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1화 (1/309)

제1화

“부서져라! 제발 부서져어어엇!”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간절한 바람을 담아.

어느샌가 부러져버린 창의 창날을 손에 단단히 말아 쥔 채,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쩌적! 쩌저적!

너른 신전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진홍빛 바위 심장에 내력이 실린 창날이 콱콱 틀어박혔다.

희미한 내력을 머금은 창날이 심장을 가격할 때마다, 쩍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심장에 잔금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빼곡한 잔금으로 덮여있는 진홍빛 바위 심장은.

부서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한 채, 여전히 불길한 고동을 토해내고 있었다.

“염병할 돌덩어리 새끼!”

여전히 건재한 심장과는 반대로, 짓씹듯 욕설을 내뱉는 내 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쩍쩍 말라붙은 입안은 가뭄 철 논바닥처럼 흉하게 갈라졌으며, 말라붙은 목구멍에선 단내가 훅훅 밀려왔다.

그뿐인가, 피로에 찌든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죽는다고 삐걱삐걱 비명을 질러댔다. 바짝 굶주린 허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게걸스럽게 내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전신에 충만했던 내력 역시 쪼르륵 말라붙어, 이젠 무기에 내력을 불어넣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도달한 이상,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으드득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잡았다.

「우두머리의 봉인이 풀리기까지, 앞으로 『30』초 남았습니다!」

「경고. 우두머리, ‘멸망을 노래하는 고룡’의 부활이 임박했습니다. 서둘러 핵을 파괴하십시오!」

순간, 오른쪽 시야의 시스템 창에 앞으로 남은 시간과 함께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주일 전에 시작되었던 148시간짜리 타이머에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30초에 불과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되어버렸다고? 아, 안돼!

“으, 으아아아아!”

마음이 급해졌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타이머에 남은 시간을 확인한 순간부터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 뛰었다.

-콰앙! 쾅! 콰아앙!

창날을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쥐고 미친 듯이 진홍빛 바위 심장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짰다. 부서진 창날을 맨손으로 콰악 움켜쥔 탓에 손바닥이 너덜너덜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3」

“아, 안돼. 안돼. 안돼! 제발! 제발!”

「2」

“으아아아! 이럴 순 없어! 인제 와서 이렇게 끝날 순 없다고!”

「1」

「0」

시작된 30초의 초읽기는 허무할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잔금으로 뒤덮인 바위 심장은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

「제한시간 종료!」

「공격대 우두머리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초읽기가 끝남과 동시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 위로. 실패를 알리는 무정한 메시지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

중앙에 놓인 진홍빛 바위 심장에서 간헐적으로 둘려오던 맥박 소리가 뚝 멎었다.

진홍빛 심장이 시커멓게 물들더니, 별안간 단단한 대리석 천장을 뚫고 위쪽으로 쑥 솟구쳤다.

《쿠워어어어어!》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포효. 그 안에 담겨있는 진득한 살기!

“크흡!”

그동안의 사투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이 찐득한 살기에 노출되자, 즉시 반응이 왔다.

악다문 잇새 사이로 피가 울컥 넘어왔다. 간신이 몸을 지탱하던 다리가 휘청 꺾였다.

“…!”

천장을 뚫고 나간, 그것은 이내 황혼이 드리운 오렌지빛 하늘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에 풀려났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시커먼 몸뚱이가 끊임없이 맥동하며 꿈틀거렸다.

「울부짖는 설원의 우두머리, 멸망을 노래하는 고룡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시스템 창에 놈의 봉인이 완전히 풀렸음을 의미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시에, 하늘을 검게 수놓았던 거대한 형체가 빠끔 입을 벌린 게이트를 향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이즈 3 : 멸망이 시작됩니다. 필멸자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안돼.”

맥이 탁 풀렸다. 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결국, 멸망을 막지 못했다.

평생을 걸고 싸워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서러움과 허망함, 분노가 교대로 밀려왔다.

