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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31화 (31/309)

제31화

“어…?”

낯선 풍경이다.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아슬아슬하게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것까진 기억나는데, 도대체 여긴….

“…온통 허옇네.”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회색의 구름으로만 가득 차 있는 허무한 공간뿐이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라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맥빠진 혼잣말뿐이었다.

천장도 바닥도 구분할 수 없는 회색빛 공간엔 오로지 단조로운 허무만이 가득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 온통 허연 것들로만 가득 들어차 있구나. 젊은 놈 머릿속이 벌써 이렇게 황량해서야 원! 쯧,”

어디선가 낯익은 이죽거림과 함께, 강렬하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철용 어르신?”

눈 앞에 펼쳐진 초현실적인 광경에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 순간….

“어르신이라니, 이 탱탱한 피부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위철용이 나를 보고 씨익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그는, 배후령 특유의 녹색 난쟁이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어째선지 지금의 위철용은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앳된 모습의 육체를 가진 상태였다.

…뭐지? 이건? 꿈인가?

-쫘아아악

“끄읍!”

꿈인가 싶어, 꿈속에서 깨어나기 위해, 볼을 힘껏 잡아당겼지만. 살점이 뒤틀리는 끔찍한 고통만이 엄습해올 뿐이었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내 옆에 서 있는 ‘젊은’ 위철용과 주변을 가득 채운 회색빛 구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 하고 있는 게냐? 설마 지금 여기가 꿈속 세상이라 생각하고 있는 게야?”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던 위철용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표정이 뭉실뭉실 떠올랐다.

“…꿈이 아니에요?”

멍하니 되묻는 내 질문에 위철용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곤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뭐, 어떻게 보면, 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곳은 바로 네놈과 본존의 심상세계이니라.”

“심상…세계?”

낯선 단어가 등장하자,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부지런히 회귀 전의 기억들을 뒤져봤지만. ‘심상세계’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말로만 들어서는 대충 알 것도 같은데….

“심상세계란 말 그대로 정신 속에 구축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 정신 속에 구현된 공간이기에 무엇이든 상상하는 그대로 이뤄지는 곳이라 할 수 있느니라!”

위철용은 가슴을 주욱 내밀고, 자랑스레 심상세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상상하는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곳이니라. 수련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라 할 수 있지! 심상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곧 무의 길을 걷는 자에게 있어 상승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느니라.”

위철용의 장황한 설명만 들어보니, 이 심상세계라는 놈이 상당히 유용하게 느껴지긴 했다.

…근데 난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애초에 심상세계 같은 걸 만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도대체 왜 갑자기 제가 그렇게 대단한 심상세계라는 곳으로 끌려온 거죠? 애초에 저는 심상세계인지 뭔지를 구축한 적이 없는데요.”

“그야 본존이 실수해 버렸으니까. 말했잖으냐. 이곳은 ‘네놈과 본존’의 심상세계라고.”

“네?”

위철용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자신의 실수였노라 밝혔다.

어찌나 당당한 태도였는지, 순간 ‘실수’라는 말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어쩌다 보니, 본존의 심상세계와 네놈의 심상세계가 뒤섞여버렸지 뭐냐.”

위철용은 턱을 슥슥 긁으며, 마치 마트에서 음료수를 잘못 산 것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벌인 양 대꾸했다.

어째, 그 말에 담긴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뒤섞여 버렸다.’라는 말만큼은 절대 긍정적인 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다.

“기억을 회복하면서…. 심상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은 김에 그것을 구축하려 들었더니, 그만. 네놈의 심상세계랑 융합되어 버렸지 뭐냐. 허헛 이것 참. 본존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다니까.”

…그것참 빌어먹을 정도로 상상도 하지 못한 이유로군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꾹 눌러 참았다.

모르긴 몰라도 위철용이 뭔가 크게 사고를 쳐버린 모양이다.

“뭣보다 가장 큰 문제는…. 당분간 네놈이 그리도 좋아하는 성좌들의 반응을 지켜보긴 좀 어려울 게다.”

“예?”

뭐요? 성좌들의 반응이 뭐가 어쩌고 어째?

