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난 후배님 같은 부류들을 잘 알아. 이쪽 업계에서 굴러먹으면서, 후배님 같은 인간 군상들을 여럿 봐왔거든.”
내 앞에 쪼그리고 앉은 안종훈의 몸에서 질식할 것 같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태백 길드의 무력집단 중 하나인 감찰팀의 팀장 자리를 노름으로 딴 게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놈의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
“초신성? 소문의 신예? 이딴 식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놈들은 다 똑같아. 누구보다 튀고 싶어 하고, 누구보다 잘난 맛에 살아가는 족속들이지.”
안종훈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런데. 그런 족속이 형식상으로 대충 치르는 시험에 여섯 시간 동안이나 매달려 있었다고?”
-콰앙!
안종훈은 위협적으로 바닥에 발을 쾅 굴렸다.
순간적으로 대리석 바닥이 출렁 요동쳤다. 지진이라도 난 듯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굉음과 함께 바닥에 움푹 크레이터가 생겼다.
“이거 대놓고 수상하잖아! 말햇! 여섯 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게이트 안에서 뭘 한 거냐!”
살기까지 품은 채로 귀를 윙윙 울리는 쩌렁쩌렁한 사자후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어찔해졌다.
[이, 이이! 발칙한 새끼가아앗! 컥! 커어억!]
안종훈의 격한 태도에 위철용이 짜증을 내다 못해, 아예 목덜미를 붙잡았다.
나 역시 놈의 핍박에 분노가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심호흡과 함께 분노를 꾹 억눌렀다.
[잠시, 잠시 본존은 며, 명상에 좀….]
위철용은 말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꼬물꼬물 내 머리 위로 날아올라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선, 안종훈의 신체를 어떻게 부수면 좋을지에 대해,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한 혼잣말을 끊임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저거, 명상 맞아?
위철용의 해괴한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부글부글 끓었던 속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흥분이 조금 가시자, 이성이 조금씩 돌아왔다.
설마 안종훈과 만나, 이 정도로 트집 잡힐지는 몰랐지만.
애초에 이 정도 의심은 미리 상정했던 바였다.
“이상하군요.”
안종훈의 살기가 지배한 공간에서,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항변을 시작했다.
“뭐야?”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안종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방으로 줄기줄기 퍼져 나가던 살기가, 순간적으로 내게 집중되었다.
“가입 시험에 시간제한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언제부터 그런 조항이 생겼습니까?”
사실이었다.
애초에 길드에서 건네받은 안내문에서도. 신지현이 제시한 계약서에서도. 가입 시험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항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이트에 오래 체류하는 행위는 자체는, 의심할 수는 있을망정. 규정에 벗어나는 짓은 아니었다.
“제 나름대로 성의껏 시험에 임했습니다. 제 기량을 증명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죠.”
-와르르
짐짓 열 받은 듯한 태도로 배낭을 안종훈의 눈앞에서 와락 뒤엎었다.
내 결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뒤집힌 배낭에서 고블린 정수 열여섯 개가 후두둑 쏟아져, 사방으로 데굴데굴 굴러나갔다.
“어디 한 번 세어 보십쇼! 열여섯 마리! 제가 게이트 내부에서 여섯 시간 동안 도륙한 고블린이 열여섯 마리입니다!”
안종훈을 똑바로 노려본 채, 나는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덤으로 해묵은 원한을 담아 살기까지 위협하듯 슬쩍 피어 올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살기를 내비치고 지랄이야!”
안종훈은 전후 사실보단 내 태도가 고까운 모양이었다. 놈은 살기를 그득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놈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바!
“이게 태백의 방식입니까?”
내게 짓쳐들어오는 살기에 당당하게 맞서며, 나는 짓씹듯 ‘태백’의 이름을 언급했다.
“뭐야?”
“열정과 성의에 악의와 핍박으로 대답하는 것이 태백의 방식이냔 말입니다!”
“프흐. 흐흐흐. 흐하하하하!”
