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이건 또 무슨.”
역겨워 보이는 초록빛 액체 속을 둥둥 유영하고 있는 황금색 눈알.
보통의 아이템과는 달리 그것을 집어 들었음에도 불구, 시스템 창엔 어떠한 메시지도 출력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감정이 필요하다는 소린데….
애석하게도 태백 길드에서 지원받은 물품 속엔 감정 주문서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눈알이라, 눈알이라….”
이맛살을 찌푸린 채로 기억을 더듬으며 유리병 속의 눈알을 노려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열심히 회귀 전의 기억을 뒤적거려 봐도, 이 해괴한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경악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두려움에 몸을 떱니다.」
몇몇 성좌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경악이라는 감정표현까지 사용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성좌 하나는 두려움까지 표할 정도.
대체 이게 뭐길래 저 양반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
[호오? 제법 흥미로운 것을 들고 있구나.]
성좌들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유리병을 요리조리 굴리며, 내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사이. 보물 고블린의 시체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위철용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역시, 뭔가 아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유리병 속 내용물에 강한 흥미를 표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세요? 이런 건 본 적이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위철용이 살펴보기 좋도록 유리병을 그의 주변에 내려놓았다.
유리병에 다가간 위철용은 매끈한 표면을 어루만지며, 보존액 속의 눈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알에 이글거리듯 박혀있는 황금빛 눈동자라….]
그렇게 한참 유리병을 꼼꼼히 뜯어보던 위철용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화안금정. 그 원숭이 놈의 눈이 분명하구나. 놈의 마지막 흔적이 이런 곳에 숨겨져 있었다니. 꽤 놀라운 일인걸.]
모종의 사연이 있었던 모양인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위철용의 눈빛이 어쩐지 아련해졌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유리병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흐릿한 눈빛은 유리병이 아닌,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숭이의 눈이라구요?”
[선계에 기거하던 시절. 본존의 오랜 벗 중 하나였느니라. 원숭이 요괴 주제에 투전승불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별호를 지니고 있었지.]
꿈꾸듯 몽롱한 목소리로 과거의 추억을 중얼거리는 위철용의 표정에선 그리움의 냄새가 살짝 묻어나왔다.
“원숭이 요괴라니, 설마 손오공…?”
그의 입에서 ‘원숭이 요괴’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머릿속에 어렸을 적 읽었던, 유명한 고전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렇게 떠오른 이름 석 자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위철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놈이 지껄인 대로 하계에선 놈이 제법 유명세를 누렸나 보군. 맞다. 이건 손오공. 그놈의 눈 ‘화안금정’이니라.]
위철용이 확인해주자. 순간적으로 몸에 전율이 확 일었다. 등에 소름이 주르륵 돋았다.
손오공!
고전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누렸기도 하지만, 대격변 이후엔 ‘수렴동의 눈먼 원숭이’라는 이름의 고위급 성좌로 더 잘 알려졌던 자였다.
설마하니 성좌씩이나 되는 존재와 관련된 아이템이 이런 곳에서 발견될 줄이야.
게다가 성좌가 남긴 필멸의 흔적이라니! 회귀 전엔 들어본 적조차 없었던 설정이다.
화안금정이란 멋스러운 이름에서, 필멸의 흔적이란 범상치 않은 설정까지! 어디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유리병을 바라보자, 어쩐지 유리병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나는 엄청난 물건을 손에 넣어버린 모양이로군.
[뭐,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이걸 어쩔 생각이냐?]
마침내 마음을 정리한 모양인지.
위철용은 유리병에서 한걸음 물러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라면 당연히 제가 취해야겠죠.”
회귀한 이후로 내 결심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쓸모없는 놈들이 차지해버렸던 과거의 보물들을 모조리 독식하여, 오롯히 나 홀로 미래에 닥칠 파멸을 막아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라면,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탐욕스러워질 각오가 되어있었다.
이것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보물이라면 마땅히 내가 취하는 것이 옳을 터!
그런 보물의 처우를 고려할만한 일말의 여지 따윈, 지금의 내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놈의 힘이라면, 네놈의 행보에도 충분히 도움이 될 테지.]
위철용은 고개를 끄덕이곤 유리병에서 슬쩍 물러났다.
나는 탐욕스럽게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화안금정이 담겨 있는 유리병을 힘껏 움켜쥐었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강렬한 기대를 보입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취하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유리병을 움켜쥔 것까진 좋았으나, 막상 이것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괜히 민망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멋쩍게 긁적였다.