정신없이 내뱉어지는 폭탄 발언의 향연에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위철용이 뭔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서늘한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내 아연한 표정을 본 위철용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본존과 네놈의 정신이 뒤섞인 탓에 일종의 오류가 생겨버렸단 소리이니라. 필멸자들과 성좌들을 이어주는 그…. 채널이니 뭐시깽이니 하는 것이 여기와 이어져 버릴 줄은….”

“그,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 어떻게 되는 건데요?”

“당분간은 그 채널이니 뭐시기니 하는 곳에서 성좌 놈들의 반응 대신 본존의 잘생긴 얼굴만을 볼 수 있겠지.”

채널을 확인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위철용에 대한 아니꼬운 감정이 울컥울컥 샘솟기 시작했다.

성좌들이 내게 후원해주는 존재력 포인트야 포인트 샵에서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뭐라고 하는지 확인할 길이 당분간 막혀 버렸다.

…빌어먹을! 성좌들의 반응에 호응을 보여야, 포인트를 제대로 벌 수 있을 텐데. 이게 뭔 날벼락이야!

“뭐, 일시적으로 뒤틀린 거라 한 달쯤 지나면 말끔히 복구가….”

“어째 이번 생엔 쉽게 꿀 좀 빠나 싶었는데, 그걸 막아버리시네. 정말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위철용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를 상기하려 했지만, 범람해오는 아니꼬움을 억누를 수 없었다.

상반된 마음이 혼선을 일으켰다. 삐쭉 튀어나온 입이 위철용의 말을 중간에 끊어 먹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툭 튀어나왔다.

툭 튀어나온 욕에 피폭당한 위철용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빌어…먹을?”

위철용은 내 입에서 흘러나온 욕설을 곱씹기라도 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계속해서 입안에서 ’빌어먹을‘이란 단어를 연습한 그는 이내 툴툴거리며 불길한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흐흐. 그래! 최근들어 그 ’성좌‘ 나으리들의 황송한 은혜에만 의존해온 네놈이 본존에게 아니꼬운 감정을 품을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나쁜 점이 있다면 당연지사, 좋은 점도 있느니라.”

“…조, 좋은 점이요?”

갑자기 엄습해오는 불안한 느낌에 나는 조심스레 위철용으로부터 슬쩍 물러났다.

그런 나를 본 위철용은 말없이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었다.

-슈르르륵!

순간, 기묘한 소리와 함께, 심상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던 회색빛 구름이 위철용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손에 몽실몽실하니 뭉친 구름이 뭔가 형태를 이룬다. 싶더니, 어느새 그의 손엔 제법 단단해 보이는 목재 재질의 창이 들려있었다.

“네놈이 항상 무공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 줄 테니, 본존에게 가르침을 내려달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지?”

-빠아아악!

별안간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곧이어 두개골이 움푹 함몰되는 듯한 격통이 이어졌다.

“끄흡!”

“이게 바로 ’좋은 일‘이니라. 어떠냐? 본존의 가르침 맛이 뜨끈하니, 각별하지 않느냐?”

내 머리를 강타한 위철용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초승달 모양으로 휜, 그의 눈엔 가학적인 욕망의 빛이 음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슬쩍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입가엔 흉흉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좋은 일…. 크학!”

-따아아아악!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다시 한번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어찌나 급작스럽게 얻어맞았는지, 이번엔 혀끝이 살짝 잘려나갔다.

비릿한 피 맛이 입에 감돌았다.

“그래! 이거야! 이 손맛! 이 타격감! 억겁의 세월 동안 이 쾌락을 어찌 참아왔던가!”

벼락같이 손을 움직여, 창대로 내 머리통을 가격한 위철용의 눈이 살짝 풀렸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맛보는, 가학적인 쾌락에 잠시나마 압도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뭐…. 채널 건은 좀 미안하게 되었다만, 지나친 이익은 때론 독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법이니라…. 아니지. 본존이 네놈에게 사과 따윌 할 이유가 없군.”

위험한 표정으로 입가에 슬쩍 흐른 침을 스윽 닦은 위철용의 눈빛이 갑자기 진중해졌다.

사과 운운하며 피식 웃은 그의 말투엔 ’사과‘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은 오싹하기 짝이 없는 한기가 풀풀 풍겼다.

“생각해보면, 사과를 할 사람은 본존이 아니라, 네놈이 아니더냐?”

