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게이트 공략 대책 회의는 한참을 이어졌지만, 결국 ‘공략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애초에, 대놓고 클리어 하지 말자고 떼쓰는 놈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을 ‘회의’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어쨌든 기나긴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단 하나.
‘죽어도 싫지만, 길드장 지시니까, 내일 날 밝는 대로 한 번 들어는 가보자.’ 였다.
굳이 내일 들어가는 이유 또한 걸작이었는데, ‘오늘은 충분히 즐기지 못했으니, 일단 놀고 보자.’라는 한심한 이유 때문이었다.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오늘이야말로 마시고 죽어야 여한이 안 남니, 어쩌니 신나게 떠들던 나영욱은 다른 공격대원들과 함께 지하의 클럽으로 향했다.
뭐라 말을 붙여볼 새도 없이. 내게 돌아온 것은 그저, 내일 아침에 보자는 축객령뿐이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족속들이로다.]
들썩들썩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클럽으로 향하는 공격대원들의 모습을 본 위철용이 내뱉었다.
“그러게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헌터를 상징하는 단어는 바로 ‘향상심’이다.
튜토리얼에 합격해 상태창을 열 수 있게 된 이후로, 언제든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대다수의 헌터들은 ‘강해지는 것’에 대한 욕망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한라 공격대의 대원들은 향상심과는 아예 담을 쌓아버린 것인지.
그들에겐 몬스터를 사냥해 강해지는 것보단, 클럽에서 흔드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뭐, 골 때리는 놈들이긴 하나. 놈들이 한심하든 유능하든 네놈과 무슨 상관이더냐.]
위철용은 심드렁한 말투로 이죽거렸다.
뭐 사실, 맞는 말이다.
한심한 놈들이긴 하나, 어차피 내 목적은 이곳 게이트에 잠들어있는 ‘그것’을 차지하는 것이 전부.
놈들이 유능하든, 무능하든 게이트에 입장만 할 수 있다면, 한라 공격대원들의 인생 따윈, 나와 하등 관계없는 것이니까.
[헌데 좀 이상하구나, 놈들이 한심스러운 건 사실이다만. 이곳의 게이트는 레드 스네이크 군락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레드 스네이크요?”
[몰랐느냐? 이곳 게이트 내부에 도사린 몬스터는 레드 스네이크이니라.]
레드 스네이크.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허벅지 굵기만 한 뱀 형태의 몬스터다.
이빨이 제법 날카롭긴 하나, 행동이 워낙 굼떴기에, 그다지 크게 위험한 놈은 아니었다.
“이상하긴 하네요. 아무리 저놈들이 약하다고 한들, 헌터인 이상 레드 스네이크에게 당할 리가 없을 텐데.”
회귀 전 역사에서, 한라 공격대는 이곳 게이트를 공략하다 몰살당했었다.
높으신 분들의 자제분들이 씨 몰살당한 대참사 벌어진 곳이었기에
태백 길드에선 이곳의 정보를 모조리 폐기했고, 게이트 입찰권까지 헐값에 팔아넘겼다.
따라서, 나는 헐값에 입찰권을 사간 소규모 길드가 ‘그것’을 이곳에서 발견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한라 공격대가 몰살당한 이유를 정확하겐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곳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가 레드 스네이크라고?
[아까 회의실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 게이트에 투신하지 않는 이상, 레드 스네이크에게 죽는 것이 더 힘들었을 텐데. 이상한 일이로고.]
위철용의 말대로 게이트에 서식하는 몬스터가 레드 스네이크라면, 말 그대로 이상한 일이다.
사지 멀쩡한 헌터라면, 절대로 레드 스네이크 따위에게 살해당할 리가 없다.
애초에, 태백에서 놈들에게 이곳을 할당시킨 이유도.
‘설마 아무리 덜떨어졌기로서니, 레드 스네이크에게 헌터가 죽을 리가 없다.’라는 확신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놈들이 여기서 전멸 당했다라.”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음모의 구릿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
지금 시간은 오전 아홉 시 오 분, 약속된 아홉 시를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라 공격대 공격대원들은 단 한 명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으어어어 머리야.”
