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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29화 (29/309)

제29화

“어머, 설용호 헌터님? 어젠 잘 들어가셨어요?”

노량진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난 다음날. 내가 찾은 곳은 신지현의 사무실이었다.

태백 길드 본사 건물에 위치한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신지현이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겼다.

강태백과 모종의 이야기가 오간 모양인지, 그녀의 얼굴에선 어제의 일에 대해 딱히 걱정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맞다. 길드장님께 레드 드레이크의 등뼈를 받으셨다면서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가장 우수한 무기장인 김우경 씨에게….”

확실히…. 신지현과 강태백 사이에서 뭔가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로군.

신지현의 입에서 레드 드레이크에 관한 말이 나오자, 나는 속으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김우경쯤 되는 인물이 엮여있는 것으로 봐선 강태백의 입김이 닿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미안하지만, 수작질 하시기엔 이미 늦으셨어!

“아, 그거요? 이미 다른 장인에게 맡겨뒀습니다.”

“김우경 씨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예? 뭐, 뭐라구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어서일까?

생글거리며 김우경에 대해 약을 팔던 신지현이 화들짝 놀랐다. 조그마한 입이 바보처럼 멍하니 벌어졌다.

“미리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어제 인연이 닿아, 무기장인 한 분과 전속 계약을 맺었거든요. 앞으로 제작 의뢰는 그분에게 일괄적으로 의뢰할 생각입니다.”

계속되는 폭탄 발언에 생글거리던 신지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소가 사라진 그녀의 얼굴에 당황, 황당, 어이없음, 분노 등 다채로운 표정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아. 아니, 그게 어떤 거라고 그렇게 상의도 없이 전속 계약을…. 으으. 어렵게 섭외한 양반인데. 이걸 어째….”

두통이 찾아왔는지 신지현은 머리를 감싸 쥐곤 머리를 푹 숙였다.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그녀의 입에선 기껏 섭외한 김우경의 처우에 대한 푸념 섞인 혼잣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김우경.

나 역시,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회귀 전, 태백에 오랫동안 묶여있었던 몸인데 어찌 내가 그를 모르겠는가.

오랫동안 태백의 공방조합 조합장을 도맡아온 인물이니만큼, 실력이나 명망은 확실한 인물이지만….

-으드득.

김우경의 염소 같은 면상을 떠올리자. 저절로 이가 갈렸다.

놈 역시, 태백의 고위층에 속한 인물이니만큼. 썩어빠진 치부를 가진 쓰레기였다.

공방조합 조합장이란 지위를 내세워, 거리낌 없이 의뢰를 맡겨온 헌터들의 소재를 횡령해대던 쓰레기 중의 쓰레기!

오죽하면, 태백 길드의 헌터들 사이에선 ‘김우경 당했다.’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였다.

뭣보다…. 내 은인이었던 김혜연을 나락에 몰아넣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했었던 개자식이지!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황금빛으로 물든 눈에서 분노를 품은 오싹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머리를 감싼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신지현의 몸이 순간, 움찔 떨렸다.

“…혹시 길드장님께 혹시 ‘이것’에 대해 들은 것 있으십니까?”

순간적으로 피어올랐던 살기를 거두고, 나는 품속에서 게이트 패스를 꺼냈다.

화려하게 금박이 입혀진 플라스틱 ID 카드의 등장에 고개를 슬쩍 치켜든 신지현의 눈이 금새 휘둥그레졌다.

“세, 세상에 이건! 게이트 패스잖아요! 아무리 그 정도의 공을 세우셨다고 해도 길드장님께서 정말로….”

유난히 호들갑스러운 반응으로 미뤄보건대, 신지현은 아무래도 강태백으로부터 게이트 패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거 참 괴이쩍은 일이로군.

소재의 처분에 관한 이야기는 김우경까지 엮어가며 다 해놓은 마당에.

정작 중요한 게이트 패스에 관한 이야기는 신지현에게 언급조차 안 해놨다니….

도대체 강태백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군.

“이, 이것만 있으면 이제 설용호 헌터님도 ‘수확’하러 다니실 수 있다는 거잖아요?”

게이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여, 일단 게이트 자체를 없애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것.

클리어는 안중에도 없이, 몬스터의 개체 수를 계속 유지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먹는 것.

후자 쪽의 게이트에서 정기적으로 몬스터들을 잡아, 소재를 채취하는 것을 업계에선 ‘수확’이라 불렀다.

신지현이 들뜬 상태로 조잘거린 것처럼 일반적으로 게이트 패스의 가치는 바로 어디에서나 ‘수확’을 할 수 있다는 것.

공격대를 통한 고리타분한 계급체계? 복잡한 출입절차?

다 필요 없다. 게이트 패스만 있으면 전부 하이패스다.

게다가 게이트의 우두머리만 남겨 놓는다면, 게이트에서 뭔 짓을 하든 자유!

