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뭐가 어쩌고 어쨌다구요?”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빙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겨줬던 신지현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 한라 공격대 전원이 사교도였다니! 다 죽이셨다니! 그건 또 무슨!”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신지현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인사팀에 일하는 그녀야말로 한라 공격대원들이 얼마나 ‘집 자식들인지, 또, 사교도라는 족속들이 헌터 업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니만큼.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한라 공격대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목격했고. 성좌님들의 말씀에 따라 놈들을 제 손으로 단죄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담백하게 답하며. 신지현에게 자료를 내밀었다.
“거점 내 CCTV 및 제가 개인적으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내가 건넨 자료를 살펴본 신지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법 강하게 깨문 모양인지, 그녀의 가는 입술이 그녀의 얼굴색만큼이나 새하얗게 물들었다.
“세상에, 그냥 단순한 망나니 집단인 줄 알았는데. 그 또라이 새끼들이 결국….”
신지현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자리에서 힘없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두통으로 인한 현기증이 엄습해오는 모양인지, 그녀는 좀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비척거렸다.
“하아아. 게다가 침식체라니…. 단순히 게이트만 클리어하고 오실 줄 알았더니, 이 정도 사건이랑 엮이실 줄이야.”
머리를 부여잡은 신지현이 원망하듯 뇌까린 말엔 은근히 뼈가 들어있었다.
나와 전속 계약을 맺어버린 이상. 내가 저지른 일들의 뒷정리는 고스란히 그녀 몫이다.
따라서, 그녀는 지금 ‘높으신 분들‘의 자제분들이 침식체로 변이되어버린 일과. 길드의 공격대 중 하나에 사교도가 침입한 것에 대한 뒤처리를 내 대신 해야하는 상황.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뭐, 어쩌겠어? 이게 전속 매니저님이 해야하는 일인걸.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신지현의 모습에 어쩐지 기분이 조금 유쾌해졌다.
“으윽!”
신지현은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두통이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좀 더 두통거리를 추가시켜줘 볼까?
“아, 그리고 이건 공격대장 나영욱의 금고에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뭔가를 깜빡한 표정으로 배낭에서 두툼한 봉투를 추가로 꺼내, 신지현에게 건넸다.
새로운 두통거리를 받아든 신지현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와락 일그러졌다.
“…!”
떨떠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든 신지현은 봉투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이, 이게 정말 나영욱 그새끼 금고에 있었어요?”
신지현은 파들파들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봉투 속의 편지봉투를 집어 들어, 내게 내밀었다.
편지봉투에 붙어있는 밀랍 봉인에 찍힌 문양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은, 저기서 더 하얗게 질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백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지현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교도의 사악한 주구답게. 아주 꽁꽁 깊숙한 곳에도 숨겨놨더군요.”
“…정말이지 엄청난 것을 찾아오셨네요. 체체파리 컬트라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길드인 태백의 인사팀장답게, 신지현은 편지봉투의 밀랍 봉인에 새겨진 문양을 보자마자 바로, 그것의 정체를 눈치 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편지봉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녀가 멈칫했다.
편지의 밀랍 봉인이 뜯어져 있는 걸 본 그녀는 눈썹을 살짝 위로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봉인이 왜…. 설마, 이거 읽어보셨어요?”
“아, 제가 뜯었습니다. 놈이 남긴 앨범을 본 뒤 너무 충격을 받은지라…. 이건 또 뭔가 싶었거든요.”
“앨범이요?”
내 말에 신지현은 편지 옆에 놓은 보라색 표지의 앨범을 펼쳤다.
“우웁!”
앨범의 첫 페이지를 펼친 신지현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욕지기를 참을 수 없는지.
그녀는 바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후우우. 뭐 이런 사이코가….”
심호흡을 몇 번 한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엘범의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겨 내용을 확인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신지현의 표정 또한 싸늘하게 굳어졌다.
“어쩐지 그쪽에서 실종자들이 주기적으로 나온다는 보고를 듣긴 들었는데….”
신지현은 말꼬리를 흐렸다.
길드의 치부를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대격변 이후. 힘이 곧 법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말 그대로 힘 있는 놈.
그러니까 특성 트리를 개화해 초인으로 거듭난 헌터들이 곧 법이요 정의인 세상이지.
가학적인 취미를 지닌 헌터들이 힘없는 민간인을 납치해, 자신의 어두운 욕망을 채우는 일쯤은 헌터 업계에서 의외로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고.
이곳 태백 같은 거대 길드에서조차, 종종 일어나는 일탈 행위였다.
