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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8화 (8/309)

제8화

「고생하셨습니다. 설용호 수험생님. 모든 튜토리얼 시험에 훌륭하게 합격하셨습니다.」

「앞으로 쓰여질 당신의 이야기에 부디 찬란한 영광이 함께하기를…」

형식적인 종료 메시지와 함께 내 몸을 휘감은 빛무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내 눈앞에 들어온 풍경은 너무도 익숙한 곳이었다.

“여전히 친절하기도 하셔라.”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 뚜껑을 땄다.

마음속으로 스며들 듯 청량한 소리와 함께 맥주의 알싸한 향이 사방에 퍼져 나갔다.

튜토리얼 타워에서 합격한 수험생들이 도착하는 곳은 바로, ‘자기가 가장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

간단히 말해서. 수험생 본인의 집, 본인의 방이다.

튜토리얼 타워가 합격자들에게 제공해주는 친절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

“뭐, 번거롭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실성한 듯,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갓 꺼낸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회귀 전, 합격하면 마시겠다며 큰맘 먹고 쟁여놨었던 놈답게 기가 막힌 맛을 자랑했다.

“크으으으으.”

튜토리얼 타워의 모든 단계를 클리어했으니, 새삼스럽지만 헌터 자격은 획득했고.

남은 것은 협회에서 등급이 적힌 성적표가 날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모든 것을 지켜본 협회 관계자들이 심사 끝에 등급을 내려주는 것이기에.

등급판정까진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린다.

그때까진 뭐, 시험 보느라 지친 몸을 달래면서 쉬는 거지.

싸구려 매트리스에 몸을 던지듯 뉘자, 묘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코끝을 간질였다.

“…….”

그전에 먼저… 좀 씻을까?

****

욕실 바닥이 엉망이 될 정도로 격렬한 샤워의 시간이 지나간 뒤.

벌거벗은 상태로 휘적휘적 걸어 나오자, 채널에 후원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50 후원하였습니다.」

『…』

목욕하는 장면마저 지켜보고 있었는지, 성좌 하나가 바로 후원을 보내온 것.

「경고. 존재력 포인트 최대치에 도달하였습니다. 후원받은 포인트를 자동으로 환불합니다.」

존재력 포인트가 최대치에 도달해 있었기에, 아깝게도 성좌의 후원은 자동으로 환불처리 되었

다.

자연스럽게 그 성좌가 보낸 메시지 또한 묵음처리 되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아쉬움을 표합니다.」

…무슨 목욕 한 번에 150 포인트를 그냥 제공한담.

심지어 후원 포인트를 돌려받은 것에 아쉬움까지 표하는 모습에 헛웃음까지 나왔다.

“감사합니다. 백합을 쥔 처녀님! 하지만, 아직 제 수련이 부족하여 포인트를 환불할 수 밖에 없네요. 죄송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래도 성좌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이유는 전혀 없었기에, 일단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포인트를 이렇게 쉽게 번다면, 한세훈이 빠르게 강해진 비결이 이해가 가는걸….

“특성 트리 오픈.”

깔아둔 이불에 몸을 편히 뉜 뒤. 새롭게 얻은 특성 트리를 확인했다.

나직하게 뇌까린 명령어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스템 창이 크게 확장되었다.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커져 버린 시스템 창 위로.

수십 개의 별로 구성되어 은은하게 빛나는 별자리가 펼쳐졌다.

회귀 전부터 수천, 수만 번 봐왔던 너무나 익숙한 특성 트리 ‘끝없는 고행의 길’.

스으윽

허공에 손을 휘젓자 내 손짓대로 특성 트리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특성 트리를 조작하여 가장 왼쪽 구석에서 빛나는 별로 시선을 옮겼다.

「파천복룡창 0/1」

끝없는 고행의 길 특성 트리의 시작이 되는 특성. ‘파천복룡창.’

거창한 이름에 비해, 특성에 투자해 봤자 얻는 것은 고작해야 같은 이름의 희귀 등급 스킬에 불과했다.

「파천복룡창 1/1」

익숙한 손놀림으로 첫 번쨰 포인트를 배분하자.

첫 번째 특성이 밝게 빛나며, 그것과 이어지는 특성들로 향하는 길이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축하합니다. 첫 번째 스킬 파천복룡창 (희귀)를 습득하셨습니다.」

「파천복룡창」

등급 : 희귀

효과 : 하늘을 부수고 용을 굴복시키는 창술을 습득합니다.

