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18화 (18/309)

제18화

“주소 상으론 여기가 맞는데….”

몇 번이나 서류에 적힌 주소를 확인해봤지만, 틀림없었다.

주소 상으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건물이 한라 공격대의 거점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건물 뒤편으로 보랏빛 아가리를 탐욕스럽게 쩌억 벌린 게이트가 불길한 빛을 뿜고 있는 것으로 봐선 이곳이 공격대와 관련이 있은 곳임을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문제는….

-빰빠 빰빠밤 빰빠 빰빰!

게이트 앞에 우뚝 세워진 건물에서 요란하게 번쩍이는 사이키델릭 조명과 함께

EDM이 듬뿍 섞인, 이름 모를 노래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가 그렇게 재밌다며?”

“게이트 앞이라서 짜릿함이 스무 배라더라.”

게이트 앞 회색 건물 앞으로 민간인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도 게이트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에이, 걱정도 팔자셔. 무슨 일이 있으면 태백 길드에서 다 알아서 해 주겠지.”

실제로 무슨 클럽이라도 된 양. 철없는 대화를 꺄르륵 꺄르륵 늘어놓는 젊은 청춘들,

“저기 죄송합니다. 그쪽 여성분께선 조금….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해야 할, 관리직원들이 속칭 ‘수질 관리‘까지 해대면서, 아예 민간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상식 파괴의 현장에 현기증이 어찔하게 치밀어 올랐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휘파람을 붑니다 ‘휘익! 휘이익!‘」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순수하게 감탄을 표합니다. ‘정말 놀라워요!’」

「장미를 두른 과부가 당신에게 저 불경한 건축물을 처리할 것을 요구합니다.」

나를 통해 이쪽 세계를 관음하는 성좌들에게도 저것은 상식을 초월한 초현실적인 광경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인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한라 공격대가 또라이 소굴이라는 건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몬스터 한 마리라도 튀어나왔다간 대참사 일어나겠는데?”

게이트 자체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곳이기에,

아무리 안정화된 게이트라고 한들, 몬스터가 언제 튀어나올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업계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따라서, 엊그제 들렀던 가입 시험용 고블린 소굴처럼 게이트 관리소를 짓고, 게이트를 엄정하게 관리하거나.

뾰족한 가시철조망과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어진 벙커로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 상식일진대.

한라 공격대 놈들은 태백에서 거점 관리용으로 세워준 건물을 제멋대로 개조해, 민간인도 출입 가능한 클럽을 만들어버렸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오며 별의 별꼴을 다 봤다고 생각했거늘, 게이트 앞에 기루를 세워버린 놈들은 이들이 처음이었느니라.]

기이하게도 위철용은 미리 알고 있었는지, 담담한 어투로 감상을, 그것도 과거형으로 표했다.

“엥? 놈들이 이렇게 꾸며 놓은 걸 알고 계셨어요?”

[본존은 본디 약해빠진 놈들에겐 관심이 없어서, 놈들을 직접 보진 않았다만. 성좌들 사이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느니라. 당장 네놈의 성좌들도 감탄하지 않았더냐.]

“확실히 그들에게도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겠죠. 정신 나간 놈들.”

한라 공격대의 범상치 않은 똘끼에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는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어! 거기! 지금 뭐 하시는 거요! 여기 줄 선거 안 보여?”

“썅! 면상 반반하면 다야? 어디서 새치기를 하고 X랄이야.”

길게 줄을 서 있는 민간인들을 지나치자, 계속해서 욕설이 날아들었다.

어찔하게 밀려오는 현기증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나를 막아선 관리직원들에게 서류를 들이밀었다.

“추, 충성! 바, 바로 안쪽으로 모시곘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경례를 올려붙이는 관리직원들을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히야. 방금 들어간 남자애 얼굴 봤어?”

“오늘 수질 대박인걸? 그이 백두산 천지물이 수준인데? 일급수가 따로 없네, 따로 없어!”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내 귀로, 철없는 청춘들의 흰소리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젠장맞을.

[게이트 앞에 세워진 기루라 기대했거늘, 내부는 별로 다를 것도 없구나.]

다행히(?) 거점의 내부만큼은 다른 공격대 거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게요? 의외로 멀쩡한데?”

엄밀히 말하자면, 아주 멀쩡하진 않았다.

로비 정중앙에 자리 잡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선 쉴새 없이 번쩍이는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일 층 로비엔 태백 길드의 엠블럼을 착용한 직원들이 반쯤 달관한 표정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

“…그래서, 댁이 우리 공격대 신규 멤버라고?”

