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26화 (26/309)

제26화

“어디 보자. 분명히 이쯤일 텐데….”

노량진.

한때는 청운의 꿈을 품은 청춘들이 꿈을 위해 매진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대격변의 발톱이 휩쓸고 지나간 뒤로 이곳을 지칭하는 명칭은 다음과 같았다.

몇 푼 안 되는 보호세조차 내기 힘든 이들이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곳.

더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막장 인생들이 몰려들어 치안의 끝판왕을 찍는 곳.

지상 위에 열려버린 인세의 게이트….

그것이 바로 지금의 노량진을 칭하는 명칭들이었다.

그 악명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거리의 풍경은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달랐다.

불과 한 블록 떨어진 번화가와는 아예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살벌한 풍경이 좁은 골목마다 펼쳐져 있었다.

대낮부터 술과 약에 취해, 거리에 널브러진 부랑자들과 마치 짐승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을 찾는 노인들의 눈에선 공허함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죽어버린 뒷골목 사이사이엔, 온몸에 화려한 문신을 새겨넣은 삼류 양아치들이 음험한 눈빛을 번뜩이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다.

-외부인이야? 훔칠 만한 것 좀 보여?

-쉬잇. 조용히 좀 해봐. 저 사람 저거, 얼굴 가린 거랑 분위기로 봐선 보통내기가 아닐지 몰라. 두 명쯤 더 불러.”

그런 살풍경한 광경들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나는 본격적으로 노량진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노량진의 음습한 골목 사이로 아이들 특유의 째진 목소리가 재잘거리듯 들려왔다.

저들 딴엔 목소리를 낮춘 모양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 청각엔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생생하게만 들려왔다.

역시나 있었군….

아이들의 정체는 노량진의 복잡한 길에 익숙치 않은 얼뜨기들을 털어먹는 소악마들이었다.

노량진의 가혹한 삶은 어린이들에게도 순수라는 두 글자를 빼앗아갔고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약탈자의 삶을 선택했다.

-혜옥이는 저쪽, 정민이는 저쪽으로 가.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은걸?

-부디 현금 좀 많이 들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언니가 며칠째 굶고 있단 말이야.

거적과 넝마를 엉망으로 기워 입은 아이들의 눈빛에선 독기가 이글거렸다.

노량진을 방문한 이방인을 털어먹는 것에 익숙한 모양인지, 쪼끄만 꼬맹이들이 어지간한 갱단 부럽지 않게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 뒤에 몰래 들러붙은 꼬맹이들의 수만 해도 무려 다섯!

얼굴에 검정 때가 번들거리는 꼬맹이 놈들은 내 뒤를 밟으며 조용히 따라오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 은근히 거슬리는구나. 에잉. 어린 것들이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건실치 못하기는!]

그렇게 혹덩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골목 사이사이를 뒤지고 있자, 위철용이 나직한 목소리로 불쾌감을 표했다.

“한창 철없을 나이 아니겠습니까? 따라다니면서 귀찮게는 하겠지만, 이쪽에서 어수룩한 모습만 보이지 않으면 그냥 포기할 애들이에요.”

조금 귀찮긴 했지만, 나는 꼬맹이들이 내게 직접적인 해코지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나 역시, 어렸을 적 보육원을 뛰쳐나와 한때는 저렇게 살았었거든.

[…어째, 이쪽 꼬맹이들의 생리에 대해 빠삭한 것 같은데, 무슨 곡절이라도 있는 게냐?]

“보육원 망하고 나선, 저도 노량진 같은 빈민촌에서 저렇게 오랫동안 굴렀으니까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으흠흠! 크흠!]

위철용은 별안간 의미 없는 헛기침을 연속으로 해댔다.

슬쩍 보이는 그의 옆모습엔 민망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나저나, 네놈이 말했던 ‘믿을 만한’ 장인이 김혜연이 맞느냐??]

“제 좁디좁은 인간관계에 장인 소리 들을 만한 양반이 그녀 말고 또 있겠습니까?”

[헌데, 그 김혜연쯤 되는 여걸이 이런 곳에 기거하고 있을 것 같진 않다만? 그녀가 여기 있다는 정보가 확실한 게냐?]

한참 그렇게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던 위철용이 갑자기 내게 묘한 시비를 걸어왔다.

아무래도 화제를 전환해, 그에게 찾아온 민망한 감정을 날려버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불만스레 자꾸만 입을 삐죽이는 위철용의 말투와 행동은 다분히 과장되어 있었다.

거, 어지간히도 민망하셨나보네, 얼굴이 시뻘건 것이 아주 토마토야. 토마토.

위철용의 비취빛 얼굴은 민망함을 품고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녹색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물든 모습이 설익은 토마토를 연상케 하여,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하긴, 김혜연쯤 되는 무기장인이 이런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좀 미심쩍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네요.”

