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뱀에게 붙잡힌 쥐새끼를 연상케 하는 갑갑한 비명으로 미뤄보건대, 낙오된 인원 중 한 명이 레드 스네이크에게 공격당한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헌터라는 놈이 레드 스네이크 따위에게 당할 수가….
“무, 무슨 소리야? 방금?”
“벼, 병철이 목소리 같은데? 주, 죽은 거 아냐?”
얼씨구.
레드 스네이크에게 당한 헌터의 한심한 실력에 대해 논할 새도 없이.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공격대원들에게 공포가 전염되었다.
놈들은 자신들이 게이트를 공략하는 헌터라는 자각 자체가 없는 모양인지,
멀리서 들려온 비명 따위에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가.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그, 그래. 그래도 우린 같은 공격대원이니까….”
…한심한 것들.
공격대원들은 겁에 질린 와중에도 동료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는 희생자를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앞에서 사람이 픽픽 죽어 나가는 걸 태연하게 바라볼 정도로 내 성격이 모질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레드 스네이크 따위에게 장비를 갖춰 입은 헌터가 사망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레드 스네이크가 희생자를 습격하는 방식은, 뱀의 그것과 똑같았다.
독니로 마비시킨 뒤, 몸으로 칭칭 조여 뼈를 부수는 것이 전부.
헌터들이 착용하는 갑옷엔 기본적으로 그런 공격에 대한 대비가 다 되어있다.
[그래도 동료애는 있는 모양이로구나.]
위철용의 말처럼, 그래도 놈들에겐 희미한 동료애라도 있는 모양인지, 은 내 눈치를 보더니 쭈뼛쭈뼛 뒤로 물러났다.
“벼, 병식아아아!”
예의 그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을 자랑하는 손전등을 켠 채.
그들은 비명의 진원지를 향해,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같이 안 가봐도 되겠느냐??]
공격대원들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위철용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눈짓하며 내게 물었다.
“뭐, 알아서 잘하겠죠.”
[비정하긴.]
위철용은 킬킬 웃으며 외모가 바뀐 뒤로 내 인성이 그에 비례해서 나빠졌니 뭐니 하는, 실없는 농담을 계속했다.
“…정 위험하면 소리라도 지르겠죠. 뭐.”
이곳 게이트는 동굴 특성상 소리가 멀리까지 아주 잘 들렸다.
조금 전, 비명 한 번 들린 것 외엔 딱히 위험이 될 만한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별일 없겠지.
“…이새끼 엄살은….”
“뭐야, 몬스터 시체를 밟고 넘어진 거였어?”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공격대원들이 사라진 방향에서,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새끼 혼자서도 잘하던데, 그냥 우리는 여기 짱박혀서 꿀 빨지?”
멀리서 들려오는, 여전히 대가리 속이 꽃밭인 것 같은 놈들의 태도에 머리가 딱 아파졌다.
뭐, 놈들이 알아서 떨어져 준 덕분에 편해지긴 했다만. 어째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은걸.
****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특성 포인트가 제공됩니다. 특성 트리를 확인해 보세요.」
「능력치 상한이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능력치에 포인트를 더 투자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창구가 확장됩니다. 소통 가능한 성좌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존재력 포인트의 한계치가 새롭게 갱신됩니다.」
공격대원들과 떨어져서 얼마나 지났을까.
레드 스네이크가 약해빠진 몬스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숫자를 잡아서인지 레벨이 올랐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입장합니다.」
「과일을 탐하는 짐승이 입장합니다.」
레벨이 올라, 커뮤니티 창구가 확장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도 성좌 두 명이 새로 입장했다.
-꾸벅
서비스 정신은 헌터의 기본이다.
새롭게 들어온 성좌들을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굽혀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복슬복슬한 양 떼의 수호자가 당신에게 키스를 날립니다.」
「과일을 탐하는 짐승이 감동에 젖어 눈물을 훔칩니다.」
[뭐야. 레벨업을 한 것이냐?]
허리를 꾸벅 수인 것을 지켜본 위철용이 내가 레벨업 한 사실을 눈치 챘다.
이번엔 반드시 기억의 파편을 되찾으려는 듯. 위철용은 다급하게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특성, 특성을 보자! 어서!]
“특성 트리 오픈.”
어째 날이 가면 갈수록, 근엄한 성좌의 이미지가 멀어지는 위철용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특성 트리를 열어 파천 복룡창의 3식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했다.
[오옷! 오오오오!]
기억이 물밀 듯 밀려와서일까, 위철용은 경박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작달막한 녹색 몸이 가부좌를 틀고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그 모습이야말로, 파천 복룡창의 제3식. 복룡심법의 운기법!