“커헉!”

쓰라린 좌절은 곧 심마의 형태로 찾아왔다.

목구멍이 비릿하다 싶더니, 시커멓게 죽은 피가 왈칵 쏟아져나왔다.

머리가 어찔하니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 바닥에 무너지듯 몸을 뉘었다.

“쿨룩! 쿨룩!”

폐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과 함께 목구멍에서 죽은 피가 계속 넘어왔다.

찐득하게 굳어있는 시커먼 핏덩이 속엔 선홍빛 내장 조각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쥐꼬리만큼 회복된 내력이 제멋대로 날뛰며, 몸속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빌어…먹을.”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나 역시 그랬다. 살기 글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빌어 처먹을 개새끼들아아아!”

죽음을 인지한 순간, 32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응어리졌었던 한과 울화가 폭발했다.

뭐 죽을 때가 되면 미련이 없어져?

적어도 내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인 것 같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모든 것에 초탈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미련이 강하게 몰려왔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린 병신들에 대한 증오가 활활 불타올랐다.

“병신들! 얼간이들! 쓰레기들! 슬라임보다 멍청한 새끼들! 카학!”

쌓인 응어리를 토해내기라도 하듯, 마지막 힘을 쥐어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한이 풀리기는커녕 시커먼 핏덩어리만 울컥 넘어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가물거리는 시야 사이로 시커멓게 변해버린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숨이 끊어질 때가 임박했는지, 아니면 누군가 한스럽게 중얼거린 의문에 대한 답을 해 주는 것인지….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이 새까만 밤하늘을 배경 삼아 재생되기 시작했다.

****

“…….”

…그래 모든 게 다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때문이로군.

그렇지 않아도 짐작은 했지만. 직접 주마등을 바라보니, 일이 이 꼴이 되어버린 이유를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린 이유?

굉장히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외모! 외모 때문이었다!

이곳에 같이 진입했었던 공격대원들이 허무하게 전멸해버린 것?

일주일간의 사투 끝에도 핵을 부수지 못한 것?

모두 다 내 빌어먹을 정도로 처참하게 생긴, 못생긴 외모 때문이었다.

…이렇게 파고드니, 새삼 비참해지는군.

도대체 외모랑 게이트 공략 실패한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미리 말하건대, 애석하게도 내 외모는 ‘좋은’ 아니, 애초에 ‘정상적인’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평균 신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55cm의 작달 만한 키.

달 표면처럼 구멍이 뽕뽕 뚫려 심하게 얽어있는, 유난히 추잡한 피부

외계인처럼 한쪽만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치과의사마저 포기한 고르지 못한 치열.

두피까지 침범해온 피부질환 탓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머리카락.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커다랗고 납작한 들창코까지!

그야말로 남들에게 비호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만을 선별하여 오밀조밀하게 때려 박은, 더럽게 못생긴 놈이라고 할 수 있지.

…아무튼.

이렇게 비참할 정도로 못생긴 외모가 작금의 모든 상황을 초래한 비극의 원인이 되어버렸지.

두 달 전.

시스템 창에 갑작스럽게 표기된 돌발 퀘스트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헌터 랭킹 50위 권의 SS급 헌터들이 모두 모였다.

그중에서도 선별에 선별을 걸쳐 결사대로 뽑힌 것이 40명!

따라서, 이곳에 진입했던 것은 총 40명이나 되는, 대 인원이었다.

헌터의 정점에 이른 SS급 랭커 50인 중 40명이 모인 만큼,

그 기세는 사뭇 대단했고, 그 누구도 실패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한세훈이라는 멍청이가, 엉뚱한 명령을 내려 모두 허무하게 산화하기 전까진 말이지.

그래, 한세훈.

그 머저리 새끼 때문에 모든 것이 망해버렸다.

실전경험 하나 없이, 잘생긴 얼굴과 도둑질한 공적 만으로만 SS급 랭킹에 들어선 인물!

