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고, 고생하십쇼. 헌터님.”
어째선지 벌벌 떨리는 목소리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택시기사는 내게 계산을 끝마친 체크 카드를 건네줬다.
카드를 받아들며 슬쩍 마주친 그의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예, 기사님도…요? 엥?”
-부와와앙!
손을 들어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택시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내가 내린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택시기사는 액셀을 밟아버렸다.
엔진이 굉음을 토하며, 주홍빛 택시는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쩝. 여기가 그리 무서운 곳인가?”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올렸던 손으로 머리를 북북 긁었다.
[평범한 이들에겐 썩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지 않으냐.]
뭐…. 확실히 유쾌하기만 한 광경은 아니네.
흉한 철골을 드러낸 채, 마구잡이로 박살 나 있는 폐허의 을씨년스러운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폐허 정 중앙. 부서진 초등학교 건물 위로 요망한 보랏빛을 발하고 있는 게이트의 모습은 평범한 소시민이 감내하기엔 너무나 두려운 광경이긴 했다.
어쩐지 일반인의 미의식과는 점점 거리가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쓰게 웃곤. 나는 게이트가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 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대로 찾아왔으려나.”
[저기 보랏빛 균열이 보이는 것으로 봐선, 맞게 찾아왔겠지. 새삼스레 왜 그러느냐??]
“여긴 회귀 전에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던 곳이거든요.”
[그래?]
위철용과 대화를 나누며, 간신히 형체만 유지 중인 교문에 들어섰다.
휑한 폐허 속에서 잔뜩 녹이 슨 채 교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서 초등학교」
이곳은 이서 초등학교. 내가 두 번째 목표로 삼은 게이트가 위치한 곳이다.
신지현이 건네준 묵직한 서류뭉치에서 이곳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몰랐다.
설마하니, 여기가 아직 클리어되지 않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야.
회귀 전, 4급 게이트 중에서도 특히나 좋은 소재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애석하게도 대 침식이 일어나기 전에 클리어된 곳이었기에 회귀 전의 난. 아예 단 한번도 와본 적이 없었던 곳이다.
그때의 와보지 못한 여한을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풀게 될 줄은 미처 몰랐군.
“저기, 혹시 태백 소속의 헌터님이십니까?”
상념에 잠긴 채 막 게이트 관리소에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낯선 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키가 멀대같이 크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젊은 남성이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의 복장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살짝 달랐다.
투구 따윈 쓰지 않아 훤히 노출된 얼굴. 평상복 위에 받쳐입은 검은색 가죽 갑옷,
허리춤에 치렁치렁 매달린 무기!
갑옷에 아무것도 새겨 넣지 않은 것으로 봐선, 아마도 프리랜서 헌터겠군.
길드 간의 알력다툼이 일상인 시대이기에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할 겸, 원활한 피아식별을 위해, 길드에 소속된 모든 헌터는 자신이 속한 길드의 상징을 갑옷에 새겨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저런 식으로 갑옷에 아무런 상징을 새겨 넣지 않았다는 것은 곧, 이 자가 어디에도 속한 곳이 없는 프리랜서 헌터라는 소리였다.
프리랜서 헌터.
모든 헌터가 전부 특정한 길드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내처럼 간혹 가다 길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헌터들도 일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만. 그쪽은 누구신지…?”
“아, 아하하 인사가 늦었군요. 프리랜서 헌터 하승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자신을 하승진이라 밝힌 남자는 어쩐지 비굴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눈인사만을 한 뒤, 그를 지나치려고 시도하자 하승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자, 잠시만요! 지금 이서초 게이트에 들어가시려는 거 맞죠? 마침 저도 그쪽 게이트에 볼일이 있는데….”
…무슨 말 하려는지 벌써 알겠군.
“…출입 허가가 나지 않아서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하승진의 입에선 예상했던 내용이 흘러나왔다.
프리랜서 헌터에게 게이트 출입 허가를 쉬이 내주지 않는 것은 업계의 관습과도 같은 일이었다.
게이트라는 곳은 애초에 길드의 이권이 걸린 곳이었다.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길드 입장에선 게이트란 곳은, 중요한 자금줄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여겨지곤 했었다.
그렇게 중요한 곳이니만큼 어지간해선 외부인에게 출입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이 업계의 상식이지.
다른 경쟁 길드나 타 길드 소속의 유명 공격대에게도 어지간해선 출입 허가를 내주지 않을 정도인데….