태백 길드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안종훈은 화를 내기는커녕.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아니지. 태백의 방식은 그런 게 아니야. 이렇게나 많은 전리품을 들고 왔는데. 괜히 의심해서 미안하게 됐군.”
안종훈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진 것뿐만 아니라, 놈은 손을 내밀어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안종훈의 누그러진 태도에, 놈의 손을 마주 잡은 그 순간!
“그런데 말이야.”
콰아악!
갑자기 안종훈의 손에서 돌도 으깨버릴 것 같은 강력한 악력이 전해졌다.
“크흣!”
“후배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사냥하셨다는데. 조금 전 그 버러지는 후배님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거든?”
공업용 바이스로 조이는 듯한 악력에,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자.
안종훈의 눈이 고리 모양으로 휘어져 기묘한 안광을 내뿜었다.
“그 좁디좁은 게이트에 헌터가 둘이나 있었는데. 서로 마주친 일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아?”
놈의 말에 순간, 어처구니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아티팩트까지 착용한 게이트 털이범을 제가 무슨 수로 감지합니까!”
조금 전, 박상현의 경우처럼 게이트 털이범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죽이는 아티팩트를 상시 착용하고 다녔다.
기척을 아예 숨기고 돌아다니는 게이트 털이범을 언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에 불과했다.
“흐으응. 게이트 털이범? 박상현이 언제부터 게이트 털이범이었지?”
최악이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안종훈은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박상현의 신분을 게이트 털이범이 아닌, 시험 응시생으로 바꿔 증언을 위조한다면,
상황이 절대로 내게 좋게 돌아갈 리가 없게 된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실수다. 안종훈의 성격이 이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회귀 전, 놈이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울 때조차 이렇게까지 막 나가진 않았었다.
대놓고 비웃으며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안종훈의 태도에
머릿속을 팽팽 굴려, 최악의 상황. 즉 안종훈과의 모의 전투를 상정한다.
망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지금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전자장비가 닿지 않는 게이트 내부라면 모를까, 이곳은 태백이 관리하는 게이트 관리소의 내부!
놈들을 어떻게 어떻게 전부 처리한다고 쳐도. CCTV에 흔적이 남는다.
아직 제대로 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백을 적으로 돌리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일이다.
뭣보다. 지금 내 눈앞에서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안종훈은 지금의 내겐 버거운 강자!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머? 설용호 헌터님. 드디어 나오셨네요? 그리고…. 안 팀장님?”
순간, 구원의 빛이 내게 내려왔다.
바로 신지현이 나타난 것!
게다가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신지현의 옆엔 인사팀 소속의 경호원들이 시립해 있었다.
“또, 신입 길들이기 놀이를 하고 계셨나요? 안 팀장님?”
신지현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했는지. 조심스럽게 나와 안종훈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안종훈은 콰악 움켜쥐고 있었던 내 손을 슬쩍 놓았다.
“신 팀장. 인사팀은 진즉 퇴근할 시간 아니었나?”
안종훈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신지현이 끼어들자
인사팀과 소속의 경호원들과 감찰팀 간의 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유난히 험악한 헌터 업계 특성상. 인사팀을 경호하는 경호원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경호원들의 잘 차려입은 양복 아래로, 엷은 강화복이 슬쩍 내비쳤다.
“그쪽 헌터님과 볼 일이 있어서요.”
“볼 일? 신 팀장이 이 후배님이랑? 이거 더 흥미로워지는걸!”
묘하게 비꼬는 듯한 ‘후배님’이라는 말에 신지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 이번에도 가입 희망자를 핍박하고 계셨던 건가요? 안 팀장님? 그렇지 않아도 길드장님께서 애먼 길드원 좀 그만 잡으라고 하셨을 텐데요?”
“하, 이거이거, 또 사람 나쁜 놈으로 만드네. 이봐 신 팀장. 나는 위계질서를 바로잡는 거야!”
안종훈의 말에 신지현은 독오른 암고양이처럼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설용호 헌터님이 무슨 짓을 저지르셨길래, 이렇게 ‘각별한’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 거죠?”