간신히 웃음을 억누른 나는 애써 진지한 말투로 위철용의 질문에 답했다.

의도가 조금 요상하긴 했지만, 위철용이 시비조로 던진 질문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정상적인’ 무기장인이라면 이렇게 열악한 빈민촌에서 살고 있진 않을 테니까.그가 김혜연의 거취에 관해 의문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무기장인.

튜토리얼에 통과한 헌터 중, 극히 일부만이 될 수 있는 희귀 직종이다.

무수히 많은 특성 트리 중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특성 트리를 얻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기에 무기장인의 개체수는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희귀했다.

그 희소성으로 인해 무기장인들에겐 보통 엄청난 수익과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무기장인이라면 보통은 거대 길드 산하의 공방조합에 들어가던지, 아니면 도시 한복판에 으리으리한 공방을 차려놓고 떵떵거리던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빈민가에 무기장인이 머물고 있다는 내 말은 위철용에겐 질 나쁜 농담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겠지….

[그, 그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느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혜연쯤 되는 인재가 이딴 곳에서 지내겠어?]

“그녀 입으로 직접 들었던 이야기니까요.”

[…뭐라고?]

“그때 그녀가 분명히 그랬거든요. 초창기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네요.”

모름지기 천재라는 족속들은 누군가 알아봐 주기 전엔 수렁 속에 잠들어있는 법이다.

무명시절이 김혜연이 이곳에 기거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바로 김혜연 본인이었다.

회귀 전 그녀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곳 노량진의 빈민가에서 어려운 세월을 보냈노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추악한 외모에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던 내게도 그렇게 조언해 줬고 말이지….

[김혜연이 네놈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적당히 꾸며낸 허언이 아니더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쯤 되는 위인이 이런 빈민가에 처박혀 있을 리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위철용은 김혜연의 거취에 대해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장난감을 발견한 불독처럼 끈질기게 말꼬투리를 잡아대는 그의 만행에 슬슬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에헤이! 좀 믿어보시라니까. 김혜연 그 아줌마가 어디 거짓말을 할 위인입니까?”

짜증이 폭발한 나는 마침내 위철용에게 언성을 높였다.

덕분에 좁은 골목에 나의 신경질 섞인 혼잣말이 우렁우렁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지 않으냐. 아마 그녀도 네놈을 생각해서.]

“아 진짜 좀!”

이젠 숫제 놀림으로 발전한 위철용의 깐죽거림에 소리를 빼액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내 뒤편에서 느껴지던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뚝 멎었다.

‘뭐야 미친놈이었어?’ ‘에이 텄네! 텄어.’ 등의 짤막한 불평을 남긴 아이들은 사냥을 포기한 바퀴벌레처럼 골목 구석구석으로 쪼르르 흩어졌다.

…아마도 계속된 혼잣말에 나를 정신이상자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네놈이 소리쳐준 덕분에 따라오던 놈들은 이것으로 전부 사라졌군.]

아무래도 김혜연의 거취에 대한 진실 여부를 가리기보단, 위철용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나를 이용해 꼬맹이들을 떨어뜨리는데 성공한 위철용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킬킬 웃었다.

“…덕분에 저는 엄한 어린아이들에게 돌아버린 놈으로 취급받았죠.”

[어차피. 다 인생이 그런 게 아니겠냐??]

“뭔 인생을 살아오셨길래 미친놈 취급이 당연해요? 혹시 그런 삶을…?”

킬킬거리는 위철용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는 계속해서 빈민가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 이거 놔요!

내 발걸음이 멈춰 선 것은 빈민가의 가장 외곽 지역에 도달할 때쯤이었다.

위철용 말대로 헛걸음했나 싶어 실망하려던 차에 요란스레 실랑이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제, 제발요. 제발! 다음 주까지만 시간을!”

애원하듯 애걸하는 젊은 여자의 앳된 목소리.

그녀의 애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충 들어도 건들건들한 목소리가 갑작스레 난입했다.

“다아아음주우우? 네년이 지껄인 그놈의 ‘다음 주’가 몇 번이나 지난 줄 알아! 벌써 석 달째야! 돈 주기로 한 지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고!”

“형님. 더 볼 것 있수? 그냥 재끼고 다 뜯어갑시다. 사정 봐줘서 뭐해요.”

빈민가에선 드물지 않은 채무에 대한 실랑이였으나.

여자의 목소리가 어째 귀에 익은 듯 아닌듯 애매모호한 것이 묘하게 내 주의를 잡아 끌었다.

[그것 봐라. 김혜연은 여기에 없다니까…. 잠깐, 어디가!]