신지현이 저렇게까지 들뜬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전속 계약을 맺은 이상, 내가 수익을 정산할 때마다 자동으로 그녀에게도 일정 비율의 금액이 제공되기 마련이니까.

“뭐. 그렇죠. 하지만, 지금 느긋하게 약해빠진 게이트에서 ‘수확’ 같은 걸 하긴 좀 그럴 것 같은데요.”

“네?”

“이걸 넘겨받은 이유가 일종의 시험이거든요. 길드장님이 한라 공격대의 일을 처리하고 싶으면, 우선 실력부터 기르고 와서, 제 의지를 증명하라 하시더라구요.”

“…증명…이요?”

황홀한 표정으로 게이트 입장권을 어루만지던 신지현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앞으로 한 달. 딱 한 달 안에 길드장님이 만족하실 만큼 레벨을 올려, 실력을 증명해야 한답니다. 아니면 길드에서 제명하신대요.”

순간, 제명 소리를 들은 신지현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전속 계약을 맺어버린 이상, 그녀와 나는 지금 한 배에 타고 있는 상태다.

내가 길드 내에서 제명당하면, 당연히 그녀에게도 불똥이 튀기 마련이지.

“아차, 이건 비밀입니다? 길드장님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 비밀은 비밀이지.

전부 다 방금 지어낸 거짓말이라, 남들 귀에 들어가면 좀 귀찮아지거든.

가만히 신지현의 반응을 살핀 나는 슬쩍 입매를 뒤틀었다.

“또, 또 이렇게 마음대로 하시다니잇!”

뾰족한 절규와 함께 신지현이 자신의 양 구레나룻을 쥐어뜯었다.

회귀 이래,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히스테릭한 모습이 내 눈 앞에서 재연되었다.

“상의도 없이 일단 저질러서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잖아요? 길드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사교도 놈들을 처리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데!”

열정이 흘러넘치는 풋내기 헌터 특유의 치기 어린 모습을 연기하며, 나는 신지현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마구 흔들었다.

“아으으…. 알았어요. 하지만 도대체 무슨 수로 레벨 업을 하시려고….”

열정 어린 포부를 들은 신지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기에, ‘강해지는 것’에 집착하는 헌터 특유의 욕구가 얼마나 대책 없는 성질의 욕망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딘지 핼쑥하니 창백해진 표정으로 그녀는 위장약이 담긴 병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사냥이죠. 위험도 5에서 3급 정도의 게이트로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지금 태백이 관리 중인 게이트엔 이렇다 할 만한 곳이 없다.

진또배기 물건들은 앞으로 한 달 뒤, 대 침식 이후에나 열리기 시작하니까.

아직은 적당한 곳에서 레벨을 올려, 최대한 능력을 갈고닦아 두는 것이 먼저다.

“지금 당장, 입장 가능한 곳을 찾아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네? 지, 지금 당장이요?”

“시간이 촉박하니,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어쩐지 허둥거리며 울상 짓는 신지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상큼하게 씩 웃었다.

뭐, 전속 매니저라는 자리가 떡고물도 많이 떨어지지만, 두통거리도 많이 떨어지는 자리 아니겠어?

회귀 전, 나를 이용해서 그렇게 꿀을 빠셨는데. 이번엔 나를 위해서 고생 좀 하셔야지.

****

“역시 사람은 콕콕 쪼아 줘야. 일을 잘한다니까.”

[악마 같은 놈.]

궁지에 몰린 신지현이 보여준 일 처리 능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게이트 패스를 건네며 한 달의 기한을 이야기한 것이 불과 한 시간 전!

어딘가에 계속해서 전화를 걸다가, 양쪽 관자놀이의 머리카락을 쭈와악 당기며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신지현이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간 것은 40분 전!

어쩐지 핼쑥해진 표정의 그녀가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를 가져온 것은, 30분 전의 일이었다.

불과 삼십 분 만에 5등급 이상 3등급 이하의 게이트 중 수확 시즌이 아닌 게이트만을 전부 추려내고 연락을 취해 방문 예약까지 줄줄이 잡아낸 신지현의 능력은 그야말로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뭐, 이 정도는 해줘야 제 전속 매니저라고 할 수 있죠. 회귀 전엔 꿀만 빨았으니까.”

[그래서, 어디부터 갈 생각인 게냐?]

“어디부터라뇨? 지금, 이미 도착해 있는데.”

[도착했다고?]

어쩐지 얼빠진 듯 중얼거리는 위철용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첫 번째 서류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서류에 적힌 첫 번째 게이트의 이름이자, 본사에서 딱 3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이곳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강남역」

****

강남역에 자리 잡은 게이트는 위험도가 4급으로 지정된 고오급 게이트다.

한때 지하철역이 자리 잡고 있던 사거리엔, 거대한 보랏빛 균열이 이글거리며, 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위험도 4등급 정도 되는 게이트라면 자연스레 엄중한 감시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게이트 바로 아래, 사거리 정 중앙에 자리 잡은 게이트 관리소는 거의 요새를 방불케 할 정도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중요한 시설답게 입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직원들의 눈빛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과 삼엄한 경계 태세가 증명하듯, 원래대로라면 이곳의 입장 절차 역시 대단히 까다롭고 복잡한 것이었지만….