[모름지기 이런 형태의 귀물을 취할 땐,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최고이니라.]
위철용은 씨익 웃으며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집어삼켜라. 설용호. 그 힘을 손에 넣어라.]
등을 굽힌 채, 음험한 미소와 함께 뇌까리는 위철용의 말투에 왠지 소름이 주르륵 돋았다.
“으윽.”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다잡고, 유리병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병 속에 담긴 녹색 액체에선 형용할 수 없는 역한 냄새가 났다.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에 욕지기가 저절로 치밀어 올랐다.
마음을 굳게 먹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벌컥.
크게 한입 들이켰다.
“우웁! 미친.”
세상에, 맛조차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쿰쿰허니 꾸릿한 맛, 혀를 괴롭히는 알싸한 매운맛 맛, 넘어올 듯 역한 맛, 불쾌하게 비릿한 맛!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정적인 맛이란 맛은 죄 농축시킨 듯한 끔찍한 맛에 사고가 딱 정지했다.
[모름지기 이런 귀물의 경우, 그것을 보존하고 있는 액체까지 영약의 일종이니라. 단 한 방울도 남겨선 안 된다.]
아스라이 들려온 위철용의 조언에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목젖을 쉴새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액체를 전부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찰나.
-꿀꺽
무언가 뜨끈한 것이 목구멍 속으로 넘어간다. 싶더니….
“끄흡.”
이내 양 눈을 불에 달군 꼬챙이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시야가 점점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신화급 성유물. 화안금정을 흡수하였습니다.」
「신규 스킬 ‘화안금정’을 습득합니다.」
완전히 금빛으로 물들어버린 시야 사이로,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출력되었다.
눈앞을 찬란히 물들어버린 금빛의 향연 속에서도 시스템 창에 출력된 메시지만은 정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화안금정」
분류 : 발동형
등급 : 신화
효과 :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통해 거짓과 진실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미친.”
감탄이 섞인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효과!
그전까지 존재해왔던 상식들을 통째로 뒤엎어 버릴 만큼 정신 나간 효과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세상에….”
곧이어 시야가 다시 맑게 돌아오며, 머릿속으로 스킬에 대한 지식이 분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하자, 연달아 탄성이 터졌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자신의 날개를 자유로이 다루는 것처럼!
천적을 위협하는 고슴도치가 제 가시를 곧추세우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평범한 눈을 화안금정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사용법이 체득되었다.
마치 날 떄부터 화안금정이란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마냥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뇌리에 각인되었다.
[괜찮느냐? 정신 나간 것처럼 소리만 질러대고는….]
분수처럼 솟구치는 새로운 지식들에 희열을 느끼고 있는 사이. 위철용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봄과 동시에. 시험 삼아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시야가 다시 한 번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뭐냐. 그 뻘겋고 금색으로 번쩍이는 눈깔은! 마치 그 원숭이 놈이랑 꼭 닮은 눈이로구나.]
『진실』
희미한 금빛으로 물든 시야 사이로 위철용의 머리 위에 조그맣게 떠오른 글씨가 보였다.
[아무래도 본존의 말대로 하니, 그 원숭이 놈의 화안금정을 성공적으로 습득한 모양이군. 그것 봐라! 본좌의 말이 맞지 않더냐!]
이어지는 위철용의 말에 둥실 떠 있는 글씨가 변화를 일으켰다.
『거짓』
…이런 식으로 거짓과 진실을 판별하는 모양인가 보군.
머릿속으로 솟구쳤던, 지식이 사실임을 확인하자, 새삼스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것보다. 위철용 이 양반. 알고 섭취하라 권한 것 아니었어?
화안금정이 보여준 진실에, 어쩐지 위철용에 대한 신뢰가 살짝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후우.”
계속해서 떠오르는 위철용에 대한 불신을 깔끔히 접고, 심호흡과 함께 발동 중인 화안금정을 해제시켰다.
스킬이 해제됨과 동시에 위철용의 머리 위에 떠올랐던 글씨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금빛으로 물들었던 시야 역시, 완전히 맑게 돌아왔다.
[그 원숭이 놈의 눈을 얻은 소감이 어떠하더냐? 놈이 자랑하는 것만큼 유용하더냐?]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시험해보니까. 거짓이 바로….”