내 머릿속에도 복룡심법의 구결과 운기법이 자동으로 각인되었다.
내공을 어떻게 쌓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다.
“혹시 복룡심법 운기법에서 제가 놓친 부분이 있었습니까?”
먼젓번에 약속한 대로, 위철용에게 복룡심법에서 혹시 뭐 별다른 게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사부님이 만두를 사준다고 해서 의방에 갔었는데….]
허나, 위철용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눈을 꼬옥 감은 채. 밀려오는 기억의 파도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심법이야말로 무공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 그런지, 떠오른 기억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 위철용을 내버려 두고,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오픈”
Lv.3 설용호
근력 45 민첩 35
재주 37 체력 40
행운 25 인지 45
내력 10 매력 65
-외모지상주의
-파천 복룡창
-일기당천
-화안금정
심법을 습득해서인지, 상태창엔 ‘내력’이라는 새로운 능력치가 추가되어 있었다.
남아있는 포인트를 내력에 전부 쏟아 부은 뒤. 상태창을 닫았다.
“역시, 잔챙이를 잡는 것 정도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상태창에 표기된 능력치는 확실히 동 레벨 헌터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아직까지 레벨이 3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어둑어둑한 동굴 저편을 바라보았다.
회오리치듯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장막으로 봐선, 게이트 우두머리가 기거하는 곳이 지척인 듯했다.
그래, 일단은 우두머리를 쓰러뜨려, 그것을 손에 넣는 것부터 생각하자.
****
《쉬르르르르르륵》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넓은 공동 전체를 가득 메운 새빨간 비늘이었다.
어지간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보다 거대한 붉은색 뱀. 게이트 우두머리인 마더 스네이크다.
「레드 스네이크 군락지의 보스, 마더 스네이크와 조우하셨습니다.」
게이트 우두머리답게, 놈과 조우한 순간.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두머리 이름이 마더 스네이크라니, 너무 뻔한 이름인걸.
[조심해라, 어째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구나.]
영 성의 없는 네이밍에 피식 웃으며, 창을 빼 든 순간.
위철용이 그답지 않게 굳은 표정으로 경고의 말을 전해왔다.
“그래봤자, 하급 게이트의 우두머린데 별일이야 있겠어요?”
말을 그렇게 했지만, 위철용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나 역시 가슴이 선득해졌다.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창을 빙빙 돌리며, 임전 태세를 갖췄다.
「경고. ‘사교도 의식’의 영향으로 마더 스네이크가 강화됩니다.」
…위철용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놈에게 막 다가서려는 찰나, 시스템 메시지가 경고를 보냈다.
사교도 의식?
그게 도대체 왜 여기서 나와!
-푸샤아아악!
“크윽!”
죽은 듯 누워있던 마더 스네이크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독기가 뿜어졌다.
몸을 굴려, 갑자기 덮쳐온 독기를 피한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쿠드드득!
마더 스네이크의 비늘이 마치 허물을 벗는 것처럼 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굳게 닫혀있던 놈의 눈꺼풀이 번쩍 열렸다. 지독한 살기를 내뿜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샤아아아아악!》
곧이어 이어진 귀청이 터질듯한 포효!
“크욱!”
포효에 실린 막대한 마력에 몸이 저릿해졌다. 억눌린 잇새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사교도 의식이라니!”
[조심햇!]
포효를 내지른 마더 스네이크의 머리가 한순간 뒤로 젖혀진다, 싶더니 그 탄력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놈의 거대한 머리!
굼뜬 레드 스네이크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위력에, 공동 전체가 우르릉 울렸다.
“치잇!”
-파앗!
마더 스네이크의 공격이 내게 작렬하기 직전
다리에 힘을 빡 준 채, 강하게 발을 굴러 하늘 높이 도약했다.
-콰앙!
하지만 공격을 피한 바로 그 순간!
공중에 뜬 채로 무방비한 내게, 놈의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짜아아악!
“큽!”
위협을 인지한 몸이 뒤늦게 동그랗게 몸을 말아 충격을 완화했지만, 꼬리에 실린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꼬리에 가격당한 등짝에서 불에 델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 싶더니 피가 왈칵 넘어왔다.
그래도 미리 대비한 덕분에, 놈의 공격에 휩쓸려 멀찍이 날아가지는 않았다.
[샤악 샤아아악]
그대로 착지한 뒤, 피를 퉤 뱉어내고 놈의 동태를 살펴봤다.
어째선지 마더 스네이크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쉴새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알,
뭐라고 웅얼거리기라도 하는 듯 정신없이 움직이는 혀.