한라 공격대원들은 아홉 시 반이 넘어서야 머리를 부여잡고 하나둘씩 기어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숙취에 절어있는 모습으로 보건대, 그들은 엊저녁에 호언 한 대로 새벽까지 신명 나게 달렸던 모양이었다.
“드아아들 이일찌익 왔네에?”
그중에서도 게이트 출입권을 소유한 공격대장 나영욱은 열 시가 넘어서야 육중한 몸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배를 득득 긁으며 등장한 나영욱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모든 인원이 약속장소인 게이트 룸에 결집했다.
[다행히 다들 갑옷은 차려입었구나.]
위철용의 말대로 그들의 복장은 다행히(?) 어제의 그 명품 옷으로 점칠 된 복장이 아니었다.
‘있는 집’ 자식들답게 하나같이 상당히 비싸 보이는, 튼실한 갑옷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튼실하게 차려입은 갑옷과는 별개로,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 그들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끄응. 머리야, 어디 보자. 셋, 여섯, 아홉. 다 왔네? 출발할까?”
인원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나영욱은 품속에서 게이트 관리키를 꺼냈다.
그의 투실한 손이 게이트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게이트를 막고 있던 검은 쇠사슬이 촤르륵 풀려나 길을 열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나영욱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게이트에 쑤욱 몸을 던진 것을 시작으로
한라 공격대의 공격대원들 역시 하나둘 게이트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자, 나 역시 이글거리는 보랏빛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살짝 메스꺼운 느낌과 함께, 시야를 물들였던 보라색 빛무리가 사라지자,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레드 스네이크 군락지라는 위철용의 말에 걸맞게, 게이트 내부는 동굴로 꾸며져 있었다.
빛을 발하는 광원 따윈 아무것도 없는 동굴이라 깜깜하게 느껴졌지만, 헌터의 날카로운 감각이라면 금방 어둠에 적응할 수….
번쩍!
망설이지 않고 휴대해온 조명으로 동굴 내부를 환하게 밝히는 한라 공격대원들의 태도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최대한 기척을 숨겨야 하는 게이트에서 여길 봐달라는 듯 환하게 조명을 켜다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짓인지 모르겠군.
잘나가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들이 꺼낸 조명의 밝기 역시, 범상치 않았다.
[이 정도 밝기라면, 빛으로 먹이를 감지하는 레드 스네이크마저 도망가겠다.]
‘정말이지, 상식 파괴의 연속이 아닐 수 없네요.’
“이보쇼, 얼굴 천재 양반, 혼자 뭘 그리 혼잣말을 꿍얼거리고 난리요? 내 말은 들으셨소?”
말 그대로 상식을 파괴하는 듯한, 공격대원의 놀라운 태도에 경탄하며 위철용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영욱이 시비를 걸어왔다.
“예?”
“그쪽이 계시를 받았으니까. 앞장서서 안내하시라고.”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는 나영욱의 얼굴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뭔가 잔뜩 심기가 상한 듯 그의 목소리에도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아니, 아무리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제가 여기 길을 어떻게.”
“왜? 그 잘난 성좌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시나?”
나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실로 대단한 모양인가, 나영욱은 성좌마저 비꼼의 대상으로 사용했다.
[배짱 하나만큼은 천하일품이로구나.]
위철용이 중얼거린 대로, 나영욱의 배짱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헌터라는 족속은, 보통 성좌에게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성좌에 대한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기 마련인데….
놈은 성좌마저 비꼼의 소재로 사용할 줄이야.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이곳은 너무 밝다며 불평합니다.」
타이밍 좋게도 성좌 한 명이 기묘한 감상평을 표시했다.
“글쎄? 이곳이 너무 밝은 것 아니냐며 불평하시는데?”
“뭐야?”
“어떤 머저린지 모르겠는데, 빛으로 먹이를 감지하는 몬스터 앞에서 조명을 켰다고, 아주 감탄을 금치 못하고 계시지.”
게이트에 성공적으로 들어온 이상. 한라 공격대 놈들의 가치는 이제 사라졌다.
들어오기 전까진 나영욱이 어떤 히스테리를 부리든, 감내해 줬지만.
이젠 굳이 놈의 히스테리를 참아줄 필요가 없지.
