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기회요?]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다시 한 번’의 기회라니?
이미 나는 죽어버린 데다. 육신마저 실시간으로 썩어가는 중인데, 도대체 무슨 수로….
“사실, 본존은 네놈이 맞은 결말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거든.
어째서 우리 같이 못생긴 놈들은 죄다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야만 하는 게냐?”
[우리 같이…요?]
마치 거울에 비친 것 같이 생겨먹은 위철용의 얼굴을 보자, 어쩐지 납득이 갔다.
그도 대충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우리 같이 못난 놈들 말이다. 그저 서로 보는 것만으로도 흥겨운 못생긴 것들! 네놈이 본존이랑 똑같이 생긴 것도 기가 막히는데, 결말도 똑같이 비극적인 꼬라지라니!”
[하, 하하하]
살짝 광기에 찬 채, 열변을 토하는 위철용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본존은 말이다! 이 경극의 비극적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때문에, 네놈에게 본존이 기회를 다시 한 번 주려는 것이니라.”
순간, 위철용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내 영혼을 둔중하게 울렸다.
‘다시 한 번’이란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가 어떤 ‘기회’를 제공해줄 것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회귀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귀!
만약 그의 말대로 이야기의 결말을 다시 쓸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모든 것을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전율이 일어났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비극적으로 끝맺은 내 인생을 다시 돌이킬 기회라니!
[하겠습니다! 무조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위철용에게 피를 토하듯, 부르짖었다. 간절함을 담아 그에게 매달렸다.
그래! 단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흐음.”
필사적으로 변한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을까?
위철용은 어쩐지 묘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이제야 좀 볼만한 얼굴이 되었구나. 뭐, 여전히 못생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만. 네놈이나 본존이나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겠느냐.”
실없는 농담과 함께 위철용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끌끌 웃었다.
“감독관!”
실로 막대한 기운이 담긴 사자후!
끌끌 웃던 위철용은 별안간 허공을 향해 사자후를 내질렀다.
-쿠르르르릉
‘감독관’이란 단 세 글자를 외쳤을 뿐임에도 불구, 무너진 신전 전체가 우렁우렁 울렸다.
돌가루가 요란하게 사방으로 비산했다.
「네, 듣고 있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의 사자후에 화답하듯. 허공에서 높낮이를 알 수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조차 완벽하게 거세된 듯한 감독관이란 존재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의 그것과도 같았다.
“본존은 이제부터 인과율에 간섭. 설용호를 과거로 회귀시킬 생각이다.”
「진심이십니까? 회귀자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위해 당신께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까짓 ‘대가’ 따위, 기꺼이 치러주지.”
위철용은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담백한 대답을 날렸다.
「…….」
그의 명쾌한 답을 끝으로, 잠시 약간의 정적이 감돌았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한날 필멸자 따위를 위해, 진정 ‘성좌’의 위를 버리시겠습니까?」
정적을 깬, 감독관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았다.
“안 될 거 있나? 어차피 성좌니 뭐니 하는 광대놀음도 질려가던 차다. 관람료가 좀 비싸긴 해도. 재밌는 경극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러야겠지.”
「…허가합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콩나물 사듯 간단하고 명쾌하게 이뤄진 거래였으나.
그 내용만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뭐?
자, 잠깐 성좌의 지위를 버려?
성좌가 성좌의 자리를 버리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건데…!
[자, 잠깐만요! 서, 성좌의 지위를 포기하신다니요!]
“말 그대로다. 네놈을 과거로 회귀시켜주는 대신, 내 존재를 대가로 지불하겠다는 게지.
쉽게 말하자면, 네놈을 과거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나는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는 소리다.”
깜짝 놀라 위철용에게 따지듯 질문하자. 그는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태연스레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째서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성좌 중 일부는 헌터와 사도의 계약을 맺고,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만….
기본적으로 성좌와의 계약은 결코 수평적이지 못한 관계!
그 사도의 계약 역시, 이런저런 제약도 많고, 매달마다 성좌에게 바쳐야 하는 제물도 만만치 않은 ‘불공평한’ 계약이라 들었다.
그만큼 성좌라는 족속들은 필멸자 알기를 자신의 유희거리 정도로만 삼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째서 이 위철용이란 성좌는 내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지?
“네놈을 위해서라고?”
위철용의 눈꼬리가 가늘게 휘었다.