위철용의 얼굴을 그득하게 채웠던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입가에서 시작된 서늘한 한기가 어느새 그의 얼굴을 가득하게 뒤덮었다.

냉기를 풀풀 풍기며 나를 노려보는 위철용의 눈빛엔 짙은 질책의 기운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적반하장….”

“적반하장? 허어. 성좌 따위의 후원질에 신나게 놀아나느라 노력과는 담을 쌓았던 네놈이 적반하장을 입에 담아? 본존이 비로소 따끔한 가르침을 내려줄 기회가 도래했으니. 이 어찌 만족스러운 일이 아닐쏘냐.”

적반하장을 입에 담은 위철용의 입매가 비릿하게 뒤틀어졌다.

곧이어 뭐라 대꾸하기도 어려울만큼 살벌한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이 어르신께서 네놈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싹 뜯어고쳐주마.”

****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심상세계라 이름 붙은 지옥 같은 공간 속에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위철용에게 맞고 또 맞았다.

-콰카카카칵!

“크읏!”

공간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위철용의 창에서 다섯 개의 창영이 뿜어져 나왔다.

파천 복룡창의 제 일식. 연포의 오룡격이 펼쳐진 것!

당장이라도 나를 꿰뚫어버릴 듯 살벌하게 덮쳐오는 창날을 다급히 쳐내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내 상반신을 노리고 날아든 창날 중 네 개는 눈속임이었다.

-휘청!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한 창날을 쳐내려고 시도한 순간, 내 몸이 균형을 잃었다.

힘껏 휘두른 창날이 허무하게 빗나가며 몸의 중심을 허망하게 앗아가 버렸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하늘과 땅이 순식간에 자리를 뒤바꾸었다.

-빠아아아악!!

그 순간!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눈속임 속에 숨어있던 위철용의 진짜 공격이 날아 들어왔다.

창날이 머리를 격타한 순간,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별이 번쩍였다.

머리가 기묘한 모양으로 함몰되었다가 원상복구 되었다.

두개골이 쩍 하니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단숨에 정신을 잃어버릴 만한 충격이었지만, 내 의식은 멀쩡하기만 했다.

위철용의 의지에 따라, 부상이 바로바로 회복되는 통에 기절조차 하지 못했다.

심상세계라는 것이 꿈속에 기반한 세상이라더니, 고통조차도 이곳에서의 탈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한심하구나, 한심해! 정말 실망스러울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어!”

인정사정없이 내 머리를 후려친 위철용은 계속해서 폭풍같은 기세로 내게 쇄도해왔다.

으르렁거리듯 일갈하는 그의 말투엔 실망감이 잔뜩 서려있었다.

“대체 뭐가 한심하다는…캬학!”

위철용에게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는‘ 입장답게 질문이라도 해보려고 입을 벌린 순간, 이번엔 창끝으로 목젖을 얻어맞았다.

목구멍 너머로 말이 넘어오려다가 뚝 끊겼다. 정통으로 목젖을 얻어맞아 숨이 턱 막혔다.

“네놈의 싸우는 방식이 한심스럽게 변해버렸다는 소리이니라. 예전의 그 미려하면서도 변칙적인 몸놀림은 도대체 어디에 팔아먹은 겐지 모르겠구나!”

중간에 뚝 끊기긴 했으나, 일단 질문을 받은 위철용의 입에선 불편한 설명이 술술 풀려나왔다.

“내력을 다루는 솜씨? 창을 귀신같이 다루는 법? 파천 복룡창의 오묘한 초식? 지금 네놈의 몸놀림에선 그런 걸 찾아볼 수가 없어! 그저 육체적인 능력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지!”

일갈을 마친 위철용은 창끝으로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의 태도에 기분이 나쁠 새도 없었다. 위철용의 지적 하나하나가 내 사정없이 내 마음 속을 후벼파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 네놈의 머리에 있느니라. 명색이 ’끝없는 고행의 길‘을 걷겠다는 놈이 어째선지 성좌놈들의 달달한 후원에 헤벌레 정신이 팔려서는!”

위철용답다면 위철용답게, 그의 지적은 모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직설적이었다.

듣는 이의 사정 따윈 고려하지 않고, 가혹한 사실만을 잔인하게 후벼 파는 타입이랄까.

