럼 뿔테 안경의 목에 감겼다.
-우두두둑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뿔테 안경의 목이 기우뚱 옆으로 꺾였다.
뚱그렇게 부릅떠진 눈알이 비현실적으로 튀어나왔다. 새하얗던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
올가미가 휘감겨진 목에선 힘줄이 억센 나무뿌리처럼 두두둑 돋아났다.
“…하, 한종운 어, 어쨰서.”
잠시 버둥거리던 뿔테 안경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잔뜩 쉰 목소리로 자신을 살해한 이의 이름을 단말마처럼 내뱉었다.
-털썩.
쓰러지는 소리는 하나였지만, 쓰러진 시신은 둘이었다.
목덜미에서 피 분수를 뿜어내며 버둥거리던 대머리 사내가 쓰러진 것과 뿔테 안경이 목에 굵은 올가미가 감긴 채 힘없이 쓰러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남성국의 시신이 녹아내린 것과 공격대원 둘이 목숨을 잃은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흐응. 지부장께서 네놈 같은 애송이 따위에게 당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는데 말이지.”
대머리 사내의 목줄을 베어낸 조민철이 칼에 묻은 피를 후두둑 털어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묘한 흥미를 품고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분께서 주목하고 계시는 만큼. 평범한 햇병아리는 아니지 않나. 확실히 그분께서 눈독을 들이신 만큼 훌륭한 몸일세.”
뿔테 안경의 목을 졸라 단숨에 살해한 공격대원, 한종운의 나긋나긋 부드러운 말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느긋한 여유가 묻어있었다.
한 지부의 우두머리가 살해됐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딱히 크게 동요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놈들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것!
…체체파리 클랜의 고위직 중, 저렇게 생긴 놈들이 있었던가?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팽팽 돌아가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네놈들은 누구지?”
하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간부급 체체파리 클랜원 중 과 비슷하게 생긴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놈들에게 의문을 표하자, 때마침 가면놀이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하승진의 가면이 얼굴에서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호오. 소문대로 꽤 잘 생긴 얼굴이로군. 이거 실물이 훨씬 나은데 말이야.”
“지부장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최소한 그가 계획했던 목표는 이루었으니, 지부장도 그분의 밑에서 영화를 누리겠군. 그래.”
당연한 말이겠지만, 놈들은 내 질문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드러난 내 잘생긴 얼굴을 바라본 조민철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요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음험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뭐? 목표를 이루었다고? 남성국이?
순간. ‘지부장, 남성국의 목표는 이미 이루어졌다.’는 단어가 귀에 아프게 틀어박혔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일순 머리가 허옇게 물들었다.
“어차피 ‘그릇’으로 쓸 몸이니, 잠시 재미 좀 봐도 괜찮겠지? 형제여?”
“허허. 그분께서 모처럼 점찍은 그릇일세. 반반한 외모가 상하지 않게 주의하게 형제여.”
그릇이라고? 설마…!
[…당해버렸군, 애초에 남성국의 목적은 단순한 시간 벌이에 불과했던 게야.]
그릇이라는 단어를 이해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등줄기를 타고 시큰한 오한이 온몸에 주르륵 퍼졌다.
머릿속에 짜릿하게 번개가 내려쳤다. 비로소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릇.
타락한 성좌 놈들은 다른 성좌들과 달리,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과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지 않았다.
악취미의 극한을 달리는 놈들답게, 놈들이 신도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바로….
멀쩡한 헌터 한 명을 붙잡아, 육체를 개조해 일종의 ‘스피커’로 만드는 것이었다.
스피커로 개조된 헌터의 말로는 처참했다.
거죽과 껍데기만 온전히 남긴 채, 내부는 온갖 주술적인 기계장치와 흉측한 괴생명체들로 가득 채워진 끔찍한 모습을 자랑했다.
그뿐인가!
그 꼴이 되어서도 모든 감각은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내부에 우글우글 들어찬 괴물들에게 산채로 몸이 파먹히는 고통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좌 놈의 끔찍한 지시를 사교도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괴로움에 평생 동안 시달려야만 했다.
“우욱. 씹!”
파리새끼의 ‘스피커’가 되어버린 내 모습을 상상하자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욕지기가 뒤를 이었다.
남성국이 뜬금없이 들러붙어 같잖은 연극을 했던 이유가, 단순히 나를 붙잡아 두는 것뿐이었다니!