고리 모양으로 변한 그의 눈꼬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제넘게 착각하지 마라, 말했지 않느냐. 광대놀음에 지쳐버렸다고! 네놈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따윈,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니라!”
폭발하듯 엄습해오는 압도적인 살기!
필멸자들의 그것과는 격이 다른 살기에 노출되자,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이 엄습해왔다.
심장을 콰악 틀어쥐고, 죄어오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네놈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본존을 위해서야.”
[흐허헉, 허헉. 아, 알겠습니다.]
공간을 잠식했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폭풍처럼 살기를 뿜어냈었던 위철용의 표정이 다시 예의 그 생글거리는 얼굴로 돌아왔다.
“지금껏 무를 위해 살아왔고, 무를 위해 도의 길을 걸어왔다. 허나, 정파 늙은이들처럼 등선 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따분해서 죽을 지경이다.”
위철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약이 어찌나 많은지, 인과율이니 뭐니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통에 수련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해! 지쳤다. 성좌니 뭐니 하는 광대놀음에 본존은 완전히 지쳐버렸어!”
위철용은 넌더리가 난다는 듯 어깨를 부르를 떨었다.
“이렇게 지칠 대로 지친. 쓸모없는 영혼이라도, 신명 나는 경극의 관람료가 될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게 아니겠느냐?”
하긴, 무공을 통해 성좌의 자리에 오를 만큼 무에 열정적인 인물이
더는 맘대로 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얼마나 허망할까.
쓸쓸한 표정으로 허공을 더듬는 위철용을 바라보자, 왠지 뭔가 울컥할 것 같은 느낌이 몰려왔다.
「성좌 ‘하늘을 거머쥔 자’님의 요청으로 설용호 님을 회귀자로 설정합니다.」
말없이 쓸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위철용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다시금 예의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귀 절차를 시작합니다.」
「맹약에 따라 회귀자 ‘설용호’ 외의 모든 이의 기억이 초기화됩니다.」
「맹약에 따라 회귀자 ‘설용호’의 회귀 직후. 성좌 ‘하늘을 거머쥐는 자’의 존재는 완전히 소멸합니다.」
「맹약에 따라 회귀자 ‘설용호’에게 회귀 특전이 주어집니다.」
마치 시스템 창에 연속으로 울려대는 메시지처럼, 감독관이 회귀 절차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한마디 한마디가 시스템 창에 그대로 기록되었다.
주르륵 올라가는 메시지 속에서 나는 ‘회귀 특전’이란 말에 주목하였다.
[회귀 특전?]
「그렇습니다. 회귀자에겐 회귀 특전이 제공됩니다.」
「어떤 소원이든 맹약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한 가지를 특전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단, 한 번 선택한 소원은 다시 번복할 수 없습니다.」
특전이라니. 갑자기…?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천마신공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딘지 달관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위철용이 갑자기 비상할 정도의 관심을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반짝거리는 그의 눈엔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 하늘에 닿는 상승의 공부이니라. 한 50년쯤 수련에 매진한다면 하늘을 찢고 바다를 가르는 일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지.”
태도로 유추해 보건대 나를 통해 뭔가 모종의 대리만족을 채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위철용의 무공서 천마신공이라….
뭐, 잘 생각해보면 이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위철용이 나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희생시키려는 것을 사제의 정으로 기릴 수도 있을 테고….
뭣보다, 위철용이라는 무인을 성좌의 자리에 올려놓은 무공이니만큼, 절대로 범상치 않을 것이란 느낌이 팍팍 들었다.
[천마신공을 원한다면 가져갈 수 있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질문하기 무섭게 바로 표시되는 명쾌한 답변!
“으하하, 그래! 좋은 선택이다! 본존의 천마신공이야말로 제일가는 보물이니라. 조각 같은 외모? 마르지 않는 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사나이라면 무력! 무력이 최고이니라!”
[에이 조각 같은 외모 같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물론 가능합니다.」
위철용이나 나나, 농담 삼아 조각 같은 외모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 것에 불과한데, 이번에도 가능하다는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예?]
“뭐?”
예상치 못한 답변에 멍하니 되물었다. 위철용 역시 이런 반응은 예측하지 못한 모양인지, 살짝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말씀하신 조각 같은 외모도, 마르지 않는 부도. 말씀만 하신다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조각 같은 외모?]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존재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조각 같은 외모를 보장하는 특전입니다.」
“아무리 그대로 그런 게 어딨…. 네, 네놈 설마!”
