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7화 (7/309)

제7화

눈앞을 가득 메웠던 새하얀 빛이 잦아들었다.

깜빡이는 시야 사이로 제일 먼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쩐지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는 검붉은 대지,

그리고 그것을 동그랗게 감싼, 높다란 담장이었다.

튜토리얼 타워의 5층은 마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이 꾸며져 있었다.

「위대하신 분들께서 당신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시스템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고개를 들어 담장 위쪽을 올려다보자.

높다란 담장 위쪽으로 보이는 관객석에선 인간들 대신 형형색색의 별자리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압권이란 말이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늘어선 관객석 사이로 번쩍이는 별자리의 향연!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비어져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장관이었다.

저 휘황찬란한 별자리들의 정체는 바로, 성좌의 대리자들!

오색으로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는 그들의 역할은 바로,

위대하신 성좌 님들의 눈이 되어 이곳, 투기장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카메라 같은 거라고나 할까,

-우드득

높다란 곳을 올려다보느라 뻐근해진 목을 가볍게 풀어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넓은 투기장엔 양소혜와 이세영을 포함한 다른 수험생들의 모습 따윈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15분 뒤, 4단계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위대하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황량한 투기장의 광경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4차 시험을 알리는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튜토리얼 타워의 4단계 시험은 바로. 투기장에서 강력한 몬스터와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타워의 신비한 힘으로 수험생들은 각각 다른 장소의 투기장으로 이동되며,

그곳의 주인인 몬스터와의 전투를 통해 자신의 값어치를 성좌들 앞에서 증명해야 한다.

협력도 없다. 경쟁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값어치를 증명하는 것만이 있을 뿐!

-쿠웅. 쿠웅.

15분이 어느새 지나버렸는지, 귓가에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투기장 구석의 커다란 문이 쿵쿵 울리며, 묵직한 압박감을 내게 선사해줬다.

-콰아아앙!

커다란 문이 폭발할 듯 거칠게 열리며.

전신이 바위로 이뤄진, 뚱뚱한 몸집의 거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워어어어어!》

귀청이 멀어버릴 것 같은 우렁찬 포효소리!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아찔한 악취!

3단계까지 저지른 짓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상대해야 할 몬스터는 강대하기 그지없는 바위 트롤이었다.

《크르르르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놈은, 나를 발견하기 무섭게 콧김을 거칠게 뿜어대며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찔하게 풍기는 역한 체취 위로 트롤 특유의 노릿한 숨결 냄새가 더해졌다.

-콰드드득

놈의 적의에 맞서며, 손에 힘을 바짝 불어넣어 손잡이가 으스러질 듯 무기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튜토리얼에서부터 바위 트롤이라니….

바위 트롤은 적어도 희귀 등급 이상의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놈이다.

적어도 레벨 20 이상은 되어야 간신히 맞상대가 가능한 놈인데. 그게 튜토리얼에서 튀어나온다고?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스킬도 없다. 마력도 없다. 능력치도 레벨이 낮아 놈과는 맞상대가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건 완전히 죽으라는 소린데….

《부워어어엇!》

마침내 탐색이 끝났는지, 바위 트롤은 곧장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지축을 쿵쿵 울리며 뛰어오는 아찔한 모습에 오히려 호승심이 차올랐다

“와라아앗!”

배에 힘을 빡 주고, 기합을 강하게 내질렀다.

-부와아아앙!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날아드는 바위 트롤의 거대한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손잡이를 강하게 틀어쥔 채, 놈의 공격에 대비하려던 찰나….

「축하합니다. 4단계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갑자기 합격을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어어?”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맥이 탁 빠졌다. 틀어쥔 무기에 힘이 풀렸다.

시야가 깜빡 점멸한다. 싶더니, 빛과 함께 몸이 빛무리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쿠웅!

바위 트롤의 묵직한 공격은 내게 닿지 못한 채, 빛에 휘감긴 나를 통과하여 애꿎은 바닥만을 가격했다.

《부오?》

자신의 공격이 허망하게 통과해버린 것을 본 바위 트롤도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합…격?”

예기치 못한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

“아니, 시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합격해버렸다고?”

헤- 벌어진 입으로 넋 나간 혼잣말이 계속해서 비어져 나왔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부오? 부오?》

신기하다는 듯, 기묘한 소리를 내며.

빛에 휘감긴 내 몸을 통과하여 손을 계속 휘젓는 바위 트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다시 한 번 하얗게 백열 되었다.