“신 팀장. 가입 시험 치르려는 인간이 여섯 시간이나 게이트 안에 있었다는 게 믿어지나?
난 놈 같은 부류들을 잘 알아! 아무 이유 없이 게이트 안에 그렇게 오래 있었을 리가 없어.”
안종훈의 말에 신지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저도 오래 기다리긴 했죠. 근데 원래 시험이라는 것 자체가 정해진 시간이 없잖아요? 스킬 연습을 한다든지, 특성 트리 운영법에 관해 연구한다든지. 이런저런 이유로 시험 시간이 늘어날 순 있죠. 다른 증거는요?”
“증거는….”
안종훈은 교활하게 눈을 빛냈다.
“후배님 이전에 들어간 ‘수험생’이 그를 보지 못했다는 거지. 그 좁은 게이트에서 두 명의 헌터가 공존했는데 서로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짐작한 대로 게이트 털이범을 수험생으로 위장시키면서까지 나를 핍박하고 싶은 모양.
안종훈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허나, 상대는 신지현이었다. 그녀는 그의 거짓말에 얼어붙은 듯 차가운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그으래요? 그 ‘먼저 들어간’ 수험생이 혹시 ‘게이트 털이범’ 박상현을 말하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이번엔 안종훈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지금 저를 상대로 그런 저열한 사기를 치려던 건 아니셨겠죠? 길드 내부의 정보를 담당하는 부서가 어딘지 잠시 잊으신 것 같은데….”
가볍게 쏘아붙인 신지현은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안종훈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 담당도 모르냐? 이 멍청한 새끼야.’ 정도 되는 경멸의 빛이 그녀의 눈빛에 함뿍 담겨 있었다.
“다른 증거는요? 설마 겨우 그 정도의 이유만으로 길드장님꼐서 직접 영입하라 명하셨던 설용호 헌터님을 핍박하셨던 건 아니시겠죠?”
안종훈이 답을 하지 못하자, 신지현은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길드장에 대한 언급까지 나오자, 안종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없다. 하지만. 내 직감이 놈이 수상하다고 말하고 있어.”
할 말을 잃은 안종훈의 얼굴에 마침내 체념의 빛이 감돌았다.
하지만, 신지현은 마무리 일격이라도 먹이려는 듯, 계속해서 톡톡 쏘아댔다.
“작년에도 직감 운운하다 유망주 한 명 탈퇴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셨더라?”
“크윽! 그건….”
“그리고 아마 그 유망주께선 금랑 길드로 이적하신 뒤, 길드 차원에서 소송까지 걸었죠? 명예 훼손이니 뭐니 하면서?”
…금랑 길드와 소송 전쟁이 고작 그런 이유로 시작된 거였냐.
금랑 길드로 탈주한 유망주 이야기가 정곡을 찔렀는지, 안종훈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종훈은 계속해서 얼굴을 다양한 빛으로 바꾸며, 말없이 살기를 뿜어냈지만. 그의 살벌한 태도에도 신지현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놈의 얼굴에 반하기라도 했나 보지?”
마침내, 할 말이 없어졌는지, 유치하고 원초적인 말을 꺼내, 이죽거리는 안종훈에게 신지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실은 제가 설용호 헌터님 전속 매니저거든요.”
****
“흐아아아.”
신지현과 함께 게이트 룸을 빠져 나온 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많이 놀라셨죠?”
신지현의 표정엔 진심 어린 걱정이 함뿍 담겨 있었다.
안종훈과의 일도 그렇고, 회귀 전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의 살가운 태도에 왠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 안종훈에게서 나를 변호할 때도 신지현은 나를 굉장히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줬었지.
진짜 내 외모에 홀랑 구워 삶아진 건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녀가 얼굴을 바알갛게 붉혔다.
“아, 안종훈 그 새끼가 원래 좀 지랄, 어머. 실례. 안 팀장님이 원래 좀 보통이 아니시긴 해요. 거기에 또 지난번엔….”