“…들어가십쇼.”

게이트 패스가 있는 이상,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 따윈 나와 별로 인연이 없는 소리다.

관리소 직원에게 금빛으로 번쩍이는 게이트 패스를 슬쩍 보여주기만 하면 더 번거로울 것도 없이 프리 패스다.

게다가, 미리 신지현이 예약까지 잡아놓은 상태이기에. 나는 더더욱 입장 절차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지.

《메엣? 메헤헷! 음메에에에에!》

게이트에 진입한 뒤,

시야를 가렸던 보랏빛 빛무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메스꺼운 짐승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양 우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이곳에 출몰하는 몬스터는 바로 ‘램 헤드.’

양처럼 생긴 머리에 인간을 닮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통을 지닌 인간형 몬스터다.

양 머리를 달고 있는 놈답게 지능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었지만.

2미터를 훌쩍 넘는 근육질 몸에 어울리는 괴력을 자랑하고 있는 놈이기에 쉽지만은 않은 상대였다.

“흐흐. 여기가 바로 레벨 업 맛집입니다. 맛집.”

하지만, 이곳에 입장한 이래 내 입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맛집? 그건 또 무슨 소리냐? ]

“…명소요. 명소. 레벨 업하기 좋기로 소문난 곳!”

내가 입에서 바보 같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곳, 강남역 게이트 ‘썩어버린 갈대 평원’이야 말로, 레벨의 명소 중의 명소이기 때문이지!

회귀 전에도 썩어버린 갈대 평원은 레벨 업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의 주력 몬스터인 램 헤드가 결코 만만한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도 4급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치곤 굉장히 쉬운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램 헤드의 성향도 다른 까다로운 놈들에 비해 굉장할 정도로 착한(?) 편이었기에 회귀 전에도 이곳은 혼자서 사냥하기도 편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철저히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며, 혼자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어 한 마리씩 노리기도 좋았고.

지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 함정 같은 것도 아무런 의심 없이 걸려주는 놈이니 말이지.

[명소라니…. 이곳의 우두머리 바포메트는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닐 터인데.]

애초에 이곳의 위험도가 높게 측정된 이유도 단 하나!

램 헤드를 이끄는 염소 머리 악마, 게이트 우두머리 바포메트의 존재 때문이었다.

까다로운 저주 마법과 정신지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수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이곳의 우두머리 바포메트는 이곳의 위험도를 4급까지 끌어 올릴 만큼 위험한 놈이긴 했다.

위철용의 의문과 걱정이 적절히 뒤섞인 눈빛이 답변을 요구하며 내쪽으로 향했다.

“제 둥지에 콕 틀어박힌 히키코모리 따위야. 근처에만 가지 않으면 두려울게 없죠.”

하지만, 그것도 직접 바포메트와 대면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바포메트가 위험한 놈이면 뭘 하나, 그냥 놈이 기거하는 지역에 접근 자체를 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파아앗!

창을 단단히 꼬나쥔 채, 저 멀리, 바위 위에 앉아 사색에 잠겨있는 램 헤드에게 몸을 날렸다.

비록, 아무리 능력치가 높다고 한들, 내 레벨은 고작 3!

정석적인 방법으론 상대하기 힘든 놈이지만….

《으음메엣? 오호우 메헤엣!》

[네놈과 격렬한 육체적 사랑을 나눠보고 싶다는구나.]

“…그래. 나도 너와 격정적인 육체적 대화를 나눠 보고 싶구나!”

램 헤드 역시 인간형 몬스터인 만큼. 외모지상주의 특성이 효과를 발휘했다.

나를 볼 때마다. 램 헤드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게 호감을 표현하기 위해 잠시 ‘멈칫’했다.

물론, 그 ‘멈칫’이 전투에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은, 따로 말이 필요 없겠지!

-푸욱!

《메헥!》

램 헤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바로 그 순간!

훤히 드러난 정수리의 약점에 망설임 없이 창날을 박아 넣었다.

-퍼석!

내력이 주입된 창날이 서늘한 빛을 발하며, 램 헤드의 단단한 두개골을 관통했다.

졸지에 갑자기 뇌가 결딴 난 램 헤드의 눈이 까뒤집어지더니….

-풀썩.

뽀글뽀글 피거품을 물며, 바닥에 허망하게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특성 포인트가 제공됩니다. 특성 트리를 확인해 보세요.」

「능력치 상한이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능력치에…」

“호우우우! 아니, 메우우우우!”

레벨 업 메시지를 확인하자, 나는 램 헤드의 시체를 밟고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역시나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엄청난 성장 속도가 아닐 수 없군!

이곳에 돌입한 뒤, 딱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인데 순식간에 레벨이 한 단계씩이나 올라버렸다.

그래! 이게 레벨 업이지. 이게 사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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