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그 가입 시험인가 뭔가의 할당량은 다 채우지 않았느냐??]
레벨업의 여파를 전부 정리한 뒤.
쓰러뜨렸던 고블린들의 시신에서 정수를 추출하고 있으려니. 위철용이 말을 걸어왔다.
지루한 정수 추출 작업에 질린 모양인지. 채근하듯 물어보는 위철용의 말투엔 노곤한 나른함이 노골적으로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모처럼 싸움다운 싸움을 기대했거늘. 고블린 놈들이 보통 맥아리가 없어야지.]
툴툴거리며 불평하는 위철용의 얼굴엔 어딘지 개운하지 못한 기색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긴, 만나는 고블린들이 하나같이 다 이상한 행동을 해댔으니. 격렬한 전투를 좋아하는 위철용에겐 그저 시시하게만 느껴졌겠지.
“할당량이야 옛 저녁에 채웠죠.”
쓴웃음을 짓고, 위철용에게 할당량을 모두 마쳤노라, 정수를 모두 손에 넣었노라 선언하자.
대번에 위철용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이제 나가기만 하면 끝인 게냐?]
“아뇨.”
기대하듯 물어보는 위철용에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답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확 밝아졌던 위철용의 표정이 다시 뭐 씹은 듯 찌그러졌다.
시무룩하면서도 억울함이 살아있는 그 모습이 주인에게 개껌을 빼앗긴 불독과 똑 닮아 보였다.
몇 번을 봐도 위철용 이 양반. 은근히 불독이랑 쏙 빼닮았단 말이지….
“큽. 여기서 아직 노리는 게 남아있어서요.”
낯익으면서도 못생긴 위철용의 얼굴에 웃음이 터졌다.
계속해서 물 밀듯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억누른 채.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렸다.
[노리는 것?]
다행히 위철용은 이상한 기색을 못 느낀 모양인지. ‘노리는 것’에만 흥미를 보였다.
“이곳 내부의 숨겨진 지역 말이죠.”
[허어. 이곳에도 숨겨진 지역이 존재하느냐??]
숨겨진 지역.
게이트 내부에 숨겨져 있는 별도의 게이트를 뜻하는 곳이다.
숨겨진 지역은 별개의 게이트로 취급하기에 우두머리가 따로 존재하며.
놈을 쓰러뜨려 얻는 보상 또한 게이트 클리어 보상과 별개로 제공되곤 했었다.
“회귀 전, 태백 길드 내부 문건에 의하면 돌무덤 근처에 입구가 존재한다더라구요.”
나는 위철용의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준 뒤. 저 멀리 보이는 돌무덤을 창끝으로 가리켰다.
“회귀 전엔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한 곳이라. 보상이 뭔지, 내부엔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요.”
그렇다.
애석하게도 회귀 전. 이곳의 숨겨진 지역은 우연히 발견된 이후, 그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했다.
가입 시험용 게이트라는, 워낙 쉬운 게이트에 존재하고 있었거니와 접근의 용이성이 너무도 쉬운 장소였기에.
길드 내부 파벌들이 서로서로 견제하느라 끝까지 그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했지….
“생각해보니까. 한때 성좌였던 양반이 이런 것도 몰라요?”
숨겨진 지역의 입구가 위치해 있다는 돌무덤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위철용은 회귀 전, 명색이 성좌였던 양반인데. 게이트 내부의 숨겨진 지역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크흠. 본존은 말이다. 네놈의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던 ‘높으신 분!’이었느니라. 하찮은 게이트에 관심을 둘 여유 따윈 없었지.]
안타깝게도 그런 기대는 위철용의 어쩐지 자기애로 가득 찬 대답에 보기 좋게 박살이 나버렸다.
[왜 그런 눈으로 본존을 바라보느냐?]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걷다가 위철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잠깐동안의 침묵이 불쾌했는지. 아니면 은연중에 자신이 무시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위철용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돌무덤에 도착했거든요.”
물론, 내 시선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말 그대로 돌무덤에 도착한 것.
[크흐흠. 그래, 이곳이 그 입구가 숨겨져 있다는 돌무덤이라고?]
위철용은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달라진 그의 태도에 피식 웃곤, 나 역시 돌무덤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블린 소굴의 보스 고블린 주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곳 돌무덤은.
커다란 느릅나무에 아무렇게나 돌을 쌓아 무덤의 형태를 취한 뒤.
느릅나무 가지에 알록달록한 천을 매달아 둔 형태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분명히 이곳 돌무덤 근처에….
“…있다.”
한참을 꼼꼼히 살펴본 끝에, 결국 나는 돌무덤 중심에 희미하게 음각되어있는 수상한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애가 낙서한 듯. 정해진 법칙 없이 불규칙하게 음각되어있는 난잡한 문양.
그 정체는 고위급 몬스터가 사용하는 룬문자다.
-콰득!
새겨진 룬문자 정 중앙을 향해, 거침없이 창날을 찔러 넣었다.