헌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살이 투실투실하게 찐 사내,

한라 공격대의 공격대장 나영욱이 어쩐지 권태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새로운 멤버 따위보단, 눈앞에 놓인 고깃덩어리가 더 중요하다는 듯.

자기 손바닥만 한 스테이크를 맨손으로 집어 와그작 물어뜯었다.

“예, 이번에 이곳 한라 공격대에 합류하게 된 설용호입니다.”

나름 살갑게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지만, 나영욱은 내 악수에 응하는 대신, 다시 한 번 스테이크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촤아아악

덜 익힌 고기를 먹는 것이 그의 취향인지, 비릿한 핏물이 왈칵 튀었다.

어쩐지 코에 거슬리는, 알싸한 피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쯔업 쩝. 뭐, 됐고, 인사명령서나 한 번 줘보쇼. 신입 들어온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 말이지. 흐으으아아암.”

말없이 인사명령서를 꺼내 나영욱의 눈앞에 내밀자,

그는 기름과 핏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서류를 집어들곤,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어디, 신입 공격대원은 맞는 것 같고…. 이름이 설용호?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아버지 존함이 어떻게 되시나?”

철저히 약육강식 강자생존의 헌터 업계에서 출신성분부터 물어보다니!

확실히 한라 공격대의 우두머리라 그런지, 그 비범함이 남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고아원 출신입니다.”

“고아? 크흠. 좋아. 미안하게 됐군.”

말로는 미안하다 했지만, 나영욱의 표정엔 전혀 미안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잠깐 떠올랐던 그의 표정엔 ‘고아 따위가 어떻게 이곳에 합류했지?’ 정도 되는 의구심만이 그득 담겨있었다.

“뭐, 우리 공격대에 합류할 정도라면 그쪽도 어떻게든 잘나가는 양반이란 소리겠지.”

[뭐, 초신성이니 뭐니 돌풍을 일으켰다더니. 그 계집의 말이 허언이었나 보구나.]

위철용은 비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길드 내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말과는 달리, 나영욱은 나를 정말 알지 못하는 듯했다.

보통 유망주가 길드에 가입할 경우, 길드 내 소식통에서 시끄럽게 떠드는데 말이지.

날 모른다는 건, 길드 소식지조차 읽지 않았다는 건가?

“뭐?! 앞으로 일주일 안에 게이트를 클리어하라고?”

뾰족한 고함과 함께 계속해서 서류를 살펴보던 나영욱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한라 공격대에 합류하기 위해, 계시라는 뻥카를 쓴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인사명령서엔, 게이트를 언제까지 클리어하라는지, 구체적인 데드라인에 대한 지시가 적혀 있었다.

“아니, 그동안 신경도 안 썼던 곳을 도대체 왜?”

하지만, 나영욱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모름지기 특성 트리를 개방한 헌터라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을 본능적인 의무로 여길진대.

기이하게도 나영욱은 게이트를 클리어하라는 지시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의 마음가짐은 다른 헌터들의 그것과는 달라도 뭔가 심각하게 다른 것 같았다.

“하, 두 달간 아무 말 없이 없더니, 이제 와서 일주일 내에 여길 클리어하라고?”

갑자기 나영욱이 제 성을 이기지 못하고 몽니를 부렸다.

그의 투실투실한 손바닥이 책상을 강타했다.

꽈앙!

썩어도 준치라고, 특성 트리를 개방한 헌터답게, 그의 살찐 손엔 철제 책상을 찌그러뜨릴 만큼의 괴력이 담겨있었다.

단단한 철제 책상이 나영욱의 손바닥 모양대로 움푹 팼다.

“씨발! 아무리 길드장이라 해도 이건 선 넘었지! 내가 여길 꾸미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데!”

미친놈인가?

짜증내는 이유의 초점이 이상한 곳에 맞춰져 있었다.

설마하니, 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안전보단 자기가 취미로 만든 게이트 클럽이란 해괴한 시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 시바. 잠깐만 있어 보쇼, 길드장이랑 담판 좀 짓고 올라니까.”

나영욱의 비범한 사고방식에 대해 감탄하는 사이, 그는 길드장이랑 담판을 짓는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

얼마나 기다렸을까.

“웬 말 뼈다귀 같은 새끼가 계신가 뭔가를 받긴 왜 받아와서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 나를 향한 욕설과 함께 나영욱이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길드장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절대 곱지 않았다.

“다 들어와 새끼들아. 위에서 무조건 까라는데 까야지.”

나직한 욕설과 함께 곧이어 일곱 명의 사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지하의 클럽에서 신나게 놀다 끌려와서 그런지, 하나같이 표정이 곱지 않았다.

[멋지군! 모름지기 사내라면 배짱이 있어야지!]