“마치, 철없는 꼬맹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니라. 갑자기 얻은 힘에 취해 그것에만 의존하여 모든 것을 도외시하는 그런 꼬맹이 말이다.”

끄응. 뭔가 무공에 관해 물어보려 했을 때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던 양반이 이제와서….

변명하기라도 하듯 그동안 위철용이 추억에 잠겨 내게 가르침을 내려주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렸으나. 이내 나는 스스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그랬다. 위철용이 지적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위철용이 기억을 되찾을 때마다 멍하니 추억을 더듬는 것을 핑계로 삼아, 어느 순간부터선가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무공에 관련된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형식적으로만 몇 번 툭툭 질문을 던져봤을 뿐, 성좌들의 후원해주는 존재력 포인트의 압도적인 충만함에 젖어 수련을 게을리 했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위철용이 일깨워주니 새삼스레 얼굴이 뜨거워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바로 사과가 튀어나오는 것으로 봐선, 찔리는 구석이 있기는 했었던 모양인 게로구나. 어리석은 것. 쯧!”

나는 위철용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사과를 표했다.

사과를 받은 위철용의 말투는 여전히 곱지 않았지만, 얼음장처럼 싸늘했던 기운만큼은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더불어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네놈은 대관절 왜. 다른 이들의 능력을 손에 넣은 게냐? 그저 ’쓸모 없는‘ 이들에게 귀중한 능력이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는 게냐?”

“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도중, 자괴감에 고개를 숙인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위철용의 입에서 갑자기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위철용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입에선 멍청한 목소리가 새어나오듯 주르륵 흘러나왔다.

“쯧쯧, 구슬 서 말이나 있어도 꿰어야 보배이거늘…. 이래서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달린 격이로구나.”

“그, 그게 무슨…?”

“어째서 그렇게 많은 능력들을 손에 넣고 쓸 생각을 하지 않았냐는 말이다!”

순간, 위철용의 일갈에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귓가가 쿵쿵 울렸다.

그렇다. 회귀 전엔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던 사기적인 능력들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을 전혀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위철용의 말대로 압도적인 육체적 능력에 기반한 싸움법에 심취하였기에 기껏 손에 넣은 스킬들을 전혀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이래서야 정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놓은 격이었군.

-번쩍!

머릿속에 새로운 깨달음이 번쩍였다.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두뇌가 팽팽 회전하기 시작했다.

특성을 습득하며 체득되었던 스킬들이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뒤섞이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깨달음에 따라 머릿속에 각인된 스킬 중 하나,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황금빛 기운이 눈가에 감돌았다. 시야가 일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세상에서 그동안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모든 것들을 독식하겠다면, 마땅히 그것들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콰콰콰콱!

흐뭇한 표정을 지은 위철용이 눈과 손을 동시에 번뜩였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순간적으로 다섯 개의 창날이 내게 날아들었다.

먼젓번처럼 일방적으로 그의 수법에 유린당할 상황이었지만…!

-따아아앙!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 속에서, 나는 진실을 보았다.

화안금정의 효과로 인해, 나는 짓쳐들어오는 다섯 개의 창날 중에서 두 개의 창날만이 진짜임을 손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내 손에 들린 창날이 바삐 움직이며 날아든 두 개의 창날을 가볍게 쳐냈다.

“이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까진 아니겠죠?”

위철용을 바라보는 내 표정에도 미소가 깃들었다.

뒤늦은 희열이 스멀스멀 내 사고를 잠식해오기 시작했다.

진실과 꿰뚫어 보는 눈! 화안금정! 왜 이 생각을 진즉 못했을까!

왜 금쪽같은 스킬을 배워놓고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을까!

급작스레 찾아온 깨달음에 몸이 흥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 빠르게 뛰며 아드레날린을 온 몸에 퍼뜨렸다.

-쿠르르르르.

내력이 주입된 창이 부르르 떨렸다.

단단히 창대를 틀어쥔 손도 부르르 떨렸다.

“호오…. 이제야 내가 기억하던 그 ’설용호‘의 모습이 나타나는구나. 좋아! 이렇게 나와야 재밌지!”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위철용이 씨익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몸에서 위협적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풀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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