****

눈앞을 가득 채웠던 흰 빛의 향연이 사그라들자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으로 만든 제단 위로는 복잡한 문양들이 정신없이 새겨져 있었고

제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돔 형의 천장엔 수없이 많은 별자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튜토리얼 타워의 마지막 층….

모든 헌터 지망생들이 고된 아카데미 생활을 이겨내 가면서 꿈꿔오는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체 뭐였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광경이지만, 내 머릿속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몬스터와의 피 튀기는 혈투 끝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긴커녕.

그럴 기회조차 없이, 트롤의 체취가 코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바로 합격이 통보되다니….

「축하합니다.」

혼란스러워하는 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수험생 ‘설용호’님께선 존귀하신 분들의 선택을 받아 4차 시험에서 합격하셨습니다.」

“…아니, 뭐한 것도 없는데….”

반사적으로 의문이 튀어나왔지만, 시스템 창은 묵묵히 새로운 메시지를 계속해서 출력했다.

「존귀하신 분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시스템 창이 업데이트됩니다.」

반투명한 시스템 창 위로 새로운 창 하나가 추가로 떠올랐다.

반투명한 회색빛 시스템 창과는 구분되는, 붉은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반투명한 창.

이것이 성좌와 헌터를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창구, ‘채널’이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입장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입장합니다.」

「장미를 두른 과부가 입장합니다.」

…세상에.

회귀 전엔 하늘을 거머쥔 자, 위철용 혼자만 외롭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번엔 채널이 개설되기 무섭게 성좌가 세 명이나 입장하였다.

기본적으로 채널은 레벨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성좌의 숫자가 다르다.

1레벨인 지금 수용할 수 있는 성좌의 수는 총 셋.

사실상 개설과 동시에 최대치에 도달했다는 소리다.

“처음 뵙겠습니다. 위대한 분들이시여, 헌터 지망생 설용호, 인사 올리겠습니다.”

쿵쾅대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킨 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다소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커뮤니케이션 창구에 입장한 성좌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당신의 외모에 찬사를 보냅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당신의 외모에 감탄합니다.」

「축하합니다! 장미를 두른 과부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50 후원하였습니다.」

『조각 같은 네 모습에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가 않는구나 아이야.』

맙소사….

후원, 성좌들이 존재력을 후원해주며, 자신의 의사를 표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인사를 했을 뿐인데, 장미를 두른 과부라는 성좌가 잘생겼다는 말 한마디를 위해. 존재력 포인트를 무려 50이나 후원해줬다.

회귀 전엔 게이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토벌하는 데 성공해야 존재력 포인트를 겨우 150 포인트를 후원받을까 말까 했었는데.

잘생겼다는 말 한마디를 위해 50 포인트 후원해주다니! 이게 대체 무슨…!

“가, 감사합니다. 장미를 두른 과부님!”

통 큰 배포에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말로만 때우는 것이 아니라,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 그 자리에서 고마우신 과부님께 절까지 올렸다.

「장미를 두른 과부가 크게 만족해 합니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장미를 두른 과부에게 치사하다고 불평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장미를 두른 과부에게 질투를 느낍니다.」

「축하합니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00 후원하였습니다.」

『고작 50포인트로 만족하시다니, 배포를 조금 더 키우셔야겠네요.』

「축하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50 후원하였습니다.」

『고작 50포인트로 유세를 떠시다니요? 후원이라는 건 세 자리부터 시작하는 거랍니다.』

장미를 두른 과부가 절을 받았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꼈는지, 나머지 두 성좌도 질세라 연속해서 후원을 보내줬다.

그 포인트는 무려 100과 150! 이 정도면 게이트를 토벌해야 받을 수 있는 수치다!

「경고. 존재력 포인트 최대 한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성좌들이 경쟁하듯 후원을 해댄 통에 순식간에 1레벨 최대 보유 한도인 300에 도달해버렸다.

“가, 감사합니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님! 백합을 손에 쥔 처녀님!”

그들의 은총에 감격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넙죽 절을 올렸다.

이 순간만큼은 입가에 새겨 넣은 미소에서 가식이 사라질 정도였다.

****

존재력 포인트.

오로지 성좌들의 후원으로만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후원금 같은 것이다.

포인트 숍을 이용하기 위한 포인트로도 환전할 수도 있지만,

이것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포인트 숍의 VIP 상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VIP 상점에선 일반 포인트 숍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

희귀한 고유 특성이라던가, 스킬 북, 전설급 장비 등등까지!

각각의 레벨마다 후원받을 수 있는 존재력 포인트의 상한이 존재하기에, 상점에서 구입 가능한 물건조차 일반 포인트 샵과는 격이 달랐다.