말꼬리를 흐리며 위철용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크흠. 크흐흠! 아무튼, 얻을 건 다 얻었지 않느냐?]
위철용은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지,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답지 않게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퍽 희극적으로 느껴졌다.
“예에, 뭐 보상도 만족스러운 걸로다가 얻었고….”
[그렇다면 무에 그리 꾸물거리고 있느냐! 어서, 어서 나가자꾸나!]
왠지 무안한 표정으로 계속 재촉해대는 위철용의 성화에 따라 보물 고블린 쉼터의 출구에 몸을 실었다.
거짓과 진실을 꿰뚫어보는 힘이라…. 앞으로 큰 도움이 되겠어.
****
《케겟? 케케켓!》
보물 고블린의 쉼터와 이어지는 게이트를 빠져 나오자마자
고블린 특유의 깩깩거리는 소음이 귀에 들려왔다.
그 소음의 진원지를 바라보자, 당황한 표정의 고블린 열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 어째서 이놈들이….]
“보물 고블린 쉼터 들어갈 때, 돌무덤을 무너뜨렸으니까. 아마 수색하러 나왔을 겁니다.”
의문을 표하는 위철용에게 짧게 답한 뒤, 등에 패용했던 창을 빼 들어 불끈 틀어쥐었다.
확실히, 내 말대로 돌무덤이 무너진 현장을 수색 중이었던 모양인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고블린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당혹감이 가득했다.
《고오블? 곱고블?》
허나, 그것도 잠시.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던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묘하게 변했다.
외모지상주의 특성의 치명적인 영향력에 노출된 것.
《흐으으으. 곱곱곱》
고블린들의 눈빛이 몽롱하게 풀렸다. 추악한 얼굴이 헤벌쭉 괴이한 미소를 머금었다.
케륵거리던 놈들의 거친 숨소리가 느끼함을 가득 함유한 보드라운 곱곱 소리로 변했다.
[이번 전투도 시시하겠군.]
그렇게 달라진 고블린들의 태도에 위철용이 아쉬움을 표했다.
“뭐, 특성의 특전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잘 이용해 먹어야지.”
그의 볼멘 듯한 불만족스러운 소리에 실없는 소리를 하며, 우드득 몸을 가볍게 풀었다,
열혈 팬으로 변모한 듯,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고블린들에게 팬서비스를 안겨줄 요량으로 틀어쥔 창대를 번쩍 치켜들었다.
《케르륵?》
그렇게 외모에 현혹된 고블린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짜릿한 팬 서비스를 안겨주려던 찰나.
멍하니 내 외모에 홀려있던, 고블린 중 한 마리가 갑자기 제정신을 차렸다.
《케륵! 케케케켁!》
꽤 그럴듯한 갑옷을 차려입은 고블린이 이 무리의 대장인 모양인지.
놈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째지는 듯한 목소리를 내질러 다른 고블린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호오? 이것 봐라.]
대장 고블린의 기이한 반응에 위철용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나 역시, 놈의 반응에 흥미가 생겨. 잠시 치켜들었던 창대를 내렸다.
《키익! 케엑! 켁켁!》
곧이어 대장 고블린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고블린들이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울음소리에도 많은 의미가 담긴 모양인지 놈들의 대처는 빠르고 신속했다.
[고블린답지 않게 책략도 쓸 줄 아는 놈이로구나.]
가장 멍청하기로 이름 높은 고블린이 나름의 계책을 내놓아서일까?
위철용이 나직하게 감탄을 터뜨렸다. 물론, 그의 목소리엔 비꼬는 듯한 비웃음이 듬뿍 담겨 있었다.
《케켓 노우 곱고블 켓!》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감탄했는지. 째진듯한 목소리로 웃어대는 대장 고블린의 목소리에선 왠지 모를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왔다.
[급박한 전투에서 시각을 포기하다니! 인간의 우둔한 머리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참신하기 이를 데 없는 계책이로고.]
하지만, 자신감에 가득 찬 울음소리와는 반대로 고블린들의 행동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대장 고블린부터 내 위치를 감지하지 못해, 주변을 손으로 더듬으며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켓! 켓!》
부하 고블린 중 일부는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혀. 욕설로 추정되는 날 선 목소리를 내었다.
끝까지 우직하게 눈을 질끈 감고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는 고블린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창대를 쥔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물 고블린 잡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는데.
핑계가 생겨서 다행이로군.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깩깩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하들을 지휘하는 고블린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