말 그대로 헌터 업계의 어둠을 상징하는 그 머저리 새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냐고?

앞에서도 말했듯, 이게 다 빌어먹게 못생긴 내 외모 때문이다.

애초에 놈이 도둑질한 공적의 주인은 바로 나! 설용호의 것이었다.

하지만, 길드의 대표로 내세우기에 내 외모는 심각하게 못생겼었고, 키까지 작아. 도저히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들었기에….

길드의 높으신 분들은 고심 끝에, ‘상품성 없는’ 못생긴 나 대신, 잘생긴 얼굴마담에게 내 공적을 모조리 몰아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언변, 도둑질한 내 업적으로 한세훈은 내가 속한 길드 ‘태백’의 대표 헌터가 되어, SS급 랭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성좌들마저 놈의 외모 하나만을 보고 막대한 후원을 넣어준 통에.

특성 포인트와 능력치를 무식하게 찍어댈 수 있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세훈은 진짜로 SS급에 걸맞을 만큼, 강한 헌터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실전 경험 따윈 전혀 없이. 오로지 정치질로만 그 자리를 꿰찼다는 것.

레벨조차 성좌들의 후원으로 올려버린 놈은,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때문에, 이곳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뻔히 보이는 함정 속으로 39명의 결사대 전원을 밀어 넣는 미친 판단을 해버렸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결사대 전원은 한세훈의 화려한 언변에 홀랑 속아 넘어가 함정 속에서 장렬히 산화해버렸다.

애초에 놈을 믿지 않았던 나만이 위기의 순간, 가까스로 몸을 빼낼 수 있었고, 한 달 동안 게이트 내부를 수색한 끝에 핵이 위치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알다시피, 일주일 동안의 분투에도 불구. 핵을 부수는 것엔 실패하고야 말았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것 역시도 내 외모 때문이었지.

쩨쩨한 성좌 놈들이 내게 지원을 조금만 해줬더라면!

그들은 단순히 내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나를 기피 했었다.

간혹가다 내 채널에 방문하는 이도 있었으나, 내 얼굴을 보곤 바로 나가버렸지….

다른 SS급들은 채널에 수백, 수천 명의 성좌가 득시글거린다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채널엔 오로지 단 한 명의 성좌만이 조용히 내 최후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삐릭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약간의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빛이 사그라들어가는 시야 사이로 반투명한 붉은빛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성좌와 소통하는 대화창 ‘채널’이다.

[하늘을 거머쥔 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내 최후를 바라보고 있는, 단 한 명의 성좌, ‘하늘을 거머쥔 자.’

튜토리얼에서 나를 선택해준 이래, 계속해서 나를 지켜봐 온 유일한 성좌였다.

튜토리얼에서조차, 그가 아니었으면 시험에 통과조차 하지 못할 뻔했지.

[하늘을 거머쥔 자가….]

감회에 젖어, 그가 보낸 메시지를 바라보려던 찰나. 시야가 검게 암전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한계다.

채널에 무언가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으나, 애석하게도 더는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가물거리던 시야가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가며 으슬으슬한 추위가 찾아왔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갔다.

****

“…어…라…”

어디선가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던 의식이, 살짝 돌아왔다.

“깨어나라!”

이번엔 소리가 조금 전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아니, 또렷하다기보단, 목소리에 실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에.

살짝 돌아왔던 의식이 마치 찬물이라도 맞은 양 부르르 떨렸다. 흐리멍덩한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흐허헉!]

정신이 돌아옴과 까맣게 암전되었던 시야가 다시 회복되었다.

회복된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부서진 신전을 배경으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거둔 내 비루한 육신이었다.

어…? 잠깐. ‘내’ 시체?

[우아아아아악! 뭐, 뭐야 이건!]

깜짝 놀라 비명 지르듯 소리를 뾰족하게 내질렀지만,

내 목소리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웅웅 울렸다.