감독관의 입에서 ‘조각 같은 외모’가 나온 순간. 어째선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조각 같은 외모, 조각 같은 외모!]
홀린 듯, 똑같은 단어를 계속해서 되뇌자, 기분 좋은 울림이 몸 전체로 좌악 퍼져나갔다.
단어를 이루는 여섯 글자에서 훈훈한 기운이 퍼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 그것만 있으면 나는….]
지난 32년간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외모 하나 때문에,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던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가!
그래, 외모다. 외모야!
남들보다 잘생긴, 아니 남들과 비슷한 정도의 외모만 있으면 나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더는 한세훈 같은 종자들에게 공적을 빼앗기지 않아도 돼!
길 가는 학생들이 서로 저거 미래의 남편감 아니냐며 조롱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돼!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고도 오히려 치한으로 신고당하는 인생도 이젠 안녕이야!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있으면…!
[조각 같은 외모, 조각 같은 외모….]
홀린 듯 계속해서 조각 같은 외모를 중얼거렸다.
되뇌면 되뇔수록 기분 좋은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평생을 살아오며 쌓은 한이 풀리는 듯한, 그런 따스한 울림이었다.
“저, 정신을 놓은 게냐? 네가 받아야 할 특전은 천마신공이다. 천.마.신.공! 마를 정복하고 하늘에 오르는 신묘한 공부! 이것만 있으면 외모 따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위철용은 다급하게 옆에서 천마신공의 대단함에 대해 읊었지만….
평생의 숙원과 평생을 응어리진 한이 풀리는 단어를 들은 지금, 천마신공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외모 따윈 신경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뭐라고?”
[저와 똑같은 외모로 살아오셨다면! 그 어떤 설움을 겪었는지, 얼마나 서러웠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평생을 못생긴 자로 살아온 못난이의 피맺힌 절규!
그 한 맺힌 응어리에 위철용조차 일순간 움찔거리며 동요를 보였다.
뭔가 좀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리던 그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래, 탈태환골조차 본존의 천형을 벗기지 못했지. 본존의 외모를 모욕한 놈들을 모조리 때려죽여도, 그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었다.”
역시….
못생긴 자의 한은 못생긴 자가 알아보는 법이다.
위철용 역시,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인정하마. 좋을 대로 해보아라.”
마침내 승낙이 떨어졌다.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위철용에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숙고한 결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조각 같은 외모를 선택하겠습니다.]
「…정말로 특전 - ‘조각 같은 외모’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마침내 결심한 소리를 내뱉자 뜨거운 눈물이 다시 한 번 흘러내렸다.
그래…. 이거면 돼. 이거야말로 내가 평생 바래 왔던 길이야.
「회귀 특전 ‘조각 같은 외모’가 선택되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추구하였던 완벽한 외모가 회귀 특전으로 제공됩니다.」
「회귀 후 특성을 확인해주세요.」
“네놈의 마음속에 간직해온 응어리와도 이제 작별이겠구나.”
선택이 끝나자, 위철용의 입에서 어쩐지 아쉬운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멸하는 판국에 천마신공을 전해주지 못한 것이, 그에겐 약간이나마 미련으로 남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뭐 됐다. 네 선택이 그렇다면 관객에 불과한 본존이 뭘 어찌 할 수 있었겠느냐…. 본존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서 네놈의 행보를 즐거이 관람하고 있겠다.”
위철용은 뭔가 초연한 듯한 말투로 조용히 뇌까렸다.
곧이어 작별을 암시하는 듯, 그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 그 뭐냐 어르신 제가 어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져, 어떻게든 위철용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됐다. 괘념치 마라. 말해지 않았느냐. 본존이 원한 것은 지루한 성좌의 삶을 끝내는 것뿐이었다고.”
위철용의 몸은 점점 투명해져 갔지만, 어째선지 표정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온화하기만 했다.
“본존이 준 기회를 헛되이 하지만 말아라.”
그 말을 남긴 채. 반투명하게 변한 위철용의 육신이 황금빛에 휩싸여 산산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결말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황금빛으로 분해되어가는 위철용에게 넙죽 절을 올리자, 내 영혼도 눈 부신 빛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회귀가 시작됩니다.」
「회귀 시점은 회귀자의 바람에 따라 임의로 설정됩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주변의 풍경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릿한 시야 사이로 마지막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경… 하늘을 거머쥔 …가 …귀자 ……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