신지현은 화제를 돌리려는 목적인지, 조잘거리며 안종훈에 대한 험담을 줄줄 늘어놓았다.
안종훈의 성격이라는 게, 솔직히 보통이 아닌 정도가 아니다. 지금은 고작 졸렬하게 신입 길드원, 특히 유망주들을 상대로 시비 거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먼 훗날, 감찰팀 총팀장의 자리에 오른 안종훈은 아무에게나 누명을 씌워 징계를 빌미로 노예 목걸이를 씌우는 짓을 밥 먹듯이 해댔다.
나 역시, 훗날 결백이 밝히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놈의 농간에 넘어가 2년이나 노예 생활을 해야 했었고….
“하하, 확실히 끄으응 환영하시는 게 보통이 아니긴 하시더군요.”
노예 생활을 회상하자, 순간 속에서 천불이 확 치솟아 올랐지만, 티 나지 않게 그것을 애써 억눌렀다.
덕분에, 목소리에 힘이 확 빠져 마치 병자의 그것 같은 쇳소리가 나왔다.
“설용호 헌터님….”
그것이 퍽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신지현의 목소리가 촉촉해졌다. 그녀의 눈가 역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일단 몸도 마음도 고생하셨으니, 좀 쉬시겠어요?”
“예?”
“제가 기가 막힌 곳을 알고 있거든요.”
****
신지현이 말한 ‘기가 막힌 곳’은 바로 게이트 관리소 내부의 휴게실이었다.
땀과 몬스터의 체액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거리를 활보할 수 없었기에.
게이트 관리소 내부엔 언제나 샤워 시설이 완비된 휴식공간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신지현이 안내해준 곳은 팀장급만 쓸 수 있는 VIP 휴게실!
회귀 전에도 단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 곳이었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다니, 부자들이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로다.]
높으신 분들이 이용하는 곳답게. 신지현이 장담한 대로 VIP 휴게실은 어지간한 호텔 스위트룸이 부럽지 않도록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오죽하면, 고구마니 뭐니, 대가리를 어떻게 부숴야 사이다니 뭐니에 대한 혼잣말을 끝없이 해대던 위철용조차. 불평 섞인 감탄을 표할 정도.
“그래도 한땐 마교의 지존이셨으면서, 그 시절, 이 정도의 사치는 평범한 일상 아니셨어요?”
[무의 길을 걷는 무인에게 사치란 독과 같으니라, 누구든지 교에서….]
자랑스럽게 본인의 검소함을 자랑하려던 위철용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마교와 관련된 기억은 무공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인지, 그의 머릿속에서 통째로 날아간 모양이었다.
[끄응…. 이거 정말 괴로운 노릇이로군, 무공과 ㅁ 자 정도만 관계있어도 관련된 기억이 멀끔히 날아가 버렸으니….]
“뭐, 앞으로 제가 특성 트리를 찍으면 자연히 회복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다만, 이 속도로 가다간 언제쯤이나 본존의 기억이 돌아올지 모르겠구나. 네놈을 믿느니, 아예 천마신공을 기초부터 다시 창안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느니라.]
위철용은 장난삼아 말했지만, 그의 말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끝까지 나를 노려보며, 사납게 웃던 안종훈의 재수 없는 면상이 떠오르자,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래, 확실히 이 속도로 가다간 계획대로 모든 것을 독식하는 짓은 하지 못하겠어.
“확실히 계획을 좀 앞당길 필요가 있겠어요.”
[계획을 앞당겨?]
“아무래도, 안종훈 성격상 이대로 넘어갈 것 같진 않거든요.”
회귀 전, 내가 기억하던 안종훈이라면, 조금 전 신지현에게 당했던 수모를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길드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인사팀 팀장 신지현을 칠 순 없는 노릇이니….
아마, 앞으로 사사건건 내게 집착하며 시비를 걸어오겠지.
“기초부터 쌓으려 했는데, 사냥감이 생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