하물며 하승진 같은 프리랜서 헌터에게 출입을 허가해 줄 리는 절대 없지.
길드 입장에선 프리랜서 따위에게 그런 온정을 베풀어줄 이유가 없거든.
“부, 부탁입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같이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하승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다소곳이 무릎에 양손을 올린 채 눈망울을 글썽거리는 그의 눈빛엔 간절함이 가득해 보였다.
“제발! 제발!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정수만이 제 여동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거참. 쇼 한번 거하게 하는군.
얼핏 보기엔 굉장히 간절해 보였으나.
애석하게도 그의 간절한 애원은 내게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이 프리랜서 헌터라는 족속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리숙한 신입 길드원의 동정심에 기생하는 기생충 같은 작자들!
게이트에 동행한 뒤 멋대로 전리품을 빼돌리는 것이 이들의 주요 행동 방식이었다.
[크흠. 흠. 꼴 보기 싫으니 어서 저놈을….]
‘그렇게 돌려 말하셔 봤자, 절대 안 데려갈 겁니다.’
이 속사정을 잘 모르는 위철용은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놈에게 자비를 베풀라 돌려서 말하려 들었지만, 난 딱 잘라 거절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족속들에게 한두 번 속아본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
이젠 눈물까지 흘려가며, 여동생의 병세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하승진의 머리 위엔 거짓이란 단어가 둥실 떠 있었다.
…확실히, 비싼 소재를 얻을 수 있는 게이트라 그런지. 별 이상한 게 다 꼬이는군.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 혼자서만 활동하거든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리곤 품속을 뒤져, 여전히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승진에게 명함을 하나 건넸다.
“여동생 분께서 병세가 그리 위중하시다면, 이쪽으로 한번 연락해 주시겠습니까? 이 바닥에선 제법 유명한 치유사분이시거든요.”
하승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서 명함을 받아들었다.
뭐라 입을 벙긋거리려는 그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를 표한 뒤.
무릎을 꿇고 버티고 앉아있는 하승진을 지나쳐 관리소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우욱
게이트 관리소의 문고리를 막 붙잡은 순간.
뒤쪽에서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신지현의 명함이 북북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쳇. 빌어먹을 새끼가. 비싸게 굴긴.”
투덜거리는 놈의 불평을 초인종 삼아, 나는 관리소 안으로 들어갔다.
****
이서초 게이트.
이곳 역시 먼젓번에 들렀던 곳과 똑같이 4등급 게이트지만….
강남역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얼마 전에 들른 강남역 게이트야 단순히 우두머리인 바포메트 한 마리의 위험성 때문에, 높은 등급을 받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 서이초 게이트, ‘부서진 지하 미궁.’은 게이트 내에 즐비한 몬스터 자체의 난이도로만 4등급을 받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게이트 관리소는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삼엄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강남역이 그냥 커피라면, 이곳은 TOP를 넘어 고오급 루왁 커피라고 할까?
초등학교 전체를 개수해서 만들어낸 이곳은 게이트 관리소라기보단 하나의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구조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둔 중인 직원의 절대적인 숫자조차 일반 관리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들의 무장상태 역시 다른 곳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혼자? 정말 혼자서 들어가시겠습니까?”
워낙 위험한 곳이라 그런 것일까?
게이트 패스를 확인한 관리소 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한쪽 눈썹만을 살짝 찡그린 그의 눈빛은 마치 참신한 방법으로 자살을 희망하는 자살희망자를 보는 것 같았다.
…매번 귀찮기는.
“예, 길드장님의 개인적인 지시가 있거든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직원에게 미소로 화답하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곤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니, 찍으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푸른 잉크를 머금은 도장이 막 서류 위로 향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직원을 멈춰 세웠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남자. 자신을 프리랜서 헌터라고 소개했던 하승진의 느물느물한 얼굴이 보였다.
…이건 또 뭐야.
“…대장님?”
하승진과 눈빛이 마주친 직원의 입에서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대장이라고?
“이런 이런. 이게 누구야…. 아까 그 매정한 헌터 양반 아닙니까? 호오? 게이트 패스? 이거 생각보다 거물이셨네.”
하승진은 당황한 직원에게 손짓해 물러서게 한 뒤 데스크에 놓인 서류와 게이트 패스를 번갈아 살펴보며 느물느물하게 말을 이었다.