수백 명, 수천 명의 민간인보단 헌터 한 명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기에.
대부분의 길드에선 그런 길드원들의 ‘일탈 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용호 헌터님.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태백의 모든 헌터들이 다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에요.”
신지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내게 말했다.
앨범을 내려놓은 그녀의 얼굴은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
“아무튼,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
나영욱이 남긴 편지를 읽은 신지현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조금 전 앨범을 읽었을 때. 그녀가 보여줬던 ‘굳은’ 표정이 치밀어 오른 혐오감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굳은’ 표정은 그녀로선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의 중대한 사안 때문이었다.
“사교도들이 남산 게이트를 노린다니….”
남산 게이트.
태백이 보유한 게이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을 자랑하는 곳이며.
드래곤 계통의 몬스터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어, 상급의 몬스터 소재가 말 그대로 쏟아지는 곳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태백의 자금줄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
“게다가 평범한 망나니인 줄 알았던 나영욱이 이 정도로 길드 사정에 밝았을 줄은 몰랐는데요.”
모름지기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이란, 그저 몽상에 불과하다.
안산 게이트를 노린 음모 역시. 실현 가능성이 없으면 몽상에 불과한 법.
허나, 이 편지엔 그 남산 게이트의 ‘실현 가능성‘이 다분한 계획이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태백 길드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열람할 수 있는, 치명적인 고급 정보를 기반으로….
남산 게이트를 관리 중인 공격대원들의 동선, 근무시간, 근무교대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하면, 일반 직원으로 변장해 시설을 장악할 수 있는지.
시설 내 암구호, 시설 침입 코드 및 그것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마스터 코드는 무엇인지!
말 그대로 남산 게이트의 게이트 관리소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정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게 내부에서 유출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정보를 일람할 수 있는 극히 일부에 속하는 신지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금랑 길드, 유니온 길드 내부의 사교도들의 신상정보라니. 폭탄도 이런 폭탄이 없네요.”
신지현은 머리가 아파온다는 듯, 다시 한 번 관자놀이를 힘줘서 꾹꾹 눌렀다.
그녀의 말대로 편지의 수신인 또한 범상치 않았다.
금랑 길드의 공격대, ‘실버 울프즈‘의 행동대장 김익현!
유니온 길드의 길드장 직속 호위팀의 홍일점 백현진!
하나같이 거물이 아닐 수 없는 인물들의 이름이 편지의 수신인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나영욱 이 새끼. 그저 평범한 망나니인 줄 알았는데. 미리 감시를 좀 붙여 놓을 것을….”
말 그대로 폭탄이나 다를 바 없는 정보의 향연에 신지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진즉 나영욱에게 신경을 쓰지 못헀다는 사실이 아쉬운 모양인지. 그녀는 서류 속 나영욱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뭐, 진즉 나영욱에게 감시를 붙여봐야. 편지 속 정보의 출처를 밝힐 수는 없을 거다.
애초에, 이 편지는 내가 만든 위조 편지거든!
새로 얻은 스킬을 시험 해볼겸 해서, 강태백을 낚기 위해, 놈이 관심을 가질만한 떡밥은 꽉꽉 채워 넣어 만든 가짜다.
남산 게이트의 약점들과 태백 길드의 정보가 속속들이 적혀 있는 것?
유니온과 금랑에 숨어든 사교도 두명의 정체?
당연히 내 작품이다.
회귀 전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기에,
이 정도의 정보조작 따윈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신규 스킬 ‘가면 놀이‘의 효과로 나영욱의 습관과 필적을 완벽하게 모사했기에.
이 조작된 편지는 나영욱 할애비가 와도 못 알아볼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필적검사? 필체분석? 뭐든지 다 해보라지!
그 누구도 이 편지가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할 거다.
“이 정도라면 길드 내부에 또 다른 협력자가 있다는 소린가. 으으….”
정보의 출처에 대해 골똘히 골몰하는 신지현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아, 그러고 보니. 전리품 정산 아직 안 하셨죠?”
모든 자료를 훑어본 뒤. 신지현은 길드의 감식팀에게 자료를 넘겼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두통을 달래던 그녀의 시선이 내 배낭에 닿았다.
“예, 그럴 경황이 없었으니까요. 내부에서 얻은 것 중 챙겨올 수 있는 건 다 챙겨오긴 했습니다만….”
나는 배낭을 내려놓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신지현을 바라본 내 눈빛엔, ‘이 시국에 굳이 지금 정산을 해야 합니까?’ 정도 되는 핀잔이 섞여 있었다.
그녀와 전속 계약을 맺은 이상. 내가 게이트에서 획득한 전리품의 2할은 그녀의 것이긴한데….