위철용의 외침을 무시한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 목소리가 오가는 곳으로 향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목을 지나, 쓰레기가 쌓인 코너를 돌자, 빈민가치곤 꽤 넓은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왜소한 체구의 젊은 여자 한 명과 덩치 큰 사내 여럿이 ‘소망 공방’이란 이름의 가게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가만. 소망 공방? 김혜연의 공방 이름이 분명 소망 공방이었지 아마?

그럼, 여기가 바로….

“가, 갚을게요. 이, 이번에는 정말로 다음 주까지 갚을 테니까….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여자의 애원에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빡빡머리 남자는 사정없이 그녀의 왜소한 몸을 거칠게 밀치는 것으로 화답했다.

-콰당탕

덩치가 두 배는 될법한 사내가 여자의 여리디여린 몸을 밀치자, 그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잡동사니 위로 넘어졌다.

낡은 골판지 상자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해묵은 먼지가 매캐하게 피어올랐다.

“그놈의 ‘정말’도 이번이 네 번째다. 내 사전에 다섯 번이란 단어는 없어! 뭐해!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다 챙겨!”

“네! 형님!”

우렁찬 대답과 함께 빡빡머리 남자 휘하의 사내들이 공방 안으로 척척 발맞춰 들어갔다.

공방 내부를 이 잡듯 뒤진 사내들은 저마다 큼지막한 종이상자를 하나씩 들고 나왔다.

“아, 안 돼요! 그. 그게 제 유일한 완성품들인데….”

왜소한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여자는 다시 한번 빡빡머리 사내의 다리를 붙들고 애걸하기 시작했다.

“완성품? 와안서엉푸움? 이따위 고철들을 돈 주고 살만한 얼간이가 어디 있다고 그러시나? 응? 말해봐 이따위 쓰레기를 도대체 누가 사겠냐고.”

빡빡머리 사내의 목소리엔 조롱과 비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거머리처럼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

사내의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정곡을 찔러버린 모양이었다.

그의 조롱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애걸하던 여자의 몸이 멈칫 굳었다.

그녀의 동요를 놓치지 않은 사내는 털어내듯 다리를 흔들어 여자를 떨궈냈다.

-털썩!

사내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떠밀린 여자는 고장 난 인형처럼 바닥에 힘없이 픽하니 쓰러졌다.

생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울어? 울기는! 애초에 그쪽이 무기장인인지도 의심스럽다 이거야. 댁이 무기장인이면, 난 태백의 강태백이다.”

마지막까지 여자의 가슴에 착실히 비수를 꽂아 넣은 빡빡머리와 그 친구들은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전부 챙겨넣은 채로 유유히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조용히 흐느끼며 절망하는 젊은 여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나. 뒤늦게 이 촌극을 목격하고 기묘한 표정을 짓는 위철용이 전부였다.

[이건 또 무슨 소란이냐.]

‘글쎄요. 소망 공방이라는 이름으로 봐선, 김혜연이랑 뭔 관계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김혜연? 저 비극의 여주인공이? 그 김혜연인 게야?]

‘에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요.’

서럽게 흐느끼고 있는 여자의 몰골은 꽤 처참했다.

며칠째 제대로 먹은 것이 없는 모양인지. 얇은 옷 아래로 언뜻 비친 몸은 말 그대로 해골을 방불케 할 만큼 비쩍 말라 있었다.

전체적으로 근육은커녕, 군살이 하나도 없어 스켈레톤과 호형호제가 가능해 보이는 외형!

어떻게 봐도 불과 모루 앞에서 살아가는 무기장인 같아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망치는커녕, 숟가락 들 힘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워 보일 정도다.

아무리 봐도, 내가 기억하는 그 김혜연의 모습과는, 아니, 일반적인 무기장인의 이미지와도 약 백억 광년쯤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니, 저 여자에게서 김혜연 특유의 냄새가 나서 말이다. 아무래도 저 여자가 지금 시간대의 김혜연인 것 같은데….]

‘에헤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쇼. 어떻게 그 김혜연이랑 저 왜소한 여자랑 같은 인물일 수가 있어요.’

위철용이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내놓자.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어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혜연은 저렇게 연약한 몸이 아니었다.

여인의 몸이지만, 이미터를 훌쩍 넘는 큰 키에 그 커다란 키가 허전하지 않을 만큼 온몸에 알차게 붙어있는 큼지막한 근육, 마지막으로 돌까지 너끈히 씹어먹을 것 같은 강인한 사각 턱까지….

내 기억하는 김혜연의 생김새는 설화 속의 바바리안을 묘사 그대로 옮겨놓은 것마냥 우악스러운 모습이었기에, 나는 도저히 위철용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모가 저렇게 다른데 어떻게 저 여자가 김혜연….

“혜연 언니 울지 마. 뚝! 응? ”

…뭐?

골목에서 쪼르르 달려 나온 여자아이의 말에 내 사고가 뚝 정지해버렸다.

[저것 봐라. 방금 저 꼬마 아이가 혜연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느냐??]