“게이트 패스? 좋지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아무리 게이트 패스라도 공격대장이 이의를 제기하면 입장할 수 없다는 거?”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 알고 있노라 대꾸하기엔 계속된 상황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프리랜서 헌터가 사실은 이곳을 관리 중인 공격대의 공격대장이었다고?
대체 왜, 어째서 프리랜서 헌터로 위장한 채 동정을 구걸한 거지?
의문을 가진 순간, 머릿속으로 답이 스르륵 떠올랐다.
…빌어먹을, 정체를 숨긴 채, 갑질을 역으로 갑질하는 취미가 있는 얼간이였나!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지요. 태백 길드 무등 공격대의 공격대장 하승진이라고 합니다. 어디….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요?”
하승진은 기세등등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권해왔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민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힘을 숨긴 찐따짓’ 성애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답을 생각하려던 찰나….
『거짓』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밝힌 하승진의 머리 위에 ‘거짓’이란 단어가 떠올라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이것도 거짓이라고?
혹시나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벼봤지만 하승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씨는 여전히 거짓이란 두 글자였다.
애초에 지금의 그에게선 진실이라는 단어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 자세한 이야기는 사무실에서 나눠 보시죠?”
하승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손짓을 보냈다.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그의 손목엔 반쯤 지워진 희미한 나비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일반인, 아니 헌터조차 쉬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기에 나 역시 화안금정이 아니었으면 발견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잠깐만, 반쯤 지워진 나비문신? 설마…?
갑자기 과거의 기억 중 하나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사무실로 안내하는 하승진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내 기억 속 인물 중 한 명과 스르륵 겹쳐졌다.
그래, 지금 얼굴은 내 기억과는 좀 다르지만….
마치 춤추듯 의기양양하게 앞장서는 하승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눈을 빛냈다.
****
얼마나 걸었을까.
초등학교 본관을 빠져나와, 별관으로 진입한 하승진은 나를 제법 화려하게 꾸며진 방으로 안내했다.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게이트답게, 공격대장이 기거하는 사무실은 아예 별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온갖 내로라하는 명품 가구들로 꽤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보시겠습니까? 아, 그 전에 잠시만요.”
내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하승진은 책상 서랍을 열어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슬그머니 주변을 훑어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 수상쩍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CCTV가 없어?
어떤 위협이 갑작스럽게 닥칠지 모르는 게이트 관리소에선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CCTV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관리소 내의 모든 공간에 CCTV를 달아두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어째선지 이곳 공격대장실에선 CCTV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내 생각대로 하승진의 정체가 ‘놈’이 맞다면, 자신의 거처에 CCTV를 치워둔 것도 당연한 일이겠군.
“흐응. 여기 있네. 게이트 운영지침. 제 12조….”
하승진이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내 들어 내게 들이밀었다.
“아무리 게이트 패스라고 한들, 공격대장의 권한 하에 거절할 수 있다.”
공격대장의 권한이 실려 있는 페이지를 짚은 하승진은 다시 한 번 내게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습니까? 상황이 역전된 것 같지 않습니까? ‘마음 좀 곱게 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시나요?”
[크읏! 네놈답지 않구나, 놈이 저렇게 떠들도록 대체 왜 가만두고 있는 게냐.]
위철용은 갑갑하다는 듯, 성난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탕탕 쳐대기 시작했다. 뾰족한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불만의 감정이 토해졌다.
허나, 나는 그의 불만서린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신 계속해서 화안금정을 유지한 채. 승리감에 취해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하승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짓』
『거짓』
『거짓』
계속되는 거짓의 향연.
하승진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든, 그의 머리 위의 거짓이란 단어는 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히, 하승진이 ‘게이트 관리지침’을 소리 내어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은 진실로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평소처럼 좀, 속 시원히 떠들어 보란 말이다. 대체 왜 가만히 있어!]
위철용은 계속 재촉하듯, 내게 무언가 행동할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굳이 그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단지, 화안금정을 계속해서 유지한 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승진의 모든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승리감에 도취 된 상태로 의기양양하게 뭐라 지껄일 때마다. 하승진의 입에선 특이한 악센트가 튀어나왔다.
그 악센트가 튀어나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취해지는 특유의 손짓과 그것이 행해질 때마다. 마치 날갯짓하듯 나풀거리는 손목의 희미한 나비문신!
하승진이란 낯선 이의 얼굴에서 나는 낯익은 이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
이런 곳에 숨어있었구나?
‘놈’과의 악연을 생각하자, 자연스레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