“크흠. 어차피 감식팀 결과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니까. 지금 정산하시죠?”
사교도와 한라 공격대의 전멸이라는 중대한 사항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챙길 건 챙기는 모습.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신지현다운 모습이다.
배낭을 바라보는 신지현의 눈빛에선 곧 죽어도 자신의 이익은 취하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느껴졌다.
“감식 결과 기다려야 한다면. 뭐 어쩔 수 없죠.”
승낙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지현은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어느새 손에 장갑까지 착용한 그녀는, 가방을 펼쳐 아이템 하나하나를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레드 스네이크 정수가 스무 개. 어머? 가죽이나 뼈 같은 부산물은 챙겨오지 않으셨네요? 하긴 혼자 챙기셨다니. 이거라도 챙겨오신 걸 다행이라 봐야 하나?”
정신없이 조잘거리며, 신지현은 태블릿 PC를 계속해서 조작했다.
언뜻언뜻 보이는 태블릿 PC의 화면엔 복잡한 숫자들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우두머리인 마더 스네이크 정수가 한 개…. 어라? 우두머리 전리품은 어디 갔어요?”
게이트 정산의 꽃이 우두머리 전리품의 값어치를 매기는 것인 만큼.
마더 스네이크의 전리품을 찾는 신지현의 눈빛엔 약간의 탐욕이 서려 있었다.
“아, 뭐 동그란 구형의 알 같은 게 나왔는데. 만지니까 사라지던데요?”
우두머리 전리품 중, 습득과 동시에 특성으로 습득되어버리는 타입도 있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신지현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럴 땐 초보 헌터라는 타이틀이 꽤 쓸만하단 말이지.
뭐, 잘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니까.
“우두머리 전리품을 그냥 만졌어요?”
신지현은 눈을 치켜 뜬 채,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그거 만지니까 이렇게 상태창에 ‘미개봉 특성‘이라 적혀있는 게 생성되더라구요?.”
순박한 표정으로 신지현을 바라보자. 신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용호 헌터님. 전리품 중엔 만지자마자 그렇게 특성으로 변해버리는 것들도 존재해요. 그런것들은 조심스럽게 이 양피지로 감싸서 특성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양피지랑? 특성북이요?”
“아니, 공격대장이 그런 것도 안 알려줬…. 아. 죽었구나.”
하여간 죽어서도 도움도 안 되는 것들.
신지현은 낮게 푸념했다. 그녀는 골머리가 다시 아파온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특성이 자동으로 습득되는 구형 형태의 아이템은 무조건, 이 양피지로 우선 만져야 해요.
그래야 특성북이 만들어져서. 판매나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해지거든요.”
“아하….:”
순진한 얼굴로 신지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신지현은 자신의 미간 사이를 꾹꾹 몇 번 누르더니. 태블릿 PC에 무언가를 입력시켰다.
“우두머리 전리품을 무단으로 습득해버리셨으니까. 길드 규정에 따라 정수의 50%를 정산 금액에서 제할게요.”
예상은 했던 바긴 하지만, 아까운 정수를 고스란히 뺏기자 속이 쓰려왔다.
하루빨리 게이트 출입권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게이트 속 몬스터를 때려잡고, 전리품을 획득해봐야.
수수료와 분배 규정에 메여 크게 재미는 못 본다.
그러니까 어서, 게이트 출입권을 얻어야 하는데 말이지….
“뭐, 아무튼 고생 많이 하셨어요. 대단하시긴 하네요. 아무리 레드 스네이크 소굴이 약한 게이트라고 해도, 튜토리얼 패스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솔로 클리어를….
-콰앙!
“시, 실례합니다!”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단단한 철문이 폭발하듯 쾅 열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신지현이 불쾌함을 드러낼 새도 없이.
바짝 얼어있는 표정의 직원 한 명이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정산 중인 거 안보이세요?”
신지현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톡톡 건드리며. 직원에게 눈치를 줬다.
하지만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직원은 그녀의 눈치를 무시하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행동을 보아하니, 극도의 패닉으로 인해. 머릿속이 혼란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저기…. 설용호 헌터님? 신지현 팀장님?”
잔뜩 얼어버린 직원은 조심스럽게 나와 신지현의 이름을 호명했고….
“기, 길드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지금 당장이요.”
“길드장님이요?”
당황한 듯 되묻는 신지현의 얼굴색이 직원의 그것도 똑같이 변하기 시작헀다.
나 역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강태백이 편지를 봤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겠지.
드디어 미끼를 물었구나 강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