정신없이 떨리는 거대한 몸!
어딜 봐도 정상적인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허나, 놈의 상태가 어떻든 아무렴 어떠랴!
지금 해야 할 일은, 놈을 어떻게든 쓰러뜨리는 것!
아무리 사교도 의식으로 강화되었다고 하나,
놈은 하급 우두머리에 불과한 만큼 충분히 해볼 만해!
-우둑 우두둑.
목을 좌우로 꺾어 전의를 다진다.
놈을 똑바로 노려보며, 투쟁심을 불태운다.
“후우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복룡심법은 운기했다.
단전에서 비롯된 내력이 몸속 구석구석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아악!]
다시금 똬리를 튼 마더 스네이크가 아까처럼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포효 속에 섞여 들어오는 찌릿찌릿한 살기!
“우아아아아아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번엔 이쪽에서도 배에 힘을 주고, 내공이 담긴 함성을 내질렀다.
몬스터의 포효 패턴에 대응하는, 내 나름의 노하우다.
[…미친놈.]
위철용의 반응이 말해주는 것처럼, 보기엔 영 볼품이 없었지만.
내 15년 헌터 인생이 담긴 노하우이니 만큼, 효과 하난 발군이었다.
[샤아악?]
목소리에 실린 내공이, 마더 스네이크의 포효 속에 담긴 마력을 중화시켰다.
덕분에 놈의 포효에 실려, 저릿함을 유발하던 충격파가 멀끔히 사라졌다.
[샤앗!]
또다시 뒤로 젖혀지는 마더 스네이크의 머리!
놈의 공격을 인지한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머릿속이 핑핑 돌며, 본능적으로 복룡심법을 운용한다.
내공이 불어 넣어진 다리근육이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콰앙!
다시 작렬한 놈의 일격!
그 순간 무서운 힘으로 나를 공중으로 도약시켰다.
쐐애애액!
공중에 뜬 나를 노리며, 또다시 날아오는 마더 스네이크의 채찍 같은 꼬리!
어찌나 빠른지,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다.
먼젓번과 같은 위기의 상황이지만, 이번엔 다르다!
투지를 불태우며, 창끝에 내공을 집중한다.
창대가 부들부들 떨리며 윙윙 벌떼 우는 소리를 냈다.
흐릿하게 날아오는 놈의 꼬리를 노려 정확한 타이밍에 창을 내질렀다.
-피슛!
순식간에 음속을 뛰어넘은 창날이 마더 스네이크의 꼬리와 격돌했다.
-썩둑!
내공이 집중된 창날이 무식한 위력을 발휘했다.
마더 스네이크의 거대한 꼬리가 단숨에 썽둥 잘려나갔다.
《씨야아아아아아악!》
꼬리가 잘려나간 고통에 마더 스네이크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꿈틀대며 가공할 파괴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넓은 공동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우르릉 우르릉 정신없이 흔들렸다.
-콰직!
발광하는 놈의 몸통 위로 착지함과 동시에, 창날을 놈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샤아아아아아앗 쌰아아아악》
고통에 이성을 잃어버린 마더 스네이크가 이리저리 발광하며 나를 떨어뜨리려 애를 쓰기 시작한다.
허나, 이미 단단하게 창날을 박아넣은 나는 그리 쉽게 떨어져 주지 않았다.
-콰직 콰직 콰직
아니, 창날을 박아넣고 버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는 연거푸 창날을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단단한 비늘이 퍽퍽 뚫릴 때마다 뜨끈한 피가 터져 나왔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피비린내가 진해질수록 마더 스네이크의 몸부림도 점차 거세졌다.
-콰앙! 쾅!
마침내 마더 스네이크가 벽에 마구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거구의 몸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동굴이 쾅쾅 울려대며 땅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우수수 돌가루가 떨어졌다.
“크읍!”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벽에 처박는 마더 스네이크의 발광에 나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놈이 벽에 몸을 부딪칠 때마다 절묘하게 몸을 틀어 벽과 직접 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요란하게 튀어 오른 돌조각들이 정신없이 내 몸을 때렸다.
-콰직 콰직
하지만, 굴하지 않고 마더 스네이크의 몸을 계속해서 등반한다.
창을 번갈아 찍어가며, 꾸준히 목표지점을 향해 놈의 몸을 타올랐다.
《쉬이이잇 쉿! 쉿!》
그렇게 악다구니를 쓴 끝에 마침내 원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마더 스네이크의 머리 정 중앙!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뚝 멎은 몸짓!
마더 스네이크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챈 것 같았다.
-콰드득
내공을 집중해 마더 스네이크의 미간에 창날을 거침없이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