『“내 창은 하늘을 부수고 용을 굴복 시키는 창이니라!”

“진짜요?”

스승은 어린 제자의 반짝거리는 눈을 애써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승 역시 자신의 스승에게서 그렇다고 가르침을 받았을 뿐.

마교의 하급 무사에 불과한 자신이 진짜 하늘을 부술 수 있는지에 대한 화신은 없었거든요.』

파천복룡창에 특성 포인트를 투자한 순간,

무의식 저편으로부터 창술에 대한 지식이 분수처럼 솟구쳐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회귀 전, 수천 수만 번 휘둘러 몸과 정신에 각인되다시피 한 창술이지만.

이렇게 다시 한 번 스킬로 습득하니 새삼스럽게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뭐, 다른 특성을 찍으려면 파천복룡창에 우선 포인트를 줘야 하는 게 필수라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아직은 레벨이 1에 불과하기에 찍을 수 있는 포인트는 이게 전부였다.

위업을 달성해서 획득한 고유 특성들도 있긴 하나.

그 역시 포인트를 투자해야 하기에, 아직은 사용할 수 없었다.

“역시 레벨 업이 시급하긴 하군.”

어쩐지 아쉬워지는 마음을 접고, 특성 트리를 닫았다.

“포인트 숍. 오픈”

「으하하하하 무엇을 도와드릴깝쇼?」

특성 트리를 닫자마자 한 나의 선택은 바로, 포인트 숍을 여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존재력 포인트가 최대치까지 쌓인 이상.

레벨 업에 도움이 되는 VIP 상점 물품은 하나쯤 사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는 1레벨에 무엇을 사야 하는지,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손님.」

잠시 뒤,

포인트 숍을 닫은 내 손엔 어느새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스킬 북 - 배후령 소환 (유물)」

존재력 포인트를 물경 200이나 잡아먹는 괴물이기에, 1레벨에 구매할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이었지만.

성좌들에게 후원도 많이 받았겠다.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배후령 소환.

애초에 특성 트리라는 것은,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초월자의 삶을 별자리의 형태로 기록해둔 것이다.

배후령 소환이란 것은, 바로 특성 트리에 남아있는 초월자의 기억을 영혼의 형태로 소환하는 것.

이렇게 소환된 배후령은 기억의 잔재에 불과한지라, 자아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특성 트리에 숨겨져 있는 특성을 개방시켜주거나 몇몇 스킬의 요구 레벨을 확 낮춰준다거나 하는 식의 유용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회귀 전에 그토록 갖고 싶었던 스킬인데. 마침내 이것을…!

“배후령 소환.”

스킬 북을 찢어, 스킬을 습득한 뒤.

어쩐지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배후령을 소환하였다.

-쿠르르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며 배후령이 소환되었다.

이목구비는 전혀 없이 간신히 인간형을 유지하고 있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요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녀석은 별자리에 그려진 무인처럼 작디작은 창을 꼬나쥐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

흐뭇한 표정으로 배후령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본 순간!

“크윽!”

갑자기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송곳으로 머리를 푹 쑤시는 듯한 찌릿한 격통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양 머리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끄흐으으읍”

마치 영혼이 찢겨져 나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에 입조차 열 수 없었다.

이불 위에 누운 상태로 볼썽 사납게 몸을 비트는 것이 고작이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을 지배했던 영문 모를 격통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으응…?]

격통이 잦아들자, 손바닥 위의 배후령이 작달막한 입을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으으응! 으응!]

뭐라 옹알거리기 시작한 녀석은, 황급히 제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조막만한 손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배후령의 통통한 얼굴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아아!]

한참을 얼굴을 주물거리던 배후령의 입에서 우렁차고 굵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후령의 조막만 한 입에서 튀어나온 우렁창 목소리를 듣는 순간!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에 사고가 딱 정지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위철용?”

[애송이…?]

나를 올려다보는 배후령의 얼굴은, 어느새 위철용의 못생긴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배후령.

기억의 파편을 소환한 것에 불과하기에 분명히 자아가 없는 존재다.

대화가 통하긴 하나, 그것은 시전자의 요구에 따라 기억을 늘어놓는 것일 뿐.

자아가 있어, 진정 대화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본존은 분명히….]

인간을 어설프게 닮았던 초록색 요정 모양의 배후령은 어느새 내 기억 속의 위철용의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위철용 본인도 영문을 모르는 모양인지, 나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패닉에 빠져,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미뤄보건대. 아무리 봐도, 자아가 없는 존재 같아 보이진 않았다.