-쿠르르르릉
무더기로 쌓여있는 돌들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돌로 이뤄진 무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공간이 왜곡된다 싶더니, 이내 붉은 포탈이 입을 쩍 벌렸다.
「숨겨진 지역 – 보물 고블린의 쉼터를 발견하셨습니다.」
****
「숨겨진 지역 – 보물 고블린의 쉼터에 진입합니다.」
붉게 물들었던 시야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보물 고블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놈이 기거하는 쉼터는 각종 보석과 금붙이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크윽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호화찬란하게 꾸며진 내부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무언가가 부패하는 듯한 악취가 코끝을 자극해왔다.
《그르륵 그르르륵》
냄새의 진원을 따라 정 중앙으로 시선을 옮기자.
산더미처럼 쌓인 금화 더미 위로 투실투실하게 살찐 거대한 고블린이 누워 요란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숨겨진 지역의 보스, 보물 고블린과 조우하셨습니다.」
숨겨진 지역의 보스답게, 놈과 조우한 순간.
게이트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것처럼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 보물 고블린의 수하, 박제 고블린들이 당신의 침입을 감지했습니다.」
「경고. 보물 고블린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전투에 대비하십시오!」
-뿌오오오옹
뿔피리 소리와 함께 경고 메시지가 연달아 출력되었다.
벽면에 걸려있는, 박제된 고블린들의 머리가 두둥실 떠올랐다.
삐걱거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잡동사니들이 놈들의 육신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꾸루루워어어어》
난리 통에 잠에서 깬, 보물 고블린이 짜증이 가득 찬 괴성을 내질렀다.
놈은 자신이 깔아뭉개고 있었던 잡동사니 더미에서 거대한 망치를 뽑아 들었다.
[이제야 좀 재밌게 되었군!]
보물 고블린의 살벌한 기세와 마주하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몸이 긴장으로 살짝 굳은 것과는 별개로, 도리어 가슴 속엔 투지가 들끓어 올랐다.
위철용이 희열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 이제야 좀 재밌게 되었네!
《꾸르아아악!》
“크아아앙!”
놈의 포효소리에 맞춰 배에 힘을 빡 주고 사자후를 내질렀다.
투기가 줄기줄기 흘렀다. 영혼 속에 새겨진 특성 트리를 타고 힘이 들끓어 올랐다.
삐걱거리면서 다가오는 박제 고블린들의 숫자는 무려 열 마리!
놈들과의 전투를 대비하려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잡동사니로 이뤄진 몸 따윈 과자처럼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팽배해졌다.
이것이 새롭게 획득한 특성, 일기당천의 묘용!
넘실거리는 괴력에 태백 길드에서 지원받은, 질 좋은 창이 부서질 듯 웅웅 떨렸다.
-콰드드득!
파천 복룡창 제2식 독룡아!
현 시점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패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스킬이 완벽하게 펼쳐졌다.
탐욕스럽게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 용처럼 뻗어 나간 창날이
박제 고블린들의 사각을 파고 들어가, 놈들의 박제된 머리통을 꿰뚫었다.
-파사사삭!
일기당천의 힘으로 폭증한 근력이 무기에 깃들자, 놀라운 위력이 발휘되었다.
박제 고블린의 단단한 머리가 움푹 패였다.
쿰쿰한 곰팡내가 난다 싶더니,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꿰뚫린 놈들의 머리가 힘없이 부서져버렸다.
《꾸뤄어어엉》
박제 고블린을 그렇게 박살냈다 생각한 순간.
보물 고블린이 휘두른 육중한 망치가 내 몸을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망치에 실린 위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빗맞은 망치가 대지를 강타한 순간!
-콰아아앙!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이 터졌다. 지면이 파도치듯 출렁 흔들렸다.
매캐한 먼지가 요란하게 비산해, 사방을 거뭇하게 물들였다.
웅웅 뒤흔들리는 지축에 맞춰 심장이 제멋대로 쾅쾅 뛰었다.
“치이잇!”
물결치는 지면 위에서 흔들 균형을 잃을 뻔했다.
침음성을 삼킨 것도 잠시. 흔들리는 육신을 곧추세워 있는 힘껏 진각을 밟았다.
-쾅!
꽈드득 힘이 들어간 다리가 무서운 힘을 발휘하였다.
단단한 돌바닥이 내 발자국 모양으로 움푹 패였다.
흔들렸던 몸이 빠르게 균형을 되찾았다.
-콰지지직!
균형을 되찾음과 동시에 다시 한 번 펼쳐진 독룡아!
살짝 회전을 먹인 창날이 보물 고블린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꾸루아아아악!》
흉폭하게 파고든 창날은 보물 고블린의 살을 한 움큼 물어뜯었다.
놈의 투실하게 살찐 옆구리에 빠끔 구멍이 뚫렸다.
-푸확!
곧이어 뜨끈한 피가 사방으로 촤악 튀었다.
역한 악취 속에서 피비린내가 짙게 풍겼다.