‘아. 아하하 그래. 설마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겠죠. 설마 성까지 김 씨겠어요?’

나는 떨리는 눈으로 여자아이와 혜연이라 불린 여자의 해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위로하는 여자아이를 꼭 껴안은 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 미안해. 혜옥아. 언니가 미안해.”

“뚝! 울지 마! 김혜연! 우리 아빠가 죽기 전에 뭐랬어? 이런 건 언니 잘못이 아니랬지!”

…맞네. 김혜연.

그렇지 않아도 그녀가 희귀한 여성 무기장인인 데다. 그녀의 이름이 ‘혜연’인 이상.

내 기억 속의 김혜연과 지금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김혜연이 동명이인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여자아이, 김혜옥의 확인사살에 나는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이 김혜연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맙소사, 김혜연이 어려운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니….

[봐라. 본존의 말대로 저 계집이 김혜연이 맞지 않았더냐. 허허. 괄목상대라는 말은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줄 알았거늘….]

…저건 괄목상대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말입죠.

회귀 전, 내가 김혜연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후에 일어날 일이다.

도대체 어떤 진화과정을 겪어야 3년 만에 저렇게 왜소한 여자가 프로틴 한 통은 웃으면서 너끈히 씹어 먹을 것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 내 앞의 ‘김혜연’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비참하게 울먹이고 있었다.

“…잠깐만.”

씁쓸하게 김혜연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불현 듯 방금 있었던 실랑이가 머리를 스쳤다.

머릿속에 양아치들에게 일방적으로 수모를 당했던 김혜연의 비참한 모습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같은 새끼들이…”

같잖은 놈들에게 김혜연이 당한 모욕을 떠올린 내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빡빡머리에 대한 분노와 뱁새눈에 대한 짜증이 뒤늦게 펄펄 끓어올랐다.

그리고 은인이 그런 꼴을 겪을 동안,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가 속을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김혜연 그녀가 누구던가!

추악한 외모에 개의치 않고 나를 유일하게 사람 취급해줬던 사람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노예로 전락했던 날 끝까지 믿어줬던 은인이었지!

비참하고 비극으로 얼룩진 내 인생에, 그나마 인간의 따스한 온정을 느끼게 해줬던 은인 중의 은인이다.

그런 은인이 내 앞에서 별 꼴같잖은 양아치들에게 모욕당했다.

무기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조롱당했고 긍지가 엉망으로 짓밟혔다.

[애송아?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만?]

시퍼런 살기를 눈에서 피워내며 양아치들이 사라진 곳을 가만히 노려보자.

위철용이 한심하다는 어투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후우우우우.”

…그래.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위철용의 목소리에 정신을 가까스로 치밀어 오른 분노를 억누를 수 있었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정리한 뒤. 나는 몸을 숨긴 골목길에서 나왔다.

그리곤 쓰러진 채 흐느끼고 있는 김혜연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기요.”

“예…?”

별안간 들린 목소리에 놀랐을까?

부둥켜안고 울고 있던 자매가 쌍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커다란 눈엔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했다.

‘…저기 김혜연 이 양반, 지금 헌터가 맞긴 한 거죠?’

가까이서 보니 김헤연 자매의 몰골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옷인 줄 알았던 거적부터 ‘옷’이라는 의복의 정의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상태였는데, 그저 밀가루 포대 두 개를 적당히 이어 붙인 것에 불과했다.

그 작디작은 밀가루 포대를 이어붙인 옷에 몸이 전부 들어갈 정도로 김혜연의 몸은 심각하게 깡말라 있었다.

이런 왜소한 몸으로 그 험악한 튜토리얼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그저 불가사의하게만 느껴졌다.

[확실하다. 튜토리얼을 통과한 자의 냄새가 나. 그리고 근육의 상태로 보건대. 못 먹어서 말라비틀어진 것일 뿐. 기초는 잘 잡혀 있는 몸이니라.]

미심쩍은 눈으로 위철용을 바라보니, 그는 확신에 찬 어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튜토리얼에 통과한 헌터, 그것도 무기장인이 이렇게까지….’

여전히 경계심을 지우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혜연의 안쓰러운 모습에 눈시울이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조금 전에 네놈이 그러지 않았느냐? 천재는 뭐. 알아 봐주는 이가 없으면 수렁 속에 어쩌고 한다면서.]

“저기….”

그렇게 위철용과 대화를 이어가려던 찰나, 김혜연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경계심을 가득 담은 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고 있었다.

“바, 방금 저를 부르시지 않았어요?”

“아, 아하하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좀….”

“언니, 저 사람 계속 혼잣말하던 사람이야. 정신이 아픈 사람인가 봐.”

김혜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한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그녀의 품속에서 꼬물거리던 김혜옥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아까 나를 쫓아다니던 꼬맹이 중 한 명이 네놈이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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