회귀 전엔 단 한 번도 레벨별 한도를 채워 본 적이 없었는데….

회귀 전의 존재력 포인트에 대한 기억을 생각하자. 괜스레 쓴웃음이 나왔다.

머리를 휘휘 털어 좋지 못한 기억을 털어버리곤. 중앙에 자리 잡은 제단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5단계 시험을 시작합니다.」

제단의 중앙에 도달한 순간, 5단계 시험을 알리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동시에 돔 형의 천장에서 별자리 세 개가 오색 찬란한 빛을 흩뿌리며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튜토리얼 5단계 시험은 자신의 특성 트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특성 트리는 그동안의 성적이 반영되며, 총 세 개의 선택지가 제시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자리가 띄고 있는 외형으로만

「당신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선택하십시오!」

별자리가 완전히 내려오자, 선택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그동안 튜토리얼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회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해서 그런지.

첫 번째 별자리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꿀꺽.”

나는 침을 꿀꺽 삼킨 채, 첫 번째 별자리로 다가갔다.

“대박이다…!”

과연, 첫 번째 선택지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남자가 용맹하게 포효하고 있는 모습의 별자리. ‘열두 가지 과업의 길’!

회귀 전. 전설적인 헌터 ‘황제’ 에드워드의 신화급 특성 트리였다.

뉴욕 한복판에 열린 SS급 게이트를 홀로 막아낸 채, 장렬히 산화한 그는 헌터들의 영원한 ‘황제’로 역사에 기록되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기록에 남아있는 에드워드의 무력은 실로 경외할만한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 황제 에드워드의 특성 트리가 첫 번째 선택지로 나오다니….

손이 덜덜 떨렸다.

당장 저것을 선택하라는 충동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꾹 눌러 참고 두 번째 별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쳤군.”

두 번째 선택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거대한 낫을 든 채, 검은 로브를 입은 해골이 그려진 ‘죽음과 부패의 길’

수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죽음의 마녀, ‘흑장미’ 아즈사의 신화급 특성 트리다.

어째선지 인류를 배신해버린 그녀는, 그 강력한 권능의 칼날을 인간들을 대상으로 휘둘렀고.

미쳐버린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 SS급 상위권 랭커들이 스무 명이나 모여서야 간신히 아즈사의 머리를 베어낼 수 있었다.

상위권 랭커들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녀의 오만한 모습을 떠올리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온몸에서 독과 죽음을 쉴 새 없이 흩뿌려대던 그 압도적인 무력이란!

“…끔찍하게 강했었지.”

이번에도 당장 선택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고 세 번째 별자리로 향했다.

“…!”

그렇게 세 번째 별자리로 접근한 순간.

몸이 멈칫 굳었다.

민활하게 돌아가던 사고가 딱 멎었다.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세 번째 별자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심장이 정신없이 쿵쿵 뛰었다.

“…말도 안 돼.”

다른 두 개의 별자리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하게 보이는 별자리

몸을 피로 흠뻑 적신 채, 힘겹게 창을 휘두르는 무인의 뒷모습이 새겨진 특성 트리.

’끝없는 고행의 길‘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이 특성 트리는….

바로, 회귀 전 내가 선택했었던 특성 트리였다.

“…어째서냐….”

어서 자신을 선택하라 재촉하듯 찬란한 빛을 발하는 신화급 특성 트리 사이에서

끝없는 고행의 길은 기묘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끝없는 고행의 길은 어디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영웅 등급의 특성 트리!

나머지 두 개는 신화를 이룩했던 인물들이 사용했던, 그야말로 격이 다른 신화급 특성 트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신화급 특성들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최선이다.

“…젠장.”

별자리에 그려진, 쓸쓸하게 등을 돌린 무인의 모습이 어째선지 회귀 전의 나와 닮아 보였다.

곧이어 나를 위해 제 몸을 희생했던 성좌, 위철용의 모습까지 그 위에 겹쳐 보였다.

위철용의 모습이 떠오르자, 흔들거리던 마음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갈팡질팡, 우유부단하던 마음이 굳건해졌다.

“선택하겠다.”

특성 트리 선택을 입에 담은 순간!

파아아앗!

눈앞에 펼쳐져 있던 별자리가 산산이 분해되었다.

그렇게 분해된 별자리는 희끄무레한 보랏빛 빛무리가 되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가뭄을 노래하는 시인이 당신의 선택에 경악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길게 탄식을 토합니다.」

「장미를 두른 과부가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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