“후우, 다행히 망령이 되기 전에 붙잡았군. 그래, 이제 좀 정신이 드느냐?”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환란에 빠져있는 사이.

내 의식을 무저갱 속에서 끄집어내 줬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자….

그곳엔 대충 중국 맛이 나는 복장을 차려입은 중년인이 푸근한 미소를 입가에 띈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

중년인의 외모가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

“클, 그래. 네놈이 보기에도 그렇더냐? 어떠냐, 마치 동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지?”

중년인은 익살맞게 웃으며, 고개를 쭈욱 뻗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중년인의 말처럼, 그와 나의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었다.

중년인 쪽이 좀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만 빼면, 그야말로 같은 사람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나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왠지 중년인의 찌그러진 외모가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같이 유니크하게 못생긴 사람이 또 있나 했더니, 여기 또 있네….

뭐지? 누구지? 미래에서 건너온 나인가?

“어리둥절하기만 할 게야. 어째서 죽어버린 자신이 이렇게 다시 현세로 돌아왔는지 지금은 마냥 혼란스럽기만 할 테지.”

중년인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계속해서 입가에 푸근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선, 영문 모를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고생했다!”

중년인은 다짜고짜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영혼 상태지만, 그의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네놈의 삶은 언제나 흥미로웠거든! 본존이 아직 필멸의 육신을 벗지 못했던 시절,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절을 보는 것 같았느니라.”

꽈악 붙잡은 손을 정신없이 흔들며, 그는 속사포처럼 정신없이 괴이쩍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억겁의 세월 동안 권태롭기만 했었던, 본존의 지루한 삶에 있어 네놈의 인생은 최고의 경극이요 활력소였어!.”

내 인생이 경극이었다고? 활력소? 이건 대체 무슨 헛소리야?

[필멸의 육신? 최고의 경극? 대체 그건 무슨 말인지….]

왠지 모를 위압감에 짓눌려, 중년인에게 존댓말로 질문하니.

그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 이런 오랜만에 흥분한 나머지 설명이 조금 늦었군.”

중년인은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한 뒤, 뒷짐을 진 채.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본존이 바로 십만대산의 주인이자, 신교의 이십삼대 교주 천마 위철용이니라!”

천마? 십만대산? 어렸을 적 무협지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이름이다.

헌데, 그건 소설 속 설정일 뿐. 그리 낯익은 개념은 아닌데….

[어디 길드 소속이시라고요?]

“…뭐, 네놈에겐 위철용이란 이름 석자보단 ‘하늘을 거머쥔 자.’라는 오글거리는 이름이 더 익숙할 테지.”

중년인, 위철용의 입에서 ‘하늘을 거머쥔 자’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사고가 딱 멎었다.

뭐라고?

성좌라고? 성좌가 직접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 그러니까. 성좌라면 그….]

혼란에 빠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네놈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봐왔던 성좌가 바로 이 몸이시라 그 말이다.”

위철용은 과장된 태도로 장난치듯 가슴을 쭉 내밀었다.

히죽거리는 그의 표정을 보자, 어쩐지 먹먹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래, 이 양반만이 나를 지켜봤었지….

“허, 그놈 갑자기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긴, 됐다. 사내놈이 징그럽기는.”

내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웠을까? 위철용은 장난스레 손을 휘휘 내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찾아와 주시다니….]

“그래, 필멸자 한 놈을 보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좀 크긴 했지. 허나, 본존은 관람료를 아끼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래도 좀 비쌌지.’라고 너스레를 떨며, 위철용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대가가 손가락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오른손엔 손가락이 두 개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시큰해졌다.

고고하기로 소문난 성좌가, 나를 보기 위해 값까지 치르며 직접 찾아오다니….

“본존이 어째서 그만한 대가까지 치르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하겠지?”

괜히 벅차오르는 감상에 빠져있을 찰나, 위철용은 씨익 웃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본존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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