그들의 복장을 본 위철용이 감탄을 표했다.

명색이 게이트에 주둔하는 공격대의 대원이라는 것들이 갑옷은커녕, 유명 브랜드의 명품 옷 하나만을 떨렁 걸치고 있었다.

[무기도 멋지고! 저런 걸 들고도 몬스터 따윈 얼마든지 때려잡을 수 있다는 저 패기! 멋진 녀석들이로고!]

그나마 최후의 양심인지 무기는 등에 비끄러매고 있었지만.

등에 비끄러맨 무기 또한 실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뭔 놈의 무기가 무기라기보단 금으로 만든 세공품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모종의 주술을 사용하는데 쓰는 주술 도구라면 모를까. 병장기로선 빵점 그 자체였다.

“게이트 클럽 프로젝트는 오늘부로 중지다.”

떠들썩하게 몰려온 인원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자, 나영욱이 침통한 어조로 그들의 일탈이 끝났음을 통보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우?”

당연히 반응은 좋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던 놀이터가 사라질 판국이니 결코 곱게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

“길드장 나으리께서 어떤 놈이 계신가 뭐시긴가 받았다고 반드시 클리어하랍신다.”

나영욱은 ‘어떤 놈’을 강조하며 나를 흘깃 째려보았다.

“어떤 놈?”

나영욱의 시선을 따라 나머지 인원들의 고개도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이글거리는 듯한 열여섯 개의 눈동자가 내게 집중되었다.

“어떤 씹어 먹을 새끼가…. 어? 이 양반 유명한 양반 아뇨?”

“맞네. 그 얼굴 천잰가 뭐시긴가 하는 사람 있잖여!”

그래도 공격대원들은 외부 소식에 밝은 모양인지,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적의가 가득했던 그들의 눈동자가 살짝 호의와 호기심을 품었다.

“아, 그 연예계의 얼굴 신동 차병헌과의 핸섬 막고라에서 이겼다던?”

“차병헌? 전국 얼굴 자랑에서 이은우랑 뜬 거 아니었어?”

그들 역시 길드 내 소식통보단 가십거리로 나를 접한 모양인지, 해괴한 소리가 추가되었다.

염병할 핸섬 막고라는 또 뭐야? 차병헌, 이은우는 또 누구고.

“크흠, 어찌 되었든. 일단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냐.”

대원들의 반응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인지, 나영욱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튼, 게이트 공략은 해야 하니까. 계획 좀 내봐들.”

나영욱의 입에서 빠져 나온 어처구니없는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럼 두 달 동안 게이트 공략에 대해 계획조차 세워놓지 않았단 소리야?

“거 굳이 게이트 클리어해야 됩니까? 그냥 생까면 안 된답니까?”

길드장 지시를 ‘생깐다’라는 패기 넘치는 해결책(?)까지 튀어나왔다.

“나도 그러고는 싶다만, 강태백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잖아. 계시니 뭐니 하면서.”

“에라이 빌어쳐먹을 성좌 같으니! 그러지 말고 우리 한 번 협상해봅시다. 네?”

맙소사….

지껄이는 소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기이하게도 놈들은 게이트를 공략하는 행위 자체에 크나큰 반발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성좌 그 자체를 모욕하는 소리까지 해대다니….

다른 헌터들에게 이야기했다간 뺨 맞기 딱 좋은 망언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만, 이것들 헌터가 맞긴 맞는지 모르겠구나.]

다른 의미로 순수하게 감탄했었던 위철용마저, 그들의 무식함에 기함할 정도.

‘확실히 태백 길드의 어둠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하네요.’

[길드의 어둠?]

‘예,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얘네들 이따위 실력으로도 태백에 붙어있는 이유가, 바로 ‘높으신 분’들의 자식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랬다. 이 한라 공격대야말로 태백 길드의 어둠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대한 길드의 특성상.

이 나라를 주름잡는 업계의 ‘높으신 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고.

그 ‘높으신 분들’의 자식들이 모이는 공격대가 바로 이곳 한라 공격대였다.

집안에 헌터가 없으면 어디서든 발언권을 얻기 힘든 작금의 현실 탓에.

‘높으신 분들’ 역시, 자신들의 자식에게 최대한 투자를 하여 어떻게든 그들을 헌터로 만들긴 했지만.

귀하디귀한 제 자식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인지라, 각종 대형길드와 거래하여 그들의 자식들을 ‘명목상으로만’ 헌터인 공격대에 집어 곤 했었다.

“그냥 최대한 버텨보죠?”

끝까지 게이트 공략에 소극적인 채, 반대만을 표하는 클럽 중독자 놈들의 모습은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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