안종훈 이새끼는 도대체 뭐라고 떠들었길래, 파리새끼와 남성국이 나를 ‘그릇’으로 점찍은 거지?
-으드드득.
당했다.
과거의 해묵은 원한에 눈이 멀어,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와 버렸다.
조금만 신중을 기울였어도 충분히 수상한 점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을!
원수의 목을 취한다는 희열이 달콤한 독이 되었다.
분노, 후회, 혐오, 짜증, 자책!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끝없이 뒤섞이며, 격렬하게 요동쳤다.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신 차려라 애송이! 놈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니라. 감정에 잡아먹히지 마!]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의 마그마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려던 찰나!
위철용이 질책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그와 연결된 심령이 웅웅 떨려왔다.
그 순간, 활화산처럼 들끓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북극해처럼 차가운 이성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서늘하게 식은 것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후회는 후회!
우선은 이 엿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는 게 먼저다!
-파앙!
마치 남성국의 것 인양, 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은 창을 발등으로 걷어차 올렸다.
튀어 오른 창이 팽그르르 돌았다.
-덥썩!
빙글빙글 돌며 튀어 오른 창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창대의 서늘한 감촉에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을 식혔다.
“호오. 거기서 감정을 다스렸어? 거기에 내게 무기를 겨누기까지? 재밌군! 아주 재밌어! 으하하핫!”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조민철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같은 얼굴로 그는 서늘한 빛을 발하는 검을 슬쩍 들어 올렸다.
“뭐,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여흥을 즐기고 있게 형제여. 나는 다른 형제들에게 다음 단계를 진행하라 알릴 터이니.”
다음 단계라고?
한종운의 입에서 ‘다음 단계’라는 말이 나온 순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상이 갔다.
…염병할! 벌써 ‘그것’까지 준비해뒀다니! 얼마나 오랫동안 침투해 있었던 거지?
“흐으읍.”
순간, 한종운의 목이 두꺼비처럼 기괴하게 부풀었다.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해방의 때가 왔노라. 사육장에 갇혀버린 벗들에게 자유를!”
한종운의 입에서 마치 두꺼비 우는 듯, 낮게 울리는 기괴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여름밤 논밭에 고요히 울려 퍼지는 두꺼비의 둔중한 울음소리처럼. 그의 목소리 그리 크지 않았지만, 복도를 타고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자유를!!”
“벗들에게 자유를! 벗들을 착취해온 이교도들에게 죽음을!”
한종운의 외침이 우렁우렁 울려 퍼지자 그에 호응하듯 멀리서 사교도들의 섬뜩한 외침이 역병 퍼지듯 퍼져나갔다.
[파리새끼가 새끼를 많이도 쳐 두었구나.]
…실로 굉장한 숫자였다.
집무실이 위치한 별관은 물론이고, 게이트 관리소의 핵심이 되는 본관까지.
사교도들의 외침은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저 정도 숫자라면, 충분히 게이트 과부하를 노릴 수 있겠군. 빌어먹을…!
****
-까드드득!
맞붙은 금속과 금속이 거친 비명을 토했다.
창날과 칼날 사이를 타고 뜨뜻한 불똥이 춤추듯 타다닥 튀었다.
“호오, 얼굴천재로 유명하기에 외모만 반반한 줄 알았더니.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치곤 제법이로구나!”
조민철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은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장미에도 가시 정도는 있겠지. 그보다 놀 만큼 놀았으면, 빨리 끝내게. 슬슬 지루허이.”
소풍 나온 듯 여유로운 말투. 은은히 풍겨오는 강자의 냄새.
확실히 놈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체체파리 클랜에 이 정도 인재들이 있었다니….
어째서 회귀 전엔 이런 놈들이 부각되지 않았던 거지?
“이미 준비는 다 끝내놓지 않았나. 이 팍팍하고 풍진 세상,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준비를 다 끝내놓았다고?
게이트를 과부하시켜, 내부의 몬스터를 외부로 꺼내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제물과 엄청난 숫자의 정수를 퍼부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걸 벌써 끝내버렸다니!
“치잇!”
마음이 급해졌다.
아무리 이서초 게이트가 외진 곳에 있는 곳이라지만 위험도 4급에 다다를만큼 위험한 곳이다.
은신과 기습에 특화된 블랙 리자드맨이 도심으로 풀려나온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로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팽팽 굴렸다.