나영욱을 바라보며, 사납게 웃자, 그의 토실토실한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부, 불 꺼! 불 꺼 이 머저리 새끼야!”
나영욱은 애먼 대원들에게 화풀이했다.
해맑은 표정으로 조명을 들어 이곳저곳을 비춰보던 대원 한 명이 화를 입었다.
“크흠! 아무튼, 그쪽이 계시를 받았다니까. 전방 정찰을 좀 맡아주쇼. 새끼들아 얼타지 말고 모여 새끼들아! 놀러 왔냐!”
무안한 모양인지, 한 번 크게 헛기침을 한 나영욱은 고함을 질러 인원을 불러모았다. 자유분방하게 탐험을 즐기던 인원들이 모두 모이자, 그는 인원을 진형에 맞게 배치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총 아홉 명의 인원이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이루는 형태의 진형.
공격 대장용 교본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가장 기초적인 진형이다.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진형이니만큼, 장점도 단점도 없는 무난한 물건이긴 하나.
동굴에서 써먹기는 무리가 있는데 말이지….
뭐, 그들이 어떤 진형을 짜든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난, 나영욱의 허접한 지휘 따윈 따라줄 생각이 없는데.
단순한 인원 배치마저 잡음이 생겨 늘어지기 시작하자, 더 기다릴 새도 없이 나는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어? 이봐. 혼자만 가면 어떡해!”
뒤쪽에서 나영욱의 고함과 함께 우왕좌왕 부산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
-투확! 투확! 투화학!
창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단순한 세 번의 창 질에 세 마리의 붉은 뱀이 목숨을 잃었다.
“우왓! 일격필살!”
“뭐야, 튜토리얼이랑 다를 것도 없네.”
싸늘하게 몸을 누인 레드 스네이크에게서 정수를 추출하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죽이랑 뼈는 버리는 건 가봐, 원래 그런 건가?”
“난들 알아? 어차피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수습하기 귀찮으니 그냥 버리나 보지.”
계속해서 들려오는, 머리에 꽃밭이 들어찬 자들의 목소리에 머리가 딱 아파졌다.
기초의 기초조차 모르는 모양인지, 그들은 정수가 무엇인지. 정수를 왜 채집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체 저것들 튜토리얼은 어떻게 통과한 거지?
-콰드드득!
고개를 휘휘 털어, 상념을 날려버린 뒤. 다시 한 번 창을 내질렀다.
한 번의 찌르기에 레드 스네이크 두 마리의 몸통이 동시에 관통되었다.
뒤쪽에서 공격대원들이 내 사냥장면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 나는 굳이 내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내게 있어 ‘힘을 숨긴다.’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독차지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
하루빨리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데, 힘을 숨기는 것 따윈 시간 낭비에 불과하지!
힘을 숨기며 시간 낭비를 할 바엔, 한시라도 빨리 유명세를 얻는 것이 먼저다.
-피슛! 피슈슛!
공격대원들 앞에서 자랑이라도 하듯, 쉴새 없이 창을 휘둘렀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레드 스네이크의 여린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안 도와줘도 되는 건가?”
“내버려 둬, 혼자 저렇게 날뛰는 데 우리야 편하지.”
하다못해, 쓰러진 레드 스네이크에게 칼질이라도 한 번 했다면 경험치라도 나눠 먹을 것을.
한라 공격대의 대원 여러분들께선 그것마저도 귀찮으신 모양인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놈들은 몬스터를 잡는 행위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몬스터를 잡는 일이 완전히 자신들과 상관없다. 생각하는 모양인지,
지루함에 하품을 쩍쩍해댈망정, 조금이라도 전투에 참여하는 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 근데, 나영욱 대장 어디 갔어?”
“어라? 낙오됐나? 잠깐! 후발대 다 어디 갔어!”
한참을 그렇게 나 홀로 몬스터와 사냥을 이어가던 순간,
재잘거리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드나 싶더니, 뒤이어 당황한 듯한 고함이 들렸다.
“끄으으읍 끄으으읍!”
곧이어, 어디에선가 뭔가에 잔뜩 억눌린 듯 갑갑한 비명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