대체 이건 어떻게 된 거라고 봐야 하지?

****

[허어, 이런 결과를 맞이해버릴 줄이야.]

한참을 고민하던 위철용(?)이 마침내 운을 떼었다.

“이런 결과라뇨?”

그의 무거운 혼잣말에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성좌라고 할지언정, 회귀처럼 시간 축을 뒤틀어 과거의 인과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히 금지된 일이다.]

“네, 그래서 소멸을 각오하셨었죠.”

[그래. 그렇기에, 본존은 네놈을 과거로 돌려보냄과 동시에 성좌의 격을 잃어버렸고, 네놈이 보는 앞에서 소멸을 맞이하였지.]

맞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기에 아직도 똑똑히 기억고 있는 장면이다.

빛무리로 화하는 위철용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아프디아픈 화인처럼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허나, 거대한 성좌의 격이 부서진 충격으로, 본존의 영혼 일부가 네놈에게 붙은 채로 회귀한 모양이구나.]

“그래서, 제가 소환한 배후령을 매개로….”

[그래, 아마도 그것을 통해 잠들었던 본존의 영혼이 눈을 뜬 것 같다.]

“으으, 이걸 반가워 해야 할지 아니면 안타깝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모르겠다. 나도, 아니 본존도 혼란스럽구나. 혼란스러워.]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인지, 위철용의 입에선 ‘본존’과 ‘나’의 칭호가 번갈아 나왔다.

나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위해 희생했던 위철용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언젠가 다시 한 번쯤은 만나

그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그의 희생이 가치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런 형태로 재회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 혼란스럽기만 했다.

성좌였던 그가 이런 식으로 영락해 쪼그라든 게 안쓰럽기도 하고….

“…!”

성좌라는 단어가 뇌리에 스친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이번 생애에서 성좌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그런 성좌들에게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좋지 않은 생각이 들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불안한 마음에 손가락이 파들파들 떨렸다.

[뭐? 성좌들이 너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어서 들킬까 두렵다고?]

입으로 해당 생각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놀랍게도 위철용은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기이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만, 네 생각이 본존의 머릿속에 실시간으로 전해져 오고 있느니라.]

“아니, 그러니까. 그게….”

위철용의 입을 막기 위해, 움직인 순간.

그는 자그마한 손을 들어 나를 제지하더니. 피식 웃곤 말을 이었다.

[필멸자들의 대화 따윈 고귀하신 성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예? 하지만 분명히. 제가 감사를 표할 때마다.….”

[네놈의 표정, 태도,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통해 유추할 뿐이다. 성좌들과 필멸자 사이에는 네놈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장벽이 있어.]

위철용은 어깨를 살짝 으쓱이더니, 말을 이었다.

[성좌들이 필멸의 존재들을 바라보는 건,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볼 수는 있되. 목소리만은 결코 들리지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쓸데없는 걱정은. 본존은 한때 최고위 성좌였느니라. 놈들의 속사정 따윈 뻔하지. 오죽하면 본존이 네놈을 만나기 위해, 손가락까지 버려가면서 강림까지 했겠느냐.]

“그럼 그렇지만….”

[이제 와서 나를 동정하려 하느냐? 어차피 한 번 저버렸던 목숨이다.]

의연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편 위철용은 나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뜻밖에 경극을 특급 좌석에서 보게 생겼으니, 기쁜 일이면 기쁜 일이지, 네놈이 안타까워할 일은 절대 아니야.]

그의 못생겼지만 푸근한 미소와 다시 한 번 맞닥뜨리자 가슴이 시큰해졌다.

[게다가, 본존은 오히려 성좌 시절보다 더 자유로운 몸이 되었느니라.]

“자유의 몸이요?”

[성좌 시절엔 이것저것 제약이 너무 많았지. 허나, 이제 성좌의 격을 벗은 지금. 본존은 자유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소리다.]

위철용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를테면, 네놈에게 천마신공을 가르쳐 준다거나 하는 짓도 태연히 저지를 수 있어.]

“천마신공이요?”

천마신공!

회귀 전, 위철용이 잘생긴 얼굴 대신 선택하길 종용했던 그 무공!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연히! 배우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저로선 개꿀이죠!”

[좋아. 귀 똑똑히 씻고 새겨 듣거라. 천마신공의 첫 번째 구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운을 뗀 위철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굳은 표정은 곧 당황으로, 당황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어. 뭐였더라?]

“네?”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 역시 위철용의 그것과 비슷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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