극한의 이지선다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전력을 다해, 어떻게든 제법 지위가 높은 듯한 사교도 두 놈을 치울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든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 게이트 과부하를 막을 것이냐!
“…!”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도중.
빙글빙글 웃고 있는 조민철의 어깨너머로 화려하게 장식된 장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저것들 설마…. 남성국이 설치한 함정의 위치를 모르고 있는 건가?
조민철과 한종운 이 두명의 사교도는 지금 남성국이 생전에 설치해둔 함정을 등지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이곳에 함정이 설치된 것을 알고 있다면, 절대로 서 있지는 않을 장소다.
게다가 내가 지금 서 있는 장소 또한 함정을 발동시키기 최적의 장소!
민활하게 돌아가는 머릿속에 번뜩 계책이 떠올랐다.
남성국이 만일을 대비해 수하들에게마저 함정의 위치를 숨겨뒀었나 본데. 아주 잘 되었군!
…한 번 도박해볼 만한 가치는 있겠어!
-콰앙!
내력을 실어 크게 발을 굴렸다. 바닥에 두껍게 갈린 콘크리트가 우지직 갈라졌다.
갈라진 콘크리트 사이로 파편이 요란하게 떠올랐다.
-파파팟!
지축을 웅웅 울리는 충격에 두둥실 떠오른 파편들을 강하게 걷어찼다.
“흐응. 생긴 것처럼, 발악마저 귀엽게 하는구나.”
“형제여. 슬슬 가봐야 한다니까.”
조민철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한종운은 그런 조민철을 재촉하며 불만을 표했다.
넉살좋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놈들은 날아든 파편들을 여유롭게 피해냈지만….
애초에 난 놈들을 노린 게 아니다!
-달카닥! 절그럭 절그럭!
산탄처럼 날아간 파편들이 요란한 문양이 새겨진 장식장에 날아가 박혔다.
그러자 스위치 눌리는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차차창!
“뭣?”
별안간 천장에 달려있던 샹들리에가 폭죽 터지듯 폭발했다.
곧이어 태양이 집무실 안으로 내려앉은 듯 강렬한 빛이 번쩍 터졌다.
천장에서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비오듯 후두둑 쏟아졌다.
“크읍!”
“이게 무슨!”
섬광탄이 설치된 샹들리에. 회귀 전에 남성국을 추적하다가 몇 번이나 당해봤던 함정이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함정이지.
어찌나 강렬한 광량이었는지, 순간적으로 꽉 감은 눈꺼풀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곧바로 시각을 차단했던 내가 이럴진대. 무방비로, 맨눈으로 노출된 사교도 놈들의 피해는 어련할까!
“크으윽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끄으으아아아 눈이! 눈이이이이이!”
역시! 딱 기대한 만큼의 성과다.
조민철은 새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종운은 유리 파편에 눈꺼풀이 베였는지, 두 눈에 피까지 줄줄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침착하게! 이 정도 상처쯤은 금방 회복될 터!”
사교도 놈들 역시 헌터는 헌터다.
특성 트리와 상태창의 영향으로 평범한 인간과는 궤를 달리할 만큼 튼튼한 몸이기에 조민철의 말대로 저 정도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겐 그 잠깐 동안의 빈틈이면 충분했다.
놈들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펴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들을 차올렸다.
-파앙! 팡! 파팡!
내력을 적절히 조율해 눈 깜짝할 사이에 떠오른 파편들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냈다.
-달칵! 달칵! 달칵!
남은 함정들이 모조리 발동되는 소리가 고요가 내려앉은 방 위에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철그럭 철그럭 기계장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타닷!
나는 재빨리 집무실 밖으로 몸을 피했다.
구르듯 몸을 웅크리면서, 부서진 철문을 방패쳐럼 치켜들고 그 뒤에 몸을 숨겼다.
-쉬르르륵!
-파치지지지직!
-쿠르릉 쿠르르응!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운 시커먼 독 연기!
불길하게 파지직거리며, 주홍빛 불똥을 튀겨대는 시퍼런 스파크!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을 이글거리는 두 명의 사교도!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처럼 보였다.
-꽈아아아아앙 꽈아아앙 꽈과과과광!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 백열시키는 새하얀 파괴의 빛!
두꺼운 철문 너머로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까지 느껴졌다.
새상이 밝게 물들었다. 지축이 우르릉 우르릉 무서운 진동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