《꾸워어어억!》
귀청이 터질 듯한 포효!
코를 간질이는 피 냄새!
피부로 느껴지는 전투의 뜨끈한 열기!
참을 수가 없었다.
“와-라-앗!”
들끓는 흥분을 사자후를 내지르는 것으로 해결하며.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보물 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끼기긱》
순간, 옆구리가 선뜩한 느낌이 든다. 싶더니, 박제 고블린이 요란한 삐걱 소리와 함께 양쪽에서 덮쳐 들어왔다.
“흡!”
들고 있는 창으로 바닥을 거칠게 내려찍었다.
창을 내려찍은 반동으로 몸을 하늘 높이 띄워, 놈들의 공격을 피했다.
하늘로 뛰어올랐던 몸이 다시 바닥에 닿은 그 순간!
-부와아악!
부들거리는 창대의 끝을 잡고 무식한 힘으로 바닥을 쓸어가듯 휘둘렀다.
-퍼버버벅!
파공음과 함께 휘둘러진 창대는 무식한 힘을 품고 있었다. 창대에 얻어맞은 박제 고블린의 몸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기기긱》
창대에 얻어맞아 박제 고블린 네 마리가 순식간에 터져 나가자.
일기당천의 힘으로 폭발하듯 증가했던 능력치가 다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박제 고블린의 숫자는 고작 세 마리!
-끼기기긱!
발악하듯 돌격해오는 박제 고블린들에게 다시 한 번 창끝이 싸늘한 빛을 발했다.
-퓻!
단 한 번의 찌르기로 두 마리의 박제 고블린들의 머리가 박살났다.
그렇게 두 놈의 머리를 까부순 순간.
《끼기긱》
남은 한 마리가 창의 최소 사거리로 가까이 접근했다.
-꽈앙!
순간적으로 움켜쥔 창날을 놓고. 주먹에 힘을 불끈 쥔채. 놈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힘이 들어간 주먹이 박제 고블린의 머리를 움푹 함몰시켰다.
이것으로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모든 박제 고블린이 전부 박살나버렸다.
《꾸, 꾸루워어엉》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질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보물 고블린을 노려보며.
나는 다시 창대를 들곤 양 손에 힘을 불끈 쥐었다.
****
보물 고블린을 목숨을 취한 것은. 놈의 퉁방울 같이 커다란 눈에 틀어박힌 창날이었다.
들어간 힘이 좀 과했는지 놈의 머리를 노리고 내질렀던 창은, 보물 고블린의 눈알을 부수는 수준을 뛰어넘어.
놈의 조그마한 뇌까지 완벽하게 결딴내버렸다.
《끄욱 끄우우욱》
머릿속이 곤죽이 되어버린 보물 고블린의 얼굴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남은 한쪽 눈이 멍하게 풀리며, 입에선 신음과 함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침을 줄줄 흘렸다.
[에잉. 이놈들도 맥아리가 없어 맥아리가!]
숨겨진 지역의 우두머리 전투가 허망하게 마무리되자. 위철용이 이번에도 볼멘소리로 불평을 토했다.
“어쩔 수 없죠. 아무리 이곳이 숨겨진 지역이라고 한들. 저레벨 지역이니까요.”
전투에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게 조금 우습긴 하다만.
이곳 고블린 소굴은 엄연히 초심자를 위한 게이트다.
숨겨진 지역인 보물 고블린의 쉼터 또한, 초심자가 상대할 것을 상정하였기에
보스인 보물 고블린의 전투력은 압도적인 완력을 제외하곤 영 보잘 것이 없었다.
「업적 [탐욕을 종결시킨 자] 달성!」
「칭호 [보물 고블린 학살자]가 수여됩니다.」
「칭호 보상 – 능력치 보너스 포인트 [+10]」
그것을 증명하듯 시스템 창에 표기되는, 우두머리 전투 보상은 조촐했다.
뭐, 업적 보상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숨겨진 지역이니만큼 보상은 굉장하겠죠.”
[그래봤자. 초심자를 위한 것 아니겠느냐? 싱겁기는….]
전투가 끝나면 수확의 시간이 찾아오는 법.
이곳을 가득 메웠던 금붙이와 보석들이야, 게이트의 일부이기 때문에.
보물 고블린의 죽음과 동시에 소멸해버렸지만….
「우두머리, 보물 고블린의 전리품 상자가 출현합니다.」
게이트 클리어 보상만큼은 다르다!
시스템 창의 메시지와 함께 거대한 상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손을 슥슥 비비며, 보물 고블린의 전리품 상자를 확인한 순간.
“에게?”
맥이 탁 풀렸다. 실망감이 부르르 찾아왔다.
건장한 사내 두엇은 들어갈 법한, 커다란 상자 속엔 작달막한 유리병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몸을 숙여, 유리병을 꺼내자….
“…눈알?”
팔뚝만 한 굵기의 원통형 유리병엔 금빛 눈동자를 지닌 눈알 두 개가 둥둥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